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필의 소재
문학의 여러 장르 가운데 수필만큼 다양한 표현 형식을 가진, 그리고 그만큼 분류가 복잡한 문학은 없을 것이다. 분류의 관점과 시선에 따라서는 객관적 수필이냐 주관적 수필이냐로 나눌 수가 있을 것이며, 표현의 기법에 중점을 둔다면 묘사적이냐 설명적이냐, 혹은 논증적이냐 서사적이냐로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또 내용적 성격에 따라서는 철학적 수필, 과학적 수필, 비평적 수필, 역사적 수필, 종교적 수필, 개인적 수필 등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아질 것이고, 형식(세부적 장르)에 따라서는 일기체, 기행체, 서간체, 평론체, 기사체로의 분류도 가능하게 된다.
수필을 다른 장르와 구별하면서 흔히 인용되는 말로 '수필의 소재는 무엇이나 좋다'라는 말을 들 수 있다. 그것은, '수필의 재료는 생활경험 자연관찰 인간성이나 사회현상에 대한 새로운 발견 등 무엇이나 다 좋다. 그 재제가 무엇이든지 간에 쓰는 이의 독특한 개성과 그때의 무드에 따라 누에의 입에서 나오는 액이 고치를 만들 듯이 수필은 써지는 것이다'라고 한 피천득의 수필, <수필>의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좀더 깊이 성찰해 보면 위의 말은 비단 수필문학에만 한정된 정의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수필이 아닌 소설이나 시에서도 생활경험, 자연관찰, 인간성이나 사회현상은 역시 중요한 작품의 재료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때의 무드에 따라서 누에의 입에서 나오는 액이 고치를 만들 듯이 수필은 써지는 것이다'라는 말은 '붓가는 대로 쓰는 글이다'라고 하는 정의와 더불어 수필문학의 창작 과정을 오도하는 데에 크게 한 몫을 하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혹 문체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나 다양한 형식이 주는 자유스러움을 지적한 말이라고 한다면 이해가 될 수 있을 것이지만 말이다.
필자는 본고를 통하여 '자연'과 '인생'이 수필문학에서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가를 고찰하고자 한다. 수필에서 '자연'의 비중은 어떠하며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가, 그리고 수필에서의 자연은 인생과 어떻게 조화하고 있는가 분석하는 일은, 비단 수필의 소재에 대한 분석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며 수필 전체의 철학과 주제와 내용을 포괄하는 중요한 일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2. 수필에서의 자연의 비중
자연은 원래 우리 인간의 생활과 불가분의 관계로 밀착되어 왔으며, 문학 역시 자연을 중요한 제재로 채택하여 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문학의 발생을 자연의 모방에 두었고 프레밍거는 자연이 문학의 진실성을 가늠하는 기준이며 척도라고 하였다. 현대에 이르러 자연의 의미가 특히 부각되고 있는 것은 급속히 발달한 과학문명 속에서 인간이 상대적으로 경시 내지 소외되어 있기 때문이며, 정신적 고독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은 인간의 갈등을 위무해 주고 고독을 해소해 주는 필수적 요소다. 자연의 재발견하려는 인간의 욕구는 문명생활에서 마모된 인간성을 회복하고 상실의 위기에 처한 삶의 단순성과 진실성, 소박성을 되찾으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을 애워싸고 있는 자연은 문학의 직접적인 소재와 주제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순수 자연 그대로 삶의 배경이 되어 간접적인 감화를 주기도 한다. 엄밀히 말하면 인간은 자연 속에 태어나서 자연을 구성하며 살다가 결국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대자연의 일부라 할 수 있다.
문학 장르 가운데 특히 시와 수필에 있어서의 자연의 비중은, 소설이나 희곡에 비하여 현저하게 크고 무겁다고 하겠다. 직면하는 하나의 자연물이 눈에 보이는 그대로 한 편의 작품이 될 수도 있고 지나간 자연의 체험이 추억의 형태로 작품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시나 수필에서만 가능할 뿐 소설이나 희곡에서는 불가능하다. 그것은 시와 수필이 주관적 자기 고백의 문학이며 길이가 짧고 분량이 적다는 공통적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문학에서 표현의 방법이 주관적이면 주관적일수록 작자의 개성과 철학이 보다 투명하게 노정될 수 있으며, 그 표현의 과정에서 자기를 보다 성실하게 돌아보고 사유의 깊이를 천착하게 된다는 것이다. 문학작품에서의 주관적 표현과 작자의 자기 성찰적 고백이라는 항목은 필연적으로 조화할 수 있는데, 자연은 여기 중요한 매개체로서 개입하게 된다. 자연은 인간에게 그만큼 삶의 규범을 제시하면서 조영하는 거울로서의 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조선시대의 관리들이나 선비들이 세상의 영달을 추구하다가 실망하면 항구적이며 여일 불변하는 자연에 귀의하게 되고, 낙향하여 안빈낙도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읊으면서 자연과의 조화를 꿈꾸었던 것도 신과 같이 의연한 자연에 비추어 자기를 성찰하고자 노력했던 모습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수필이나 시가 다른 장르에 비하여 길이가 짧고 분량이 적다는 특징은 표현 형식상에서 함축과 비유를 필연적으로 요구하게 된다. 자연은 문학작품에서 복잡다단한 인생을 상징하고 은유하는 오브제로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가장 가깝고 설득력 있는 보조관념으로서 인생을 대변하기도 한다.
최초의 한문 수필이라고 할 수 있는 파한집(破閑集)이나 보한집(補閑集), 익재난고(益齋亂藁) 등에 실려 있는 내용들은 詩話, 詩文이라고 정의되고 있다. 이야기로 풀어서 설명하지 않고 고사를 인용한 비평과 時評, 문담과 해학 등의 人間事는 자연을 빗대어서 표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소프의 우화도 자연계의 동식물 세계에 인간사를 빗대어 우의적으로 표현한 함축성 있는 이야기이다. 이를 만일 우의적으로 함축하지 않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사건으로 다루었다면 길이가 엄청나게 길어졌을 것임은 물론이고 예술적 감동이나 아름다움도 감축되었을 것이다.
