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Date 2020. 5. 10
Text Lk 2,48-52
(48)그의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의 어머니는 이르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49)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50)그 부모가 그가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51)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52)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1. 효도는 매우 중요한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사람이 지켜야 하는 첫 계명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계명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데,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복을 누리게 된다는 약속입니다.(출20,12 엡6,1-3) 형벌도 있습니다. 출21,15에 보면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출21,17에는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라고 형벌 중에 최고의 형벌인 사형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직전 그 고통의 순간에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 마리아를 가리키며 ‘오늘부터 네 어머니다’라고 하시고, 어머니에게는 요한을 가리켜 ‘이제부터는 얘가 아들입니다.’라고 당부를 하실 정도로 효심이 가득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오늘 어버이주일에 오늘 받은 말씀을 통하여 효도하는 자녀들이 되셔야 하겠습니다. 은혜 받고 효자 효녀가 되십시다.
2. 오늘 말씀에 나타난 예수님이 어린 시절부터 행하신 효도 첫 번째는 늘 하나님 아버지 집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49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아멘. 예수님의 부모는 예수님이 함께 있지 않는 것을 알고서 사흘 동안 온 길을 되돌아가며 찾았습니다. 근심을 하며 찾았습니다. 그것이 부모님 마음이지요. 이 사건 이후부터는 아마 요셉과 마리아 부부는 예수님이 안 보이면 그랬을 것입니다. ‘얘가 또 교회 갔나?’
효도의 1번은 신앙생활을 잘 해서 하나님께 복을 받아 사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의 1번은 교회생활을 잘 하는 것이지요. 교회생활을 잘 해야 은혜를 충만하게 받고, 그렇게 은혜가 충만해야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가 있는 성품을 가지고 가정에서나 직장에서 성실하고 책임감 있고 윗사람은 공경하고 아랫사람은 사랑으로 이끌어주는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자녀의 위치가 언제나 하나님 앞에 있는 것을 부모님이 알고 있다면 요즘같이 무서운 세상에 얼마나 안심이 되겠습니까? 나쁜 친구, 사기꾼이 득실거리고, 위험한 유혹이 도처에 쫙 깔려 있는 것이 요즘 세상 아닙니까? 조금만 늦어도 걱정, 누굴 만나고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도 걱정, 하고 있는 일이 잘 될지 걱정, 결혼은 시켜놓았지만 안 싸우고 잘 사는지 걱정 등 걱정거리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교회 친구 만나고 있고 신실한 교인들과 의논하고 있으며 아무리 오래 있어도 잘못된 길로 갈 확률 0%인 곳에 있다면, 거기에 은혜 받고 회개하며 주님의 성품을 닮기 위해 몸부림치며 기도하는 곳에 있는 곳에 있는 것을 안다면 얼마나 안심이 되겠습니까?
한문의 어버이를 지칭할 때 父親, 母親이라 합니다. 여기의 親(어버이 친)자는 어버이의 마음이 담긴 뜻글자입니다. 이 글자를 분해해 보면 나무 위에 서서 바라보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보러 나간 자식이 이제나 저제나 돌아오고 있는지 동구 밖 나무 위에 올라 멀리 바라보는 애틋한 마음을 가진 분이 어버이라는 것이지요. 밭에 가서 일을 할 때도, 집에서 밥을 지을 때도, 부모님 마음은 늘 자식들에게 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모님에게 내가 있는 곳이 가장 안전하고 유익한 곳, 아버지 집에 있는 것을 확신시켜 드리는 것보다 더 큰 효도는 없을 것입니다. 은혜 받는 장소에 있는 효도를 하는 성도들이 되십시다.
예수님의 효도 두 번째는 혹 부모님이 깨닫지 못하시더라도 늘 바른 길을 가는 것입니다. 50절을 보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그 부모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식이 부모님을 다 알 수 없듯이 부모도 자식을 다 알 수 없습니다. 특별히 신앙생활에 대해서 부모님이 이해하지 못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 갈등이 생기기도 합니다. 부모님께서 신앙을 가지게 해서 하나님 앞에서 잘 살려고 하는 내 노력을 알아주실 수 있게 하는 것이 최선입니다만, 아직 그렇게까지 못하고 있다면, 최소한 내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공부도 더 열심히 하고 행실이 더 바르며 주변 사람들에게 참 성실하고 정직하여 믿을만하다는 칭찬을 들으며 사는 것을 부모님께 보여드리는 효도를 해야 합니다.
누군가 제게 말하기를, ‘선생님, 자식 하나는 참 잘 두셨습니다.’ 정도 소리만 들어도 얼마나 안심이 되겠습니까? 거기다가 누군가 말하기를, ‘이 친구가 참 반듯해서 어떻게 이렇게 잘 자랐지 하고 궁금했었는데, 오늘 아버님을 뵈니 이 친구가 아버님을 닮았군요.’ 그런다면 제가 얼마나 기분이 좋겠습니까? 반대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만일 ‘이게 또 어디 가서 무슨 사고를 치고 다니나?’ 그런 걱정이 앞서게 하는 자식이라면 잠을 제대로 주무실 수 있겠습니까? 맛있는 걸 드신들 그게 맛있겠습니까?
