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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선운사 도솔암
2026년 09월 19일(토요일)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 선운사(禪雲寺)의 산내 암자입니다.
본래는 상 · 하, 동 · 서 · 남 · 북의 여섯 도솔암이 있었으나 조선 후기에 들어와 상 · 하 · 북 세 도솔암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도솔암이라 불리는 암자가 하도솔이며, 하도솔에서 365계단을 올라가서 있는 도솔암 내원궁(內院宮)이 상도솔암으로 1986년 전라북도 문화재자료(현,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습니다.
상도솔암은 진흥왕 때 창건한 뒤 1511년(중종 6)에 지은(智誾)이 중창하였고, 1694년(숙종 20)에 태헌(太憲)이 중수하였다. 1705년에는 보경(寶鏡)이 중종(中鍾)을 봉안하였고, 1829년(순조 29)에는 경문(敬聞)이 중수하였다.
그 뒤 내원궁만 남기고 퇴락한 듯합니다. 당우로는 내원궁만이 있는데, 이곳에는 미륵이 아니라 지장보살상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이 선운사지장보살좌상은 턱 밑까지 내려온 귓밥과 이륜(耳輪), 가슴의 영락이 특이하고 의문(衣文)의 선이 부드러운 단아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조선 초기의 5대걸작불상 중의 하나로 꼽힙니다. 하도솔암은 1658년(효종 9)에 해인(海印)이 창건한 뒤 1669년(현종 10)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나한전 · 요사채 등이 있습니다. 상부 약 100m 지점에는 높이 25m, 너비 10m의 암각(巖刻) 석가여래좌상이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로 1994년 지정되었습니다.
옛날에는 이곳에 동불암(東佛庵)이 있었으나 조선 말기 폭풍으로 도괴되었다고 합니다. 이 동불암지는 1994년에 부여문화재연구소(현,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에서 발굴 조사한 바 있습니다. 이 밖에 이 절의 입구에는 약수가 있습니다.
용문굴
용문굴은 화산활동으로 쌓인 화산재가 굳어져 형성된 응회암에 자연 침식이 진행되어 만들어진 동굴입니다. 원래는 바위가 뚫려 문처럼 보였고, 그 안에는 암자가 있었으나 지금은 암자가 사라지고 동굴만 남았습니다.
선운사 창건 설화에 따르면 절을 지으려고 했을 때 용이 살면서 방해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용을 쫓아냈더니 금하게 도망가면서 이 바위를 뚫고 지나가 굴을 만들었다는 이야기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도솔암 마애여래좌상을 보기 위하여 올라 갑니다.
나한전 가는 길에 바라본 도솔암이 보입니다.
미륵전과 나한전이 보입니다.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 (보물 제1200호)
커다란 바위벽에 새긴 불상으로 신체 높이가 약 15.7m, 무릎 너비는 약 8.5m이며 연꽃무늬를 새긴 받침돌에 앉아 있는 모습입니다.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지만 조성시기는 신라말기, 고려시대, 조선시대 등으로 의견이 다양하고 백제 위덕왕 때 검단 선사가 새겼다는 전설도 있습니다.
극락보전 왼쪽 옆으로 돌아 올라가면 고창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 (高敞 禪雲寺 東佛庵址 磨崖如來坐像)입니다. 칠송대(七松臺)란 절벽에 새겨진 높이 13m, 너비 3m에 이르는 거대한 마애불상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백제 위덕왕(재위 554∼597년)이 검단선사(黔丹禪師)에게 부탁하여 암벽에 불상(마애불)을 조각하고 동불암이라는 공중누각을 짓게 하였는데, 조선 영조 때 무너졌다고 합니다. 불상은 낮은 부조로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모습이며, 머리에는 뾰족한 육계가 있습니다.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 (보물 제1200호)
마애불 머리 위에는 네모난 구멍들이 뚫려 있는데 그 구멍에 목재가 박혀 있는 것도 있습니다. 이것들은 마애불의 장엄함을 위해 설치한 닫집이 있었던 흔적입니다.