3. 주관적 자연과 은유적 인생
문학에서 나타나는 자연의 모습은 여러 가지 기준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시대에 따라 변천된 자연관에 기준을 둔다면 전통적 자연과 현대적 자연으로 나누고 전통적 자연의 의존성과 현대적 자연의 비정적 독립성을 거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객관적 자연과 주관적 자연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고, 표현상의 비중에 따라서는 주체적 자연과 배경적 자연으로 나눌 수 있으며, 또 표현 기법상의 성격에 따라서는 순수 자연과 우의적 자연으로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본고에서는 주체적 자연과 배경적 자연으로 분류하고 자연이 배제된 인생 수필과 함께 비교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주체적 자연이란 작품의 중심과 맥락이 자연 중심으로 이끌려 가는 경우를 말한다. 다시 말해서 자연이라는 창을 통해 바라본 인간과 인생이며, 자연으로 비유된 삶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하여 배경적 자연은 말 그대로 자연이 하나의 배경(Setting)으로서 존재하는 경우를 말한다. 그러나 전자 후자 어느 경우를 막론하고 인간과 인생이 자연보다 소홀하게 다루어지지는 않는다. 작품상에 나타나는 작자의 대자연의 태도와 친화의 정도, 심리적 거리를 비교 참작하여 분류한 것일 뿐, 대부분의 경우 자연은 인간과 인간의 삶을 옹호하면서 조화와 융합을 도모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작품을 직접 감상해 보자.
동짓달이 가고 섣달이 성큼 오면 나의 출근길에는 새로운 볼거리가 생겼다. 강남의 압구정동 거리를 빠져 나오면 반공으로 치솟는 오르막길이 나온다. 그라인더를 타는 느낌으로 단숨에 올라서면 좌우가 활짝 트이면서 한강이 파아랗게 넘실댄다. 바른쪽으로 강물, 왼쪽으로 지하철, 둘이서 나란히 한참을 달리면 왼쪽에 옥수역의 길다란 지붕이 나온다. 동호대교가 거의 북단에 이를 때 동쪽을 보면 중랑천과 한강이 합류하는 작은 반도가 보인다. 바로 도봉산에서 시작하여 중랑구를 지나 성동구의 행당동을 한 바퀴 굽이돌아 이제 막 한강으로 달려드는 중랑천의 종점인 것이다. 나의 관심거리는 바로 그 합수점이었다. 나는 가을이 가고 겨울이 다가올 때면 철새를 기다리듯 그곳에 새로 돋는 작은 섬을 기다린 지 벌써 이십여 년이었다.
그것은 다름 아니었다. 동짓달 찬바람이 스산해질 때면 중랑천의 물도 날마다 메말랐다. 그 얄팍해진 수면 위로 만두 모양의 둥근 흙더미가 조금씩 머리를 내밀더니 어느 날 아침 출근길에는 그것이 문득 고구마 모양의 길쭉한 섬으로 드러나 있었다. 춘분이 지나고 봄비가 내리고 그렇게 봄이 깊으면 그 고구마가 물에 잠기면서 이윽고 작은 만두로 남아 찰랑찰랑 물살에 몸부림하더니 어느 날 아침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합수점에 거무튀튀한 물결이 힘차게 흘러내렸다. 그렇게 한 두 달이면 나조차 그 자리에 넙죽 돋았던 섬을 잊기 마련이다. 하기야 지적에도 오르지 않을 섬. 물론 이름도 번지도 없는 섬인 것을 여름 날 시원한 바람을 만나면 나는 그쪽을 향하여 애써 섬을 기억하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그 섬은 분명한 섬이나, 적어도 일년의 절반은 햇빛에 반짝이는 섬이요, 일년의 절반은 비록 보이지 않을지라도 물 속에 잠겨 있기에 말이다.
봄이 무르익으면 그 머리에 잡초는 물론 꺼벙한 키의 갈대도 솟았다. 그러나 여름밤 싱싱한 바람 속에 갑자기 침수의 비운을 맞았다. 겨우 얼굴을 내밀고 며칠쯤 하늘거리다 그렇게 사라졌다. 가을이 익어서 바람소리 윙윙거리다가 겨울이 오면 그 섬이 돋는다. 이른 봄 언덕에 돋는 쑥나물처럼. 그러나 작은 민둥산으로 돌아왔다. 잿빛 흙더미 위로 햇빛들이 모였다. 기온이 떨어지면 하얀 물새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무언지 종알거리다가 훨훨 어디론지 날아갔다. 중랑천과 한강이 악수하는 곳에 비스듬히 누워서 하얗게 얼었을 적 그의 알몸을 보면 왠지 서럽기도 했다. 장마철에 먼길을 떠밀려 온 헌 신짝처럼 한 귀퉁이에 버려진 그 모습에서 말이다.
그 겨울 섬의 내력은 이럴 것이다. 도봉산으로부터 어쩌면 더 멀리 의정부 어디쯤부터 발원한 중랑천이 연도의 토사와 쓰레기를 거느리고 내려오다가 그 힘이 쇠진한데다 하구는 넓어지고, 한강으로부터 방해를 받아 그것들이 정체된 퇴적의 현상일 것이다. 그 하구를 시원스레 준설하여 물길을 뚫어주거나 중랑천의 혈맥이 보다 깨끗하고 창쾌하다면 거기에 서울의 토사나 쓰레기가 찌꺼기나 부스럼으로 남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두 줄기 강이 내려와 거기서 합수하지 않았더라면 저 비운의 겨울 섬은 그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그것을 만든 것은 사람일 수도 자연일 수도 있겠다. 사람이 저지른 일이라면 게으름의 탓이요. 물길을 제 마음대로 흐르지 못하게 막은 탓일 것이다. 자연이 만든 일이라면 아무 할 말이 없다. 오직 저 하늘이 만든 일에는 고분고분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겨울 한철 저 중랑천에 돋아난 고구마 섬은 나에게 분명한 하나의 풍경이다. 그것이 비록 합수점에 돋아난 암이요 패잔병들의 수용소일지라도. 그 민둥한 돈대에 하얗게 모여 있는 햇빛과 철새를 지울 수 없다. - 허세욱 <겨울에 돋는 섬> 전문 -
위의 글에서 자연을 바라보는 주체는 인간이지만 작자는 인간 중심의 시선이 아닌 자연 중심의 시선으로 자연을 바라보고 있다. 세밀하고 충실한 관찰은 자연물 하나 하나에 애정을 쏟아 거기에 인간의 삶을 일치시키려는 마음이 없고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중랑천과 한강이 합해지면서 작은 반도처럼 솟아오른 토사의 무더기. 작자는 '도봉산에서 시작하여 중랑구를 지나 성동구의 행당동을 한 바퀴 굽이 돌아 이제 막 한강으로 달려드는 중랑천의 종점'에 뜨거운 관심을 나타내면서 해마다 겨울이 다가올 때면 마치 철새를 기다리듯이 거기 새로 솟아오르는 작은 섬을 지금 20여 년째 기다리고 있다고 술회한다.
