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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초저녁 보름달.
그 달이 뜨고 진 다음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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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대신
새우를 곁드린 짜장 국수로
아침인 지 점심인 지 모를 식사로
대충 한 끼를 때우고는
오랫만에 먼 길을 나섰다.
사실
먼 길도 먼 길 이려니와
그 먼 길을 한 번 마음 먹고
마음껏 걸어 볼 요량으로
단단히 채비를 하고 나왔다.
사실 집을 나오기 전 까지는
이렇게 먼 길을 걸을 생각이 없었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란 항시 변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동해선을 타고 그냥 송정역에 내려
해동용궁사까지 걸어 갔다가
해동용궁사를 한 바퀴 돈 후
시랑대를 구경 하고는
다시 송정에서 해운대까지 버스를 타고 갈
계획 이었으나
이왕 먹은 마음 좀 더 넉넉하게 걷기로 했다.
사실 이 나이에는
좀 무리 일 수도 있다.
그래도 도전은 늘 아름다운 것.
나이와 아무 관계 없는 게
도전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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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지만
오늘도 용궁사는 발을 제대로 디딜 틈도 없이 사람들로
가득하다.
마침 스님의 주제로 용궁제도 올리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이미 한 두 번 온 곳이 아니라서
대충 절을 한 번 휘~ 둘러 본 후
절 뒤 편 시랑대 가는 길로 방향을 틀었다.
절을 벗어 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편안한 자세와 인자한 미소로 중생들을 맞이 하고 있는
불상을 돌아 보았다.
절 뒤편 롯데로 향하는 바닷길을 잡아
약간 황톳길이 있는 좁은 길을 돌아드니
채 몇 분 지나지 않아 송정 바닷가에 발길이 닿는다.
언뜻 제주도 서귀포의 쇠소깍이 연상되는
포구도 보인다.
불현듯 제주도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일년 동안 거주 했던 제주도도
곳곳이 그립다.
일년 동안 거주 했던 제주도도
곳곳이 그립다.
다리도 조금 아프고
심심하고 허기도 조금 찾아 오고 있다.
그러나
식당보다 카페가 먼저 눈에 들어 온다.
공극의 공간 샌드 커피.
호수처럼 잔잔하고 푸르른 바다를 마주한
백색의 공간.
기장과 대변의 대형 카페들에 비하면
작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루프탑까지 3층으로 되어 있고
역시나 디저트도 함께 제공하고 있다.
우선 약간의 허기도 있고 하니
커피와 함께 빵도 하나 챙겼다.
느긋하게 30분 이상 시간을 죽이며
앉아 있다가 천천히 다시 길을 떠났다.
서둘 필요가 없는 길이니
걷는 걸음도 속도를 최소한으로 낮춘 채
움직이고 있다.
바다도 보고
깊은 하늘 호수에 풍덩 눈 길이 빠져 들기도 하면서.
그렇게 걷다보니
어느새 송정 바다열차 역에 닿았다.
사람 발걸음 속도가 참 빠르다.
주변에는 식당도 여기저기 참 많다.
그 중에 찾아 들어 간
왕칼국수집.
서비스로 꼬마김밥도 내어 준다.
본 메뉴가 나올 동안 기다리며
허기나 달래라는 듯.
이미 먹은 꼬마김밥과
만두가 들어 간 왕칼국수와 함께 식사를 하고나니
거동이 힘들 정도로 배가 부르다.
미련곰탱이.
음식을 남겨야 하는 데
그 많은 걸 다 먹어 치웠다.
그러나 아직도 걸어야 할 길이
많이 남았기 때문에
든든히 먹어 두는 것도 한 편은
괜찮을 듯 싶기도 하다.
해안 데크길을 따라 걷고 걷고 또 걷고
하늘 한 번 쳐다 보고
바다 한 번 바라 보고
오고 가는 열차 곁눈질로 슬쩍 쳐다 보기도 하면서
길을 가노라니
어느새 달맞이 고개 등산길 앞에
발이 닿았다.
얼마만에 걷는 달맞이 고개길인가!
내내 바다길만 걷다가
산길을 만나니 또 이토록 반가울 수가 없다.
그렇게 쉬며 놀며
마시며 먹으며 걷고 또 걷다보니
집에서 나선 지 6시간이 다 되어 간다.
그래도 오늘도 이 하루
얼마나 멋지고 행복한 나드리인가.
해운대에서 해동용궁사까지
걸어서 가고 왔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