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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useppe Verdi (1813-1901)
1813년 같은 해에 2명의 오페라의 거장이 태어난다
한명은 독일의 바그너이고 다른 한명은 이탈리아의 베르디이다
이탈리아 북부지방에서 태어난 베르디는 넉넉치 못한 형편에서 평범하게 음악공부를 한다
29세에 작곡한 '나부코 Nabucco'로 그의 성공이 시작된다
당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를 받던 북부 이탈리아인들은 고향을 떠나 노예생활하는 유태인의 모습에서 큰 공감을 느낀다 여기서 나오는 '노예들의 합창'은 그의 장례식에서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수천명의 문상객들이 합창하던 대표곡이다
37세에 '리골레토 Rigoletto'를 성공적으로 발표하고 연이어 '일 트로바토레 Il Trovatore' '라 트라비아타 La Traviata' 등 계속 메가히트를 날리면서 이탈리아 뿐만 아니라 전 유럽에 엄청난 명성을 올린다
그는 주로 빅토르 위고 쉴러 바이런 셰익스피어 등 대문호의 작품을 바탕으로 만든다
48세에 이탈리아 왕국의 초대 의원에 추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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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이탈리아 역사를 살펴보자
11세기의 이탈리아 반도는 베네치아 제노바 등 부유한 도시국가들이 지중해를 무대로 해상무역을 하면서 번성한다
17세기에 들어서면서 부터 강력한 유럽 국가들의 지배를 받는다 북부지역은 샤를 마뉴 등 게르만족 동부지역은 비잔티움제국 남부는 이슬람족 그리스민족 라틴족 등에게 계속 지배 당한다
19세기에 들어 프랑스혁명의 여파에 힘입어 이탈리아 지역에서도 민족주의와 독립운동이 생긴다
북서부에 자리잡은 샤르데냐 왕국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2세 왕과 주세페 가리발디 장군은 이탈리아 전역으로 영토를 점차 넓히다가 드디어 1861년 이탈리아왕국을 선언한다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보불전쟁)에서 패한 프랑스군이 로마에서 철수하고 이탈리아 왕국이 수도를 로마로 옮기면서 비로소 완전한 독립을 이룬다
'나부코'로 민족주의적 인기를 얻던 베르디는 초기 이탈리아 왕국의 의원직을 5년간 맡는다
경제수준의 격차로 인한 남부지역의 불만 등으로 지속적인 진통을 겪던 중 오스트리아의 영토를 약속받고 1차세계대전에 참전하나 오히려 패전국으로 전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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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베르디 이야기로 돌아 와서
의원직을 마친 그는 '돈 카를로스 Don Carlos ' '아이다 Aida' 등을 발표한다
특히 '아이다'는 1869년 개통한 수에즈 운하를 홍보하는 이집트 정부의 요청으로 만든 작품으로 대히트를 친다
이어서 '오텔로 Otello' 그리고 존경하던 시인 만초니의 죽음을 슬퍼하며 '라퀴엠 Requiem'을 작곡한다
최고의 멋쟁이라는 찬사와 함께 부와 명성을 누리던 베르디는 1901년 89세의 나이로 별세한다
그의 장례식에는 많은 음악인들과 함께 20만명 이상의 시민들이 연도에 나와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고 모든 일간지들은 검은 리본으로 머릿글을 장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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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디는 21년 선배인 로시니의 뒤를 이어 서정적인 성악 중심의 벨칸토 오페라에 교향악적 음악과 연극적 효과를 가미하여 이탈리아 오페라를 더욱 발전시켰다 특히 셰익스피어의 비극적 인간성을 가장 잘 표현하였다고 하고 지나치게 로맨틱하였다는 평가도 같이 받는다
독일의 바그너하고는 동갑이나 서로 만난 적이 없다 그러나 둘 다 민족주의적 신념이 강했고 각각 특유한 오페라 스타일을 완성하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나부코 (노예들의 합창)
리골레토 (여자의 마음)
일 트로바토레 (대장간의 합창)
라 트라비아타 (축배의 노래)
아이다 (개선행진곡)
오텔로... 를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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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디보다 11년 늦게 체코의 민족주의 음악가 스메타나 Smetana 가 태어난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