이 글에 등장하는 지명들, '옥수역' '중랑천' '행당동' '강남의 압구정' 등의 고유명사들은 각각 하나씩의 시어처럼 살아 있다. 이들이 단순한 지명인데도 마치 생명을 지닌 자연의 명칭처럼 싱싱하게 다가오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작가가 거기 쏟는 성실한 배려, 인간으로서의 자책감이 포함된 염려 때문이 아닐까. 자연에 기울이는 작자의 애정은 지명에 기울인 애정으로 그치지 않고 지상에서의 삶에 기울이는 애정으로 확장되고 있다.
작자는 스스로 섬이라고 부르는 흙더미의 변화하는 모습을 '만두 모양의 둥근 흙더미' '고구마 모양의 길쭉한 섬' '이른 봄 언덕에 돋는 쑥나물' '비운의 겨울 섬' '합수점에 돋아난 암' '패잔병들의 수용소' '장마철에 먼길을 떠밀려 온 헌 신짝' 등으로 묘사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묘사를 통해 '도봉산으로부터 어쩌면 더 멀리 의정부 어디쯤부터 발원한 중랑천이 연도의 토사와 쓰레기를 거느리고 내려오다가 그 힘이 쇠진한데다 하구는 넓어지고, 한강으로부터 방해를 받아 그것들이 정체된 퇴적의 현상일' 따름인 흙더미에 쏟는, 작자의 다양한 정서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는 자신이 정의했듯이 한낱 정체된 쓰레기더미에 불과한 '섬'을 때로는 다정함으로 때로는 연민으로 그리고 때로는 죄책감으로 바라보고 있다.
작자는 자연에 생명을 부여하여 활성화하면서 비정의 자연을 유정의 자연으로 옹호하고 있으며 자연현상에 인생의 여러 가지 국면을 조화시키고 있다. 특히 허세욱의 수필 가운데 이러한 경향의 것들이 많다. 다시 그의 다른 작품 <풍우연변>을 살펴보도록 하자.
비가 내린다. 주룩주룩 내린다. 바람을 동반하지 않은 오후를 주룩주룩 적신다. 여인네들 파라솔보다는 약간 큰 베우산을 바쳐 들고 고궁 돌담을 돌아 바짓가랑이가 절반쯤 젖도록 걷는 것은 차라리 온갖 화초가 난만한 공원을 걷기보다 유한하고 쾌적하다. 어느 정도의 어둠과 어느 정도의 습기는 차라리 눈부신 직사광에 메마른 뜰보다 다정하고 편안하다. 겨우 1평방 미터 남짓한 면적으로 하늘을 막고 풍우를 막고 더러는 보기 싫은 사람과의 피곤한 시야도 편리하게 막아 주는 곳이다. 이 세상 풍우가 한꺼번에 몰아친다 해도 그 널찍한 머리로 나를 보호해 줄 것 같아 가느다란 우산대를 으스러지게 쥐어 본다. 한 손을 바지에 묻고 뚜벅뚜벅 거니노라면 지붕이나 처마를 손바닥에 받쳐 놓았는가 내심 든든하기만 하다. 방사형으로 짜여진 철사들은 서까래들이요, 여덟모 둘레는 더덩실 날 들한 팔각정 추녀요, 아기똥하게 턱을 내민 손잡이는 내 항상 먼 구름을 바라보던 석계가 아닌가? 비록 좁기는 하지만 보란 듯이 활개도 쳐보고 진동할 듯이 보무도 당당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커다란 갓에다 풍덩한 도포자락이나 입은 양 한유롭기도 하고 안방에 뒹구는 외동아들처럼 벽장에 숨겨 둔 엿단지라도 꺼내고 싶다. 고궁 돌담을 끼면 더욱 좋았다. 가로수 한 잎 한 잎 심심챦게 발끝에 떨어지면 이 길이 삭막하지 않았다.
조용히 접어드는 소년의 뒤안길, 그리고 오래오래 표류했던 여정들이 다시금 날개 치고 있는 것이다. 갑자기 이토록 퐁요롭던 추억도, 쾌적했던 공간도 출렁이는 물결에 휩쓸리고 무엇인가 빼앗겨 버린 아픔이 다가선다. 어쩌면 내가 비에 흠뻑 젖어 낯설은 추녀 끝에 배꼽을 내밀고 서 있는 소년이 아닌가? 한쪽 어깨에 한기가 스며들더니 오싹해진다. 비에 젖지도 않았는데........ 이런 빗속이라면 두 사람이 걸어야 한다. 비좁은 우산 속이라서 젖는 면적은 많다 하겠지만 두 사람의 체온으로 한기를 쫓을 수 있어 좋은 것이다. 바람과 비의 언저리에선 가난한 어깨를 비벼야 한다. 손을 뻗치면 거기는 풍우세계 어깨를 내밀면 거기도 풍우세계, 비가 차가우면 될수록 가까이 다가서야 한다. 바람이 세차면 될수록 옷깃을 여며야 한다.
