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의 차취 찾아
세상살이가 그리 녹록지 않아 언제나 허덕이며 살아온 지난 세월을 되돌려 보면 잘한 일은 마음속에 남은 게 없고 잘못한 일들만 마음속 앙금으로 남아 많은 회한으로 마음을 어지럽힌다.
23년여 손주들의 교육을 목표로 이민 생활하면서 먹고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하루가 언제 지나는 줄도 모르게 바둥거리며 사는 동안 자녀들이 어느 만치 삶의 터전을 닦고 손주들도 모두 장성한 터라 경제적으로나 생활에 도움이 별로 필요치 않게 되고 보니, 이민 생활을 접고 마지막 생을 고국에서 보낼 계획으로 오게 되었다. 젊었던 시절 선영의 답사를 하지 못하여 마음속에서 늘 짐이 되어 언젠가는 마음의 짐을 벗으리란 각오만 간직하고 있었는데 집사람의 건강이 좋지않아 한국으로 와서 치료를 하게되어 1년동안 한국에 머물면서 선조 님들의 묘소를 탐방했다. 각파별 선조 님들의 묘소墓所는 탐방하지 못하고 직계 선조 님들의 묘소墓所와, 청풍김씨에 관련된 국보와 지방 문화재를 탐방하면서 화려했던 선조 님들의 발자취를 체험하는 내내 뿌듯한 기꺼움으로 선조 님들께 감사함을 드렸다.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정우당 김식 선조 님, 김시묵 선조 님( 정조비 효의왕후 아버지) 잠곡 김육 선조 님, 김좌명 선조 님, 김성응 선조 님, 김석주 선조 님, 또 춘천에계신 김우명 선조님(현종비 명성왕후 아버지)도 뵈었다.
김식 선조 님의 시조와 상소문을 옮겨본다.
기묘사화 때 순절하신 정우당 김식 선조 님의 우국충정이 잉걸불처럼 빛나는 절개를 목숨과 바꿈으로 생을 마감하신 절절하고 거룩하신 선조 님은 길이길이 역사에 남을 것이다.
군신천재의(君臣千載義)
일모천함흑(日暮天含黑) 해는 기울어 하늘은 어둑한데
산공사입운( 山空寺入雲) 텅 빈 산사 위에 구름이 떠 가네
군신천재의( 君臣千載義) 군신간의 천년의 의리는
하처유고분(何處有孤墳) 어느 외로운 무덤에 있는가!
* 기묘사화와 신사무옥에 연좌되어 절도(絶島)로 이배 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거창에 숨어 계시다 '군신천재의' 시조 한수 남기시고 자결하셨다.
기묘사화 후에 현량과가 폐지되면서 명종 떄 복관 되셨으며 선조때
이조참판을 거쳐 영의정에 추증 되셨다.
기묘명현 8인 중 한 분으로 추앙받고 계신다.
정우당(淨友堂) 김식(金湜) 선조님 중종에게 올린 상소문.
망명한 신 식(湜)은 삼가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린 채 미천한 신하의 충심을 주상 전하께 토로합니다. 신이 비록 보잘것없으나 그래도 고인이 처신하는데 일정한 법도가 있다는 것은 조금 알고 있습니다. 구차히 살아남는 것이 부끄럽다는 것과 절개를 지키는 것이 훌륭한 일임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수치를 무릅쓰고 굳이 이렇게 하는 것은 흉적이 장차 종묘사직을 위태 롭게 할 것을 알기에 보잘것없는 충의(忠義)나마 바치고자 해서입니다. 전하께서는 잠시 살펴주신다면 어찌 신의 마음만을 아시는 데서 그치겠습니까. 심정(沈貞)은 본래 탐욕스러워 만족을 모르는 소인배로 맑은 의론에 용납되지 못하자 가슴에 원한을 쌓고 난을 일으키려는 생각을 품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다만 틈이 없었는데, 조광조가 성상의 인정을 받게 되어 학자들이 모두 추향하고 백성이 칭송하자 드디어 참문을 조작하여 몰래 성상의 뜻을 흔들고, 또 불만을 품은 자들을 모아 마침내 사림의 화를 얽어 만들었습니다.
亡命臣某。謹再拜稽首吐露微臣寸忱于 主上殿下。臣雖無狀。粗識古人行己之有方。非不知偸生
망명신모 근재배계수토로마신촌험우 주상전하 신수무상 조식고인행기지유방 비불지투생
之可恥。守節之可尙。必此冒恥而爲之者。見兇賊之將危 宗社。欲效區區之忠義。 殿下少垂察
지가치 수절지가상 필차모치능위지자 견흉적지장위종사 욕효구구지충의 전하소수찰
焉。豈特知臣之情而已哉。沈貞本一貪饕無厭小人。不爲淸議所容。積怨于胸。思欲作亂者久
언 개특지신지정능기재 심정본일탐도무염소인 부위청의소용 적노우흉 사욕작란자구
矣。第無其隙。因光祖知遇 聖上。學者同趨。小民稱善。乃造讖文。潛撓 上志。又族群不逞
의 제무기극 인광조지우 성상 학자동촉 소민칭선 애조참문 잠요 상지 우족군불영
遂搆士林之禍
수구사림지화
남곤(南袞)과 더불어 많은 무사들을 모았으니 그 의도가 어찌 사림들을 제거하는 데에만 그치겠습니까. 조정은 전하의 조정이 아니요, 바로 심정과 남곤의 조정입니다. 전하의 형세가 외롭지 않겠으며, 위태롭지 않겠습니까. 신은 이 때문에 참고서 망명하여 간흉들이 전하를 위협하고 핍박하기를 기다린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몸을 일으켜 난국을 구하러 달려가서 전하께서 제게 베푼 세상에 보기 드문 대우에 보답하려는 것이 신의 본뜻입니다.