응회암의 특성 때문에 정교하진 않지만 온화한 얼굴에 눈은 가늘고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으며, 우뚝 솟은 코에 앞으로 내민 일자형의 두툼한 입술이 소박하고 익살스럽습니다. 네모난 어깨 아래, 결가부좌 한 다리와 손, 발 등 큼직큼직하다. 불의(佛衣)의 옷 주름선이 잘 보이지는 않지만 군의(裙衣)의 띠매듭 만은 선명합니다.
머리 위에는 사각형의 구멍이 여러 개 뚫려 있는데, 이는 불상을 보호하기 위해 지붕만 있는 누각 형태의 목조 전실(前室)을 마련하였던 흔적으로 보입니다.
고려 초기의 거대한 마애불 계통 불상으로 크게 주목받고 있는 이 마애불을 미륵불이라 부르고 있는데, 불상의 배꼽에 신기한 비결(秘訣)이 숨겨져 있다는 전설이 전하여, 동학농민전쟁 무렵에 동학의 주도세력들이 미륵의 출현을 내세워 민심을 모으기 위해 이 비기를 꺼내가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습니다.
가슴 아래 새겨진 복장에는 비밀스러운 기록이 숨겨져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 내용은 복장 안에 보관된 비밀스러운 비기가 알려지는 날 조선은 망한다는 것입니다. 18세기 말 전라감사 이서구가 그 기록을 꺼내 보려다 천둥 소리와 함께 벼락이 떨어져 "전라감사 이서구가 열어본다"라는 대목만 보고 도로 넣었다고 합니다.
100여 년 후 동학농민혁명이 움트던 1892년에 동학 접주 손화중이 그 기록을 무사히 꺼내 가져갔다고 합니다. 당시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하는 농민들의 염원을 엿볼 수 있는 전설이기도 합니다.
미륵전
미륵전(彌勒殿) 편액
윤장대
윤장대 편액
나한전
정면 3칸, 측면 1칸에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현존하는 건물은 건축수법으로 보아 조선 말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입니다. 나한전 내부에는 흙으로 빚은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가섭과 아난이 협시하였고, 1910년 용문암에서 옯겨온 16나한상을 모시고 있습니다.
나한전(羅漢殿) 편액
한말 서화가로 `호남화단의 마지막 시(詩)·서(書)·화(畵) 삼절(三絶)'로 불리는 화순 출신 염재 송태회(念齋 宋泰會.1872-1941)의 글씨입니다.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봉안하고, 1901년 용문암에서 옮겨온 16나한상을 모시고 있습니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가섭과 아난이 협시하고 있습니다.
뒤에 걸려있는 후불탱화는 영산회상도로
설법인의 수인을 한 석가모니불을 가운데로 사자를 올라탄 문수보살은 버드나무 가지를 들고 좌측에서, 코끼리를 올라탄 보현보살은 여의를 들고 우측에서 협시하고, 10대 제자와 사천왕 2위를 좌우에 배치하였으면, 화면 좌측 상단에 마애불을 표현하였습니다.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은 통견차림으로 대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앉아 왼손을 다리 위에 올려 선정인을 하고 오른손으로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하였습니다.
가섭존자
아난존자
좌우로 각 8나한상과 감재사자를 안치하고 뒤에는 나한도가 있습니다.
8나한상과 직부사자를 안치하고 후불탱화로는 나한들의 일과가 재미있게 그린 나한도가 있습니다.
삼층석탑
도솔암 내원궁은 천인암이라는 험준한 바위 위에 있습니다.
내원궁은 통일신라 때 지었다고 전해지며, 지장보살을 모셨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기도의 효험이 가장 좋은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편액
내원궁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 내원궁입니다.
내원궁(內院宮)은 도솔천(兜率天)의 내부로, 미륵보살이 사는 곳입니다. 이곳에는 지장 보살이 모셔져 있습니다.
