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기호( mathematical symbols , 數學記號 )
수학은 인간의 사유(思惟)에 의하여 구성된 추상적인 학문으로 추상으로 얻어진 개념이나 원리를 기
호화하고 그 기호의 표현으로 사고의 추진과 사실을 객관적으로 나타낼 수 있으므로 정확한 전달을
가능케 한다. 또한 사고의 절약이나 표현의 간결성을 지닌 기호의 표현은 수학적 언어를 형식화하여
형식적 논리의 전개가 이루어지도록 한다.
숫자 "0"이란 기호를 사용한 인도는 일찍부터 수학이 발달하였고, 미적분학의 발견자 중 한 사람인
라이프니츠는 "해석학의 비밀은 기호의 사용도에 있다" 라 하였고, 간편한 기호의 적절한 사용으로
미적분학을 합리적,논리적으로 전개시키는데 많은 공헌을 하였다. 이렇게 적절한 기호법의 고안은
수학의 진보를 크게 도와왔다.
수학은 기호를 사용하여 더욱 표의화(表意化)하고, 도식화(圖式化)하여 학문으로서의 특색을 발휘하
고 있다.
●수학기호의 발자취
1)수사
사물과 관련되어 아주 편리한 기호인 숫자는 가감승제 등의 연산을 편리하게 하게 한다. B.C 3500
년경 아라보-페르시크만 부근의 수메트와 알람에서의 "진흙 계산패(Caluli)"이래 이집트의 상형문자
,바빌로니아의 쫴기문자,그리스 문자,로마숫자,중국문자,인도의 숫자(아라비아 숫자) 등의 각 지역
에 따라 다양한 숫자의 사용을 하여 왔다. 이 중 아라비아 숫자로 불리어지는 인도의 숫자는 수학의
발달에 큰 영향을 끼치었다. 이 "인도,아라비아 숫자는 "0"의 기호를 사용함으로써 '10진 위치적 기
수법"의 확립과 많은 수사를 낳게하였으며 수학이 크게 발달하게 되었다.
이 인도의 수학은 가감승제를 할 때,덧셈:수를 나란히 늘어 놓는다. 뺄셈:뺄 수 위에 점을 찍고 나란
히 늘어 놓는다. 곱셈:곱하는 수 다음에 bha라는 기호를 덧붙인다. 나눗셈:나누어지는 수 밑에 나눌
수를 쓴다. 제곱근(무리수)을 나타낼 때에는 그 수 앞에 Ka라는 기호를 붙였으며 두 방정식을 위 아
래로 위치시켜 서로 동치인 방정식을 나타내었다. 뺄셈의 기호를 사용하여 음수를 사용하였다.
바스카라(Bhaskara)는 제곱근에 복호(±)가 있다는 것 뿐만 아니라 음수의 제곱든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2)그리이스 수학
그리이스 수학에는 근호가 없었으며 또 무리량을 다루는 대수방정식도 존재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러한 보조수단이 없이도 정확한 이론 체계를 전개한 "무기호대수"는 경이로움을 낳게한다. 즉, 산
술적 대수보다는 기하학적 대수를 택하여 제곱근과 그의 합을 나타내는 선분의 작도로서 대수적 내
용을 기하학적으로 나타내었다.
초기의 그리이스 수학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영향으로 계산 중심의 수학이었으나 후에 기하
학 위주의 수학으로 정착되었다. 그리이스의 수는 정수이며 ,정수의 비를 뜻하였다. 비는 그리이스
어로 logos, 라틴어로 ratio이다. 그리이스인들은 분수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수의 비로서
기하학과 산수의 조화(예:황금비)를 이루어냈다.