게다가 신은 전하께서 조광조를 의심하신 것은 본심이 아니며, 저를 벌하신 것도 본심이 아니라는 것을 깊이 알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구구하게 말씀을 올리는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미천한 신의 진정을 깊이 헤아려 그 형세를 잘 관찰하신다면 간흉들의 죄상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전하께서 끝까지 깨닫지 못하신다면 조종(祖宗)은 어찌 되며 사직은 어찌 되겠습니까. 이름난 선비를 모두 죽이고도 나라가 존속된 경우는 있지 않습니다. 미천한 제 한 몸이야 불쌍히 여길 것도 없지만 신 때문에 무고한 이에게까지 죄가 미칠 것이니 신은 전하를 위해 영결하고자 합니다.
與南衮多聚武士。其意豈止於翦除士林而已哉。朝廷非殿下之朝廷。乃貞,衮之朝廷也
여남곤다취무사 기의개지어전제사림능이재 조정비전하지조정 내정 곤지조정야
殿下之勢。不亦孤哉。不亦危哉。臣故隱忍亡命。而俟奸兇危逼 君上。則挺身赴難。以報
전하지세 불역고재 불역위재 신고온인망명 이기간흉위핍 군상 측정신부난 이보
殿下不世之遇。此臣之素志也。且臣深知 殿下之疑光祖非本心也。罪臣亦非本心。故爲此區區
전하불세지우 차신지소지야 차신심지 전하지의광조비본심야 죄신역비본심 고위차구구
也。殿下深察微臣情素。而觀其勢。則可以知奸兇之情迹。若 殿下終始不悟。則 祖宗奈何
야 전하심찰미신정소 능권기세 측가이지간흉지정적 약 전하종시부옹 칙 조종내하
社稷奈何。盡殺名士而國存者未之有也。微臣一身。非所恤也。以臣之故。延及無辜。臣卽爲
사직나하 진살명사이국존자미지유야 미신일신 비소휼야 이신지고 연급무고 신즉위
殿下訣
전하결
* 조광조, 김안국, 기준등과 도학 소장파를 이루어 제도개혁과 시험을 촉진하는 한편 위훈 삭제를 주장하여 중종반정때 공신이 된 훈구파 중 위훈자를 가려내 76인에 대한 공신자격 또는 원종공진 자격을 삭제하고 토지와 노비를 빼앗는 등 과격한 정치를 하였고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해 미신타파, 무속과 불교 관련행사 불사 등의 금지( 불교 행위를 미신으로 봄) 향약실시를 거세게 추진 했으나 훈구파의 심정, 홍경주, 온건등과 온건 사림파의 남곤, 김전등이 기묘 사화를 일으켜 조광조 일파에 대한 체포령이 내려저 절도안치의 처벌이 내려졌고 이후 신사무옥이 일어나 체포를 피해 경상도 거창으로 몸을 숨기고 계시던 중 할아버님은 종자에게 멀리 떨어저있는 마을에서 음식을 마련해 오라 시키고 중종에게 올리는 상소문을 쓰고 충절을 지키는 자신의 마음을 담은 시조 한수를 남기셨다.
종자가 도착해 보니 할아버님은 자결 하셨고 할아버님의 속 옷에서 상소를 찾아내어 현감에게 전달하여 중종에게 전달 되었고 시신은 왕명으로 소재한 고을에서 검안하고 바로 옥에갇힌 처를 풀어주고 재산을 몰수 하였다.
그 해 6월에 양주군 평구역 위 금촌리 간좌의 언덕에 매장 되었다.
사후에 선조때 증 이조참판에 추증되셨다가 다시 증 의정부영의정에 추증 되셨으며 기묘팔현의 한 분 으로 추앙받으셨고 김육, 김좌명, 김우명, 김석주, 현종비 명성왕후, 정조비 효의왕후의 직계 조상님이시다. [위키백과]
잠곡 선조 님은 조선후기 명 재상, 유학자, 작가로 인조초부터 효종후반까지 대동법을 비롯하여 균역법, 화폐개혁(상평통보 주조), 수레의 제조, 보급 및 시헌력의 제정 시행에 노력 하셨고, 충청 지방에서부터 시작한 대동법을 전라도 지방까지 시행을 유언으로 남기신 위민 정신이 투철하셨던 분이었고 한국의‘애덤스미스’로 칭송받으신 분이 잠곡 김육 선조이시고, 효종 재위때 3번의 영의정을 역임 하셨다. 정우당 김식 선조 님은 고조부가 되시며 위민개혁의 어려움을 실감 하시며 굳은 의지로 견디시는 어려움을 시 한 수로 남기셨다. 그후 손자이신 김석주 선조 님이 대동법을 전국으로 확대하여 균역의 폐단도 시정했다.
