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저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네게 저를 돌려 보내노니 저는 내 심복이라 (빌1:11-12)
내년도 사업계획을 작성하느라 요즘 조금 바쁜가운데 실적이 그리 좋지 않아 마음이 영 편하지 않습니다. 다가올 21C를 여는 첫해에 대한 기대감도 여전히 좋지 않고...... 주가는 반토막난 상태에서 횡보를 해대는 데 정치권은 서로 물고 물리는 성명전으로 혼전양상이고 이런때 우리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대오각성! 그렇습니다. 요즘이 우리에게 요구되는 사자성어가 아닌가 합니다.
오네시모에 대한 사도 바울의 애정과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성경말씀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 처럼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이었습니다. 무슨 이유에선지 빌레몬의 수하에서 도망쳐 나온 오네시모가 바울을 만나게 되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당시 종들의 생과 사는 주인에 전적으로 달려있었던 때에 도망나온 오네시모는 당연히 죽을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을 만나 변화를 받게되고 종의 몸에서 자유자가 되는 주님의 자녀되는 권세를 얻게되고 사랑하는 형제로 둘자라 칭함을 받는 형제가 되었고 바울의 심복이 되었고 바울과 빌레몬에게 유익한 사람이 되었음을 선포합니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이란 표현이 실감납니다. 바울이 그리스도로 인하여 갇힌 상태에서 오네시모의 형편을 이해하며 그에게 절실히 필요한 자유함이 무엇인지 알게 하며 빌레몬에게 편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나의 상황에 비추어 남의 형편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이웃을 돌아봄이요 성경에 과부와 어린이를 살피라 하신 넓은 의미의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이었습니다. 단순히 종의 몸이 아니라 죽었던 자였는데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신 깊은 뜻이 우리에게 있음을 고백합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2:4-6)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높고 깊으신 뜻이 있습니다. 이 세상 가운데 우리가 살아가야 할 소망이 있습니다. 미션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비전이 있습니다. 오네시모가 변하여 바울의 심복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의 삶이 변하여 주님의 참된 자녀가 되길 원하십니다. 주님의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한 것처럼 우리에게 사랑을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격하는 생활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얼마나 오네시모와 같은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까? 죄에서 해방받은 자유자의 자유함을 얼마나 느끼며 감사하고 있습니까? 빌레몬의 용서함이 우리에게는 있습니까? 짧은 성경 말씀이지만 우리에게 많은 감명과 여운을 제공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즐거
운 주말, 주일을 준비하는 토요일에 감격과 환희가 넘치는 하루가 되시길 간구합니다. 축복합니다. 샬롬!
【역 라마단의 기도】- 20일째
1.오늘은 부두땅의 모슬렘-베닌에 대해서입니다. 베닌은 서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 이웃하고있고 인구는 6백만명정도로 정령숭배와 모슬렘들이 대분입니다.
2.베닌에 있는 크리스천들이 그리스도를 선포하도록 동기부여해 주시길
3.베닌을 위해 기도하는 선교기관들에게 은혜와 지혜를 주시도록
4.그들종족- 아니,덴디,템,나고,풀라,등등을 위해
5.예수영화가 그곳에서도 상영되도록
오늘의 묵상 - 암울한 과거를 잊자
한 소년이 미국의 육군사관학교에 입학을 했다. 소년의 부모는 자녀교육에 도무지 관심이 없었다. 어머니는 무뚝뚝했고 아버지는 퉁명스러웠다. 왜소한 체격의 이 소년은 '비전 없는 아이'로 불렸다. 그의 부모는 아무런 생각 없이 소년을 사관학교에 입학을 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소년에겐 두 가지 인생철학이 있었다. "좋지 않은 과거는 깨끗하게 잊어버리자. 오늘 내게 맡겨진 일은 반드시 오늘 해내고야 만다." 소년은 남북전쟁 때 남다른 책임감과 용맹성을 발휘해 혁혁한 공을 세웠다. 밝은 성격은 그의 주변에 좋은 친구들이 많이 모일 수 있게 했다. 소년은 장성해 육군대장을 지냈다. 그리고 미국의 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그의 이름은 유리세스 그랜트. 만약 그가 고통스런 과거에 연연했다면 열등감과 증오의 늪에 빠져 방황했을 것이다. '책임감'과 '암울한 기억에 대한 망각'이 약점 많은 한 소년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인도 선교사로 유명한 윌리엄 캐리도 본래 구두수선공이었다. 그가 선교사로 헌신하고 있을 때 어떤 사람들이 "당신은 옛날에 구두를 만드는 사람에 불과했다"고 평가절 하했다. 그러나 그는 "아닙니다. 저는 구두를 만들지 못하고 겨우 수선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는 철저히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해 살던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