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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옥(金容沃) | |
1인시위하는 김용옥 | |
출생 | 1948년 6월 14일(1948-06-14) 천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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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대한민국 |
별칭 | 도올(호) |
직업 | 교수 |
배우자 | 최영애 |
자녀 | 김미루[1] |
웹사이트 | 도올은 어떤사람인가 |
김용옥(金容沃, 1948년 6월 14일 ~ )은 대한민국의 교수이다. 고려대학교 철학학사와 국립대만대학 철학석사, 도쿄대학교 철학석사, 하버드 대학교 비교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충청남도 천안 출신으로 호는 도올(檮杌), 본관은 광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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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수이자 학자이며 철학자, 언론인, 한의사이고, 극단의 단원으로도 활동하고, 연출가이고, 영화와 연극의 시나리오를 쓴 극작가이고, 언론에 기사와 칼럼을 써내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동,서양 철학과 종교사상까지 다양한 학문적 탐구와 저작 활동을 벌이고 있다. 1982년 9월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철학과 부교수가 되고 85년 9월에는 동대학의 정교수가 되었다. 1986년 양심선언("한국의 오늘을 사는 한 지성인의 양심선언")을 하며 고려대학교 교수직을 사퇴한 후 여러 대학에서 철학과 문학 등을 강의하기도 했다. 1988년 무렵부터 방송 강연에 출강하였다.
그는 문화계에서도 몇가지 활동을 했다. 악서고회(樂書孤會)라는 모임을 만들어 국악을 콘템포러리 뮤직으로 승화시키는 다양한 기초작업을 하였다.(1984년 3월~1987년 12월). 한국의 전통음악을 이끄는 대표적 주자, 백대웅, 김혜숙, 박범훈, 송방송, 이성천, 권오성, 최종민, 이보형, 양승희 등이 참여했다. 이후 한대수와 록 콘서트를 가지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도도회(檮濤會)라는 모임을 만들어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한국화 교수들과 그 대학 출신 화가들(이종상,김병종,김호득,장상의,심현희,장혜용,이민주 등)과 정기적인 활동을 했다. (1988년 6월~1999년 6월)
영화와 연극활동도 했는데 대중의 사랑을 받는 마당극으로 유명한 극단 미추를 손진책, 김성녀와 함께 창단(1986년 8월)하여 전통과 현대를 접목시키는 많은 연극 작업을 했다. 『시간의 그림자』,『그 불』 등을 직접 연출하기도 했다. 1987년에는 잠시 영화인 심포지움을 만들어 유현목,김수용,임권택,이장호,김호선,하명중,정지영,박광수,이두용,황기성 등과 활동했다. 이후 임권택의 『장군의 아들』, 『개벽』, 『취화선』의 대본을 썼고, 특히 『취화선』은 2002년 55회 깐느영화제 감독상을 획득하였다. 『취화선』과 『왕의 남자』의 자막은 직접 영역했다.
유기화학자 김용준과 함께 신과학운동 세미나를 주도하고, 대우재단지원 과학사상연구회(科學思想硏究會)를 설립했다.(1984년 3월~1990년 2월) 한국의 대표적인 과학자․과학사상가들(조순탁,이성범,장회익,김두철,서정선,신중섭,이봉재 등)이 참여했으며 이후 꾸준히 과학과 철학이라는 학술지를 출간했다.
1989년에는 한국사상사연구소(Korean Institute of Classical Studies)를 세워 한국고전 최초의 일자색인인 『삼국유사인득』을 출간했다. 이 작업은 후에 제자 김현 교수의 방대한 『조선왕조실록』 전체 한글번역 프로그램인 CD-ROM작업으로 이어져 한국학의 신기원을 세웠을 뿐 아니라, 한류의 원류인 사극 드라마들의 희곡작업의 근간을 이루었다. 1993년에는 도올서원을 세워 15기에 걸쳐 3,000여 명의 학생을 배출해 한학의 배경을 가진 우수한 인재들이 이 사회에서 활약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민족문화추진회의 한국고전국역사업을 지원하였고, 그 기관은 이후 한국고전번역원으로 승격되었다.
1989년에는 태권도철학세미나를 개최하여 무술의 본질과 태권도문화의 세계화를 논하였다. 유병관,양진방,김영선,김용범,최의정,임신자,바비 클레이튼(Bobby Clayton),스티븐 카프너(Steven D. Capener) 등이 참여했고 이 세미나의 결과물로 『태권도철학의 구성원리』를 집필․출간했다. 이 작업의 정신과 성과는 이후 무주 태권도공원으로 이어졌다.
한의대 졸업 후 도올한의원을 개원하여 많은 난치병환자를 치료하기도 하였다. 또 언론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중앙일보에는 “도올고함(檮杌孤喊)”이라는 칼럼을, 중앙선데이에는 “도올의 도마복음 이야기”(신발굴 성서자료)를 연재하였다.
김용옥은 초등학교를 천안에서 졸업하고, 보성중·고등학교에서 수학하였다. 고려대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학였고, 한국신학대학교 신학과에서 수학한 후 고려대학교 철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72년 9월 대만으로 가서 국립대만대학 철학연구소에서 2년간 수학하면서 「노자 "자연" 철학에서의 "무위" 의 기능(老子「自然」哲學中「無爲」之功能)」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1974년 일본으로 가서 1977년까지 도쿄 대학 대학원 중국철학과에서 수학하며 「왕선산의 동론(王船山の動論)」라는 논문을 발표하며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77년에 미국으로 가서 펜실베이나대학교 동방학과 대학원과 하버드대학교에서 수학하였는데, 하버드대학교 동아시아어문학과에서 「왕부지의 철학, The Philosophy of Wang Fu-chich(1616~1692)」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90년에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한의학과에 입학하여 한의학사학위도 취득하였다.[2]
2010년 5월 23일 서울 봉은사에서 '코뿔소 외뿔처럼 홀로 가거라 : 동서화통의 깨달음'이라는 특별강연에서 천안함 사태에 대한 합동조사단 발표를 강력히 비판하여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소당했다. 이후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신유철 부장검사)는 라이트코리아 등 보수단체들이 합동조사단의 천안함 조사 결과를 비난한 혐의로 도올 김용옥을 고발한 사건을 두고 무혐의 처리했다고 9월 27일 밝혔다.[3]
2002년 10월 당시 방송 강연 중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선승 춘성 스님의 육두 문자 발언을 방송에 인용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4][5] 이때 방송 강연에서 그는 춘성 스님의 욕설과 육두문자를 그대로 전하여 논란이 되었다.[6]
광주에 강의에서 김용옥은 6.25에 대해 “서울까지 단숨에 내려온 부대는 인민군이 아니라 중국내전에서 갈고 닦은 조선의용군 10만명”이라며 “남침이지만 남침이라 표현할 수 없다. 남침을 유도한 남한사회의 구조가 있다”고말하면서 “최고 원흉은 일본. 다음은 미국놈”이라며 “한국전쟁은 남침, 북침이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 역사와 미국 제국주의 역사가 조선에서 만든 악랄한 죄악”이라고 주장했다.[7] 그러나 한국 전쟁 음모론은 소련의 문서 공개 등 학계에서 종결된 논란이며, 조선 인민군 부총참모장 이상조는 6.25는 김일성의 지시에의해 남침함으로써 시작됐다는데 이론이 있을수 없다고 말했다.[8][9][10][11][12][7]
첫댓글 어마어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