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종때 윤원형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왕후의 오라버니 라는 권세를갖고 사사로운 은혜를 많이 베풀었다 한번은 어떤사람이 누에고치를 많이 바치고는 벼슬을 구했는데 그후 벼슬을 임명하는 날이었다 서기가 꾸벅꾸벅 졸고있는 윤원형에게 마지막 남은 한자리에 누구를 임명하는 것이 좋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윤원형은 얼른 고치를바친 사람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자 고치 고치라고 중얼거리고 다시 잠이들었다 서기가 임명장을 주려고 고치라는 사람을 찾았으나 그런 사람이있을 까닭이 없었다 그래서 전국에서 수소문한 끝에 먼시골에서 고치라는 선비를 찾아낼수 있었다 나중에야 일이 잘못된줄을 알았으나 윤원형은 그런내색을 할수가 없었다 옛말에 사사로운 은혜를 파는것은 공적인 의논을 부지하는 것만 못하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것은 옛친구와 우의를 돈독히 하는것만 못하다 영예로운 이름을 얻는것은 몰래 덕을심는 것만 못하고 특이한 절개를 숭상하는 것은 예사로운 행실을 삼가는것만 못하다고 했다 윤원형은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소윤의 영수이며 중종의 제2계비 문정왕후의 동생이다 을사사화의 공으로 공신으로 책록되었으며 1547년 양재역 벽서사건을 계기로 대윤의 잔당을 모두 숙청하였다 1565년 문정왕후가 죽자 삭직되고 강음에 귀양가서 죽었다 평범한 집안의 출신으로 부친 윤지임의 다섯아들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누이가 중종의 제2계비 문정왕후가 되면서 권력의 실세로 떠올랐다 1533년 중종28에 별시문과에 을과로급제 사관에 등용되었다 장경왕후의 소생인 세자를 폐위하고 문정왕후가 낳은 경원대군 환을 세자로 책봉하려는 모의를 꾸몄고 세자의 외숙인 대윤의 영수 윤임과 세력을 다투었다 1544년 인종이 즉위하자 파직 당하였으나 8개월만에 인종이 급사하고 명종이즉위 이어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이 시작되면서 득세하기 시작하였다 윤원형은 대윤일파를 역모죄로 모함하여 을사사화를 일으켰으며 윤임 유관 유인숙등을 사사하게 하였다 을사사화의 공으로 보익공신3등 이어 위사공신 2등에 책록되고 서원군에 봉해졌다 1546년 명종1년 형인 윤원로와 권세를 다투어 유배하여 죽게하고 조카마저 죽이려고 하였다 이듬해 양재역 벽서사건을 계기로 대윤의 잔당을모두 숙청하였다 1548년 이조판서 1551년 우의정 1558년 다시 우의정을 거쳐서 1560년 명종15 서원 부원군에 봉해지고 1563년 영의정에 올랐다 모든 관직은 매관매직되어 윤원형에게 뇌물을 바쳐야만 가능했고 뇌물을받아 막대한 부를쌓았다 그가축재한 뇌물을 쌓아둘곳이 없어 집앞에서 시장을 열었다고 실록은 기록하고 있다 정난정 이라는 첩을얻어 조강지처 김씨가 독살되게 하였고 또다른 첩의소생인 아들 두리손을 죽여시체를 강물에 버리는 패륜을 저질렀다 1565년 문정왕후가 죽자 그의권세는 위축되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조강지처 김씨가 독살되어 죽었다는 사실이 알려져 탄핵되었고 명종은그를 삭탈관직시켜 고향으로 낙향시켰다 하지만 윤형원의 죄를물어야 한다는 대신들의 상소가 쇄도하였고 백성들의 원성도 높았다 윤원형은 정난정과 외진곳으로 도망을가서 살았으나 얼마뒤 의금부도사가 잡으러 온다는 연락을듣고 정난정은 독약을 마시고 자결했으며 윤원형은 정난정의 시신을 끌어안고 오열하다 독약을 마시고 함께 자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