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보름달 아래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기억과 추억 사이/옛날 고향 이야기
2006-02-18 16:40:14
휘영청 떠오른 보름달에 맞춰 달집을 태우며 액운 쫒아내는 달집태우기는 정부 형님이 도맡아 했다. 정부 형님이 없으면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갈 정도로 달집태우기를 하는 밤이면 동네사람들이 모여 들어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아이들은 말할 것고 없고 바깥나들이를 잘 하지 않는 노인들까지 나와 달집 태우는 것을 지켜 보았다. 정부형님은 언제나 동네 가운데 아니면 가을 걷이 끝난 논에서 달집 태울 준비를 했다. 공간이 넓고 확 트여 달을 잘 볼수 있어서였다.
달집을 태우는 데는 짓 푸른 소나무가 단연 인기였다. 한번 불을 붙이면 금방 화르륵 타오르는 활엽수보다 불꽃과 연기를 오래 끄는 소나무의 성질 때문이었다. 소나무는 불을 붙이면 솔잎에서 송진이 진득진득 흘러내려 저절로 화력을 돋궈주는 구실을 했다.
그래서 정부 형님도 늘 소나무를 이용했다. 인근 야산에서 가지 채 쳐온 소나무는 솔잎이 얼마나 짓푸르고 싱싱한지 들어올리기도 힘들었다. 소나무를 쌓아 올리는 일이나 그 밑에 불붙이는 일은 아예 정부 형님의 몫이었다. 사람들은 그저 구경만 하면 되었다. 척척 쌓아올린 소나무가 한 키를 넘자 정부형님은 소나무 밑에 종이를 꾸겨 넣고 불을 붙였다. 무작정 진한 연기만 토해내며 꺼지기만 반복하던 연기도 힘을 얻자 소리를 내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타닥타닥, 틱틱 , 한참 지나자 불꽃은 동네 사람들을 잡아먹을 듯이 혀를 날름거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모두 한발 씩 물러섰다, 뜨거운 열기 때문에 감히 접근할 수가 없었다. 빙 돌아서서 서있는 사람들 얼굴도 불빛으로 일렁거렸다. 눈이 마주치면 서로 무서워 흠칫 놀라는 것 같았다. 불이 전체로 번져 연기가 치솟아 오르면 사람들은 바로 머리 위에 두둥실 떠오른 보름달을 쳐다보았다. 너무나 밝고 눈이 부셔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
평소에는 달에게 무슨 일이 일었는지 잘 쳐다보지 도 않던 사람들이 이날만큼은 오래오래 쳐다보았다. 웬일인지 달라 보였다. 동네나 집집마다 들어찬 액운이 모두 연기에 내쫒기는 느낌이 들었다. 노랗다 못해 붉으스름한 빛을 띤 보름달은 미친 듯이 타오른 불꽃 연기에 그을렸는지 반쯤은 거뭇거뭇했다. 나도 사람들 속에서 달을 향해 소원을 빌었다. 매일 맛있는 과자를 먹게 해주길, 공부 잘하길, 어린 마음이었지만 소원을 비는 내 눈에 보름달이 기분 좋게 웃는 것 같았다. 한참 타오르던 불꽃이 사그라지면 동네사람들은 집으로 들어갔고 친구들은 저마다 쥐불놀이 할 깡통을 들고 나왔다.
