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자: 2025. 9. 27 (토)
2. 장소 : 모후산, 중봉, 집게봉
3. 행로와 시간
[유마사 주차장(11:42) ~ 용문재(12:36~45) ~ 모후산(13:38~45) ~ 중봉(14:15) ~ 집게봉(14:37) ~ 유마사(15:50) / 8.6km]
이번 주 오를 산은 모후산이다. 전남 화순과 순천의 경계에 위치한 높이 943m의 산으로,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을 피해 왕비, 태후와 머물렀던 인연으로 ‘어머니의 품속 같은 산’이라는 뜻의 모후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산세가 웅장하나 완만하며, 정상에서는 무등산, 조계산, 백아산, 주암댐, 동복호 등 주변 산과 호수가 한눈에 조망된다.
산림청 200대 명산에 선정된 산이다. 길은 유마사에서 용문재를 거쳐 정상에 오른 후 중봉이나 집게봉으로 하산하는 원점회귀 코스로, 8.5km에 4시간 산행을 예상한다. 곧 있을 설악 산행을 앞두고 훈련을 겸하는데, 조금 짧은 게 아쉽다.
몇 주 비가 잦더니 날씨가 몰라보게 시원해졌다. 완연한 가을이다.
(여기까지는 산행 준비과정의 기록이다)
< 유마사 ~ 모후산 >
멀다. 07:20 죽전을 출발한 버스는 11:40이 되어 유마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도중에 장성을 지나 한때 뻔질나게 출장갔던 광주과기원 부근도 지났다.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는 일이다. 기억이 희미해져 간다.
유마사는 내려올 때 들를 생각으로 바로 용문재로 향한다. 등로는 초반 1km는 너른 임도 수준, 이후 0.8km 정도는 돌 많은 꽤 너른 길, 용문재까지 0.8km는 된비알이었다. 길가에 드문드문 꽃무릇이 보이지만 질 때라 그런지 빛나지 않았다.
용문재에서부터 모노레일이 등산로와 나란히 하며 정상까지 이어진다. 꽤 가파르게 이어지는 등로는 바위전망대에서부터 확 트인 풍광을 선물한다. 무등산과 조계산은 물론 저 멀리 자리산도 보이는 듯하다. 거대한 짙은 회색의 굴곡둘 틈에 벼가 익어가는 들녘이 보여 포인트가 되어 준다. 아쉬운 건 흐려지는 날씨다.
흰색 기상돔을 랜드마크 삼아 따라 오르자 출발 2시간 만에 모후산 정상에 선다. 공식 높이는 943 m이나 워치에 찍힌 고도는 1000m가 넘는다. 우듬지에서 바라보는 풍경에는 주암호가 압권이다. 큰 규모에 놀란다. 호수 뒤로 우뚝 솟아 너울지는 산들이 색의 농담을 달리하며 흘러간다. 장관이다. 뻥 둟린 시야가 시원했다.
< 모후산 ~ 유마사 >
집게봉 이정표를 보며 하산에 나선다. 초반 돌비탈이 꽤 험하다. 고도 900미터가 훌쩍 넘는 산이 얌전할 리가 있겠는가. 모후산은 유독 돌이 많은 산이다.
돌길이 조금 잔잔해지니 조릿대가 길 양 옆을 호위하듯 율창한 등로가 이어진다. 모후산 출발 30분 만에 중봉을 지난다. 높이가 804m란다. 오르내림이 심하진 않지만 갈 길이 멀다.
일행 중 일부는 중봉에서 하산하고 홀로 걷는다. 곰이나 멧돼지가 나타나면 어쩌지 걱정이 들 정도로 적막하고 하늘도 컴컴해진다. 집게봉에도 쉽게 올랐다. 문제는 하산길인데, 웬 돌이 이리 거친지 1.8km를 내려오는데 거의 1시간이 걸렸다. 용케 사고 없이 내려왔고, 계곡에서 세수하고 머리를 감자 그 시원함이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오전에 지났던 길을 걸어 유마사로 들어선다. 산행 종료 버튼을 누른다.
< 에필로그 >
유마사는 적막했다. 고색창연한 사찰 지붕 뒤로 지나온 모후산 정상이 보인다. 높지도 험해 보이지도 않는다. 그저 평범 그 자체이다.
걸어보니, 저 산이 품은 것들은 결코 평범하지 않은 데, 1000급 산에 사연이 없을 리 없는 데 말이다. 모후산을 특징지우는 건, 동북호 조망과 조릿대 그리고 산행 내내 발을 괴롭힌 돌이었다. 정상에 자리한 기상돔의 모습은 그저 하늘 위 또 하나의 이정표였다.
알고 예상하면서도 그 고단함을 딛고 산에 오르는 까닭은 무엇일까? 며칠 전 다시 읽고 있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서 그 답의 단초를 찾았다.
생물학에는 반복설이라는 것이 있다. 이 가설은 모든 상황에 100퍼센트 다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생물의 발생 과정에 관해서는 비교적 잘 들어맞는다. 반복설의 핵심 내용은 개체 하나의 발생 과정이 해당 종이 겪어 온 진화의 전 과정을 되풀이 한다는 것이다. 나는 개개인의 지적 성숙 과정에서도 반복설이 성립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조상들이 해 온 사고의 과정들을 되풀이하면서 하나의 개인으로 성장해 간다."
듣고 보고 읽어도 결국 내 발로 올라 봐야 진정한 내 것이 되는 게 등산이다. 반복되지만 변치 않는 진리이다. 다음 주엔 북한산이나 관악산에서 더 긴 산행을 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