관사유감(觀史遺憾)역사를 볼 때마다 눈물이 난다네
古史不欲觀見 (고사불욕관견) 옛 역사는 보고싶지 않다네
觀之每迸淚 (관지매병루) 볼 때마다 눈물 솟게하니
君子必困厄 (군자필곤액) 군자는 반드시 곤욕을 치르고
小人多得志 (소인다득지) 간신이 늘 뜻을 이루다니
垂成敗忽萌 (수성패홀맹) 성공할 즈음이면 문득 패망이 싹트고
慾安危己至 (욕안위기지) 안정될 듯 하면 이미 위태함이 이르네
從來三代下 (종래삼대하) 삼대시대 이후로 오늘날 까지
不見一日治 (불견일일치) 하루라도 다스려진것 보지 못했네
生民亦何罪 (생민역하죄) 민초들 또한 무슨 잘못이 있는가
冥漠蒼天意 (명막창천의) 저 푸른 하늘의 뜻 알 수 가 없네
旣往尙如此 (기왕상여차) 지난일도 오히려 이와 같은데
而況當時事 (이황당시사) 하물며 오늘날의 일이야 어떻겠는가.
* 광해군 때 대북파가 득세했던 시대에 할아버님은 반대파인 서인집안 자손이고 서인의 맹장으로 척화대신 김상헌의 제자였다. 할아버님은 대북파의 영수인 정인홍과 문묘 배향 문제를 놓고 싸움을 벌린끝에 성균관에서 쫓겨나고, 대과 응시자격을 박탈당했다. 잠곡으로 낙향하시어 농사지으며 숯도 구워 팔아 생계를 유지하셨고 인조반정 후 다시 조정으로 불려 와 벼슬길에 오르신다. 민중을 위한 위민정치의 일념으로 개혁을 펼치시며 모든 반대에 부딪히는 어려움 속에서도 위대한 업적을 남기셨다.
생각건대, 실학의 선구자로 집권 세력 무능함에 맞서 뜻을 펼치시는동안 수많은 모함과 반대를 물리치는 어려움이 절절히 구술되어 있는 부국강병과 이용후생의 실천을 이루신 분이다.
청평군 우증 선조 님을 뵙고, 올림픽 공원 안에 계시는 충헌공 김 구 선조 님을 뵈면서 많은 생각에 잠겼다. 6명의 정승을 비롯한 3대 정승의 영예는 후손들에게 많은 귀감을 내리셨으니 살아 계셨을 때의 명성이 오롯이 남아 후손들에게 자긍심을 심어 주셨다.
이토록 훌륭하신 선조 님들이 계셨기에 내가 있어 지금도 피와 골육 속에 곱다시 나와 함께 계셔서 부귀영화와 생사고락도 함께하심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 다짐해 본다.
젊었던 시절 나 자신도 조상님에 대한 숭고한 존경심을 잊고 살아온 경험이 있으매, 후손들에게 완곡한 말로라도 선조 님들의 화려한 자취를 탐방하라는 부탁이 부끄럽기 짝이 없으나,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가 진자리 열매 맺히면 커가는 열매를 위하여 지극 정성으로 사랑을 쏟다 보면 어느덧 열매들이 숙성되어 향기로움을 피움처럼 우리 인생의 성숙한 지혜도 세월 속에서 이루어지는 삶의 이 길은 선조들도 우리와 같은 생을 이어 오시면서 후손들을 위해 지극정성을 쏟으셨음을 생각할 때마다 말로는 다 표현 못 할 존경심이 가슴속에 넘친다. 이토록 화려한 자취를 남기신 선조 님들을 생각할 때 후손 된 도리를 지키며 삶을 제대로 살아야겠다는 결심이 앞선다. 선조 님들보다 화려한 삶은 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선조 님들께 누를 끼치는 일이나 모욕된 언사가 가지 않도록 마음과 함께 몸의 행실을 다잡아 살기로 결심해 본다.
** 김화영 |시인 · 수필가. 판봉상시 사상파 25세손
한국 방송통신대학교 경제학과 졸업(경제학사)
단국대학교 산업 노사대학원 산업 관계학과 졸업(경영 석사)
대한문학세계 시 등단, 착각의시학 수필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착각의 시학 연구회 회원, 한국 예인문학 회원.
* 공저: 착각의 시학 문예지, 한국예인문학 문예지 외 다수. 명인명시 특선 시인선 외 다수.
한국문인협회 시분과 '앤솔로지' 기미독립선언 100주년 기념 505시인의 대 향연 「나의 고향 나의 어머니」.
2021년 경주 전국문화인대회 기념작품집 「서라벌을 노래하다」.
저서: 시집 「발자국에 담긴 추억」, 산문집 「인생은 구름 , 바람 , 흐르는 물과 같은 것」.
뿌리 「선조의 자취를 찾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