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성, 그 오묘한 질서의 미학-민병도 (5)
정형성, 그 오묘한 질서의 미학저자민병도출판목언예원발매2024.05.25.
자성自性의 재발견, 혹은 물음의 시
김덕남 시조집 『거울 속 남자』 해설
젖내 문득 그리운 날 위양못 찾아간다
물속 하늘 날아가도 젖지 않는 백로 날개
높아서 더 깊어지는 새의 길이 보인다
신음도 진통제도 흘려보낸 못물 아래
푸드득 깃을 치며 손 흔드는 고운 엄마
낮아서 더 넓어지는 물의 길을 읽는다
-「위양못」 전문
‘어머니’로 상징되는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독자의 감정선을 건드리는 작품이다. 어머니와 관련된 특별한 기억을 지녔음 직한 ‘위양못’을 반추상적으로 그려낸 수채화 같은 이미지를 풍긴다. 그런데 거기를 찾아가는 까닭은 “젖내 문득 그리운 날”이기 때문이다. 왜 오늘의 지위나 명예나 이름보다 자신의 보다 맑고 순수한 영혼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일까. 그것은 세파에 찢긴 상처라던가 현실적인 불만에서라기보다 어머니라는 자애롭고 푸근하고 큰 보호자가 있기 때문이다.
거기서 실제로 “신음도 진통제도 흘려보낸 못물 아래/ 푸드득 깃을 치며 손 흔드는 고운 엄마”를 만난다. 신음도 진통제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던 어머니의 안타까운 마지막 모습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엄마의 길이 언제나 “낮아서 더 넓어지는 물의 길”임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그 어머니는 “물속 하늘 날아가도 젖지 않는 백로”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마치 “높아서 더 깊어지는 새의 길”을 가듯 살아온 일생이었기 때문이다. 맑고 어렴풋한 이미지를 이끌어낸 사색의 깊이와 절제된 감정처리가 돋보인다. _88쪽
엄마의 엉덩이에 멍울진 몰핀 무늬
숨 끊는 통증 앞에 급히 찌른 하얀 수액
떨리는 내 손 껴안고
붉은 꽃잎 뚝뚝 진다
-「개양귀비꽃」 전문
이 작품 역시 어머니에 대한 안타까운 기억을 개양귀비꽃에서 되살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경계를 설정하고 있다. 시의 구성은 개양귀비꽃을 보다가 “엄마의 엉덩이에 멍울진 몰핀 무늬”를 떠올리게 된다. 딸로서 고작 할 수 있는 일이래야 “숨 끊는 통증 앞에 급히 찌른 하얀 수액” 주사가 전부라니 얼마나 비통한 노릇인가. “떨리는 내 손 껴안”는 데도 말이다. 어머니는 결국 자연의 섭리 앞에서 “붉은 꽃잎 뚝뚝 진다”는 역설이다. 화자인 나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데 정작 어머니인 붉은 꽃잎은 “뚝뚝”지고 있으니 말이다. 진행형으로 종결하였다. 이 같은 일이 이것 하나로 끝나지 않는, 우리 모두의 일이기 때문이다. _89쪽
아가야, 저 하늘이 별빛마저 글썽인다
신이 준 숨소리를 너울 속에 묻어놓고
퉁퉁 분 젖무덤 틈으로 헛젓이 새고 있다
자맥질 공중제비 너와 함께 하려던 꿈
빙벽에 부딪히다 거품으로 밀려온다
슬픔의 바깥쪽으로 너를 가만 보낸다
-「슬픈 여행」 전문
“숨진 새끼를 자신의 콧등에 올려놓은 범고래가 보름 동안이나 바다를 헤매고 있다”는 2018년도 8월 10일자 텔레비전 뉴스를 근거로 쓴 「슬픈 여행」 전문이다. 화자는 지금 숨진 새끼를 차마 보내지 못하는 어미고래가 된다. 그리고 보름씩이나 콧등에 올려놓고 바다를 헤매고 다니는 고래보다 더 오래 연민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그도 생명성의 근원인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작품은 굳이 표현이 개성적인가, 격조 높은 완성도를 지녔는가 하는 물음으로 접근할 필요도 없다. 전달되는 메시지만으로도 글쓴이의 심경을 느낄 수 있고 품성을 헤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어머니의 마음에는 사랑과 근심과 걱정과 희망이 무한정으로 저장되어 있다. _91쪽