풍우가 동으로 치면 서쪽으로 가리고 풍우가 남으로 치면 북쪽을 가려야 한다. 그리고 우산을 지면에 낮추어 허리도 가지런히 굽혀야 한다. 가다가 심한 회오리바람을 만나면 걸음을 멈추고 버텨야 하며 가다가 사나운 소나기를 만나면 바지를 걷어 올려야 한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이 우산이 찢기지 않은 채 조심스럽게 이 풍우를 뚫고 가야 한다. 하수도가 모자라 넘치는 물바다를 건너다보면 우리가 의지하는 우산은 창해의 뜬 범선. 표류를 생각해 본다. 메일리 부부같이 긴긴 1백 18일도 뗏목을 생각해 본다. 손과 손을 맞잡은 채 떠내려가는. 그러나 우리는 돛을 세운 채 이 표류 직전을 건너가야 한다. 우연히 만났을 지라도 같은 우산 아래서는 퐁우동주, 그러니까 사나운 비바람에 조난도 불사하는 숙명으로 얼룩진 것이다. 그 속엔 사랑하는 풍경들이 있다. 등에 업힌 아들 쪽을 받치다가 흠뻑 버선을 적신 엄마. 어린 동생을 받쳐 주느라 꾸부정 키를 낮춘 형, 가냘픈 여인의 어깨를 안고 가다가 한쪽 어깨에 빗물이 툼벙이는 사내, 어깨동무하다가 활랑 날려 버린 꼬마들....... 그들은 즐겁게 철버덕거리고 있다. 낯설은 사람끼리라면 서로 고맙다는 인사를 나누고, 서먹했던 사람끼리라면 자연스레 해빙도 불러오고, 미웠던 사람끼리라면 여기 우중충한 우산 아래서 어깨를 비벼 보고, 사랑하는 사람끼리라면 옷이 젖는 줄을 모르는 곳이다. 그리고 길을 걷는 일을 제쳐놓고 아무 것도 생각지 않는 곳이다. 그렇게 가까울 수 있는 것은 어깨와 어깨를 비벼서라기보다 손을 뻗치면 바로 그 곁에 빗줄기가 쏟아지기 때문이요, 그렇게 쾌적할 수 있는 것은 공간이 넓어서가 아니라 어깨를 내리면 바로 그 곁에 빗줄기가 쏟아지기 때문이다. 봄비 설레이는 창가에선 진달래꽃 술을 마시고 가을비 쓸쓸한 다락에선 따끈한 차를 마시듯 향그럽지만, 여름 장마 울부짖는 마루에선 지루한 장례를 치르고 겨울비 훌쩍이는 안방에선 할매의 해소를 듣듯 지겹다. 그러나 그것이 향그럽거나 지겹거나 우리가 늘 쾌적할 수도 다정할 수도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우산은 나의 지붕, 우리는 늘 바람과 비의 언저리에 서 있다. 바람과 비의 언저리에서 살게 된 지 너무너무 오랜지라 우리 사이엔 이미 우정의 이끼가 검푸르고 있는 것이다. 빗속을 거닌다. 빗방울이 차갑거든 한 걸음 내 곁으로 가다오게..... 바람 속을 거닌다. 바람결이 아프거든 우산을 기울이게...... - 허세욱 <풍우연변> 전문 -
앞의 글 <겨울에 돋는 섬>이 쓰레기처럼 떠밀려온 흙더미를 유심한 시선으로 관찰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면, <풍우연변>은 자연현상인 풍우현상을 통하여 인간의 삶을 투시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비바람이 치는 날의 우산 아래와 고난과 역경으로 이어지는 세상살이를 연결하고 있다. 작자는 인생이란 결국 쏟아지는 빗줄기를 피해 가는 것이며 그 방법 또한 천태만상임을 지적한다. 쏟아지는 빗줄기를 피해서 가되, 그것은 '겨우 1평방 미터 남짓한 면적'밖에 되지 않는 하나의 작은 우산 속이라는 것, 어깨를 부비면서 함께 가는 사람들은 모자간, 형제간, 연인간 혹은 친구간의 다양한 관계이며, 그들 사이는 낯설거나 서먹서먹하거나 밉거나 사랑하는 각기 다른 감정의 뉴앙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풍우의 모습과 그 정서가 각기 다르듯이 우리의 인생도 다르지만 빗방울이 차갑거든 한 걸음 곁으로 다가서고, 바람결이 아프거든 우산을 기울이면서 가자는 작가의 제안에는 사랑과 지혜가 배여 있다. 작자가 삶을 지겹지 않게, 오히려 향기롭고 쾌적하며 다정하게 가꿀 수 있는 지혜는 무엇에 기인한 것일까? 허세욱은 말한다. '우산은 나의 지붕'이라고, '우리는 늘 바람과 비의 언저리에 서 있'지만 그러한 처지에 살게 된지 '너무너무 오랜지라 우리 사이엔 이미 우정의 이끼가 검푸르'게 무성했노라고. 이러한 삶의 각성은 그 자체가 하나의 축복처럼 작품의 문체에 빛을 더해 주고 있다. 그러나 독립된 자연물을 단지 자연물로서 상찬하는 다음과 같은 글도 있다.
숲속에는 온갖 자연이 가득 차 있다. 그곳은 풋풋한 냄새와 이끼 낀 수목들의 향기가 있어서 우리에게 싱그러운 환희와 벅찬 생동력을 아낌없이 가슴속에 불어넣어 준다. 나는 어릴 적에 인왕산 숲속 활터에 자주 놀러갔다. 그 활터에선 서울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숲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였다. 나는 골짜기 냇물에 발을 담그고 친구들과 숲속에서 많은 생각을 하였었다. 한줄기의 소나기가 지난 뒤, 언덕을 가로질러 동편 하늘에 걸리던 쌍무지개, 그걸 바라보며 꿈을 그리던 어린 시절이 그리워진다. 그때 나는 그 무지개에 꿈을 싣고 어디든 훌쩍 떠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곤 하였다. 하늘은 레몬빛 노을이 보랏빛으로 물들어 석양 속에서 숲들이 찬연히 빛났다. 빗방울들이 나뭇잎 위에 머물러 있었으리라. 문득 지난 가을 강원도 대관령 자연 휴양림에 갔던 생각이 난다. 여성문학회에서 40여명이 그곳에 가서 하룻밤을 지내고 왔다. 그곳에는 숲이 우거지고 계절이 살아 숨쉬고 있었다. 우리는 마음껏 자연의 하모니를 들을 수 있었다. 봄에는 연록의 잎새들과 진달래꽃이 여름에는 짙은 녹음과 맑은 물이 가을날은 불타는 단풍이며, 겨울날의 나목들의 절규들.
