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청년들의 착각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457~463쪽 발췌
마이클 셀렌버거 저, 노정태 번역
대부분의 인도 청년들이 인도가 가난한 이유를 ‘많은 인구’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인구가 많아서 식량과 직장이 부족하므로 인도의 가난은 운명이라고 말하는 청년들에게 ‘많은 인구는 축복이며 놀라운 가능성이며 아름다운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문제는 인구가 아니다. 현실을 호도하는 지식인들, 정치인들은 빈곤과 환경의 문제 등을 인구, 인구폭탄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진짜 문제는 그 인구를, 그 위대한 에너지를, 그 엄청난 능력과 그 무한한 가치와 존엄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소위 선진강대국의 무드, 유행, 통념, 주장, 과학, 사상에 동조하는 지식인들의 기만적이고 위선적인 기득권 지향의 정치와 정책이라고 말해 주었다.
지금도 인구에 대한 나의 생각은 변함이 없다. 식량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사랑이 부족한 것이다. 식량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가난한 나라의 가나한 사람들과 나누기가 싫은 것이다. 식량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기득권에 적당히 편승하는 각 나라의 지식인들이 자신들의 지위와 명예를 보전할 만큼 펼치는 교육과 정책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은 먹고 마시며 잠자며 살 권리가 있다. 누구도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의 생명권을 무시하거나 짓밟아서는 안 된다.
우리 주님께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과 쉴 곳을 제공한 사람들에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말씀하셔서 가난한 자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셨다. 그러기에 주님은 가난한 자들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과 쉴 곳을 제공하지 아니한 사람에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의식주 생명권이 신성한 것이며 하나님의 축복임으로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밥이 되어 생명을 살려야 한다는 뜻이다.
인도와 네팔에서 기아에 허덕이며 영양실조로 고통스럽게 사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많이 울었다. 그리고 사는 동안 적어도 내 눈앞에서는 그 어떤 사람도 주리지 않게 해야겠다고 다짐을 하였다. 그러나 떠돌이 나그네로 살면서 큰 NGO 단체나 국가 수탁기관들이 하는 일을 이름도 없는 초라한 사람이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결코 아니었다. 결심한 일을 위기 상황 속에서 실행하며 딜레마가 컸다. 기본적인 펀드도 없이 모금만으로 하는 한계성, 사람들을 의존적이게 만든다는 지적, 현장으로 쌀과 밥을 보내는 난관, 언제까지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등이 나를 의기소침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계속 ‘사랑의 쌀’과 ‘사랑밥’을 나누고 있다.
성탄절를 앞두고 어떻게 공급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에 골몰하고 있다. 하나님의 공급을 기다리며 성탄절에도 ‘사랑밥’과 ‘사랑의 쌀’을 나눌 생각으로 가슴이 설렌다.
일용할 양식의 문제를 늘 묵상하는데 오늘 눈에 번쩍 뜨이는 글을 읽었다.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마이클 셀렌버거 책속에 들어있는 소제목 ❰맬서스, 처칠, 히틀러가 초래한 인류 비극❱이다. 맬서스의 인구론과 그의 생각이 틀렸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자신 있게 말해 본적이 없다. 맬서스의 주장에 세뇌되어 있는 세상의 지식인들과 그들의 영향으로 생명을 경시하는 우리사회의 지적인 분위기에 젖은 사람들에게 과학자도 전공자도 아닌 자가 말한다는 것이 버거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인구의 문제를 인도 청년들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보여줄 글이 있다.
❰맬서스, 처칠, 히틀러가 초래한 인류 비극❱
…
고드윈과 콩도르세는 모두 오늘날 우리가 계몽주의라 부르는 사상의 일면을 보여준다. 또한 두 사람 모두 “휴머니스트”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이성을 사용하는 능력을 지닌 인간이 특별하다고 믿었다. 이들은 인간이 신의 선택을 받아 세상을 다스릴 권한을 부여받았다는 유대교-기독교식 사고방식을 세속화했던 셈이다.
봉건 군주제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에 자리를 내주면서 계몽적 휴머니즘은 지배적인 정치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았다. 콩도르세는 이런 미래를 예견하였다. “이 전부를 놓고 볼 때 기술과 인류의 발전은 극히 작은 땅을 이용해 아주 많은 인구를 부양하는 일을 가능케 할 것이다.”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라는 경제학자는 이런 계몽적 난관주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30대 초반의 나이에 고드윈과 콩드르세를 논박하기 위한 책을 펴냈다. 1798년 출간한 ❰인구론❱이 그것이다.
