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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장 애굽의 재앙(출5-10장)
안녕하십니까. 구약 다시 읽기 제1부, 『부조와 선지자』를 따라서 오늘은 제23장입니다.
'애굽의 재앙'이라는 제목으로 출애굽기 5장과 10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 열 재앙 이야기 많이 들으셨죠? 심지어 교회를 다니지 않는 분들도, 성경을 한 번도 읽지 않은 분들도 애굽의 열 재앙이라는 말은 한 번 이상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애굽 땅에 임했던 열 가지 재앙을 가리켜 10대 재앙이라고 하죠.
그 열 재앙이 무엇인가요? 제가 오늘 책을 가져오지는 못했습니다만, 제게 『애굽 신 사전』이라는 책이 한 권 있습니다. 그 책에는 숫자를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애굽 신들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그때 내렸던 재앙은 사실상 모두 애굽 신들에게 내린 재앙이었지요. 출애굽기 12장 12절에 보면 "내가 애굽의 모든 신에게 벌을 내리리라 나는 여호와라" 하셨습니다. 그러니 이것은 출애굽 사건을 두고 참하나님께서 거짓 신들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세상 앞에 보여준 사건, 그것이 바로 열 재앙입니다. 여기 보시는 그림들이 다 애굽 신들의 그림입니다. 이집트에 가면 이런 신들의 그림이 많이 있지요.
『부조와 선지자』 263쪽에는 "여호와께서는 애굽 사람들의 우상 숭배를 벌하시고 지각없는 신들에게서 축복을 받았다는 저들의 자랑을 침묵시킬 것이었다"라고 했습니다.
요즘 사람들에게 "당신은 무슨 신을 섬깁니까?"라고 물으면 "나는 무교입니다"라고 말하는데, 성경적 정의에 의하면 무교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께서도 하나님과 재물 중 하나를 섬긴다고 하셨듯이, 사람이 자기가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을 신이라는 이름으로 표현한다면 쾌락을 좇으면 쾌락의 신을 섬기는 것이고, 돈이면 돈의 신을 섬기는 것이죠.
"나의 신은 여호와다"라는 말을 히브리어로 무엇이라고 하는지 아세요? 히브리어로 1인칭 소유격 '나의'는 다 '이(i)'로 끝납니다. '하나님'이 '엘(El)'인데 '나의 하나님' 하면 '엘리(Eli)'가 되어 "나의 하나님은 들어주신다"가 되고, '다니(Dani)' 하면 "나의 재판자는"이라는 뜻이 됩니다. '엘리'가 나의 하나님인데, '나의 하나님은 여호와시다'라고 할 때 여호와의 줄임말이 '야(Jah)'거든요. 그래서 "나의 하나님은 여호와시다"라는 말을 히브리어로 하면 '엘리야(Elijah)'가 됩니다.
누구나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신이라고 생각한다면, 바로 그가 섬기고 의지하는 대상에게 내려진 심판이 재앙의 의미였습니다.
드디어 모세와 아론이 바로를 만납니다. 저는 그렇게 표현하기를 좋아합니다. 모세가 행한 그 어떤 기적보다 더 놀라운 기적은, 살인자로 도망갔던 모세가 40년 만에 바로 앞에 당당하게 돌아와 서게 된 것, 그것이 모세가 경험한 가장 큰 기적이라고 표현하길 좋아합니다.
모세가 바로에게 서서 말하지요.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이렇게 말하자 바로가 뭐라고 대응합니까?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 이 대화가 모세와 바로의 첫 대면에서 벌어진 도전과 응전이었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이때 모세가 요구한 말이 무엇이죠?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였습니다. 여러분, 이때 무슨 절기가 있었나요? 지금 이 장면은 출애굽기 5장입니다. 성경 기록상 절기가 맨 처음 제정된 것은 유월절인데,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만들어진 절기입니다. 그러니 지금은 출애굽기 12장 이전인 출애굽기 5장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시면서 "내 백성이 광야에서 하나님 앞에서 지킬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그 절기는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는 모세가 전하고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말씀하신 그 절기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바로의 대답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5장 5절을 보면, 1절과 2절에서 이런 도전과 응전이 있은 뒤 바로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제 나라의 이 백성이 많아졌거늘 너희가 그들로 노역을 쉬게 하는도다." 여러분, 여기서 '쉬게 하는도다'라는 말이 우리말로는 그저 '일 안 하게 하려고 하는구나' 정도로만 느껴지죠. 하지만 이 '쉬게 하는도다'라는 말을 히브리 원어로 보면 그 의미가 전혀 다릅니다.