한 시대 몸을 던져 어둠을 걷어내듯
시퍼렇게 날이 선 심지 하나 품은 채
알알이 뛰어내리는 사초 속의 등불이다
깃털 같은 목숨에도 가슴은 천근만근
감싸 맸던 울음 풀면 어느 강에 넘치려나
금이 간 밑동을 뚫고 벼린 붓이 솟는다
붉은 획 내리그은 절명시가 저러할까
한 목숨 뒤흔드는 외곬의 바람 앞에
파란도 만장도 아닌 결기 하나 꽂는다
-「자계서원 은행나무」 전문
자계서원은 경북 청도에 있는 서원으로 무오사화로 극형을 당한 탁영濯纓 김일손을 추모하고 그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자계紫溪는 무오사화로 김일손이 화를 입자 서원 앞을 흐르는 냇물이 3일 동안 붉게 변한 채 흘렀다는 데서 유래하여 서원 이름도 자계서원이라 짓고 현종조에 가서는 사액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시인은 지금 자계서원에서 스승 김종직이 지은 ‘조의제문’을 사초에 실었다는 구실로 훈구파에 참형을 당한 김일손 선생을 만나고 있다. 게다가 탁영 선생이 직접 심었다는 은행나무 앞에 한 걸음 더 다가서서 “한 시대 몸을 던져 어둠을 걷어내듯/ 시퍼렇게 날이 선 심지 하나 품은 채/ 알알이 뛰어내리는 사초 속의 등불”을 만나게 된다. 그리하여 “금이 간 밑동을 뚫고 벼린 붓”으로 솟아오르는 정의와 진실의 의미를 되새긴다. 스승이 말하는 진실과 그것을 사초에 남기는 것이 식자의 필연적인 책무라는 소신 앞에 비겁하지 않으려고 감행한 행동이 죽음에 이르는 죄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또 그것을 빌미로 정적을 제거하고 움켜쥔 권력은 누구를 위하여, 무엇에 쓰였던가.
오랜 시간의 사색 끝에 화자가 내린 결론은 한 그루 은행나무로 서서 “붉은 획 내리 그은 절명시”처럼 “결기 하나” 품었다가 그가 사랑한 이 땅에 꽂고 있는 사실의 전달이다. 은행나무를 읽은 시인의 분노와 안타까움이 행간 가득 스민 작품이다. _93쪽
멧비둘기 애끓어도 꽃길은 말이 없다
눈썹이 지워지니 뿌리조차 돌아선 길
꽃대궁 높이 올려서 달을 맞고 싶었는데
끌려온 수술대 위 손발이 묶였구나
생잡이 칼날 아래 하얗게 질린 동공
달 한 쪽 잘려나가네
꽃스물이 찢기네
가랑이 사이에선 핏물보다 진한 눈물
홈통을 타고 내려 섬 하나가 다 젖는다
달맞이 낮달맞이꽃 저 혼자서 여위네
-「낮달맞이꽃」 전문
‘-소록도 단종대斷種臺를 보며’라는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숨기고 싶은 역사 읽기의 현장시이다. 모양이 어린 사슴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소록도는 전남 고흥반도의 끝에서 보이는 작은 섬이다. 이 섬은 한센병 환자를 위한 국립소록도병원이 들어서 있는 섬으로 유명하다. 국립소록도병원은 일제강점기인 1916년 설립된 소록도 자혜의원에서 시작되는데, 이 병원은 당시 조선 내의 유일한 한센병 전문의원이었다.
이 섬에는 1936년부터 3년에 걸쳐 강제 동원된 환자들에 의해 조성된 6천 평 규모의 중앙공원이 있는데 지금도 공원 안에는 그들이 직접 가꾼 갖가지 모양의 수목들이 남아 있어 보는 이의 가슴을 저미게 한다.
바로 이 공원 입구에는 일제 때의 원장이 한센병 환자들을 불법 감금하고 출감하는 날에는 예외 없이 강제로 정관수술을 시행했던 감금실과 단종대가 있다. 한센병을 유전병으로 생각한 일본인들은 한센 환우들끼리 자녀를 낳지 못하게 결혼 전에 반드시 정관수술을 받도록 했던 것이다. 단종대로 끌려가면 가로질러 놓은 나무에 못을 박은 채 움직이지 못하게 한 뒤, 마취도 없이 생살을 찢어 남자를 단종시켰다고 한다.