숲속에는 골짜기가 있었고 흐르는 물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나무끝으로부터 숲 전체를 흔들며 옷자락에 휘감겨 왔다. 숲을 뚫고 들어온 한 줄기 빛이 수면 위에 반짝인다. 작은 새들의 지저귐이 쉬임없이 들려온다. 숙소에는 모두 나무 이름을 붙였다. 벚나무방, 잣나무방, 등.......... 재미있는 이름들이다. 내 방에는 시인이 두 분, 시조시인이 한 분, 수필인이 둘, 모두 다섯분인데 전부터 다정했던 분들이다. 우리는 밤새 노래로 밤을 새웠다. 숲의 기운이 우리 몸에 옮겨진 것 같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S여사와 낙엽을 밟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낙엽을 밟으며'의 시심을 음미하면서 숲속의 소리를 들었다.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숲소리의 반주와 어울려 자연의 하모니를 이루었다. 이렇게 자연의 숲소리를 들으니 내 몸은 동화되어 온몸이 자연의 소리로 휘감겨 꼼짝 못하고 그 자리에 정지된 상태가 되었다. 내가 나무가 되고 돌이 되고 바람이 되어 천년을 그곳에 살았는가 싶었다. 돌아오는 서울행 버스를 타고 고요히 생각에 잠겨보았다. 우리나라 전국토의 약 65%가 산악지대로 숲으로 덮여 있으며 한 때 삭막하도록 황페되었던 우리의 숲은 경제성장과 보조를 같이 하여 빠른 속도로 회복되기 시작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 마음 속에 항상 살아 숨쉬는 나무와 숲, 그리고 자연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은 이제 겨우 제 모습으로 돌아온다. 봄의 숲은 설레임과 약동이, 여름 숲은 환회와 젊음이, 가을 숲에는 우수와 허무가, 겨울 숲은 인내와 그리움이, 윤회하면서 다시 윤회하면서 숲은 더 우거지고 더 자라난다. 이은상님의 <나무의 마음>의 마지막 구절을 흥얼거려본다. 나무는 사람 마음 알아주는데 사람은 나무마음 왜 몰라주오 나무와 사람들 서로 도우면 금수강산 좋은 나라 빛날 것이오. - 이 숙 <숲의 소리> 전문 -
이숙은 자연으로 인생을 애써 은유하려 하지도, 옹호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는 자연을 보이는 그대로 그리되 주관적이며 긍정적인 시각으로 예찬하였다. 따라서 위의 글에서 자연은 작자의 인생을 평화롭고 아름답게 주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숲에 얽힌 유년시절의 추억으로부터 근래에 다녀온 자연 휴양림의 감동, 숲을 가꾸고 보호하는 정부의 시책에 대한 신뢰와 긍지 또한 긍정적이다. 이 글은 시선이 어린 아이의 그것처럼 순진한 경이로움에 차 있으며, 그 경이로움을 경이로움 그대로 계산 없이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작자는 마치 자신의 삶의 깊이가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이어지는 숲의 우거짐과 정비례하는 것처럼 숲의 아름다움과 싱그러움에 자신을 동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봄의 숲은 설레임과 약동이, 여름 숲은 환회와 젊음이, 가을 숲은 우수와 허무가, 겨울 숲은 인내와 그리움이, 윤회하면서 다시 윤회하면서 숲은 더 우거지고 더 자라난다'고 정의하고 있는 작자는 '봄에는 연록의 잎새들과 진달래꽃이 여름에는 짙은 녹음과 맑은 물이 가을날은 불타는 단풍이며, 겨울날의 나목들의 절규'를 들을 줄을 안다. 만상은 즐기는 자의 것, 자연이 다만 객관의 자연으로 서 있을 때 그것은 얼마든지 비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연을 예찬하면서 거기 스스로 동화되고 있는 작자는 자신의 삶과 얼굴을 드러내는 데에는 전혀 마음을 쓰지 않는다.
4. 주관적 인생과 배경적 자연
'문학'과 '현실'은 대치되고 상반되면서도 서로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 문학은 현실의 토양 위에서 자라는 식물이지만 그 토양을 초월하지 않으면 안되며, 현실은 문학으로 말미암아 여과되고 지양되며 개선되는 것이다. 수필에서 삶의 이야기는 결국 리얼리즘의 수법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 '삶'이란 살아가는 일이며 달리는 '인생', 혹은 '현실'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학에서의 리얼리즘이란 사실적 기록인 역사적 리얼리즘과는 구별되기 때문에 인간중심, 인생중심이되 인간을 넘어서고 인생을 넘어서는 창조적 작업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처음부터 문학으로서의 존재 의의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문학적 리얼리즘에 도입된 자연은 표현의 여과적 장치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즉 분위기를 조성하여 긴박성을 완만하게 하는 점, 리듬에 여유를 부여하는 점 등이 그것이다. 필자는 앞에서 자연 중심의 글이 되었든 인간 중심의 글이 되었든 어떤 경우에도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인간이며 인생이라는 것을 강조한 바 있다. 그리고 아무리 자연 중심 사상이 강하게 드러난 글이라 해도그것은 작자가 자연을 대하는 친화감을 비교 분류한 것일 뿐임을 지적한 바 있다. 다시 강조하자면 문학은 인생의 표현이다. 인생이 표현되지 않은 문학은 문학 향수자인 인간에게 아무런 감동도 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을 뒷받침하는 작품으로 박연구의 다음과 같은 글은 우리들의 이해를 도와줄 것이다.
우리 집 마당에는 감나무·대추나무·앵두나무·등 시골집의 향수를 달래주는 나무들이 몇 그루 서 있는데 이것들이 제법 나무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내가 만들어 준 비닐끈의 줄을 타고 더덕과 강낭콩의 넝쿨이 지붕 위로 뻗어 올라가고 있어서 밤이면 달빛을 받고 창에 그림자를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이 더한층 시골집의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비록 좁은 뜰이기는 하지만 나는 이런 공간이 있는 내 집을 사랑한다. 우리 집에 놀러 온 이웃 아이들 중에는 마당 한쪽에 심어 놓은 벼 포기들을 보고 무슨 풀이냐고 묻기도 한다. 어린 내 외손주 녀석의 볼기짝보다도 좁은 면적이지만 물이 담긴 '논'에서는 미풍에도 살랑살랑 몸을 흔들고 있어서 아무리 보아도 지루하지가 않다. 고향 마을에서 보낸 여름날이 생각난다. 삼복더위에 밀짚모자를 쓰고 논의 김을 매면 나락(벼) 잎새에 팔꿈치가 훑이고 거기 땀이 닿자 어떻게나 쓰라렸는지 참으로 견디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아픈 허리를 잠깐 쉬기 위해 서서 옷소매로 얼굴의 땀을 씻고 났을 때 불어오는 마파람의 시원함이란 그 경험이 없는 이에겐 전달할 방법이 없다. 논물이 끓을 정도로 불볕 더위가 계속되다가도 화방산 기슭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데불고 밀어닥친 소나기에 한 치는 더 자라 오른 듯 푸른 벼 포기들의 생동감이 온 들판을 일렁이고 있을 때, 어찌 농주 한사발을 기울이지 않고 뱃길 수 있었겠는가.