맬서스는 인류의 진보가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보았다.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1,2,3,4와 같은 식으로) 늘어나는 데 반해 인류는 기하급수적으로(2,4,8,16 같은 식으로) 번식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러므로 진보는 필연적으로 인구 과잉과 기근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터였다. “따라서 가난한 이들의 삶은 훨씬 나빠질 수밖에 없으며, 그들 중 다수는 심각한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인구 증가의 힘은 지구가 제공할 수 있는 인구 부양력을 훨씬 능가한다. 그러니 인류는 어떤 형태로건 평균 수명보다 이른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본인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독자들이 혹시 이래하지 못할까 봐 걱정했던지 맬서스는❰인구론❱2판을 찍으며 이런 인상적인 구절을 덧붙여 놓았다.
이미 남들이 차지한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부모로부터 충분히 얻지 못한다면, 그리고 사회가 그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최소한의 식량을 요구할 권리조차 없으며, 사실싱 자신이 발 디딘 곳에 남아 있을 자격조차 없다.”
고드윈은 피임처런 “인구 증가를 통제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라고 지적하면서, 맬서스가 불가피하다고 이야기한 대기근을 인간 사회는 얼마든지 피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기술 발전은 적은 땅에서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하는 게 가능케 해 줄 터였다.
맬서스는 사라들이 피임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을 넘어 피임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대응했다. 왜일까? 피임은 “비자연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맬서스의 대기근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랜 금욕뿐이었다. 결혼을 늦게 하고 아이를 조금 낳은 것만이 해법이었다.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기아가 닥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피임하지 않는 것을 인구 문제의 해법으로 내놓은 것이다.
맬서스는 가난한 이들을 걱정했지만 가난한 이들을 가난한 상태에 묶어 놓는 정책을 옹호했다. 그는 제조업보다 농업을 선호하는 귀족적인 체제를 지지했으며, 육체노동을 하지 않는 귀족으로서 누리는 전원생활의 우월성을 주장했다.
어떤 이들은 맬서스가 저 유명한 책을 너무 일찍 썼다고 옹호했다. 산업혁명이 식량 생산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으리라 예상하기에는 이른 시점이었다는 것이다. 맬서스가 성인이던 시절은 역사가들이 말하는 “발전된 농업 경제” 체제였다. 여전히 사회는 재생 에너지, 즉 나무 연료와 물레방아에 의존하던 시절이었다. “인구 대다수가 빈곤에 빠져 있는 것”은 불가피한 물리적인 현실이었다.
하지만 18세기 영국의 재생 에너지 기반 경제의 암울함은 고드윈이나 콩도르세 같은 휴머니스트들의 꿈을 가로막지 못했다. 그들은 단지 배고픔을 종시시키는 차원을 넘어 인류 보편의 번영을 추구했다. 세상이 암울한 곳이라는 증거는 도처에 널려 있었다. 맬서스가 살아 있는 동안 식량 생산량은 그다지 늘지 않았다. 1800년부터 1850년까지 영국의 농지는 4만 4500제곱킬로미터에서 5만 9000제곱킬로미터로 늘어났지만 농촌의 기아 현상은 더욱 심해졌다.
1845년 곰팡이성 전염병이 퍼져 아일랜드의 감자 농사를 망쳐 놓았다. 훗날 ‘아일랜드 대기근’으로 불리는 사건의 시작이었다. 1845년부터 189년까지 아일랜드인 100만 명이 굶어 죽고 100만 이상이 아일랜드를 떠났다.
지금도 사람들은 아일랜드 대기근의 원닝을 간자 농사의 실패에서만 찾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 기근이 닥쳐온 기간에도 아일랜드는 영국으로 식량을 수출하고 있었다. 심지어 소고기까지 수출했다. 아일랜드 농부들은 소작료를 내개 위해 심지어 아이들이 굶어 죽는 와중에도 돼지를 팔아야 하는 처지에 내몰려 있었다.
