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1. 07
미국의 이란군 실세 거셈 솔레이마니 제거 후 새삼 주목 받게 된 화두가 있다. ‘김정은 참수작전’이 바로 그것이다. 요즘 언론에선 ‘미, 북 수뇌부 참수작전 나선다면…’ ‘트럼프, 백악관에 앉아 김정은 잡을 수 있다’ 등 자극적·선정적 제목의 기사가 넘친다. 김정은을 증오하는 이들에겐 생각만 해도 신나는 일일 게다.
참수작전이란 지휘·통제를 맡는 수뇌부를 단숨에 없애 적을 무력화하는 전략이다. 폭사시키든, 독살하든 한 명만 날리면 게임 끝이니 이렇게 가성비 좋은 전략도 드물다. 그러니 미국이 진지하게 들여다보지 않았을 리 없다.
실제로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거듭했던 2017년, 트럼프 행정부는 ‘화염과 분노’라는 이름 아래 참수작전을 포함한 군사적 대응을 검토했다고 한다. 언론에서도 이 문제가 거론됐다. 그해 4월 포브스에는 “김정은 제거는 합법적으로 장려돼야 하며 중국·러시아도 싫어하지 않을 것”이라는 군사전문가 로런 톰슨의 기고문이 실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미국이 북한의 김씨 일가를 목표로 참수작전을 추진했다는 증거는 없다. 대신 ‘언제든 없앨 수 있다’는 위협적 신호를 보낸 적은 있는 듯하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2005년 당시 부시 행정부는 스텔스기 F-117 여러 대를 평양의 밤하늘로 침투시킨 뒤 김정일의 숙소 위에서 굉음을 내며 급강하하도록 해 겁을 줬다는 것이다. “F-117은 급강하할 수 없다”는 둥 허튼소리란 반론도 있다. 하지만 2008년 F-117 조종사였던 마이클 드리스콜 대위는 ‘에어포스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북한 영공을 휘젓고 다녔던 것”이라고 밝혀 김정일 위협설을 뒷받침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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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김정은 참수작전은 해볼 만한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결코 추진해서는 안 될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 이유로는 첫째, 이번 이란 장군 처단에는 성공했지만 실패할 가능성이 작지 않은 전략인 탓이다. 2003년 3월 시도됐던 사담 후세인 참수작전이 대표적인 실패작이다. 당시 미국은 이라크의 독재자 후세인과 두 아들이 바그다드 건물 지하에 있다는 첩보를 믿고 프레데터 드론과 B-1 폭격기를 동원, 벙커버스터 폭탄으로 목표 건물을 완전히 파괴했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후세인 부자가 엉뚱한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동이 자유로운 이라크에서도 최고지도자가 어디 있는지 알기 어려운 판에 극히 폐쇄적이고 통제가 심한 북한에서 김정은의 위치를 알아낸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신변의 위협을 느낀 김정은은 오래전부터 부하들 차를 바꿔 탄다고 한다. 이번에 솔레이마니 암살을 본 터라 더 꼭꼭 숨을 게 틀림없다.
둘째, 김정은 처단이 성공해도 북한군이 무력화된다는 보장이 없다. 북한군 수뇌부 내에는 강경파가 득실거려 이들이 권력을 장악할 공산도 크다. 김정은 사후 이들이 미국과의 전면전은 못 하더라도 15만 명의 미국인이 사는 남한을 대신 공격할 위험이 다분하다. 서방 측 참수작전을 걱정한 옛소련 독재자들은 자신이 암살되면 자동으로 군부가 보복에 나서도록 한 시스템을 만들었다. 북한도 그럴 수 있다. 이란과는 달리 핵으로 무장한 북한이다. 북한이 핵으로 남쪽을 때릴 상황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끝으로 김정은 처단 후 온건파가 득세함으로써 한반도에서 무력 충돌이 없더라도 좋을 게 없다. 70여 년간 김씨 일가의 주체사상에 길들여진 북한 주민들이다. 통일이 되든, 안 되든 자신들의 지도자가 갑자기 암살되면 남쪽 체제를 순순히 받아들일 리 없다. 시간이 걸릴지언정 평온한 상태에서 점진적으로 통일을 이루는 게 부작용이 없을 거란 얘기다. 그러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과 상의도 없이 김정은 제거에 나서는 사태만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이번 이란 장군 암살 때에도 의회를 무시하고 일을 저질러 세계를 위태롭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트럼프다.
남정호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nam.je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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