상도솔암은 지금의 도솔천내원궁으로서 중종 6년(1511) 지은(智誾) 스님이 중창한 뒤, 숙종 20년(1694)에 3창, 순조 17년(1817)에 4창 하였는데, 조선 말 이후 내원궁만 남기고 퇴락하였습니다.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내원궁. 암반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에 익공 양식의 공포를 한 겹처마 팔작지붕의 중심포집으로 지었습니다.
창호는 칸마다 동일한 형태의 아자형 2분합문으로 달았습니다.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편액
도솔천은 욕계의 4번째 천(天:하늘나라)으로 내원궁과 외원궁이 있는데, 내원궁은 석가모니가 인간 세계인 남섬주부에 내려오기 전까지 머물던 곳으로 지금은 미륵보살이 머물고 있고, 외원궁은 여러 천인(天人)이 모여 사는 곳입니다.
도솔암 금동지장보살좌상 (보물 제280호)
도솔암 금동지장보살좌상 (兜率庵 金銅地藏菩薩坐像)은 도솔암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 봉안되어 있는 고려 후기의 금동지장보살좌상으로 대좌(臺座)와 광배(光背)가 모두 없어지고 불신(佛身)만 남아 있습니다.
머리에는 두건을 썼는데, 이마를 감싼 후 귀 뒤로 넘겨서 어깨까지 천을 늘어뜨린 모습입니다.
오른손은 가슴 부분에 들어 엄지와 중지를 맞댄 중품인(中品印)을 취하고 왼손은 가슴과 배 중간쯤에 들어 법륜(法輪)을 잡고 있는데, 이는 육도중생을 구제한다는 의미로서 보주(寶珠)ㆍ석장(錫杖)ㆍ법륜 등의 지물을 들고 있는 지장보살의 일반적인 특성을 표현한 것입니다.
도솔암 금동지장보살좌상 (兜率庵 金銅地藏菩薩坐像) (보물 제280호)
지장보살은 지옥에 떨어지 모든 중생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구제하기 전까지는 보살로 남겠다고 약속한 지장보살은 일반적으로 손에 수정구술이나 지팡이(석장)을 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보살상은 오른손은 엄지와 장지를 맞댄 아미타구품인의 수인을 맺었고, 왼손은 보주 대신 법륜을 들고 있어 매우 특이합니다.
보주와 법륜은 모두 부처의 진리와 법을 상징하므로 그 성격에 있어 크게 다를 바는 없습니다. 이렇게 보주 대신 법륜을 들고 있는 지장보살상은 선우사 도솔암 상이 유일합니다.
산신각
내원궁의 뒤 쪽에 위치한 작은 전각으로서 정면과 측면 1칸의 덤벙주초 위에 주심초 형식이고 맞배지붕에 풍판이 달린 겹처마입니다.
산신각(山神閣) 편액
산신각에 봉안되어 있는 2폭의 산신탱
내원궁 뒤편에 자리한 산신각에는 특별한 산신이 모셔져 있습니다. 도솔암을 비롯한 선운사, 참당암 등 도솔산 내의 사암을 창건한 검단선사와 의운국사이기 때문입니다. 이 두 분의 스님은 도솔산에 살고 있던 도적들을 교화하고 가난한 중생들에게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어 삶의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이처럼 지역민에게 한없이 자애로웠던 두 스님을 열반 후에도 도솔산 산신으로 남아 중생들의 염원과 기도소리를 듣고 소원을 성취해 주는 성현으로 남아 계십니다.
목각탱
도솔산 내의 사암을 창건한 검단선사와 참당암을 세운 의운국사를 산신으로 산신각에 모셨습니다.
산신탱
도솔암은 원래 중사라는 절 이름을 갖고 있었으나 조선 후기에 6개의 암자가 들어서며 도솔암으로 바뀌었고 조선말에는 상, 하, 북도솔암만 남기도 나머지는 사라졌습니다.
현재 도솔천내원궁이 있는 자리가 옛 상도솔암, 칠송대에 새겨진 마애여래좌상이 있는 곳이 하도솔암 그리고 새로 극락보전이 있는 자리가 옛 북도솔암 자리였습니다.
