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운(韓龍雲)
쑥이 삼밭에 나니 받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곧고,
흰모래가 진흙 속에 있으니 더불어 모두 검어진다.
蓬生麻中 不扶自直
白沙在泥 與之皆黑
이라 한 것은 증자(曾子)의 말이다.
쑥대는 외로이 나면 굽기도 하고 비뚤어지기도 하지마는 밀립(密立)한 마중(麻中)에 나면 주위의 영향을 받아서 자연히 곧아지고, 백사(白沙)는 본질(本質)이 흰 것이나 이토(泥土: 진흙) 중에 들어가면 검어지지 아니할 수가 없다는 말인데, 이것은 우교(友交)에 대하여 비유(譬喩)한 말이니, 사람도 선인을 사귀면 선하여지고, 악인을 사귀면 악하여진다는 뜻이다.
사람은 어려서는 더욱 그러하거니와, 성장하여서도 모방성과 동화성이 많은 것이다. 그리하여 어려서는 가정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유아는 독립한 의식이 완전히 발달되지 못하여서, 보는 대로 하고 듣는 대로 하는 까닭에, 그와 언제든지 접촉하고 있는 가족의 언동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유아는 독립한 의식이 완전히 발달되지 못하여서, 보는 대로 하고 듣는 대로 하는 까닭에, 그와 언제든지 접촉하고 있는 가족의 언동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맹모(孟母)의 삼천지교(三遷之敎)라는 것도 그것이다. 성장하여서도 무엇보다도 우교가 중요하다. 우교는 학교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학교 교육은 공식적이요 시간적이며, 과정에 있어서도 덕육(德育)보다 지육(智育)·체육(體育)이 많아서 인격적으로 배우기에는 너무도 빈약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붕우(朋友)라는 것은 언제든지 상종하게 되는 것이다. 예의를 갖추는 회석(會席)이나 조인(稠人) 중에서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거상잡거(居常雜居)의 사석에서가 더욱 자주 만나게 되느니, 기탄없이 압근(狎近)하기가 쉬워서 심상한 언동에도 그 영향을 받기가 쉬운 것이다.
금객기붕(琴客碁朋)을 사귀면 한일월(閒日月)을 보내기가 쉽고, 주도(酒徒)를 추축(追逐)하면 호리건곤(壺裡乾坤)에 들기 쉬운 것이고, 국사(國士)를 상종하면 경국제세(經國制世)를 논의하게 되는 것이다. 어찌 우교를 삼가지 아니하리요.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른며,
천하 만물은 각기 그 유(類)를 따른다.
雲從龍 風從虎 天下之物 各從其類
이는 <주역(周易)>에 있는 말이다. 이 말이 자연계에 있어서는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지마는 사람은 그보다도 유를 따를 뿐 아니라 유를 선택할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악인과 범부는 언제까지나 그러한 것이 아니라, 악을 개(改)하여 선을 작(作)할 수도 있고, 범(凡)을 혁(革)하여 성(聖)을 성(成)할 수도 있는 까닭이다. 사람은 자기의 단처를 발견할수록 그 동류(同類)를 따르지 말고 사우(師友)를 택하여 사귈 것이다.
사람은 원(猿)으로 진화된 것이라 하느니, 개악작선(改惡作善)하고 혁법성성(革凡成聖)할 가능성은 유전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출처 : 한용운 <성북영언(城北零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