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天子)가 되면 천하가 모두 나 자신인데 왜 굳이
내 한 몸을 생각하며, 대인이 되면 만세가 모두 나 자신인데 왜 굳이 백 년만 생각하는가. 한 몸으로 나 자신을 삼을 뿐인 사람은 군주가 될
도량이 없는 자이며, 일생으로 나 자신을 삼을 뿐인 자는 천(天)ㆍ지(地)ㆍ인(人) 삼재(三才)에 참여할 국량이 없는 자이다.
태종 자신은 적지 않은 영웅이었지만, 어울리지 않게 우세남(虞世南)과 필법을 비교했으니, 이는 우세남
역시 나 자신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 이는 양제(煬帝)가 설도형(薛道衡)의 시재(詩才)를 시기했던 것과 같다.
-천하의 좋은 새를 한 몸에 다 차지하려고 했기 때문에
좋은 매를 자기 팔에 걸쳤고, 천하의 미색을 한 몸에 다 차지하려고 했기 때문에 동생의 아내를 여자로
거두었으며, 천하의 큰 승리를 한 몸에 다 차지하려고 했기 때문에 요동을 정벌하여 한 번 싸우고서 달려와 태자에게 자랑을 했고, 천하의 진귀한
물건을 한 몸에 다 차지하려고 했기 때문에
난정첩(蘭亭帖)을 소릉(昭陵)에 넣었다.난정첩을 무덤 속으로 가져간 한 가지 일로 일생의
어리석음을 개괄할 수 있다. 난정첩은 정말 진귀한 유묵이므로, 우군(右軍
왕희지(王羲之))의 불후의
작품을 나 때문에 묻어 버려서는 안 되며, 후세 모든 사람의 눈을 나 때문에 장님으로 만들어서도 안 된다. 그러나 태종은 나 한 몸의 사사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옛사람은 잊지 않으면서 후세 사람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결국 아득하여 알 수 없는 야대(夜臺
무덤)에 난정첩을 감추어 두었으니, 어리석고 망녕되어 몹시 어질지 않고 의롭지 않은 자이다. 이 또한 서역
상인들이 몸을 갈라 구슬을 감춘 것과 마찬가지 경우이다. 천하의 공공연한 진귀한 물건을 영원히 무덤에 묻어 버릴 이치는 없었으니, 황소(黃巢)가
소릉을 파헤친 것은 난정첩 때문에 생긴 일이다.
태종의 평생은 오로지 이 사사로움이라는 글자 하나였으며, 조금만치도 공변된 마음은 없었다.
그가 간언(諫言)을 따라 치세를 이룬 것도 공변된 마음과 덕량이 아니라, 단지 이름을 좋아하고 자신을 위한 사사로운 마음이 중요했기 때문에
억지로 했던 것이다. 사심을 가지면서 억지로 간언을 따랐어도 오히려 공업을 이루었는데, 더구나 아주 공변되고 지극히 바른 마음으로 물 흐르듯
좋은 말을 따른 경우이겠는가.
- 석륵(石勒)이 전국새(傳國璽)를 얻어 그 옆에 ‘석씨가 천명을 받은
국보’라고 새겼으니, 이는 만고의 어리석은 오랑캐이다. 난정첩을 무덤에 함께 묻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