히브리 원어로 이 표현은 '히쉬바템(hishbattem)'이라는 단어인데, 히브리어의 '히(hi-)'는 사역형 접두사로 '~하게 만든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템(-tem)'은 '너희가 그들을'이라는 목적어적 어미입니다. 이것들을 제외하고 동사의 어근만 남기면 '샤바트(shabbat)' 하나만 남습니다. 샤바트가 무엇인지 아시죠? 안식일입니다. '히쉬바템'이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너희가 그들로 안식일을 지키게 하려는도다"라는 뜻입니다. 즉, 모세가 한 말에 대한 바로의 반응을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일을 쉬게 하고 안식일을 지키게 하려는 것이냐?"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바로의 이 단어를 통해 모세와 바로의 첫 대면에서 핵심 이슈가 무엇이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모세가 가서 그들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알 수 있게 됩니다. 바로 안식일을 요구한 것입니다. 왜일까요? 당연히 창조 신앙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었죠. 이 사실을 『부조와 선지자』 258쪽에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전반적으로 안식일은 무시되었고, 작업 감독들의 가혹함은 안식일 준수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안식일 준수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압제자들이 알아차렸다."
모세의 요구가 지닌 의미를 알아차리고 바로가 보인 반응이 출애굽기 5장 5절인 것입니다. "샤바트, 그래서 안식일을 지키겠다는 말이냐? 그 백성에게 안식일을 지키게 하려고 그러는 것이냐?"라고 반응한 것이죠.
우리가 구약 다시 읽기 제2부로 읽게 될 『선지자와 왕』 180쪽에도 동일한 설명이 나옵니다. "출애굽 시대에 안식일 제도가 하나님의 백성들 앞에 다시 제시되었다. 그들이 아직 종살이하고 있을 때, 감독들은 매일 요구되는 작업량을 증가시킴으로써 안식일에도 노동을 시키려고 하였다." 십계명 중에서 안식일 계명만이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우리에게 분명히 알려줍니다. 창조주 신앙을 회복시켜 주는 것입니다.
모세는 바로를 만난 후 그의 완강한 반응을 보고 어쩌면 조금 의기소침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완고한 바로의 반응과 백성들의 낙담을 보고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는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제가 성도들에게 성경 공부를 지도할 때마다 자주 묻는 구절이 바로 이 구절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로 알았을까요, 몰랐을까요? 이삭과 야곱은 여호와라는 이름을 알았을까요, 몰랐을까요? 창세기 4장 26절을 보면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고 기록합니다. 창세기 12장 8절에서도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으며 여호와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당신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알리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조상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로 알고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이름을 아는 것과, 하나님께서 당신의 여호와라는 이름을 걸고 언약을 체결하시는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우리가 국가 원수의 이름을 개인적으로 아는 것과, 그분이 우리를 위해 직접 서명해 주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의미인 것과 같습니다.
'전능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엘 샤다이(El Shaddai)'라고 합니다. 실제로 창세기 17장 1절, 35장 11절, 48장 3절 등에 보면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십니다. 백 세가 된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실 때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 데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당신의 권능을 걸고 약속하신 것이죠.
그런데 지금 출애굽을 약속하시면서 하나님께서는 부조들에게 말씀하셨던 권능의 이름 '엘 샤다이'가 아니라, '야훼', 즉 '여호와'라는 이름을 걸고 언약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의 뜻이 무엇입니까? 출애굽기 3장 14절에 나오듯이 "나는 스스로 있는 자(I AM THAT I AM)"입니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사람의 표현으로 바꾸어 말하자면, "내 힘이나 내 소유를 걸고 약속하는 것이 아니라, 내 존재 자체, 내 목숨을 걸고 약속하겠다"는 뜻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당신의 전 존재를 걸고 출애굽 언약을 맺으시는 것입니다. "전에 내가 내 능력을 나타내는 엘 샤다이의 이름으로 조상들과 약속했지만, 이제는 내 존재를 걸고 출애굽을 약속한다"고 언약하시는 것입니다. 이 이름을 모세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 약속을 듣고 모세와 아론이 다시 바로를 찾아갑니다. 바로가 말을 듣지 않자 아론의 지팡이가 무엇이 됩니까? 뱀이 됩니다. 저도 오늘 뱀을 보았습니다. 뱀은 참 무섭죠. 시골 논가에서 마주치는 푸른색 물뱀이어도 돈이 아무리 많아도 소용없습니다. 무섭습니다. 뱀을 몇 번 보고 나더니 평소 뱀을 몹시 무서워하던 제 아내도 이제는 뱀을 보면 허탈하게 웃으며 집으로 들어갑니다. 그만큼 생김새 자체가 위협적입니다.
