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길상사에 깃든 자야의 순정

[권춘희]

길상사(吉祥寺)에 깃든 자야(子夜)의 순정(純精)

여자의 몸으로 원한의 38선을 넘어 함경남도 함흥에서 서울로 피난 온 기생자야(子夜) 본명: 김영한, 1953년 대한민국 3대 고급요정 중 하나인 대원각(大苑閣)을 설립하고 재력가로 성장했다.

그리고 훗날 자야는 당시 돈으로 1,000억 원 상당의 고급요정 대원각을 아무런 조건없이 무소유 法頂스님에게 시주했다. 그 대원각 요정이 바로 서울 성북동에 위치한 지금의 사찰 길상사(吉祥寺)이다.

평생을 사랑했던 북한에 머물고 있는 인연 시인 백석(白石)을 애타게 그리워하며 살았던 기생 자야는 폐암으로 1999년에 세상을 떠났다.

1997년 12월 14일 길상사를 시주받은 법정스님은 창건 법회에서 자야(김영한)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자야는 법회에 참석한 수천 명의 대중 앞에서 “저는 불교를 잘 모르는 죄 많은 여자입니다. 제가 대원각을 절에 시주하고 바라는 소원 단 하나는 이곳에서 그 사람과 내가 함께 들을수 있는 맑고 장엄한 법종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대원각 전 재산을 시주한 것이 아깝지 않느냐 라고 한 신문사 기자의 질문에 자야는 이렇게 대답했다. “1,000억 원 재산이 ‘백석’ 그 사람의 시 한 줄만도 못해요. 내가 죽으면 화장해 눈 많이 내리는 날 길상사에 뿌려달라고” 했다.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흐르는 깊은 산골로 가서 살자, 나는 나탸사를 생각하면 어느덧 벌써 내속에 고즈넉이 와 이야기한다.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 것이다.

사랑한 사람 백석의 시에서처럼 눈이 폭폭 내리는 날 백석에게 돌아가고 싶어 했기에 다비식을 마친 뒤 자야의 뼈 가루는 길상사 경내에 하얀 눈 위에 뿌려졌다.

자야가 평생을 못 잊어 하며 사랑한 시인 백석(白石: 1912년-1996)은 일제 강점기 시대 평안북도 정주 출신으로 본명은 백기행(白箕行)이지만 아호인 백석을 필명으로 사용했다.

백석은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의 시구에 나오는 “자야(子夜)” 라는 애칭을 김영한 에게 지어 줬다고 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첫눈에 반해 서로가 사랑에 빠져 인연이 되지만, 이들 사이에 장애물이 등장한다.

백석은 유학파에다가 당대 최고의 직장인 함흥 ‘영생여고’ 영어 선생이었던 백석의 부모는 기생과 동거하는 아들을 담탕치 않게여겨 강제로 또 다른 여자와 결혼을 시켜 둘의 사랑을 갈라 놓으려 했지만, 백석은 결혼한 첫 날 밤에 그의 인연 기생자야(子夜)에게로 돌아가 그녀에게 함께 만주로 도망가자고 제안을 했다.

하지만 자야는 보잘 것 없는 자신이 혹시나 백석의 장래를 막아 해를 끼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를 거절하나 백석은 그녀가 자신을 찾아 만주로 올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먼저 만주로 떠난다.

그가 가장 사랑했던 여인인 기생자야를 옆자리에 앉히고는 손을 잡고 “오늘부터 당신은 영원한 내 여자야,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기 전까지는 우리에게 이별은 없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문학에 대한 천재적인 재능과 훨칠 한 키, 잘생긴 로맨티스트 시인은 빼어난 외모로 당시 많은 여성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만주에서 홀로된 백석은 늘 자야를 그리워하며 해방이 되고, 백석은 자야를 찾아 만주에서 함흥으로 갔지만 자야는 이미 함흥을 떠나 버리고, 백석이 잠시 동안이나마 믿었던 이별은 영원한 이별이 되고 말았다.

그 후 다시 6.25가 터지면서 둘은 각각 남과 북으로 갈라져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되며, 백석은 평생 자야를 그리워하며 북한에서 혼자 살다가 1996년에 세상을 떠났다.

1996년 북한에서 죽을 때 까지 내내 자야를 그리워하면서 혼자 살다 숨을 거둔 백석의 순애보도 대단하지만, 백석을 그리워하면서 어렵게 세운 대원각을 법정스님에게 시주하고 세상 떠난 자야(金英韓)의 순정도 너무나 아름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