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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사 연혁 (金井寺 沿革)
금정사(金井寺)는 신라 진흥왕(540~576년)때 창건되었으며 창건 당시에는고상사(高上寺)라고만 전하여 왔으며 달리 전해오는 기록은 없다.
조선 인조 5년(1627년)에 왕은 자신의 아버지를 원종(元宗)으로 추증하고 어머니 역시 인헌왕후(仁獻王后)로 추증하여 그들의 묘를 양주에서 김포로 이장하고 장릉(章陵)이라고 하였으며 인근에 있던 고상사(高上寺)를 현재의 위치로 옮겨 장릉을 보호하는 사찰로 재건(再建)되면서 봉릉사(奉陵寺)라 칭하게 되었다.
일제 강압기인 1930년에 당시 주지(主持) 영송화상(永松和尙), 중수,重修,하였고, 다시 1938년 주지(主持) 성화대사(成和大師)께서 대한제국 말기 김포를 관장하던 현청을 일제가 강제로 헐어 낼 때 출입문(三門)중 목제와 주춧돌 등을 구입하여 사찰을 크게 중수(重修)하였다.
6.25전쟁 이후 쓸어져가는 사찰을 1974년에 주지 비구니 정녕(正念)스님과 고근(高根)스님이 다시 대웅전(大雄殿)과 범종각(梵鍾閣)을 새로 짓고 면모를 일신하였다.
이후 "능을 지킨다."는 "봉릉사(奉陵寺)"에서 절의 뒷산이 금정산이며 또한 멀당앞에서 예부터 좋은 물맛의 샘이 솟아나므로 인하여 "하늘우물"이라는 "긍정사(金井寺)"로 개명(改名)하여, 김포지역 포교와 비구니 수행도량(修行道場)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웅전(大雄殿)의 건축양식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맞배지붕'으로 된 기와집이며, 공포의 양식은 '다포계'를 기본으로 한 "약식 공포"이며, 창호는 '빗살문'으로 되어 있으며, 대웅전(大雄殿)아래로는 범종각(梵鍾閣)이 있다.
요사채 '본원지(본전전건물)'는 앞부분이 돌출된 "니"자(字)형식이며 돌출된 전면은누각양식으로 지어졌다. 7층 석탑(石塔)은 대웅전(大雄殿)앞 기단 아래에 있다.현재 금정사(金井寺)는 경기도 전통사찰(傳統寺刹) 제63호로 지정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