3)아라비아와 중세의 수학
인도식의 곱셈은 복잡하였던 것과는 달리 이슬람에서는 격자식 곱(shabacah)이라는 방법을 써서
간단하면서도 빠르게 처리했다.피보나치의 "셈판의 책"은 이슬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분수의 표기법은 인도 수학자 바스카라의 "릴리바티(1150)"속에서 처음 엿보이는데 분자와 분모 사
이의 금이 없이 표기되었다.대분수인 경우는 정수부분이 분자위에 놓았다.그 후 오늘날의 분수 표
현은 이슬람에서 시작되었다.
실용을 중시했던 로마는 그리이스의 수학,과학과 비교될 만한 독자적인 것은 없었다. 5세기의 로마
의 지배를 계승한 게르만족은 수학의 전통이 없었고 계승받은 측량과 측정기하학 정도였다. 6세기
에서 8세기에 걸쳐 연이은 전란과 사원문화의 중시로 수학의 암흑기를 맞이한다. 이후 13세기,14세
피보나치,오렘등의 노력으로 아라비아의 수학의 이해와 흡수,소화하는 단계로 옮아갔다. 그러나.
14세기의 페스트,15세기의 백년전쟁,장미전쟁 등으로 수학은 또 한번의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4)르네상스의 수학
15세기에 접어들면서 스콜라 철학을 대신하여 여러 대학에서 수학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성과는 이론적 견해와 실용이 절실히 요구되었던 시기이다.
■니콜라스 슈케(Nicolas Chuquet,1500년경)
르네상스 시대의 최초의 대수학 논문 "수의 과학에 있어서의 3부분"의 3부분에서 미지량을 Premier
를 써서 나타내었고 그가 창안해 낸 여러 대수기호 중에서도 미지수의 거듭제곱에 관한 합리적이고
간편한 고안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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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드만(Johann Widmann, 1460?~?)
독일의 대학교수로서 《상업산술:Rechenungauf allen Kauffmannschaft,1489년》에는 현재 사용
하고 있는 +,-의 기호가 나타났으며 (인쇄본으로 처음) 처음에는 과부족의 의미로 쓰였으나 나중에
는 현재의 의미로 쓰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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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치올리(Pacioli, Luca , 1445?~1510?)
토스카나의 프란체스코회 수도사로서 1494년 《산술집성(算術集成):Samma de arithmetica, geo
metria, proporcioni e proporcionalit》저술하였다. 이것은 당시의 산술·대수(代數)·삼각법(三角
法)에 관한 모든 지식을 집대성한 것으로서, 피보나치의 《주판서(珠板書)》 이래 가장 광범위한 수
학서로 일컬어진다. 특히 이 책에서 여러 가지 대수기호가 등장한다.
cosa(미지수)→co , censo(미지수의 제곱)→ce , aequalis(같다)→ae 등
■루돌프(Christoph Rudolph, 1500~1545?)
그의 저서《미지수:coss,1525년》는 현재의 근호(√)와 10진소수를 사용한 최초의 인쇄본이었다.
■레코드(Robert Record, 1510~1558)
그는 영국 수학학파의 실질적인 창시자로 《지혜의 숫돌(Whetstone df Wisdom,1557》에서 =(등호)
의 사용을 하였고 쉬운 일상어로 대중적인 산술책을 펴냈다.
■비에트(François Viéte , 1540~1603):
기지수(숫자계수)를 문자 기호로 바꾸어 놓음으로 대수학에서 기호를 사용하여 일반적 추론을 가능
케 하였다.60진소수(小數) 대신 10진소수를 제창한 그는 1591년부터 투르에서 간행하기 시작한
《해석학 서설》에서 처음으로 대수를 기호적으로 다루었다. 이 "서설"은 8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제1장에는 기호에의한 추론의 원칙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비에트는 기호만을 써서 추론하였기에
그 계산은 전의 "수 계산"에 반하여 "기호계산"이라고 불리어진다.