영국의 엘리트들이 볼 때 아일랜드인이 겪는 기아와 고통은 그들의 운명이었다. 아일랜드인에게는 도덕적인 자제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기근을 겪%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코노미스트❱는 “마치 사육장 속의 토끼처럼 모든 이들이 결혼하고 자식을 낳도록 부추길 우려가 있다”면서 아일랜드인의 임금을 높이는 것이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코노미스트❱와 영국 엘리트들은 반세기 전 맬서스가 제시한 사고방식을 답습하는 주이었다. 이미 맬서스는 아일랜드의 인구 폭증을 비난하면서 저렴한 식량을 그 원인으로 지적했다. “ 이 영양가 있는 뿌리(감자)는 (아일랜드) 사람들의 무지와 야만성과 맞물려 아일랜드의 산업과 현존 자원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 이상으로까지 결혼을 부추기고 말았다.”
맬서스사 볼 때 아일랜드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인구 과잉이었다.
“아일랜드에는 영국에 비해 훨씬 무한한 인구가 들어찰 것이고 그것은 아일랜드의 천연자원에 큰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아일랜드 인구의 대다수는 아일랜드에서 쓸려 나가야 합니다.”
영국의 권력자들이 타국에서 벌어지는 기아를 정당화하기 위해 맬서스의 논리를 동우너한 사례는 아일랜드 대기근에서 끝나지 않았다. 1876년부터 1880년까지 인도 총독을 지낸 영국인은 인도 인구가 “ 그 땅에서 생산되는 곡식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더 빨리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고는 “생산량과 인구 증강의 한계에 도달했다”라고 언급했다.
수만여 명의 인도인들이 기아로 죽어 가고 있을 땡 그 인도 총독은 “빅토리아 여왕의 인도 여홍 즉위식에 돈을 물 쓰듯이 퍼부었다”라고 한 역사학자는 지적한다. “불워-리턴 총독의 정권의 기아 구제책은 히틀러가 부헨발트 강제수용소에서 수용자들에게 제공했던 것보다 열량이 더 낮았다.”
1942년과 1943년에 인도는 영국의 전쟁 물라로 식량과 공산품을 생상해 제공하면서 식량 부족에 시달렸다. 식량을 수입하면 그 위기를 완화핳 수 있었지만 처칠 총리는 인도에 식향 수입을 허용하지 않았다.
왜였을까> “처칠과 그의 핵심 참모들의 맬서스식 사고방식에서 답의 대부분을 찾아야 한다” 라고 역사가 로버츠 메이휴는 결론을 내린다. 처칠은 이런 잘못된 주장을 하고 있었다. “인도인은 토끼처럼 번식하며 전쟁에는 아무 기여도 하지 않으면서 우리에게 매일 100만 파운드의 부담을 주고 있다.”
1942년부터 1943년까지 벵골 지방에서는 기근으로 300만 명이 죽었다. 아일랜드 대기근의 3배에 달하는 사망자였다. 처칠의 그러한 결정은 이 대량 기아와 사망에 부분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맬서스의 제자는 처칠만이 아니었다. 아돌프 히틀러 역시 멜서스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토지의 생산량은 제한된 범위 내에서 늘어나며 특정 수준 이상 늘어날 수 없다.”❰나의 투쟁❱중 란 대목이다. 하지만 맬서스와 달리 히틀러는 그 한계를 극복할 수있다고 믿었다. 다른 나라를 침략해 땅을 빼앗으면 되는 것이다.
역사학자 메이휴는 이런 끔찍한 결론에 도달한다. “맬서스의 작업과 20세기 역사의 가장 참혹하고 끔찍한 몇몇 장면 사이에는 분명하고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마이클 셀렌버거 저, 노정태 번역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457~ 463쪽
오늘은 어제의 결과물이며 내일은 오늘에 뿌리를 둔다. 갑작스런 진화는 없다.
20세기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수많은 종족분쟁과 기근, 집단과 계층의 갈등은 18세기, 19세기 서구 엘리트들의 오만과 독선, 무한 탐욕과 무한 향락이 심어놓은 독버섯들과 관련이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정치인, 지식인, 청년 그리고 종교인들이 서구의 논리와 잣대를 자국의 빈민들과 다른 종족들에게 적용하며 폭력을 일삼는다.
세상 모든 나라들이 기아를 인구 탓으로 돌리는 맬서스의 ❰인구론❱의 기만에서 벗어나 함께 먹고 마시는 하나님의 잔치에 참여하게 되길 빈다.
귀한 책을 써주신 마이클 셀런버거 님과 번역해주신 노정태 님께 깊은감사를 드린다.
2021.10.23.토
우담초라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