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은 행복하고, 사회는 평화로우며, 자연은 아름다워 살기 좋은 세상을 청정국토, 정토(淨土)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을 극복하고 이 땅에 정토를 실현하고자 젊은 불교 운동가들이 1988년에 창립한 서원공동체 정토회(淨土會)는 불교환경교육원, 좋은 벗들, 제이티에스(Join Together Society), 정토법당, 정토불교대학, 정토수련원 등 전 지구적, 전 인류적 관점의 종합적 운동을 펼치고 있는 불교의 대표적 사회운동단체이다.
정토회로 내려가는 길
삶에 지친 이들이 산사(山寺)를 찾는 까닭은 그곳이 번다한 세상으로부터 거리를 둔 고요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깊은 산 평화로운 그곳에서 자신의 실상을 깨닫기 위해 사람들은 피안교(彼岸橋)를 건넌다. 그러나 피안(彼岸)과 차안(此岸)이 돌다리를 사이에 두고 나뉘어 있는 것일까? 불교의 스승들은 그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를 피안이라고 가르쳤다. 그러므로 안과 밖, 물러남과 나아감의 물리적 경계를 정해 홀로 산중에 머무를 뿐이라면 피안은 세상 바깥으로의 도피일지도 모른다. 수행의 단계를 표현한『심우도(尋牛圖)』의 마지막이 중생 구제를 위해 마을로 내려오는 수행자의 모습이듯, 진정한 깨달음은 자비의 실천으로 흘러 넘친다.
겨울이 끝나갈 무렵, “중생이 앓으므로 나도 앓는다.”는 유마힐의 대승적 보살정신으로 산 아래 마을에서 고통받는 대중과 함께 살며 정토를 구현하고 있는 젊은 불자들의 공동체 정토회를 찾아갔다.
“예술의 전당 역 6번 출구로 나와 200미터쯤 아래로 내려오세요.”
그들을 만나러 ‘내려가는’ 길에 세상을 뒤로 하고 건너야 할 피안교는 없었다.
지금 이곳을 정토로 만들어 가는 사람들
불교개혁과 사회민주화운동에 열심이던 젊은 불자 운동가들이 비판을 넘어 대안을 모색하자는 취지로 1988년에 창립한 정토회는 지금까지 산하 사회단체들을 통해 통일, 환경, 사회복지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활동을 전개해왔다.
한국의 대표적 환경전문교육기관인〈불교환경교육원〉은 지난 10여 년 동안 1천 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생태학교를 비롯하여 자연과 조화되는 가치관과 생활양식으로 전환하기 위한 교육과 수련, 대안문명에 대한 연구 및 공동체 실험 등을 통해 새로운 인간과 새로운 문명을 모색하고 있다.
1991년에 창립한 국제 기아, 질병, 문맹 퇴치 민간기구〈JTS〉는 인도, 중국, 미국에 법인을 설립하여 지구를 정토로 바꾸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특히 인도에서는 1993년 불가촉천민이 모여 사는 비하르 주 둥게스리 마을에 학교를 세운 이래 주변 15개 마을에서 무료진료와 지역개발 사업을 진행중이다. 최근 설송봉 거사가 무장괴한의 총격으로 사망하는 아픔도 겪었다. 1997년에 설립한 중국지부는 나진, 선봉 탁아소 및 유치원 어린이 결연 사업 등 구호사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동체대비(同體大悲) 사상을 바탕으로 1996년에 창립한〈좋은 벗들〉은 민족의 화해와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선결 과제인 북한식량난과 식량난민 문제 해결을 출발점으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제3세계의 난민구호사업, 인류가 안고 있는 분쟁과 갈등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평화운동, 인간의 권리가 침해되고 있는 현장을 찾아 인권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처럼 활발한 사회참여로 이끄는 사상적 배경에 대해 정토회의 새 대표 유수 스님은 “타락한 불교를 바로 세운 대승불교 운동과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깨달음 이후 홀로 열반에 드는 ‘최후의 유혹’을 뿌리치고 중생 구제의 길을 걸음으로써 깨달음과 보살행이 둘이 아님을 가르쳐 준 부처님을 따라, 모두가 함께 행복해지는 정토를 실현하겠다는 서원이 정토회의 정신이다. 그래서 정토회 사람들은 산중이 아니라 고통받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 한복판에서 일한다.
일과 수행을 하나로
정토회관 사무실
1988년에 홍제동 좁은 터전에서 공동생활을 시작한 정토회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국제적 시민단체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자본주의적 욕망을 거부하며 무소유의 정신으로 정토 구현의 길을 걸어 온 사람들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헌신의 원천은 일과 수행(修行)을 하나로 보는 마음가짐이었다.