제3장에는 기지수와 미지수의 기호화의 내용이 있다. 그는 미지수는 A,E,I,O,V,Y와 같은 모음 대문자
로 표시하고, 기지수는 B,G,D와 같은 자음 대문자로 표시했고, 각 양의 차원을 나타내는 명칭을 따로
정하였다.그는 덧셈,뺄셈에서는 독일식 기호를 사용하였고 파라미터와 미지수에 대해서는 각각 다른
기호를 사용하였고 그 외는 문자와 그것을 생략한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는 3차방정식을 중심으
로 한 방정식의 일반적 취급을 제시하였다.그에 의해서 처음으로 대수학이 보편적 산술의 분야로 탈
바꿈이 되었다.
■해리어트(Thomas Harriot, 1560~1621):
영국의 측량기사이자 수학자,천문학자인 헤리어트는 비에트의 방법을 더 발전시켜 온갖 대수적
표현을 기호를 써서 근대 대수학의 체계를 완전히 갖추었다.
《해석술 연습(Artis analytique praxis)》에서 근대 대수학의 기호체계를 살필 수 있는데 예를 들면
< ,>(부등호)의 도입과 기지량과 미지량의 대수적 표현의 기호화,인수분해를 이용한 방정식의 연,구
근(根)과 계수와의 관계를 정식화(定式化)에서 엿볼 수 있다.
■네이피어(Napier, John, 1550~1617.4.4):
영국의 수학자로서 산술,대수(代數),삼각법 등의 단순화,계열화를 꾀하였으며, '네이피어 로드'등
계산기계의 고안에까지 미쳤다. 그 중 계산의 간편화를 목적으로 한 로그의 발명은 수학사상 커다란
업적이었다. 즉, 1614년 《놀라운 로그법칙의 기술:Mirifici Logarithmorum Canonis Descriptio》
로 로그의 성질을 명백히 하였으며, 16년에는 H.브리그스와 협력하여 10을 밑[底]으로 하는 상용로
그 표를 만들기 시작했으나 완성시키기 전에 사망하여 《경이적인 로그법칙의 구조》(1619)가 유고
로서 출판되었다.그는 로그(logarithm)란 용어를 비(logos)와 수(arithmos)의 복합어로 지었다.
또한,《놀라운 로그법칙의 기술》에서 10진 소수가 등장하였다.
■스테빈(Stevin, Simon, 1548~1620):
네덜란드의 수학자,물리학자,기술자로서 《10분의 1(De Thiende,1585)》에서 소수(小數)의 계산
에 관한 체계를 자세히 설명하여 비에트의 10진소수의 도입이래 일반으로 널리 보급하였다.
또한, 대수기호법의 확립에도 공헌하였다.
■브리그스(Briggs, Henry,1561~1630.1.26) :
영국의 수학자·천문학자. J.네이피어가 로그를 발견하자 네이피어를 찾아가 의견을 교환하였으며
그 후 공동으로 로그의 기본부분을 수립하였다. l0을 밑으로 하는 상용로그를 '브리그스 로그수'라고
도 한다.1624년의 저서 《로그산술:Arithmetica Logarithmica》에 1부터 2만까지,9만부터 10만
까지의 14자리 대수를 실었다.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가수','지표' 등의 낱말도 그의 '로그산술'
산술에서 비롯된다.
■오트레드(Oughtred, William,1574.3.5~1660.6.30) :
영국의 수학자로서 저서 《수학의 열쇠:Clavis Mathematicae(1631)》은 수학기호의 역사상 중요
한 것이며, 17세기 말경까지 널리 사용되었다. 수학기호의 ∼, 곱셈의 ×,생략 곱셈(" ·"오트레드 방
법)는 이 책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지라르(Albert Girard, 1595~1632):
프랑스 플랑드로 출신의 수학자인 지라르는 《삼각법에 관한 논문(1626)》에서 최초로 sin,tan,sec
등의 기호를 사용했으며 《대수학의 새 발견(Invention Nouvelleen l'Algebre1629)》에서 근과 계
수와의 관계를 명확하게 나타냈고 허근을 적극적으로 인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