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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듣게 될까 언젠 가는 바람의 노래를
세월 가면 그때는 알게 될까 꽃이 지는 이유를
나를 떠난 사람들과 만나게 될 또 다른 사람들
스쳐가는 인연과 그리움은 어느 곳으로 가는가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 수가 없네 내가 아는 건 살아가는 방법뿐이야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이젠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흠~~~
산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는 산막! 낙엽송 원목을 위, 아래, 측면을 면 도리 하여 우물정자 형식을 빌려 세운 통나무 집이다. 지금 당장 해체한다 하여도 80% 정도는 자연으로 되돌릴 수 있는 형편의 집이다. 남은 20%도 제대로 선별만 잘한다면 재활용도 가능하다는 것이 산장지기의 생각이다. 지금도 늦가을 잔형을 잃지 않고 있는 최근 사진을 올려 본다면 아래와 같은 모습이다.
산막에서 가장 끈질긴 정체성을 소유한 나무는 단풍나무이다. 엄동이 몰려와 산허리를 휘감아 늘 푸른 사철나무를 제외한 활엽수들은 흙으로 돌아가고 없는데 단풍나무들은 지금 가을빛을 놓지 않고 버티는 중이다. 대단한 지구력이다. 하긴 단풍나무처럼 재질이 강한 녀석도 없다. 얼마나 단단하면 사이클 원형 경기장 트랙 바닥재로 사용할 수 있는 나무는 오로지 단풍나무 밖에 없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88 올림픽 당시 사이클 원형 경기장 바닥공사를 접하면서 조직위원회 시설담당부서에서 작성한 제안서를 보면서 얻은 지식이다. 햇빛, 비, 바람에 강한 녀석이라 뒤틀림이나 변형이 전혀 없어 노천 경기장 바닥재로 그 이상이 없다는 것이다. 당시 아프리카에서 전량 공수받은 자재로 기억하고 있다. 이러한 잔재 의식의 원인으로 산막에 심어 놓은 것은 아니다. 해충에도 강하고 자연조건에도 빈틈이 거의 없는 나무이면서도 기둥이 매끈하고 잎사귀는 가을빛을 제대로 표현해 주는 매력에 반해 심어 두었더니 번식력이 좋아 개체수가 저절로 늘어난 것이다.
미국 단편 중에 단편을 많이 집필하였던 작가 오헨리의 유명한 마지막 잎새라는 글에서 주인공 못지않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담쟁이 잎이었다. 자연적인 풍화를 막으려는 의도와 여름 실내 온도를 최소한 자연적으로 조절할 목적으로 심어 놓은 담쟁이가 십여 년 지나자 그 성숙은 통나무 외벽을 봄에서 가을까지 근사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좀처럼 마지막 잎새를 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단풍이 들면 얼마 후 몽땅 한 번에 져버리고 빈 가지에 까만 열매들만 달려 있는 것이 담쟁이들에 모습이다. 대체로 단풍도 제일 먼저 드는 것 같다. 담쟁이 잎이 다 떨어져 나간 후 빈 가지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열매들도 곰삭으면 일시에 떨어지고 잎도 잎과 가지로 분리되어 바람이 부는 대로 이리저리 뒹굴다 홀연하게 사라져 버리는데 잎가지는 주변에 널려 오래 기간 동안 남아 지저분한 모습으로 남는다. 쓰레받기를 이용하여 한 곳으로 모아두려 빗자루를 이용하여도 잘 쓸어지지 않는 것이 담쟁이 잎가지다.