정토회 산하 단체의 실무자가 되는 것은 수행공동체에 입문하는 의미를 갖는다. 불교환경교육원 박석동 신임 사무국장은 “우리는 수행만을 원하거나 반대로 일만을 원하는 사람은 받지 않습니다.” 라고 말한다. 그래서 정토회 실무자가 되는 과정은 일반 사회단체의 방식과 전혀 다르다. 실무자로 지원하는 사람은 최소한 3년 간 활동한다는 서약을 하고 자원봉사를 포함해 공동체 안에서 6개월 이상의 훈련과정을 거친다. 처음 100일 동안은 공양간에 배치되어 걸레질과 밥 짓는 일을 하면서 자신을 낮추고 세상을 변화시킬 내적 힘을 기른다. 이 과정을 거치면 3일간 일만배 정진을 한다. 이때 지원자는 극도의 육체적 고통 속에서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성찰하게 되고,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 라는 의심에 포기하고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정식 실무자가 된 후에도 여름, 겨울의 불교 전통 수련과 일터와 생활 현장에서 일상적 수행을 계속한다. 이 모든 과정은 수행을 일보다 더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수행으로 삼는 근기를 기르기 위함이다.
수행적 자세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실무자들의 무보수 자원활동 원칙이다. 현재 정토회 실무자들은 급여를 받지 않고 있다. 자신을 위한 일을 하면서 보수 받기를 바라지 않는 것처럼, 정토 실현을 위한 모든 일이 자신의 수행이므로 급여를 기대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한 달에 10만 원씩 활동비를 받지만 그마저도 천일결사의 ‘하루 천 원 보시’ 결의에 따라 한 달에 약 3만 원을 내고, 불자의 임무인 삼보(三寶)수호비로 5천 원, 의무적으로 가입해서 내야 하는 시민단체 회원비 5천 원과 후원금 1만 원을 제하고 나면 5만 원 정도가 남는다. 겨우 그 돈 가지고 어떻게 사냐는 질문에 박 사무국장은 웃으며 대답한다.
“그래도 우리는 오만 원 안에서 ‘펑펑’ 쓰며 지내요. 이렇게 사는 것도 재미있어요.”
물론 정토회 안에서 ‘활동가 복지’에 대한 요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활동비를 높여 달라는 요구에 대해 공동체는 화두를 던지듯 “그럼 집에 가라.”고 단호하게 권했을 뿐이었다. 가혹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 원칙의 뜻을 유수 스님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삶에서 돈이 더 중요하다면 직장을 다니면서 시간 날 때 와서 봉사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운동이 나 먹고 살기 위한 것이 되어선 안 됩니다. 시민이 보기에 운동가가 자신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면 후원도 신뢰도 얻을 수 없습니다. 운동가는 철저히 가난해져야 합니다.”
이처럼 출가자의 수행 정신으로 일하는 정토회는, 하는 일은 진보적인 반면 의식과 삶은 오히려 소시민화 되고 있는 일반 시민운동가들에게 처음의 마음을 생각하게 하는 신선한 자극을 주고 있다.
수행의 꽃 공동생활
정토회 실무자들의 발우
현재 서울 정토회관에는 약 45명의 실무자들이 전통적 승가의 수행을 사회운동과 접목시킨 공동생활을 하고 있다. 이들의 하루 일과는 새벽 5시 예불과 명상으로 시작한다. 청소와 발우공양을 마친 후에 있는 대중공사에서는 각자의 일정을 이야기하고 자기 참회의 시간을 갖는다. 이때 “정해진 규칙에 어긋난 모든 것”을 참회해야 한다. 이를테면 공적 과제로 업무 시간이 지나 야근한 것도 규칙을 어긴 것이므로 참회의 대상이다. 그리고 8시 50분에 각 부서로 출근하여 부서별 여는 모임을 갖고 각자 명상 후 일을 시작한다. 정식 일과는 오후 5시 50분에 서로 얼굴을 맞대고 알릴 사항을 말한 후 다시 명상으로 마감한다. 6시에 저녁 식사를 하고 저녁 7시에 저녁예불을 드리는데, 이 때 실무자들은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그러나 사회운동을 하는 실무자들이 정해진 일과와 규칙을 그대로 지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정토회는 실무자들의 생활을 점검하는 ‘생활 담당자’를 따로 정했다. 생활 담당자는 채근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공식적으로 업무조정도 할 수 있다. 이는 사업 수행 능력보다 생활을 얼마나 잘 하는가를 더 중시하는 수행공동체의 정신을 보여주는 것이다.