대보름에 맞춰 미리 만들어 놓은 것이라 사용하기에 딱 좋았다. 깡통을 만들기는 아주 쉬웠다. 대못과 철사줄, 망치만 있으면 그만이었다. 깡통을 돌려가며 대못으로 구멍을 숭숭 뚫어놓고 철사로 손잡이를 매달면 끝이었다. 아이들은 깡통 속에 마른 삭정이와 나뭇가지를 쑤셔 넣고 방금 달집태우기를 한 잔불을 집어넣었다. 불이 꺼질세라 손잡이를 잡고 빙빙 돌리면서 바로 옆에 있는 들판으로 내달렸다. 누가 쥐불을 놓았는지 논두렁은 벌써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들판은 쥐불놀이 하기는 딱 좋았다. 무엇보다 사방이 확 트여 눈이 시원했다. 논두렁을 경계삼아 다닥다닥 붙어있는 논다랑이들이 넓게 펼쳐진 들판은 얼마가 지나자 불깡통을 돌리는 아이들로 바글바글했다. 들판은 완전 불꽃 쇼를 연출했다. 불꽃 동그라미들이 허공을 황홀하게 수놓으며 날아다녔다. 불꽃이 연출하는 조화가 이처럼 아름다운 건 처음 보았다. 불깡통을 돌릴 때마다 휙휙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낼 때마다 불티들이 온 몸을 부수며 타올랐다. 어둠이 더 깊이 묻히고 보름달도 색이 바래 꾸벅꾸벅 졸 때 쯤 쥐불놀이는 절정을 이루었다. 빙빙 돌리던 불깡통을 허공 높이 던져 올리는 아이들이 늘어났다. 타원형을 그리며 날아가는 불깡통이 불티들을 내 쏟으며 일대장관을 이루었다. 꼬리를 끌며 사라지는 불꽃들, 불티들의 아우성을 듣다보면 어느새 보름달도 연기에 그을려 거뭇거뭇했다. 연기에 그을린 얼굴이 창피한지 보름달은 구름장에 잠깐 얼굴을 숨기는 듯 했으나 그래도 친구들은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친구 집 사랑방에 아지트를 꾸려 남의 집에서 찰밥을 훔쳐오기 위해서였다. 찰밥을 훔쳐와 먹는 일명 찰밥서리는 훔쳐 온 찰밥을 밤이 깊도록 맛있게 먹으며 노는 놀이문화 중의 하나였다. 보름날이면 집집마다 찰밥을 잔뜩 해 놓았다. 찰밥도 그냥 찰밥이 아니었다. 조, 수수 귀리등 오곡을 섞어 만든 찰밥은 묵은 나물과 함께 생각만 해도 입맛이 당겼다. 그렇게 만들어 놓은 찰밥을 어둠을 타고 부엌에 살금살금 들어가 잽싸게 훔쳐 나오는 것이다. 솥뚜껑을 열 때의 스릴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정도로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이것을 도둑질로 여기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찰밥이 없어지면 으레 그런 걸로 알고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집에선 맛이 없던 찰밥도 친구들과 함께 먹으면 입맛이 살아났다. 거기다가 찰밥에 묵은 나물을 비며 먹으면 밤새도록 혀끝이 구수한 찰밥냄새로 맴돌았다. 그래도 찰밥이 모자라면 다시 다른 집으로 들어가 찰밥을 훔쳐오는데 어떤 때는 친구 집에도 들어갈 때가 있었다. 그래도 모르는 척했다. 이렇게 맛있게 먹고 배가 불러도 잠을 질수 없었다.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쇤다는 말이 있어 졸리면서도 억지로 졸음을 참았다. 그러나 잠에 취해 자는 놈이 있으면 친구들은 그 놈의 눈썹에 하얀 밀가루를 쳐발라 눈썹이 쇤 것 차람 만들어 놓았다. 재수 더럽게 잘 당한 놈이 따로 있었다. 바로 경용이였다. 그 녀석은 어찌나 잠이 많은지 등을 댔다하면 곯아떨어지고 코를 드렁드렁 곯았다. 친구들이 밀가루를 눈썹에 쳐 발라도 몰랐다. 날이 밝아 아침이 되서야 친구들은 모두 꾸역꾸역 흩어지는데 눈썹 하얗게 쇤 경용이 머리위로는 자울자울 졸던 보름달도 하얗게 색 바랜 얼굴로 웃고 있었다. 세월은 40번을 반복해 흘렀지만 아직도 그 때의 정경이 그리울 때가 있다. 쥐불놀이와 달집태우기는 하지 못해도 그 시절 찰밥서리 하는 기분으로 아내가 해주는 찰밥을 먹을 때가 있다. 그러나 맛이 나지 않았다. 더구나 맛깔란 반찬과도 곁들려 먹지만 그 때보다 못한 것은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훔쳐 먹는 재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찰밥은 훔쳐 먹어야 제 맛이 날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디 지금의 상황이 그리 호락호락 한가. 안 그래도 도둑이 들끓는 세상, 찰밥을 훔쳐 먹다 발각이라도 되면 곧장 철창신세가 될 것은 뻔한 노릇이다. 곰곰 생각해 보니 그때만큼 좋은 시절도 없다. 궁해도 눈감아 주던 시절, 한 끼 먹을 음식을 동네사람들이 훔쳐 먹어도 그저 좋게만 바라보던 시절, 들판을 뛰어다니며 쥐불놀이를 하고 동네 가운데서 달집태우는 시절, 이제 그것은 모두 꿈속 무늬로만 아로새길 풍속으로만 남아있게 될 것인가. 그래도 아직 그 풍습을 조금이나마 유지시키고 있는 마을이 있어 위안이 들었다. TV가 비춰주는 제주 오름의 쥐불놀이와 달집 태우는 광경을 보는 순간 그 시절 고향의 그리움이 문득 지나쳐 눈물을 돋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