양주 회암사터
지리적으로 고려의 수도 개성과 조선의 수도 한양 사이에 위치한 회암사는 고려 말과 조선 초기에 가장 중요한 사찰 중 하나였다,
회암사는 지공선사와 그의 제자 나옹선사 그리고 태조 이성계와 절친사이이자 스승인 무학대사의 부도와 석등이 산 위에서 아래로 순서대로 놓여 있다.
양주 회암사터 상단부 전경- 고려의 수도 개성과 조선의 수도 서울이 모두 가까운 절터이다.
회암사터 지공선사 부도, 석등 및 부도비
회암사터 나옹선사 부도 및 석등
나옹선사는 원나라 지공선사로 부터 법을 전수받고 귀국하여 공민왕 태후의 요청으로 여러 사찰에서 법을 전하다가 무학대사에게 법을 전한 고려말 스님으로 이곳 회암사에서 1361년 주지가 되어 법회를 열어 명성이 매우 높았으나, 기울어 가던 고려말의 혼란스런 상황에서 나옹선사의 교세를 견제하기 위한 왕명에 의해 밀양(당시 지명은 밀성)의 영원사로 가던 중 1376년 여주 신륵사에서 입적하게 된다.
회암사터 무학대사탑(보물 388) 및 쌍사자석등(보물 399- 조선시대 쌍사자석등으로 쪼그려 앉은 사자가 화사석을 받치고 있는 모양이다.)
무학대사는 나옹선사의 법을 전해 받았으며 태조 이성계와 친분이 두터운 스님으로 태조와 함께 한양으로 도읍을 정하는데 기여하게 된다.
1393년(태조 2)에는 회암사에 지공과 나옹의 사리탑을 건립하였고 한때 태조의 명으로 회암사에 머무르기도 했으며, 그의 제자로는 함허당 득통기화스님이 있다.
무학대사의 사리탑은 입적 후 태종의 명으로 건립되게 되었다.
회암사터 승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