“공동생활은 자신의 먹고, 자고, 입는 것에 대한 관심 대신 ‘어떻게 하면 내가 잘 쓰일까’를 주된 관심으로 만듭니다. 또한 같이 살다 보면 부딪히는 각자의 개성과 모난 것이 모두 자신의 욕심이라는 것도 깨닫게 합니다. 그래서 함께 사는 자체가 수행이고, 그것의 가장 높은 단계가 대중의 화합입니다.”-유수
그래도 함께 살다 보면 서로 갈등할 때도 있지 않을까? 지도법사실의 정근혜 씨는 “물론 화가 날 때도 있죠.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상처로 만들지 않아요.”라고 이야기한다. 분노를 은폐하거나 다른 사람을 미워함으로써 마음의 독을 키우는 대신, 먼저 화내고 있는 자신을 그대로 봄으로써 객관화하고 대중공사에서 참회하기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남기지 않는 것이다.
한편 공동생활은 세상을 바꾸는 실험장이기도 하다. 구조적 변화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음을 인식한 정토회는 삶과 의식의 모든 패턴을 바꾸는 근본적 혁명운동을 지향해왔다. 그 출발점은 ‘나’의 변화이다. 따라서 어떤 사업이든 자신과 공동체 안에서 먼저 실천하고 검증한다. ‘쓰레기 배출 제로(0) 운동’의 하나로 화장실에서 화장지를 없애고 대신 물을 사용하는 방안도 공동체 안에서 먼저 실천한 후에 확산시킨 것이었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일과 삶의 모순이 없다.
태국의 불교운동가 술락 시바락사(Sulak Sivaraksa)는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는 방법을 “영적 친구로서 함께 모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세상을 변혁하려는 정토회의 힘은 수행과 회향(廻向)을 함께 하는 공동생활의 경험에서 생겨난다.
각성된 대중의 실천 정토행자운동
불교 의식을 배우고 있는 신자들
정토의 이상은 소수 활동가들만의 것일 수 없다. 그래서 정토회는 초기부터 대중의 참여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대중주체운동’을 중심 원리로 삼아왔다. 이 운동이 일반 대중운동과 다른 것은 대중의 이해와 요구에 근거할 뿐만 아니라 대중의 오류도 자각하게 하는 수행적 성격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지난 3월 17일부터 시작한 ‘4차 천일결사’는 대중운동을 중심으로 전체 활동을 재편하는 ‘정토행자운동’을 선포했다. 향후 각 지역의 정토법당은 정토회로 전환하고, 그 내용도 법문 중심의 신행활동에서 대중의 수행, 교육, 사회활동으로 바뀐다. 이러한 변화에 시민사회는 주목하고 있지만, 정작 정토회 신도들은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는 반응이다. 왜냐하면 신도들의 참여가 이미 보편화되었기 때문이다. 정토회관을 방문하면 회관 곳곳에서 분주히 일하는 신도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단지 실무자들이나 법사를 보조하는 역할만을 맡는 것이 아니다. 각 지역 법당의 재정과 운영을 신도회가 맡고 있고, ‘북한돕기 모금운동’이나 ‘쓰레기 배출 제로 운동’ 같은 기획사업도 신도들이 책임지고 실천하고 있다.
신도들의 주체적 참여는 종교 의례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다. 정토회관을 방문했을 때 3층에서는 목탁과 요령(搖鈴)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의식(儀式) 교육을 하고 있었다. 불구(佛具)는 스님들만이 사용할 수 있다는 권위적 형식주의는 정토회 신도들에게 설득력이 없다.
“형식에 치우칠 때 불자들은 복을 구하는 수동적 후원자로 타락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스님들만의 것이 아닌 것처럼, 스님들만이 할 수 있는 의례도 따로 있지 않습니다.”-유수
이처럼 승속을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정토회 안에서는 스님이라고 해서 특별한 권위를 인정해주지 않는다.
또한 정토회 신도들은 기복주의를 철저히 배격한다. 공동체의 전 대표인 법륜 스님은 평소 신도들에게 역설해왔다.
“부처님이 우리에게 해 주신 것이 얼마나 많은데 지금도 뭘 달라고 부탁하는 것입니까? ‘부처님, 이제는 쉬십시오. 우리가 일하겠습니다.’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정토회에는 ‘입시 기도’ 같은 기복적 의례가 전혀 없다. 새해를 맞은 정토회 사람들은 서로에게 “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자신의 복을 받으려 애쓰기보다는 남에게 복을 돌리겠다는 것이다. 이런 마음가짐은 정토회에 대한 신도들의 신뢰와 자긍심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법당에서 기도문을 쓰고 있던 할머니 한 분은 정토회가 좋은 이유를 이야기했다.