아직도 개인적으로 는 마음 안에 금년 봄기운을 감싸고 있는데 황량한 겨울에 휩싸여 있는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그렇다고 순환의 섭리를 거부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리움이란 것은 꼭 인간에 극한 된 것만은 아니다. 사물이나 계절의 감각까지도 그리움을 곧잘 채우고 살아온 것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스무 살을 갓 넘긴 재학 청춘의 시절 반은 정진에 갇혀 있었고 그 반은 방황의 시기였던 것 같은 시절이었다. 제대로 자신의 길을 가지 못하고 있는 모습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던 시기였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맑고 투명한 우정을 나누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무엇인가 공유할 것이 많이 존재하는 사이가 되면 급격하게 친해질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심리다. 우정의 본말은 사실 공유라는 본질을 갖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는 것 같다. 공유는 서로를 편안하게 해주는 마력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놓여 있는 것들은 너무 다양하고 그 속 주류인 감정에 폭과 깊이를 자신도 모르는 경우가 당연한 일이기에 지레 겁을 먹고 공유라는 개념으로 사상누각을 세우는 감정이 바로 사랑이 될 수도 우정이 될 수도 있는 것도 아닌가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그래도 사랑과 우정만큼 고귀한 마음 나눔도 없는 것 같다. 이 두 가지 속성에는 그리움이 자주 등장하게 된다. 특히 두 사람의 감정의 일치를 이루게 되면 들판 검불에 불이 붙은 것처럼 활활 타오르고 분명 재가 남을 것 같지 않은데도 타고 남은 재는 다시 검불이 되고 따라선 재가 다시 거목을 만드는 것도 사랑과 우정의 힘인 것이다. 만약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랑과 우정의 존재가 사라진다면 얼마나 삭막할까? 아니 아니 그것은 존재성을 잃는 참혹한 현실이 될 것이다. 이것은 비단 사람들에 극한 된 일이 아니다. 생명 이어가는 것들에게는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일인 것이다. 우리는 보통 인간과 인간 사이에 사랑과 우정을 배반한 일을 경험하게 되면 절망을 불러오게 된다.
가치가 큰 만큼 잃어버리는 현실을 경험하게 되면 큰 상실감은 무엇으로도 치유가 안 되는 절망에 빠지게 되지만 그 틈에서 조금씩 빠져나오게 하는 것은 기적이 아니라 스스로 감내하며 극복의 시간을 갖는 것 밖에 없다. 이것은 분명 시간이 주는 묘약이 아닌가 한다. 성급한 판단과 결정이 화를 부르는 것처럼 기다림의 시간은 평정과 자유를 얻어가는 시간인 것이다. 갈수록 엄동의 시간이 깊어져 가고 봄, 여름, 가을에서 볼 수 없었던 냉혹한 기후에 지배받겠지만 분명한 것은 시간이 겨울이 데려갈 것이고 그 끝에 서면 봄을 분명 만날 것이다. 그리움이라 함은 시간의 보약 같은 존재다!
밤새 바람이 모질게 불었다. 지붕을 스치고 달아나는 바람소리가 심상치 않아 커튼을 들어 올리고 외등을 켠 밝힌 후 유리창 너머를 한참 관찰하고 서 있었다. 난분분하는 눈이 유리창을 적시고 있었다. 아직도 단풍나무 매달려 겨울을 희롱하는 단풍잎이 겨울바람에 진절머리를 세차게 흔들고 있었다. 내리는 눈 낌새를 유심히 보니 쌓여 적설까지 논 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바람이 분다는 것은 그만큼 기온을 떨어드리는 징조라는 생각 깊어져 만개된 채 개나리 가지에 걸려 있는 노란 개나리 꽃들이 근심을 불러왔다. 저렇게 날씨가 부리는 재주에 놀아난 꽃들은 때가 되어 다시 필 때 생기가 없이 피다 오래 버티지 못하고 쉽게 지는 것을 경험한 적이 많았는데 산수유나무를 외워 싸고 있는 개나리는 금년 산막에서 피는 꽃 중에서 가장 뒤처질 것 같다는 우려가 근심을 불러온 것이다. 사람들도 성장해 나가면서 때가 있는 것처럼 온갖 사물들도 각자 지니고 있는 때가 있어 그때를 잘 맞추며 성장하는 것은 생태적으로 건강하게 다가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만히 커튼을 다시 내려놓고 창가에서 물러선 후 침대로 가 누웠다 지붕을 흩고 지나가는 겨울바람에 반사적으로 이불깃을 세워 목까지 끌어올린 후 손을 뻗어 소등하고 잠을 부르기 시작하였다. 지붕 마감재 아스팔트 싱글을 흩고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용마루를 넘어 남쪽으로 사라지자 이어서 다시 반복해서 몰려오는 바람소리가 아주 꼭 남해 보길도 외송리 포구 자갈밭 사이를 드나들면 내는 파도소리에 리듬이 닮았다는 생각을 할 무렵 그 이상 기억을 못 하는 것을 보아 바로 그때 잠결 사이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것 같다.