그런데 아론의 지팡이가 뱀이 되자 바로의 마술사들도 똑같이 뱀을 만들어 냅니다. 진짜 뱀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마술로 뱀처럼 보이게 만든 것뿐입니다. 이렇게 속임수를 썼던 바로의 요술사들 이름이 무엇일까요? 출애굽기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디모데후서 3장 8절을 보면 그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바로 '얀네'와 '얌브레'입니다. 그 마술사들은 사탄의 속임수를 빌려 마술로써 그렇게 보이도록 만들었을 뿐입니다.
이 과정을 거쳐 드디어 열 재앙이 내립니다. 서두에서 말씀드린 대로 이 모든 재앙은 애굽의 신들에게 내린 심판이었습니다. 애굽 신들에게 내렸던 열 재앙의 순서가 어떻게 되었지요?
첫 번째는 나일강이 피로 변했습니다. 두 번째는 개구리 재앙이었습니다. 온 천지에 개구리가 들끓었습니다. 개구리가 온 사방에 뛰어다니자 바로가 모세를 불러 "개구리를 좀 치워달라"고 간청합니다. 모세가 "언제 치워드릴까요?"라고 묻자, 바로가 뭐라고 합니까? "내일 치워달라"고 합니다. 성경을 유심히 보십시오. 당장 치워달라고 하지 않고 내일 치워달라고 미룹니다. 개구리까지는 아직 참을 만하다고 생각했고, 지금 당장 사라지면 하나님의 권능을 온전히 인정해야 하니 하루를 미룬 것입니다.
세 번째 이적은 이(lice) 재앙입니다. 세상에 섬길 것이 없어 이를 섬깁니까? 그런데 애굽 사람들은 이조차 신으로 섬겼습니다. 요즘에는 이가 거의 없지만, 저희 어릴 때만 해도 참 많았습니다. 옷에도, 머리에도 이가 가득해서 어머니들이 참빗으로 머리를 박박 빗겨 가며 이를 잡곤 했습니다. 그런데 애굽인들은 이런 이를 신으로 섬겼습니다.
네 번째는 파리 재앙입니다. 파리 신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다섯 번째는 가축들에게 악질이 돌았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암소나 송아지 신(아피스 등)을 극진히 섬긴 사실을 잘 아실 겁니다. 가축들에게 전염병이 돌았습니다. 여섯 번째는 사람과 짐승에게 독종(악성 종기)이 발했습니다. 온몸에 헌데가 나면 얼마나 고통스럽고 흉측합니까. 일곱 번째는 우박 재앙이 내렸고, 여덟 번째는 메뚜기 재앙, 아홉 번째는 흑암 재앙이 임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열 번째로 장자 장자의 죽음이라는 심판이 내렸습니다.
도표를 보여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지금 언급한 대상들이 바로 애굽인들이 섬기던 대표적인 우상들이었습니다. 피 재앙의 대상이었던 나일강은 그들에게 생명의 젖줄이자 신이었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나일강 하류에는 비옥한 삼각주(델타)가 형성되어 문명이 꽃피었습니다. 나일강은 애굽의 모든 번영과 풍요를 보장해 주는 근원이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란 무엇입니까? 나일강이 없는 곳입니다. 눈에 보이는 풍요의 젖줄인 나일강을 등 뒤로 버려두고, 오직 보이지 않는 하나님만 의지하여 나아가는 여정이 바로 광야 생활이었습니다.
독종 재앙 때는 가축의 신이었던 아피스를 치셨고, 무서운 우박 재앙 때는 하늘과 폭풍을 주관한다는 신들을 무력화하셨습니다. 성경의 열 재앙은 애굽의 신들을 철저히 무너뜨리는 심판이었습니다.
이러한 재앙이 연속으로 내릴 때 바로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출애굽기 7장 13절, 14절, 22절, 8장 15절 등을 보면 열 번에 걸쳐 재앙이 내릴 때마다 "바로의 마음이 완강(강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다"라고 기록합니다.
그가 어떤 타협안을 제시했는지 살펴보십시오. 5장 2절에서 처음에는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보내겠느냐?"라며 전면 거부했습니다. 그러다 재앙으로 고통을 겪자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제사를 드리라"고 타협합니다. 광야로 나가지 말고 애굽 영토 안에서 타협하라는 것입니다. 여전히 지배하에 두려는 수작이었습니다. 모세가 거절하자 이번에는 "광야에서 제사를 드릴 것이나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고 조건을 겁니다. 붙잡아 두려는 바로의 집요한 완고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너희 장정만 가서 섬기라"며 아내와 아이들은 볼모로 남겨두라고 합니다. 마지막에는 "사람은 다 가되 양과 소는 머물러 두라"고 합니다. 끝까지 사람과 소유를 세상의 올무에 묶어두려는 바로의 집요함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온전히 나아갈 때, 세상에 발을 한쪽 걸치게 만들려는 사탄의 타협 논리가 바로의 태도 속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습니다.