상도솔암이었던 도솔천내원궁은 선운사 창건과 비슷한 시기에 건립되었고, 1511년 지은스님이 중창하였으며, 1694년과 1817년 중수되었습니다. 하도솔암은 1658년 해인스님이 마애불 아래에 마애불 경배를 위해 창건하였고, 북도솔암은 1703년 거사 최태신이 창건하였는데 근세에 극락보전이 있는 북도솔암을 중심으로 세 암자를 합쳐 하나의 암자인 도솔암이 되었습니다.
극락보전
정면 3칸, 측면 3칸에 다포식 공포를 하고 겹처마 맞배지붕을 올린 다포집으로 풍판을 달았으며, 창호는 전면에 4짝짜리 빗살문을 설치하고 측면에 빗살 홑문을 달았습니다.
기암이 뒤로 배경을 하고 있는 도솔암 중심 전각 극락보전 자리는 숙종(29년) 1703년 최태신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북도솔암 터입니다.
극락보전(極樂寶殿) 편액
극락보전 편액 글씨는 목우 윤기성(牧牛 尹基聲 1950~)선생이 쓰고, 목우 조정훈 선생이 새겼습니다.
2003년 건립된 극락보전 내부에는 조선 후기에 조성된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그리고 지장보살의 목조아미타삼존불과 영산회상도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삼존불 뒤에는 아미타불의 후불탱화인 아미타회상도 대신 영산회상도가 걸려있습니다.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한 석가모니불을 가운데로 좌우에서 연꽃 가지를 든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협시하고 주위를 10대 제자, 6대 보살, 사천왕이 에워싼 모습입니다.
조선후기의 조형양식을 갖추고 있는 아미타삼존불좌상은, 서방정토의 주인인 아미타불을 주불로, 좌·우보처에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서방정토에 계시며 극락왕생과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알려주시는 아미타불은 도솔암 기도 도량의 핵심 부처입니다.
아미타삼존불
아미타불을 주불로, 좌·우 협시불로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
아미타불
아미타불은 통견 차림으로 대좌 위에 결가부좌로 앉아 두 손을 다리 위로 내려, 오른손은 손바닥을 아래로 향하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향해 엄지와 중지를 맞댄 하품중생(또는 중품하생)의 수인을 하고 있습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은 화불이 선명한 보관을 쓰고 통견 차림으로 대좌 위에 결가부좌로 앉아 두 손을 다리 위로 내려, 오른손은 손바닥을 정면으로 향하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향해 엄지와 중지를 맞댄 하품중생(또는 중품하생)의 수인을 하고 왼손 위에 정병이 올려져 있습니다.
지장보살
지장보살은 두건을 쓰고 머리띠를 두른 지장보살이 통견 차림으로 대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왼손을 다리 위에 올려 보주를 받쳐 들고 오른손으로 육환장을 쥐고 있습니다.
칠성탱화
하품중생의 수인을 하고 왼손으로 금륜을 받쳐 든 치성광여래를 중심으로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해와 달이 표현된 연꽃 가지를 들고 좌우에서 협시하고, 주위를 칠여래, 칠원성군, 남극노인성, 자미대제 등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해는 붉은 색으로, 달은 흰색을 표시하는 것을 보편적인 방식으로감안한다면, 화면 상으로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의 위치가 서로 바뀐 것으로 보인입니다.
독성도
독성도는 홀로 깨달음을 얻은 성자인 십육나한 중 첫번째 존자인 빈두로존자를 묘사한 그림으로, 독성은 나한, 나반존자라고도 불립니다. 1896년에 제작되었습니다.
현왕도
현왕도는 사람이 죽은 후 3일 만에 영혼을 심판하는 지옥의 염라대왕인 현왕과 그를 보좌하는 권속들을 표현환 불화로 1896년에 제작되었습니다.
신중탱
화려한 보관을 쓰고 연꽃을 든 범천과 제석천을 상단에 두고 화면 중앙에 위타천 동진보살을 크게 표현하였으며, 주위를 천부중과 팔부중 그리고 무장한 신장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등진보살은 깃털이 달린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고 무장한 모습으로 금강저를 잡은 오른손의 팔목을 외손으로 쥐고 서 있습니다.
