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5. 25
1980년 전후의 오일 쇼크 재연될 우려
“금리 및 통화정책 통해 위기 극복 가능” 시각도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은 지난 1년 동안 2% 수준에서 6% 이상으로 상승해 2008년 이후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거의 모든 나라에서 인플레이션은 중앙은행이 설정한 목표치를 훨씬 상회하고 있다. 2021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인플레이션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인해 더 강해지고 있다. 모든 것이 오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인플레이션의 주요 요인으로 간주되고 있지만, 사실 그 원인을 찾아보면 2020년 이후 전 세계의 가계가 축적한 초과 저축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미국과 유럽의 중앙은행과 정부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가계에 대규모 자금을 지원함으로써 초과 저축이 축적되도록 했다. 소비는 통행제한 등으로 제한된 상황에서 추가적인 수입이 계좌에 쌓이는 현상이 나타났던 것이다. 미국의 경우 초과 저축 규모는 2019년 연간 가처분 소득의 17%인 2조7000억 달러에 이르렀으며, 유럽의 경우 12.4%인 9000억 유로에 이르렀다. 이러한 일시적 소득 증가는 필연적으로 내구재를 중심으로 하는 대폭적인 수요 확대로 이어졌다.
▲ 5월16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 식용유 매대에 유지류 품절 안내문이 붙어있다. 지난달 말 인도네시아가 팜유 수출을 제한하면서 국내 식용유 공급 차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연합뉴스
2020년 이후 축적된 초과 저축이 원인
하지만 이를 공급하기 위한 공급망은 코로나19로 인해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면서 수요가 견인하는 인플레이션이 지속됐다. 이후 리오프닝으로 인한 수요 확대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이 겹치면서 인플레이션 추세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미국의 내구재 소비는 2022년 1분기에 2019년 평균에 비해 25% 이상 증가하면서 여전히 초과 수요가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인플레이션 역시 당분간 지속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지난 30년간 찾아보기 힘든 수준의 인플레이션이 진행되면서 1970년대와 유사한 상황이 반복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최근 증폭되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공급 차질과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공급 충격이 더해지면서 많은 이에게 1973년과 1979~80년에 있었던 오일 쇼크를 떠올리게 하고 있다. 당시 주요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급격한 에너지 가격 충격으로 인한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매우 완화적이었다. 이는 2020년 이후 중앙은행들이 보여준 완화적 태도와 유사하다. 이러한 유사성으로 인해 80년대 초반과 마찬가지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대규모 금리 인상과 가파른 긴축정책이 동원될 수 있으며, 이 경우 세계경제는 1980년대 초와 유사한 경착륙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역사적으로 글로벌 인플레이션은 1960년대에 1.5%로 시작했지만 1960년대 말까지 1.5~4.7%로 상승했다. 1970년에 5.5%에 도달한 후 1970년대 후반까지 5.5~14.4%로 계속 상승한 후 1980년에 14%로 정점에 이르렀다. 이에 비해 오늘날의 글로벌 인플레이션은 2021~22년 평균 5%, 2022년 3월 7%를 기록했으며, 올 후반기에는 10%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유사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현재 상황과 1970년대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첫째, 적어도 지금까지는 원자재 가격 상승 규모가 1970년대와 비교할 때 낮은 수준이다. 1970년대 유가는 1973~74년에 4배, 1979~80년에 두 배로 올랐다. 반복되는 에너지 공급 충격에 따른 높은 인플레이션과 약한 경제 성장이 결합하면서 경제 성장 없는 물가 상승을 의미하는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발생했다. 하지만 현재 유가는 물가 상승을 반영한 실질 가격을 기준으로 보면 1980년이나 2008년의 약 3분의 2 수준에 머물러 있다.
둘째, 1970년대 이후 통화정책 패러다임에 변화가 있었다. 선진국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 목표로 표현되는 물가 안정을 위한 충분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 지난 30년 동안 인플레이션을 성공적으로 억제해온 경험이 있다.
사실 이러한 목표와 권한 집중은 과거의 실패로 인해 가능해졌다. 1970년대에는 중앙은행의 권한이 물가 안정뿐만 아니라 생산 및 고용을 포함한 여러 목표를 포괄하고 있었다. 1971년 브레튼우즈 체제 붕괴 이후 선진국 중앙은행은 통화 확장을 통한 경기 활성화를 목표로 잡았다. 당시 정책 입안자들은 인플레이션 상승을 오일 쇼크라는 특별한 요인에 의한 것으로 간주했으며, 초과 수요 측면에서 이뤄지는 지속적인 영향을 과소평가함으로써 수십 년 동안 인플레이션이 상승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1980년대 초반의 공격적인 긴축 통화정책은 선진 경제의 인플레이션을 급격히 감소시켰고 심각한 경기 침체의 대가를 치르긴 했지만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통제할 수 있다는 신뢰를 확립했다. 미국의 경우 단기 금리는 1976년 말과 1981년 중반 사이에 거의 4배가 됐으며, 금리 인상의 여파로 미국 GDP는 1981년 초에서 1982년 중반 사이에 2% 이상 감소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은 통제할 수 있게 됐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초과 수요의 유지와 공급망 위축으로 인한 공급 측면의 충격이 지속되면서 임금을 인상시키고, 이것이 제품 및 서비스 가격에 반영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수요가 만들어내는 인플레이션에서 비용 상승이 초래하는 인플레이션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1970년대와 같은 장기 인플레이션으로 발전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주요국 중앙은행은 금리를 인상하고 유동성을 줄이는 긴축 통화정책으로 돌아서고 있으며, 정부 역시 재정 투입을 줄이면서 인위적인 부양책으로 만들어졌던 성장은 둔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크라 사태 따른 공급망 악화는 안정될 것”
여기에 더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공급 차질의 경우 일단 높아진 가격이 시장에서 받아들여짐에 따라 상품 가격의 변동성은 감소하며 안정될 것이다. 글로벌 공급망 붕괴와 관련한 논의가 있기는 하지만 생산라인과 물류 조정을 통해 시간이 지나면 공급 병목 현상 역시 어떠한 형태로든 완화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노동력 부족과 인건비 상승은 인플레이션 완화를 지연시킬 요소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인플레이션의 영향은 균등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기업의 경우 원가 부담 상승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지만 증가한 부담을 가격에 전가할 수 있는 경우 이익은 오히려 증가할 수 있다. 하지만 가계는 큰 타격을 받는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높은 인플레이션은 실질 소득을 감소시킬 뿐만 아니라 실물 자산 보유를 통한 이익 증가의 혜택도 누리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흐름은 시간을 두고 바라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반복되지는 않는다. 30년 만의 인플레이션은 낯선 현상이지만 과도한 두려움을 가지기보다는 금리 등 정책을 통해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최준영 /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출처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