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言)의 힘
素晶 하선옥
하늘이, 태양이 이글거리며 불볕더위를 내뿜고 있는지가 거의 보름 가까이 됐나 보다. 여름 날씨니까 그러려니 참으려 해도 올여름은 유독 사람 만나는 바깥나들이 하기가 무섭다. 그럴 때마다 너나 할 것 없이 날씨 핑계 대기가 일쑤다. 장대처럼 쏟아붓는 장대비엔 "어이구 떠내려가겠다. 무슨 놈의 비가 이리 퍼다 붓노? " 우중충한 날씨엔 왜 이리 찡그리고 사람을 아프게 할까? '제발 비 좀 그만 왔으면 좋겠다.' 이래 놓고 장마가 끝남과 동시에 불볕더위가 시작되니 "사람을 삶아 죽이려고 하나? 왜 이리 덥노? " 하늘에게 땅에 주변에 핑곗거리 돌려가며 원망하는 게 인간들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고 힘이라니까 말이다. 더위에 헐떡거리는 강아지가 하늘을 원망하는 거 봤나? 비 오면 맞고 해가 짱짱하면 시들 거리는 식물이 하늘을 원망하는 거 봤나? 비 오면 온갖 생물들이 활기를 띠고 고개를 들며 푸릇푸릇 해지고 해가 내리쬐면 불긋불긋 고추가 익어가고 고추잠자리가 날지만 원망하는 몸짓 한번 없더라.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고 못난 마음이더라.
오늘, 이처럼 무더운 더위도 싹 가시게 하고도 남을 위로를 받았다. 아주 낯선 사람의 말 한마디에 이런 힘이, 이런 감동이 실려 있을 줄이야! 몇 년 전부터 아팠던 왼쪽 팔꿈치가 다시 재발 한 지 몇 개월 됐나 보다. 미련 받게 참고 참다 오늘에서야 병원을 찾았다. 조곤조곤 팔 상태를 설명해 주시는 의사 선생님께서 치료 방법을 제시하셨고, 오늘은 팔 보호대와 주사 요법도 같이 하자고 하시네. 주사실에서 대기하고 있는 과정에서 간호사 선생님께 물었다. "주사가 아플까요? " "그럼요 어머니 좀 아플 거예요. 그동안 열심히 사셨잖아요. 그래서 아픈 거예요.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요 ." 진심이 느껴지는 그 말의 힘. 갑자기 울컥해지면서 '아무도 말해주지도 않고 알면서도 알은척해 주지 않았던 내 지난날'을 이 선생님이 알아주시네. "선생님은 말도 어떻게 이렇게 곱고 이쁘게 하실까요? 주사가 무서웠는데 안 아플 것 같아요. " 하니 간호사 선생님께서 "다행입니다. 내 말이 위로가 된다고 하니, 감사합니다. " 이러네요. 곧 이어진 초음파와 주사에 의사 선생님의 위로까지 아팠지만, 아픈 줄 모를 것 같은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곱디고운 말 한마디면 마음의 상처까지 아물게 한다'라는 걸 우리는 알면서도 외면하고 살았는지도….
치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한화오션: 舊 대우해양조선> 정문 아래쪽 동산 가득히 피어 있는 백합꽃을 봤습니다. 여태껏 '하루에 한 번은 꼭 지나가는 길'이었는데도 오늘 처음 봤습니다. 아주 작은 눈썹 동산이지만, 온 동산이 하얀 백합꽃이 소담스레 곱게 핀 것을…. 그동안 어디에다 눈을 두고 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토록 청초하고 이쁜 백합 동산이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아 온 눈먼 바보였나 봅니다.
눈먼 이 같이 살아온 나는 오늘, 여름이 준 선물, 불볕더위가 준 선물 백합꽃. 그리고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이 준 마음의 선물을 동시에 받았습니다. 거제 D 병원 정형외과 3과 L 선생님과 2, 3과 간호사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고운 마음과 열정으로 치료해 주셔서, 이 무더운 여름에 청량함을 선물해주셔서. 의료 종사자들의 예쁜 말 한마디가 무더운 날씨 속에 병원을 찾은 환자들의 소소한 불편 함을 잊게 하는 가장 최선의 처방전임을 새삼스럽게 느낀 하루입니다.
2023년 8월 8일 소정.
첫댓글 아주 좋은 수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