화자는 지금 이 땅의 어머니로서 억울하게 희생된 조선의 수많은 아들들을 생각하며 절통하고 애끓는 시간을 함께하고 있다. “꽃대궁 높이 올려서 달을 맞고 싶었”던 조선의 꿈과 “끌려온 수술대 위 손발이 묶”인 채 “생잡이 칼날 아래 하얗게 질린 동공” 앞에서 애써 울분을 삼킨다. 하지만 겉으로 통곡한다거나 격분하는 대신 스스로 역사의 진실에 손을 얹고 위로와 용서의 기회를 독자들과 공유한다. 화자로서는 다만 “가랑이 사이에선 핏물보다 진한 눈물/ 홈통을 타고 내려 섬 하나가 다 젖는” 시간 “낮달맞이꽃 저 혼자서 여위”는 현장을 전하면서 독자들에게 순리와 이치를 위탁할 따름이다. _95쪽
그림자 나를 따라 해시계를 도는 사이
남천의 물결 위로 한세상 흘러간다
전생의 약속이었나, 꿈꾸듯이 오시던
풍덩 빠진 그 사랑에 나도 그만 첨벙했네
팽팽한 현을 골라 아들 하나 낳고 싶던
월정교 난간대 위로 달이 뜨는 저 소리
손가락 끝 보지마라, 달을 보라 이르시던
시간을 질러가도 가는 길 아득하여
휘영청 월성을 돌아 천년토록 걷는다
-「월정교를 걷다」 전문
‘신라 왕궁인 월성 앞을 흐르는 남천의 다리로 2018년에 복원됨’이라는 주가 달린 이 작품은 원효 스님과 요석 공주와의 초월적 사랑에 대한 의미를 헤아리는 역사 현장에서의 사념이 중심이다.
삼국유사에는 원효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한시 몰부가沒斧歌가 있는데 그 내용은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주려나 / 나는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을 깎으려네”로 되어 있다. 이 노래를 퍼뜨림으로써 태종 무열왕의 귀에 들어가게 하고는 과부가 된 요석공주의 요석궁으로 가는 월정교에 빠져서 기어이 뜻을 이루게 된다. 그렇게 보낸 하룻밤으로 신라 최고의 대학자 설총의 탄생을 보았던 것이다.
그의 신분은 스님이었다. 정법의 입장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거지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의상과 함께 시도한 당나라 유학길에서 소위 ‘해골바가지에 고인 물’로 대각大覺을 이루고 신라로 돌아온 뒤였기에 세상의 비웃음 따위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더욱 대중 속으로 파고들어 귀족들의 불교를 민중의 불교로 만드는 필생의 노력을 보였던 것이다.
일심一心과 화쟁和諍과 무애無碍의 실천수행자 원효의 의도된 실족과 요석공주와의 만남을 이끌어낸 월정교를 걸으면서 시인은 지금 이성적 판단과 감성적 실천 사이에 가로 놓인 수행의 최종 목적지를 가늠해 보고 있다. 자유로운 영혼의 통찰로 점절된 한 구도자의 선택이 남기고 간 물음에 사로잡힌 채 말이다. _96쪽
병목을 거머쥐고 그네가 들썩인다
날 수도 내릴 수도 외줄은 길이 없어
명치 끝 시린 절망을 바닥에다 쏟는다
말끔한 출근길에 인사도 깔끔하던
간간이 휘파람도 승강기를 타고 내려
거울 속 마주친 눈길 목련처럼 환했다
실직일까 실연일까 등이라도 쓸어줄 걸
맥없이 주저앉은 무릎 저린 시간 앞에
연초록 바람 한 잎이 어깨 위를 감싼다
-「거울 속 남자」 전문
이번 시조집의 표제작이다. 아마도 이즈음 김덕남의 주된 관심사 가운데 실직이라는 상황이 강하게 각인된 탓이리라 여겨진다. 정년으로 퇴직할 때까지 직장인으로 살아온 그였기에 “맥없이 주저앉아” “병목을 거머쥐고” “들썩”이는 “그네”가 남달라 보였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바로 “그네”가 이 땅의 내일을 짊어지고 나갈 에너지의 발원지라는 점에서 안타까움이 그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다.
한 때는 “말끔한 출근길에 인사도 깔끔하던/ 거울 속 마주친 눈길”이 “목련처럼 환했”던 조국의 젊음이 아니었던가. “간간이 휘파람도” 불면서 함께 “승강기를 타고 내”리던 “그네”였기에 마치 자신의 일처럼 상심해 하고 있다. “실직일까 실연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등이라도 쓸어줄 걸”하는 저어함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하지만 아무리 힘겨운 시련이라도 딛고 일어서는데 삶의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마음으로만 박수하고 응원의 몸짓을 취할 뿐 함부로 나설 수 없는 것은 “그네”의 무안함에 대한 작은 배려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김덕남은 자연을 통한 순리의 처방을 선택한다. 그것은 바람이었다. “맥없이 주저앉은 무릎 저린 시간 앞에/ 연초록 바람 한 잎이 어깨 위를 감”싸는 것으로 스스로 일어서는 자정의 힘을 불어넣고 있다. 격한 격려나 허접스러운 눈물보다 자신에게 잠재되어 있는 자정능력과 그 힘을 부여한 자연의 기운을 통해 스스로 일어서게 하고자 하는 김덕남 식의 사랑법인 것이다. _100쪽
[출처] 정형성, 그 오묘한 질서의 미학-민병도 (5)-자성自性의 재발견, 혹은 물음의 시-김덕남 시조집 『거울 속의 남자』 해설|작성자 최광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