나는 원고를 쓰다가도 잘 풀리지 않으면 마당에 나가서 벼 포기를 바라본다. 그때 뇌리에는 푸른 바다처럼 넓은 고향의 들판이 떠오른다. 큰 수로가 들판을 가로지르고 있어서 보기만 해도 풍년이 연상되고 마음도 시원해진다. 이런 나에게 아내는 벼 포기 보는 값 내놓으라고 손을 벌린다. 그것들은 더덕이나 강낭콩처럼 아내의 솜씨로 이뤄진 풍경이기에, 나는 두 말 않고 일금 암만이라고 말하면서 그녀의 손에 돈을 쥐어주는 시늉을 하였더니 올 여름에는 꼭 시골에 가보자고 한다. 매년 여름이면 말로만 시골에 간다고 했으니 나를 믿지 않게도 되었을 것이다. 고향을 떠나온 지도 강산이 몇 번이나 변하는 세월이 흘렀다. 밭도 논도 남의 것이 되기는 했지만, 그 밭둑 논둑을 거닐면서 도시 생활에서 찌든 마음의 때를 씻어보고 싶다. - 박연구 <여름 그리고 고향 2 > 전문 -
우리가 자연을 사랑하는 것은 자연 자체에 대한 사랑이라기보다 자연과 관련된 어떤 일들, 사람과 장소와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요 추억이 아닐까. 윗 글의 중심 내용은 작자가 고향 마을에서 보내던 여름날의 추억이다. 삼복더위 속에서의 노동의 힘듦과 그 뒤에 오는 상쾌함, 논물이 끓어오를 듯한 불볕 더위 끝에 '화방산' 기슭으로부터 불어닥치던 소나기, 푸른 벼 포기들이 일렁이는 들판을 바라보면서 들이키던 농주.
'아내'는 도시 생활에 피로한 남편으로 하여금 고향의 자연을 맛보게 하려고 더덕을 심고 강낭콩 넝쿨을 올리고 비록 '어린 외손주 녀석의 볼기짝보다도 좁은 면적이지만' 마당 한 쪽에 벼 포기까지 심어 놓았다. 우리는 여기서 자연에 열심히 접근하려고 하는 작자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보다 그날 그날의 일상적 삶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평범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자연의 존재는 일상적 삶에 여유를 회복하게 하고 광채를 더해 주는 존재일 뿐이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일상생활의 가치와 의미를 능가할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자연을 가까이하는 데에 반드시 생활에 여유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현실이 우리를 붙들어 매고 있기 때문에 자연과 거리를 두는 경우는 허다하다. 지금 작자의 희망은 올 여름 고향의 논둑 밭둑(지금은 남의 것이 되었지만)을 거닐면서 도시생활에서 찌든 마음의 때를 씻는 일이다. 그러나 여름이면 늘 시골에 간다고 빈 약속을 했기 때문에 '아내'는 믿지 않을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조금도 미화되거나 과장되지 않은 고백이다. 다시 인생의 무게가 더욱 중시되고 있는 다음 글을 읽어보자.
아이들에게 할머니가 계시지 않는다는 것은 동화가 부재한 것만큼이나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언젠가 텔레비젼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장수무대에 출연한 가족들을 보고는 내 막내인 네 살짜리 아들아이가 느닷없이 할머니를 사달라고 졸라대어 매우 난감한 처지에 놓이게 된 적도 있거니와......... 나의 어머니는 회갑을 훨씬 앞둔 연세로 돌아가셨다.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문득 영국의 계관시인 메이스피일드가 한 말이 뇌리를 스치곤 하는 것이다. <나라는 존재가 비롯한 어두운 뱃속에서 어머니의 생명이 나를 사람으로 만드셨다. 인간으로 탄생되기까지의 여러 달 동안, 그녀의 아름다움이 나의 하찮은 흙을 가꾸셨다. 그녀의 일부분이 죽지 않았던들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며 숨도 쉬지 못했을 것이며 또한 이렇게 움직이지도 못했으리라> 생명을 받아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치고 누구나가 <그녀의 일부분이 죽지 않았던들> 어찌 꽃과 나무와 별...... 그리고 태양이 빛나는 것을 환희로 바라보는 삶을 누릴 수 있었으랴만, 유독 나만은 <그녀의 일부분이 아닌 전부를 죽게하여> 생존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어머니>라는 어휘 하나에도 코가 찡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잔병치레가 많아 어머니의 가슴께나 태우며 자란 내가 스무살을 전후해서는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죽음의 문턱에서 허우적거렸을 때, 어머니의 헌신적(표현이 다 안된 말이지만)인 간호와 하늘에 닿는 기도가 아니었던들 오늘의 나라는 존재가 어떻게 해서 뜰에 핀 목련꽃이며 라일락꽃을 바라볼 수 있겠으며 올봄에 국민학교에 입학한 막내 아이의 손목을 잡고 출근하는 기쁨을 맛볼 수가 있으랴 싶으니, 성묘도 제대로 못한 불효를 새삼 뉘우치지 않을 수가 없다.
