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번 미국엘 가봤지만 너무나도 거대한 나라 입니다. 우리 동창들도 미국에서 건강하게 잘 살기 를 간절히 바랍니다. 대부분 인터넷에서 따온 글이며, 부족하지만 잘 봐주시기 바랍니다.
미국의 서부개척당시에 서부각지에서 많은 금( gold) 이 채굴되어 국부의 기초가 될수있었다.
미국은 독립 당시 인구가 250만 명에 불과했지만, 250여 년의 역사를 ‘이민의 역사’라고 부를 만큼 끊임없이 외부로부터 사람들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 1820년대 인구 1000만 명을 넘어섰다. 1910년대 1억 명, 1960년대 2억 명, 그리고 2000년대 3억 명을 기록했다. 영토의 확장도 인상적이지만, 인구의 증가는 가히 폭발적이었다고 표현할 수 있다.
미국 독립선언(美國獨立宣言, United States Declaration of Independence)은
1776년 7월 4일 당시 영국의 식민지 상태에 있던 13개의 주가 서로 모여 필라델피아 인디펜던스 홀에서 독립을 선언한 사건을 일컬으며, 이 사건은 〈미국 독립선언문〉에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7월 4일을 독립기념일로 정해 축제를 열고 있다. 독립 선언이 있은 후 약 8년간에 걸친 싸움 끝에 1783년 9월 3일에 비로소 미국은 영국과 프랑스로부터 이른바 〈파리 조약〉을 거쳐 완전한 독립을 인정받게 되었다.
나폴레옹은 루이지애나를 기반으로 강력한 프랑스를 재건할 꿈을 꾸고 있었지만, 카리브 해의 아이티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는 데 골머리를 앓고 있었던 참이었고, 또한 미국의 성장으로 인해 그 꿈이 실현될 가능성은 점점 없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미국에서 온 먼로와 리빙스턴을 맞이하게 된 나폴레옹은 쓸데없는 땅을 팔아버리고 군비를 확보하자는 계산으로 그들에게 놀랄 만한 제안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루이지애나 전체를 1,500만 달러에 매각하겠다는 것이었다.
초록 색갈 부분이 루이지애나 지역으로 USD1500 만불에 매각된 지역임.
사실 그 누구도 전체 루이지애나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그것은 당시 미국 영토의 두 배나 되는 광대한 영토였고 제안을 들은 먼로와 리빙스턴은 고민에 빠진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폴레옹이 그런 말은 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나 의회 승인 없이 사절단이 단독으로 결정하여 영토를 매입해야 하는 상황이라 고민하던 그들은 결국 영토를 구입하기로 결심했다.
매매계약은 1803년 4월 30일 체결하였다. 사절단이 귀국후 국내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으나 루이지애나 매입은 의회로부터 승인되었다.
후에 밝혀진 바로, 당시의 루이지애나는 한반도의 10배나 되는 거대한 땅으로, 212만km2에 달한다. 매입 당시 1,500만 달러가 전체 땅을 위한 가격이었는데, 1km2당 단돈 7달러에 불과한 가격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한반도의 10배나 되는 엄청난 땅이 인류 역사상 가장 황당하게 팔려나갔고, 이 루이지애나를 계기로 본격적인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가 시작된다.
1848년 캘리포니아 금광의 발견은 일명 ‘골드러시’(Gold Rush)를 불러일으켰다. 사람들은 뉴욕에서 배를 타고 남아메리카를 돌아 태평양을 통해 캘리포니아로 향했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중남미에서 육지를 통해 태평양으로 나감으로써 여정을 줄였다. 금을 캐려는 사람들을 실은 배가 캘리포니아에 도착하면, 손님은 물론 선장부터 선원까지 금광으로 달려가 텅 빈 배들만 항구에 남았다고 전해진다.
남북전쟁(1861~1865)은 미국 역사 최대의 위기였다. 미국이 분열되지 않고 한 덩어리를 유지하는 것은 거대한 대륙 규모의 시장을 형성하는데 결정적 요인이기 때문이다. 이 전쟁은 내전이었지만, 근대적 무기를 대량 사용함으로써 피해 규모는 엄청났다. 하지만 남북전쟁이 종결되면서 미국이라는 최대 규모의 자본주의 국가를 형성하는 일이 가능해졌고 유럽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거대한 시장이 비로소 형성될 수 있었다.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고 하나의 문화가 지배하는 시장, 인종과 종교는 다르지만, 달러를 통해 교류하고 법의 지배라는 공통의 틀을 가진 세상이 신대륙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미국 100달러 지폐에 등장하는 벤저민 프랭클린. /
사진:위키피디아
베버가 자본주의 정신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 것이 벤저민 프랭클린(1706~1790)의 처세술이다.
미국 매사추세츠 청교도 문화를 대변하는 프랭클린은 젊은이들에게 “시간이 돈임을 잊지 말고” 또 “신용이 돈임을 잊지 말라”고 충고한다. 왜냐하면 “돈은 돈을 낳을 수 있으며 그 새끼가 또다시 번식해 나가기” 때문이다.
프랭클린에게 돈을 번다는 것은 ‘유능함의 표현’이며 ‘도덕의 실질적인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할 수 있다.
돈은 때때로 필요하지만, 기본적으로 더럽고, 돈을 추구하는 탐욕은 죄악으로 생각했던 유럽 기독교 전통에 비춰볼 때, 신대륙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윤리는 분명 혁신적이다. 이런 특징은 유교나 불교, 이슬람 등 다른 문화에 비춰보더라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초기부터 돈을 윤리적 삶의 보상으로 판단하는 파격적인 생각을 인류에 선보였던 셈이다.
인류는 20세기 전반에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렀다. 그리고 이 비참한 경험은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으로 부상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이전의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채무가 많은 나라였다. 자본이 부족했기 때문에 영국이나 프랑스 등 유럽으로부터 돈을 빌려와 산업에 투자했던 것이다. 그러나 전쟁을 치르면서 이런 상황은 완전히 역전돼 미국은 세계 최대의 채권국으로 발돋움했다. 이제 미국은 북아메리카 대륙의 신생 국가에서 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의 선진국들에 큰돈을 빌려주는 경제대국이 된 것이다.
미국의 군사력을 상징하는 핵 항공모함 USS 엔터프라이즈호. / 사진:위키피디아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페이스북의 멘로 파크 캠퍼스. / 사진:위키피디아
대량 생산, 대량 소비의 시대를 연 포드사의 자동차 모델 T. / 사진:위키피디아
세계 금융의 중심지로 통하는 뉴욕 맨해튼 마천루 숲 / 사진:위키피디아
2020년 3 월 기준 전세계의 주식시가총액은 약 90 조 달러이며, 미국이 42 % ( 약 37 조 달러) 중국이 10 % ( 약 9 조 달러)
대한민국은 1.5 % 약 2 조 달러이고 옆에있는 일본은 4.5 % ( 6 조 달러) 임.
여기까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