여러분,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 그저 자식 위해 걱정을 일삼고 사시는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늘 바른 길을 걸어서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하는 자녀들이 되십시다. 그것이 효도입니다.
예수님의 세 번째 효도 모습입니다. 51절을 다 같이 읽습니다. “예수께서 함께 내려 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이 구절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함께 내려 가사”이고 또 하나는 “순종하여 받드시더라.”입니다. 효도는 부모님과 함께 하며 순종하여 받드는 것입니다.
옛날 조선시대에 병든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민정을 살피기 위해 나온 임금님이 자기 동네를 지난다는 말을 듣고서는 아들에게 아주 미안해하면서 “아들아, 죽기 전에 임금님의 용안을 멀리서라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그랬습니다. 효심이 깊은 아들은 임금님이 오시는 날, 임금님이 지나갈 때에 잘 보이도록 업고 서 있었습니다. 임금님은 멀리서 이 모자를 보시고서는 불러다 자초지종을 듣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임금님은 금 백 냥과, 쌀 한 섬을 상으로 주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한 불효자가 돈 욕심이 생겨서 어머니가 원치도 않는 걸 억지로, 강제로 업고 나가서 왕을 뵈었더니 왕이 또 불러서 상으로 “금 백 냥을 주라”고 하였습니다. 신하들이 불효자의 얘기를 알고 있던 차라 임금에게 고했습니다. “그놈은 불효자로 소문난 놈입니다. 효도가 아니고 지난 번 효자처럼 돈 받기 위해 억지로 어머니를 업고 나왔습니다. 그런즉 벌을 줘야 될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그 말에 임금님은 놀랍게도 이렇게 말했답니다. “효도는 흉내만 내도 좋은 거다. 그런고로 상을 주어라.”
이 불효자는 후에 뉘우치고 진짜 효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효도는 흉내만 내어도 결국 그렇게 복을 받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부모님은 자식의 모든 것을 마음에 담아두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그랬던 것처럼 다 그러십니다. 자식은 잊어버릴지 몰라도 부모님은 아이의 사소한 것까지라도 다 마음에 담아두십니다. 응당 효를 행하셔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네 번째 효도모습은 52절에 있습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지는 것을 보여준다면 예수님의 효도를 본 받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든 부모님의 소원은 자식들이 잘 되는 것이지요. 날이 가면 갈수록 내 자식이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럽게 된다면 부모님에게 그보다 더한 기쁨은 없을 것이니 이는 가히 최고의 효도로 하겠습니다.
가나안 농군학교로 유명한 분이 김용기 장로님이시지요. 그분도 나이 들어 은퇴하고 아들 김범일 장로가 농군학교 교장이 되었는데, 부친을 뵈러 가면 늘상 같은 말씀을 하셨답니다. 서울 갈 땐 길조심해야 한다. 파란불엔 건너고, 빨간불엔 건너지 말라 등등... 머리가 반은 벗겨진 아들을 앉혀놓고 헤아릴 수도 없이 반복해서 하는 얘기에 들은 척 만 척 할 때도 있었지만, 금방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말은 부모님만이 할 수 있는 말이고, 만약 늙으신 부친이 돌아가시고 나면 누구에게서 그런 말을 다시 들을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깨닫고 나니 잔소리는 물론이고 부모님의 작은 기척소리도 누구도 그 무엇도 흉내 내지 못하는 은총의 소리요, 음악보다 아름답고 더 귀하게 느껴지더라고 했습니다. 가나안농군학교 효도 십계명을 강의하며 김범일 교장이 직접 한 말입니다.
여러분, 나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점점 더 사랑스러워지는 사람입니까? 그런 사람이 되어 효도하십시다.
3. 마지막으로 고 황수관 박사 강의 동영상 하나를 보여드리며 마치겠습니다.
83세된 아버지와 53세 된 아들이 대청마루에 앉아 있는데 마당에 까치 한 마리가 날아왔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얘야 저게 뭐냐?” 물었습니다. 아들이 “까치요”라고 대답을 했는데 한참 있다가 아버지가 다시 묻습니다. “얘야, 저게 뭐냐?” 아들이 “방금 전에 까치라고 했잖아요.” 한참 있다가 아버지가 같은 질문을 세 번째 반복했습니다. “얘야, 저게 뭐냐?” 아들이 역정을 내며 “까치라니까요” 서러워진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서 옛날 일기장을 들고 왔는데 35살 때 쓴 일기를 아들에게 보여줬습니다. “오늘 다섯 살 아들과 마루에 앉아 있는데 아들이 내게 물었다. 아빠 저게 뭐야? 까치란다. 그리고는 그날 아들은 내게 23번이나 같은 질문을 했다. 난 같은 질문을 23번이나 하는 아들이 너무 사랑스러워 꼭 안아주었다.”
(다같이 부모님 은혜 노래를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