신중탱 동진보살
요사채
정면 7칸, 측면 3칸에 초익공 공포를 한 겹처마 맞배지붕의 주심포집으로 짓고 풍판을 달았습니다.
도솔암(兜率庵) 편액
도솔암 편액은 거암 김봉관 서(居巖 金奉官 書 1923~2010)이 갑진년(1963년) 쓴 글씨입니다.
수광전
정면 5칸, 측면 3칸에 겹처마 맞배지붕의 민도리집으로 2014년에 신축한 건물입니다.
어칸의 두 기둥만 휘어진 채 세워져 있습니다.
수광전은 먼저 가신 조상과 부모형제, 자매, 원근 친척 등 영가님들의 영원한 안식처입니다.
수광전(壽光殿) 편액
수광전 내부에는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습니다.
2014년에 조성된 아미타불과 아미타회상도가 봉안되었고, 주위 벽에 설치된 단에는 수많은 영가가 안치되어 있습니다.
아미타불
독존으로 봉안된 아미타불이 대좌 위에 결가부좌로 앉아 하품중생(또는 중품하생)의 수인을 하였고, 뒤에 걸려있는 후불탱화는 아미타회상도로, 하품중생의 수인을 한 아미타불을 중앙에 두고 주위를 10 제자, 6대 보살, 사천왕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반야용선
반야용선이란 진리를 깨닫는 반야의 세계 즉, 지혜의 세계로 용이 이끄는 배를 말하는데, 중생을 고통없는 피안의 극락정토로 인도하는 배를 뜻합니다.
용선의 뱃머리에 인로왕보살이 번을 들고 서서 망자를 극락세계로 인도하고 있는 장면을 그렸습니다.
종각
정면 3칸, 측면 2칸에 초익공의 겹처마 주심포집으로 지었으며, 지붕 좌측은 팔작지붕으로 하였지만 우측은 수광전과 간섭이 생겨 맞배지붕을 하였습니다.
종각(鐘閣) 편액
도솔천내궁원 대범종
보제루
보제루 편액
보제루 편액은 푸른돌 취석 송하진(翠石 宋河珍, 1952~)의 글씨입니다.
보제루
장초석을 세우고 그 위에 기둥을 올려 마루를 깔고 정면 3칸, 측면 2칸에 주심포 익공 양식의 겹처마 맞배지붕을 올린 2층 누각으로 난간을 두르지 않고 대신 창호 밑에 머름을 넣어 외관의 단조조움을 피하였습니다.
2017년 완공되었고 불자들의 법회와 휴식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보제루(普濟樓) 편액
보제루 편액 글시는 강암 송성용(1913~1999)선생의 4남 취석 송하진 푸른돌(翠石 宋河珍, 1952~)의 글씨입니다.
만월당
스님들의 생활 공간으로 사용하는 요사채입니다.
만월당(滿月堂) 편액
그림처럼 그려진 만월당 편액 글씨가 꿈틀대고 있습니다.
도솔암찻집
도솔암찻집 편액
장사송(진흥 송) (천연기념물 제354호)
장사송은 이 지역의 옛 지명인 장사별에서 유래하여 붙은 이름입니다.
나이는 약 600살, 높이는 약 23m에 이릅니다.
진흥굴
신라 제24대 진흥왕이 말년에 왕위를 물려주고 선운사로 들어가 승려가 된 뒤 처음 찾아간 곳이 선운산 사자암 앞에 위치한 좌변 굴이며, 진흥왕이 직접 거처하며 수도하였기 때문에 후대에 명칭이 진흥굴로 바뀌었다고 전해집니다.
2023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된 전북 서해안 지질 고원의 일원이며, 길이 약 10m, 높이 약 4m 정도입니다.
연리지
나무와 나무가 자라면서 맞닿아 한 나무가 된 선운산의 소나무 연리목입니다. 상서로운 나무라 전해지고 있으며, 부부의 금슬, 남녀의 사랑, 자녀의 효성, 친구의 우정 등을 상징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