지난 구정에는 막내아이를 데리고 아내와 함께 실로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가서 어머니의 산소에 성묘를 한 일이 있다. 멀리 바라다보이는 몽성산 산마루에는 잔설이 은빛으로 빛나는데 어머니 산소에도 하얀 눈이 덮여 있어서 숙연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오열이 목구멍을 치밀고 올라오려 했으나 애써 참고는 아이놈에게 웃으며 물었다. 「할머니가 우리 강아지 왔구나 하시지 않니?」 아이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그런(그러시는) 것 같아」 그때 산토끼 한 마리가 산소 옆을 휙 지나서 저편 골짜기로 뛰어 갔다. 아이놈은 그 토끼를 잡는다고 뒤따라 뛰어가고 있는데 송림 사이를 스치는 바람소리마저 내 귀에는 어머니의 음성처럼 들렸던 것이다. 박연구 - <바람결에도 어머니의 음성이> 전문 -
위의 글에는 우리들의 투명하고 정직한 삶이 표현되어 있다. 가족과 함께 텔레비젼을 보고 아이의 손목을 잡고 출근하는 일, 일찍 돌아가신 부모를 그리워하고 가끔 고향에 가서 뉘우치는 마음으로 성묘하는 일, 이런 일들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 작년이나 올해나 별로 달라진 것 없이 살아가는 일상사일 뿐이다. 인생이란 결국 이렇게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로밖에 달리는 표현할 수 없는, '그렇고 그런 시시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박연구의 수필이 감동을 준다면 깜짝 놀랄만큼 특별한 일이 아닌, 이렇게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 바로 나의 일처럼 가까워서 눈물나는 글이라는 점에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의 글의 소재는 대부분이 인생이며 인간이다. 그의 수필을 통하여 독자들은 그의 가족과 친구와 가깝게 사귈 수가 있으며, 그가 사랑하는 친지들을 만날 수가 있다. 그리고 그가 인생을 얼마나 성실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사람들을 얼마나 진솔하고 소박한 마음으로 대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게 된다. 물론 위의 글에도 산토끼가 있고 목련꽃이며 라일락꽃을 바라보는 기쁨이 언급되고는 있지만 이러한 자연물의 명칭은 인생의 기쁨을 표현하려는 소도구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5. 수필과 인생의 중량
자연을 소재로 한 수필보다 그렇지 않은 수필이 더 많다. 자연물이 수필의 문맥상에 전혀 자취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사실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자연을 소재한 수필 가운데 인생이 배제되어 있는 작품은 없지만, 오로지 인간과 인생만 있고 자연을 배제시킨 수필은 아주 많다. 인간과 인생의 비중은 그만큼 문학의 요체가 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학은 '가치 있는 인생 체험을 예술적인 구조로 재현한 것, 사상과 감정을 통해서 인생을 탐구하고 심화하는 창조의 세계'이며, 그 중에서 수필은 '작게는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부터 크게는 정치·경제·사회· 문화·법률·종교, 심지어는 습관과 무속에 이르기까지 해당'된다는 문학의 정의와 연관시킨다면 더욱 이해가 빨라지지 않을까 한다. 문학은 인생의 표현이며 그 중에서도 수필은 그 인생의 세부까지도 확장하여 보여줄 수 있는 문학형식인 것이다. 인생을 주요 소재로 선택했을 경우, 자연을 소재로 했을 때보다 미적 쾌락(예술적인 감동)이 감하는 대신 교시적인 쾌락(교훈적 감동)이 커지는 것이 보통이다. 비유적이고 우회적인 표현을 피하고 사실로 직입하여 노출하고 폭로하고 투명하게 고백해 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자연배제의 인생 수필은 자칫 잘못하면 건조한 설교가 될 수도 있고, 여운이 없는 기록으로 그칠 위험도 있으나 반면 독자가 자신의 일처럼 가깝게 느낄 수 있는 만큼 이해의 폭도 커질 수 있다는 장점도 가진다.
40년 간 지키던 교단을 떠나면서 사무적인 절차를 밟기 위해 군 교육청에 갔다. 4년 전 일이다. 아래층에는 관리과가 자리해 있고 위층은 주로 장학사들이 일하는 공간인 학무과였다. 나는 관리과로 학무과로 위 아래층을 수없이 오르내리면서 필요한 서류를 만들어내는 등 잡다한 절차를 밟느라 한나절이 넘도록 시달려야 했다. 결코 살갑다고만 할 수 없는 상부 관청, 거기 여러 사람들이 앉아 있는 탁자 사이를 서류나부랭이나 들고 다니는 내 몰골에 스스로 초라해하고 또 지쳐 있음이 분명했다. 더구나 경력란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즉 1976년부터 1년간 근무했던 여천군 쌍봉초등학교 교명이 군 교육청 공보에 없다는 것이었다. 청에 비치되어 있는 내 인사기록카드에 분명히 기재되어 있는 근무기간과 근무학교가 허구인 셈이 된 것이다. 따라서 '이런 경력을 어떻게 인정하라는 것이냐'는 상황으로까지 몰린 나는 노랗게 기가 질린 끝에 '그렇다면 내가 그 동안 허위경력을 조작하여 오늘까지 나라의 녹을 축냈단 말이냐' 식의 항변으로 맞설 수밖에 없었다. 결국 여러 사람이 나서고 여러 경로로 추적하여 그 여천군이 여천시로 승격되는 과정에서 '쌍봉'이란 교명이 '여천'으로 바뀌게 된 것이 밝혀져 억울한 누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생각하면 당시 나는 화를 낼 기력조차 없이 허탈해져 그저 바보처럼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나를 시종 지켜보고 있던 장학계장 K씨가 관리과에 내려가려는 나에게 다가왔다. 그러면서 일이 다 끝나가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해서 들고 있는 서류 하나만 관리과에 제출하면 된다고 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듯싶던 그는 책상 위의 서류들을 정리하여 서랍 속에 넣은 다음 나를 따라 내려오는 것이었다. 일을 마치고 관리과 문을 열고 나서는 나를 문밖에서 기다라고 있던 K씨, 내 손을 붙들며 자기와 차나 한 잔 나누고 갈리잔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제의를 받고 얼떨결에 그의 뒤를 따라 근처 다방의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마음 상하셨지요. 오늘 일, 널리 접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조금 전 담당 작학사의 태도를 가리킨 것이었다. 당무자로서는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것 아니었냐는 반응에, "한평생 애들에게 헌신하셨고 이제 더는 이 청사에 들를 일도 없으실 텐데 옆에서 보기에 매우 민망스러웠습니다" 하면서 안주머니에서 해서로 '頌功'이라 쓴 하얀 봉투 하나를 꺼내 놓으면서 말을 잇는다. "퇴임식을 굳이 사양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군내 여러 학교에서 퇴임식들을 갖는다고 알려왔습니다만 선생님 퇴임식에는 꼭 참석하려고 했는데 매우 서운합니다." 떠나는 사람에 대한 윗자리 사람의 입에 발린 찬사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매우 정중하고 진지한 자세여서 가슴이 뭉클해졌었다.
생각하면 그와 나는 군 장학사와 일선학교 평교사라는 단순한 관계로 만나 4년 동안 단 한 차례도 개인적으로 대좌한 적이 없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처음 대했을 때 서로 통성명하는 정식 인사를 나눈 일조차 없는 사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교육현장에 비춰진 그의 모습은 결코 자그마한 고을 장학사로서가 아니라 더 넓은 영역으로 또 깊이 있게 그의 교육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4년 전 내가 교단을 떠나려던 그때, 장학사 K씨는 결코 쉽게 지워지지 않을 아름다운 그림 한 폭을 나의 머리 속에 그려 넣어 주었다. 그랬던 그도 내년 초면 농촌의 작은 학교 교장을 마지막으로 교육일선을 떠날 것이라는 아쉬운 소식이 들려온다. - 김용복 <지워지지 않는 그림> 전문 -
자연이 배경으로서도 나타나지 않고 있음은 물론, 하다못해 주변의 흔한 산이나 강이나 햇살이라는 말 한 마디도 위의 글에는 나타나 있지 않다. 4년 전 퇴임 수속을 밟는 과정에서 일어났던 사무 착오와 그로 인해 마음을 상했던 일화를 회고적 형태로 적었다.