5시 45분 즈음 여지없이 잠에서 깨어 장방형 알약 하나를 손에 들고 유리 커피 포드 앞에 서서 물과 함께 털어 넣었다. 이 행위가 바로 나의 하루 일과를 알리는 시그널이 된지도 한 삼 년이 지나온 것 같다. 슬쩍 혈압계를 작동시켜 체크해 보니 정상 수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보온 재깃과 바지를 입은 후 털모자를 쓰고 반려견을 데리고 뜰로 나왔다. 눈은 자취를 감추었고 바람도 잦아들었다. 파이는 잔디 곳곳을 뛰어다니다 어디런가 사라졌다. 볼일을 보러 간 모양이다. 잠시 성모님과 성 프란치스코 사부님을 모셔 놓은 성역으로 다가갔다. 실외에 오래도록 계시다 보니 이끼를 비롯하여 오염물질이 덕지덕지 붙어 세신을 해 드려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분리하여 실내로 모시고와 오염물질을 제거해 보니 60% 정도만 세신 된 후 이후 진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무래도 오염물질을 쉽게 제거해 주는 비방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세계인을 열광시키는 지구의 축제 월드컵, 우리나라 8강 진출 경기가 새벽 4시부터 중계된다는 방송국 공지가 있었다. 시청하려면 나에 시간표를 재편성해 두어야 한다. 재편하여 선택한 시간에 맞춰 시청하면서 설마 하는 마음을 앞세우고 스크린을 녹일 집중력을 갖고 시청하기 시작하였다. 전반에 소나 기와 같은 4골을 잃은 대표팀!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 시작하였다. 하필 브라질을 만나다니 도전정신과 강팀과의 경기를 경험 삼아 실력을 배양하는 기회로 삼는 것으로 만족하자 하고 스스로 위로하면서도 축구공은 둥글지 않은가? 어떻게 차느냐에 따라 그물망을 흔들 것이고 그러한 능력이 있는 것이 우리 대표팀이라는 긍지를 갖고 시청을 이어가려 하자 순간 적으로 골이 터졌다. 그것도 강력한 중거리 슛으로 그러나 그뿐이었다. 동안 여러 가지 감정을 섞으며 응원할 수 있도록 해 준 대표팀과 감독, 수석 코치들에게 감사함을 전하며 자투리 시간이라도 잠을 챙기려 새우잠에 들었다. 가수면 상태에서 동창이 밝아오는 낌새와 함께 아주 오래전 추녀 끝에 매달아 놓은 풍경소리가 간결한 맑은 소리로 들려왔다. 풍경소리 파문처럼 마음을 맑게 물들게 하는 소리도 없는 것 같다. 풍경소리는 뭔지 모르게 마음을 소리향기로 가득 채워주는 매력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늘 깨워 있어야 한다는 수도승의 맑음 생각과 이념을 대변하는 소리라 그런지 듣는 것만으로도 정화된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개인적으로 푸른 창공에 울려 퍼지는 그 맑은 소리야 말로 자유를 향한 의지와 소신을 담은 울림이라 늘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무한대의 하늘에 수놓는 자유로운 용기가 감동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는 비상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 새들은 욕심껏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손이 없기 때문에, 끝없이 욕심을 내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리고 입 모양도 먹이를 한 알 이상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기능이 없어 작은 먹이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진화되어 자유롭게 날 수 있어 언제 어디서나 비상이 가능한 것이다. 