바로는 언제 마음을 완강하게 굳혔습니까? 마술사들이 기적을 흉내 낼 때 마음을 굳혔습니다. 세 번째 이 재앙 때 요술사들이 "이는 하나님의 권능(하나님의 권능의 손가락)입니다"라고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우박 재앙에 이르기까지 일곱 번이나 스스로 마음을 완강하게 했습니다. 우박 재앙 직후 처음으로 "내가 범죄하였노라"고 일시적인 뉘우침을 보였지만, 비와 우박이 그치자마자 곧바로 다시 마음을 완고하게 굳혔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거듭 나타날수록 그의 마음은 더욱 굳어졌습니다. 바로가 마음을 완악하게 했다는 표현이 마지막으로 나오는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낸 뒤, 백성들이 홍해 앞에 갇히자 "우리가 어찌 이같이 하여 이스라엘을 놓아 보냈는가!" 후회하며 병거를 이끌고 추격해 올 때였습니다.
그런데 출애굽기에서 바로의 마음 상태를 읽을 때 한 가지 난해한 표현이 등장합니다. 바로가 스스로 마음을 완강하게 했다는 기록도 열 번 나오고, 동시에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다"는 기록도 열 번 나옵니다.
이 때문에 마치 하나님께서 병 주고 약 주듯이 억지로 바로를 완악하게 만드신 것처럼 오해하여 말씀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여호와께서 완악하게 하셨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묘사하는 성경적 용례입니다. 이에 대해 『부조와 선지자』 269쪽은 이렇게 명쾌하게 밝혀줍니다.
"왕의 마음을 강퍅하게 만드는 초자연적인 능력이 행사되었던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에게 당신의 능력에 대한 가장 분명하고도 놀라운 증거들을 주셨다. 그러나 왕은 완고하게 그 빛을 거절하고 유의하지 않았다. 그가 거절한 무한한 능력이 나타날 때마다 그의 반역은 더욱 굳어지고 결정적이 되었다. 그가 맨 처음 표적을 거절할 때 심은 반역의 씨앗들이 결실을 거두었다. 바로의 마음은 완고함이 한 단계씩 더해져 자신의 길을 계속 추구해 감에 따라 점점 더 굳어져서, 마침내 죽은 그의 맏아들의 싸늘한 시신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똑같은 태양 빛이 비추어도 밀랍에 비추면 부드럽게 녹아내리지만, 진흙에 비추면 햇빛이 강할수록 바짝 말라 단단하게 굳어집니다. 하나님의 빛과 은혜가 거듭 부어질 때, 그 심령이 은혜를 거절하면 거절할수록 마음은 더욱 완강해지고 굳어지는 비극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은혜를 향해 부드럽게 마음을 열고 빛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심령,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에게 있어야 할 마음가짐입니다.
빛이 반복해서 주어질 때마다 순종하기를 거절하면, 마음은 점점 무뎌지고 성령의 감화는 떠나게 됩니다. 『교회증언』 5권 119~120쪽에서도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하기를 원치 않으시며, 회개하지 않는 고집으로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는 것이 곧 성령을 거절하는 죄라고 밝힙니다.
우리는 열 재앙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하는 죄가 얼마나 무서운 파멸을 불러오는지 분명히 배웁니다. 이 역사를 거쳐 마침내 이스라엘의 출애굽이 시작됩니다. 다음 제24장의 주제는 유월절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핵심 요약 정리]
열 재앙의 본질: 애굽의 열 재앙은 피조물과 우상을 신으로 숭배하던 애굽의 모든 거짓 신들을 심판하시고, 여호와만이 온 우주의 참하나님이심을 온 세상에 입증하신 사건입니다.
모세의 첫 요구와 안식일 회복: 모세가 바로에게 요구한 "절기를 지키겠다"는 선언은 히브리 원어 표현(히쉬바템)과 전후 문맥을 통해 볼 때, 애굽의 노역 속에서 짓밟힌 창조주 하나님 신앙의 핵심인 안식일 준수를 회복하겠다는 선포였습니다.
'엘 샤다이'에서 '여호와'로의 언약: 조상들에게 능력의 하나님(엘 샤다이)으로 계시되셨던 하나님께서는 이제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여호와)으로서, 당신의 전 존재와 목숨을 건 절대적 구원 언약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내십니다.
바로의 타협안과 심령의 강퍅함: 바로는 "이 땅에서 드리라", "멀리 가지 말라", "아이들과 재산은 두고 가라"며 끝없는 타협을 시도했습니다. 은혜의 빛과 권능의 증거를 거듭 거절할수록 진흙이 햇빛에 굳어지듯 바로의 심령은 스스로 더욱 완악해져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