그러나 단순히 사무 착오를 일으킨 행정상의 일을 드러내거나 어이없이 마음을 상했던 일을 돌이켜보기 위해서 적은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그 와중에서도 나에게 하나의 잊혀지지 않는 그림처럼 남아 있게 된 K교장(당시 K 장학사)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쓴 글이다. 떠나는 사람과 차라도 한 잔 한 다음 이별하고 싶어하는 K교장은 정중하고 진실하다. 그의 정중성과 진실성이 삽입되어 있지 않다면 이 글의 맛은 크게 절감되어 버릴 것이다. 지방 교육청의 권위 위주적 처사와 철저하지 못한 서류 정리, 잘 알아보지도 않고 닦아세우는 부당한 사람 대접만 부상하게 되고 그 결과 수필의 정서는 거칠어질 것이며, 감동도 그만큼 떨어질 것이다. 수필에서 자연이 표현되어서 얻어낼 수 있는 이득이 있다면 여유와 아름다움이 아닐까? 위의 수필은 자연이 제공하는 여유와 아름다움을 K교장의 인정스러움이 대신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경우 글의 내용에 허구가 삽입되었다고 해도 좋으며 K교장의 언행에 과장이 있다고 해도 좋다. 사실적인 내용만을 기록하는 것이 수필은 아니니까 말이다.
나의 얼굴에는 주근깨가 많이 있다. 여학교 시절에는 짓궂은 남학생들의 놀림도 꽤나 받았다. 어떤 심술장이는 대문 앞까지 졸졸 따라 오면서 한사코 놀려대기도 했다. 나는 학교 예술제 같은 때에 연극 주인공 노릇을 했는데 분장을 한 관계로 주근깨가 보이지 않은 탓이었던지 연애 편지도 많이 받았었다. 이런 일과 무슨 관련이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나는 나의 사춘기를 주근깨 때문에 고민한 일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젊었을 때 어쩌다 미장원엘 가면 '주근깨만 없으면 얼마나 훤하겠어요. 00병원에 가면 깨끗이 밀어준다는데......' 하면서 친절한 미용사들은 성형외과를 권하기도 하고 특효약에다 별별 비방을 귀띔해 주며 시험 해보라고 하였다. 그러면 나는 그저 웃으면서 고마워요하고 대답했을 뿐 그들이 권하는 녹두물이나 뜨물 세수 한 번 해 본 적이 없다.
이상한 것은 아침 저녁으로 거울을 대하면서도 남이 상기시켜 주지 않는 한 내 얼굴에 쪽 깔린 주근깨를 거의 의식하지 않는 사실이다. 미용사 아가씨의 친절한 코우치를 받고 있는 동안 미장원 거울 위에 확 돋아났던 나의 주근깨는 미장원 문만 나서면 또 어느샌지 모두 잦아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나이를 먹었으니 자연 성형의원을 권하는 이조차 없어져 그것을 의식할 기회도 점점 더 줄어가고 있다. 나의 다정한 친구들은 주근째 없는 나를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고 하면서 나의 얼굴이 갖는 흠까지도 나의 일부로서 사랑해 주고 있다. 본인이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미워하지도 않는 흠을 남들인들 뭣이 그다지 안타까워 박박 기를 쓰며 미워할 까닭이 있겠는가? 딱이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나는 나의 얼굴, 나의 젊음 나의 여성을 의식적으로 생활의 무기로 삼으려고 생각지는 않았다. 그것들은 너무나도 짧고 한계가 드려다 보이는 밑천이요 가장 닦이지 않는 원형적인 자산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딸은 곱게 길러 시집이나 보내고 싶다는 것이 아직도 우리네 어머니들의 공통된 꿈이다. 하기야 아름다운 여자를 바라보는 것은 여자에게나 남자에게나 공통된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곱다는 것이 어떻게 평생 살아가는 밑천이 될 수 있을까? 앞세대를 살아온 어머니들의 생각은 그렇다 해도 내일을 살아야 할 젊은 여성들이 제 용모 제 젊음에만 지나치게 관심을 기울이고 마침내는 이것으로써 의존적 생활 무기를 삼으려 하는 속셈이 들여다 보일 때, 나는 늘 민망스러운 생각이 들었었다.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밑천이 달랑달랑한 장사꾼 같아 불안하게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 김효자 <주근깨> 전문 -
역시 자연물이나 자연현상이 배제된 수필이다. 그러나 그로 인해서 수필의 맛이 떨어지지 않았으며, 독특한 호소력과 감동력을 가지는 글이다. 자연물이 배제됨으로써 표현상의 박자가 다급해질 수도 있지만 그 다급함이 오히려 효과적인 문장기법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핍진하는 건조체의 문장이 오히려 화려체의 다변을 압도할 수 있는 것처럼 본론 위주의 의미 중시가 힘을 가지게 된다. 인생 중심의 수필에서는 필연적으로 작자 자신을 깊게 드러내게 된다. 그러나 드러난 자신이 필자 자신의 모습으로 머물지 않고 보편적 자아, 세계적 자아로 확대될 수 있을 때에 수필은 의미를 가지게 된다. 자신을 폭로하면서까지 작가가 그 말을 쓰고 싶었던 것은 단순한 폭로 이상의 가치를 겨냥한 것이며 이 가치야말로 수필 일반이 고민하고 의도하는 목표이기도 하다. 자연 중심의 수필에서 지나치게 비현실적 환상에 몰입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면 인생 중심의 수필에서 유의할 것은 지나치게 사실적인 설명으로 기록에만 충실하려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수필에서 무엇을 소재로 하였는가는 어떻게 썼는가의 중요성에 미치지 못한다. 소재의 선택은 심각하지 않다. 그것을 다루는 기법에 따라서 달라지고 바라보는 시각과 도출하는 결론에 따라서도 달라지며 결론에 이르는 과정의 문체에 의해서도 얼마든지 달라지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