늘 한 모금으로 만족하니 새들이 지니고 있는 각혼 또한 가벼울 수밖에 없어 쓸모없는 것은 선택하지 않는다. 자유로운 비상을 하려면 욕심이 없어야 한다. 삶에 방식이 단순, 무식하고 겸손하면 저절로 늘 가난하게 된다. 쌓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면서 사는 것처럼 자유로운 삶은 없는 것 같다. 큰 창으로 햇살이 스며들기 시작하면 밤새 가려 놓은 암막 같은 커튼 거두고 나면 그대로 햇살이 거실 안 깊숙이 스며들어 따듯함이 느껴지고 실내기 밝아져 별도의 인공 등이 없어도 된다. 그때 창가에 앉아 해바라기라도 하면 빛의 소중함을 저절로 깨닫게 된다. 자연 채광으로부터 받는 에너지가 바로 생명이다. 빛은 생명의 출발점이며 성장의 선이 되는 것이다. 일정한 기간 성장을 통하여 생애에 중요한 시간을 보내다. 기운이 조금씩 사라지면서 ( 사실을 단박에 느낄 정도로 진행되지 않는다.) 그 증거를 조금씩 남겨 놓는다. 그것도 일단 신체 곳곳에 각인시켜 놓는 것이다. 보는 것을 줄이려는 듯 시각과 관련된 조절 기능을 느려지게 하고 듣는 기운도 조금씩 빼앗아 가고 기억과 연상의 연결고리도 흩어지게 하면서 듣는 청각 센서도 힘을 빼앗아 버려 활동 에너지를 점차 감소시켜 가는 것이 늙음의 정체다. 모든 것이 어눌해진 신체를 상대에게 알려 주려는 의도에서 사람 신체에서 가장 잘 보이는 머리카락을 백발로 만들어 경계 표시로 삼토록 하는 배려를 늙은이에게 준 선물이다. 걷는 일보다 정지되어 있는 시간이 많고 행동하는 일보다 쉬는 시간이 점차 늘어가면서 빛의 에너지를 접근하는 시간도 줄어들면서 퇴락의 뒤안길을 걷게 되는 것이 바로 일생에 끝인 것이다.
밝은 에너지가 가득 나에 전신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낄 무렵 어두워지더니 먹구름이 몰려왔다. 이어서 함박눈이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하늘을 살피니 한동안 쉬지 않고 올 분위기였다. 밖으로 나와 눈삽과 빗자루를 준비하여 주목나무 아래에 세워두었다. 산막으로 다가서는 길은 경사도가 있어 대비하지 않으면 차량 동선이 사라진다. 단 남향받이 지역이라 햇살만 죽지 않고 비추어 준다면 쉽게 녹아 사라지지만 눈구름이 많고 온도가 영하권이라면 즉시 얼어버려 제설작업을 즉시 해두어야 차량 동선을 확보할 수 있는 지역이 바로 산막의 겨울 환경이다. 눈이 많이 쌓여 오늘 산 오름은 쉬기로 하였다. 대신 빗자루를 들고 숲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는 산막 부근 제설작업을 하기로 하고 밖으로 나오자 누군가 1차로 쓸어 놓은 흔적이 보였다. 그 위로 다시 쌓인 것이다. 저 아래 길을 유심히 살피자 연신 대 비를 이용하여 길을 쓸어내는 사람이 보였다. 이 마을 원주민이면서 연장자에 속하는 어른이시다. 길을 쓸어내는 빗자루는 누가 뭐래도 대 비만큼 좋은 빗자루는 없다. 내가 들고 나온 빗자루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서양식 사각형 빗자루라 힘만 들지 효용성이 무척 떨어지는 비인지라 다가 가 빗자루를 빌려 쓸어내면서 산막 위로 오르기 시작하였다. 금세 땀으로 등줄기가 범벅이 된다. 그렇게 산막 위 길까지 쓸어 내었더니 저장용 배추 두 포기를 주셨다. 동안 사고 후 수술 등 안부를 챙겨주던 어른이시다. 고맙다는 인사를 나눈 후 집으로 돌아와 배춧잎을 뜯어내어 배춧국을 만들어 점심을 챙겼다. 맑은 장국을 만들었더니 오늘 같은 날 알맞은 국거리가 되었다. 점심 후 일기를 점검해 보니 내일 또 눈 소식이 있었다. 내일도 제설작업을 하려면 면으로 나가 대비를 챙겨야 할 것 같다. 적설 초기에는 대비가 좋고 적설 양이 좀 많아지면 눈삽이나 널판이 제격이다.