“전에 20년 동안 다닌 절에서는 자꾸 뭘 바치라고 했지만, 여기는 마음으로 법을 따르면서, 자기 복 받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을 도우라고 하니까 좋아.”
평화와 통일을 위해 천일기도 정진중인 신자들
기복주의를 부추기는 이들은 그것이 신앙의 열정과 헌신을 보장한다고 여기는 듯 하다. 하지만 정토회는 기복주의를 부정한다고 해서 신앙의 열정이 결코 약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현재 신도들은 ‘민족의 화합과 통일을 위한 24시간 1,000일 정진’ 기도를 하고 있다. 매일 24시간, 단 1분 1초도 거르지 않는 기도의 릴레이가 벌써 만 2년을 지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신도들의 의식이 개인에서 사회로, 복의 갈구에서 나눔의 실천으로 바뀐 데에는 교육과 수행활동이 중요한 기여를 했다. 그 동안 각 지역의 정토법당은 일반 신도들이 불교의 가르침을 쉽게 이해하여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불교, 복지, 평화, 환경과 관련된 체계적 교육과정을 실시하는〈정토불교대학〉을 운영해왔다.
수행적 자세로 살기는 일반 신도들도 매한가지이다. 모든 정토행자들은 ‘천일결사 수행법’에 따라 매일 오전 5시 전후의 정진과 108배, 경전 독송, 수행일지 등을 쓰는 수행, 매일 천 원 이상의 보시, 한 가지 이상의 선행을 실천해야 한다. 특히 전국의 정토법당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신도들의 자원봉사도 수행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봉사를 통해 자신을 괴롭히는 문제가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깨달아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자신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자비를 실천하는 대중은 이제 오히려 실무자들을 깨우치고 있다.〈좋은 벗들〉의 노옥재 신임 사무국장은 쓰레기 배출 제로 운동 때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비닐 봉지처럼 가벼우면서 장바구니보다 편한 것이 필요하자 주부 신도들은 금새 ‘샤망’(샤 라는 천으로 만든 망)을 만들어 왔어요. 살림을 모르던 우리는 생각해 낼 수 없는 아이디어였죠.”
유수 스님도 한 신도를 통한 반성을 겸손하게 덧붙인다.
“북한동포 돕기 성금을 마련하기 위해 방에 불을 넣지 않고 이불을 뒤집어쓰며 생활했던 신도가 정토법당에 왔더니 바닥이 ‘뜨끈뜨끈’했던 것에 배신감을 느꼈답니다. 우리 스스로 검소하다고 생각했지만 대중은 우리보다 더 검소했던 거죠.”
정토법당의 불상
정토회 대표 유수 스님
한 자리에 머물지 않는 사람들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한 나무 아래 3일 이상 머물지 말라고 가르친 것은 집착을 경계한 것이다. 정토회는 일에 대한 집착마저 끊는다. 그것을 상징하는 것은 약 3년의 천일결사를 마칠 때마다 현재의 모든 직위를 내려놓고 초심으로 돌아가 마음가짐을 새로이 하는 ‘보직순환’ 원칙이다. 특히 이번 4차 천일결사에서는 정토회를 창립한 1세대 실무자들이 아직 40대임에도 불구하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 동안 사회운동 분야를 책임져 왔던 불교환경교육원 유정길 사무국장은 실무자들의 세 끼를 책임지는 공양주 직을 자청했고, 대표 법륜 스님도 대중과 직접 만나는 수행과 해외 포교에 전념하기 위해 지도법사로 자리를 옮겼다. 대신 젊은 활동가들이 각 단체의 사무국장 등 중요한 보직을 맡았다. 새로 선출된〈좋은 벗들〉노옥재 사무국장은 이런 변화를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정토회의 큰 틀을 만든 선배 그룹이 대중과 직접 만나는 현장으로 들어간 것은 일에 대한 욕심만이 아니라 효율성에 대한 집착마저 버린 것”
세상을 바꾸려면 최소한 한 세대 3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여겨 지난 1993년부터 ‘만일 결사운동’을 시작한 정토회의 여정은 끊임없는 자기 반성과 변화의 과정이다. 그들로 하여금 예리한 정신으로 한 세대를 내다보며 지금 여기에서 자신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한 걸음을 내딛게 하는 힘은 수행을 운동의 근본으로 삼는 태도에서 나온다. 시민운동 내부에서도 활동가의 위기와 운동의 관료주의가 우려되고 있는 지금, 정토회 사람들의 수행적 운동 모델은 시민운동의 영성적 차원을 모색하게 하는 하나의 대안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