오후 창고로 가 트리용품 저장 가방을 찾아 점검해 보니 줄 전등이 메인 장치와 끊어져 점등이 쉽지 않었다. 주목에 설치하기로 한 계획을 수정한 후 장식물만 챙겨 성모님 동산 일정 부분을 감싸고 중형 인조 트리용 나무를 이용하여 장식하기로 결정하였다. 내일 다시 눈이 내린 후에 완성할 계획이다. 저녁을 챙긴 후 카톡이 소리를 내며 울었다.
코로나 또 걸린 듯해요 의양성이라는데 많이 아픈 거 보니 확실할 것 같아요 재검 들어갔다니 밤늦게 결과 나올 듯요. 세베리노 님은 코로나 안 걸리셨어서 더 위험하니 산막에 더 머무르세요 ㅜㅜ
제노가 보내온 알림이었다. 금요일 즈음 약 처방을 받을 계획이 있어 귀경할 계획이었는데 내일 읍내 병원으로 가 처방받아 복용하면서 귀경을 늦출 계획이다. 그나저나 걱정이다. 동안 잘 피하며 왔는데 많이 아프다 하니 변종에 걸려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즉시 위로의 메시지를 보낸 후 결과가 나오면 알려 달라고 부탁하였더니 양성 나왔네요 ㅜㅜ 하고 다시 연락이 왔다. 걱정을 하면서 별 방법이 없으니 처방받고 잘 복용하고 먹는 것도 잘 챙기라는 당부를 남긴 메시지만 보냈다. 다음 주 내네에도 산막 생활을 이어가야 할 것 같다.
스페인과 모로코 축구경기를 시청하느냐 밤을 새우며 보내는 중이다. 가끔 눈 소식을 점검하느냐 창밖을 관찰하면서 시청 중이다. 목측으로 적설량을 가눔 하니 싸락눈이 2.5cm 정도 쌓여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계속 내리는 것을 보아 그 이상의 적설량을 보일 것 같다. 눈이 오는 밤은 비가 오며 소리를 내는 것과 달리 고요한 편이다. 싸락눈이나 눈 내리는 현장에서나 미세하게 경청할 수도 있지만 건설이나 습설을 포함하여 소리가 없는 것이 특징인데 그것은 적설이 소음을 받아먹기 때문이다.
경기는 예상밖에 흐름을 이어 가고 있는 중이다. 쉽게 끝날 것이라 예상하고 보기 시작한 일인데 연장전까지 봐야 하는 덧에 걸렸다. 이왕 이렇게 된 것 끝을 봐야 할 것 같아 간간히 실내 근력운동을 해가며 시청 중이다. 끝나면 새벽 3시경이 될 것 같은데 선택에 후회는 없다. 경기를 보면서 내일 꼭 해야 할 일들을 적어 보았다. 제설작업, 약 처방전 확보, 대나무 가지로 만든 빗자루 구매, 약간의 부식 구매 등이다. 밤 사이 내린 눈, 오늘 날씨가 포근하여 양지바른 쪽은 전부 녹아버렸다. 음지 쪽만 약간에 눈이 쌓여 있지만 지금 기온의 추세라면 밤이 몰려오기 전에 전부 녹을 것 같다. 참 다행스럽다. 제대로 제설작업을 하려면 1.5km 구간을 인력으로 해야 하는데 그러한 수고에서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