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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2장 6-16절. 육에 속한 자와 신령한 자
368장 -주 예수여 은혜를 내려주사 곧 충만케 하옵소서. 이 주리고 목 마른 나의 맘에 주 성령을 부으소서. 주 예수여 충만한 은혜 내 영혼에 부으소서. 주 예수만 나의 힘 되고, 내 만족함 됩니다.
1. 서언
지난 주에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신앙이 처음 믿기 시작할 때는 성령의 능력에 의지해서 시작했으나, 중간에 세속적 지혜를 추구하는 신앙으로 변질된 것을 보았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이 세상적 지혜를 추구하지 말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지혜를 추구하는 신령한 자들이 되기를 권면합니다.
그런데, 육에 속한 사람 즉 불신자는 세상적 지혜만 귀하게 보고,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미련하게 생각하여 용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신령한 일은 거듭난 사람만이 깨달을 수 있고, 육에 속한 불신자는 신령한 세계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 교인들에게 처음 신앙을 회복하고, 사람 중심의 인본주의적이고 변질된 신앙을 바로 잡으라고 권면하신 것입니다.
2. 분해
고전 2:6-16. 성령으로부터 온 신령한 지혜와 육신의 정욕에서 나온 세속적인 지혜
세상적 지혜, 관원의 지혜 =예수님을 죽이는 지혜(8절)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9), 성령이 계시하신 것(10), 은혜로 주신 것(12)
┌ 육에 속한 사람(14) - 불신자
├ 신령한 자(15) - 성령님 인도 따라, 말씀 따라 사는 성도
└ 육신에 속한 자(3:1)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 인간 중심으로 분쟁하는 성도
3. 해설
6절.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New American Standard Bible: Yet we do speak wisdom among those who are mature; a wisdom, however, not of this age nor of the rulers of this age, who are passing away;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Σοφίαν δὲ λαλοῦμεν ἐν τοῖς τελείοις,
wisdom however we speak among the mature
‘말하노니’(λαλοῦμεν)는 현재형입니다(we speak).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σοφίαν δὲ οὐ τοῦ αἰῶνος τούτου
wisdom however not the age of this
또 이 세상의---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οὐδὲ τῶν ἀρχόντων τοῦ αἰῶνος τούτου
nor of the rulers of of the age this
없어질
τῶν καταργουμένων·
who (are) coming to naught
‘없어질’(καταργουμένων)은 현재분사로서(coming to naught) ‘없어지고 있는’이란 뜻입니다.
1. 바울 사도는 앞에서는(2:1-5) 세상적 지혜를 추구하는 어리석음을 말했으나, 성숙한 신앙인들에게 참된 지혜(성령으로부터 온 지혜)를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온전한 자들’이란 온전히 주님만을 의지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즉,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을 가리키며, 인간을 중심으로 파당 경쟁을 하는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고전 3:1)와 대조됩니다.
2.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들의 지혜가 아니요
이것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총독 빌라도나 유대 대제사장들의 세속적 지혜를 가리킵니다(8절 참조).
이 ‘관원의 지혜’란 공명정대한 진리의 길을 가는 지혜가 아니고, 삼국지 등에 나오는 세속적, 정략적, 권모술수적 지혜를 말합니다.
대제사장과 빌라도가 예수님을 바로 알아보았더라면, 자기의 세상적 지위를 내어놓고 주님을 믿었을 것입니다.
고대 알렉산드리아 신학파의 대표자인 오리겐(Origen) 같은 신학자들은 ‘관원’(αρχοων)을 공중권세 잡은 마귀로 해석해서, 아볼로파의 철학적 지혜를 장차 심판받을 마귀의 지혜라고 해석했습니다.
어떤 성도들은 오랜 교회 생활을 하면서 타성에 젖어, 인간적 요령으로써 신앙생활을 하려는 경향도 있습니다.
이러한 신앙은 시련의 풍랑이 불어닥치면 쓰러질 수밖에 없는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습니다.
7절.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we speak God's wisdom in a mystery, the hidden wisdom which God predestined before the ages to our glory;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ἀλλὰ λαλοῦμεν Θεοῦ σοφίαν ἐν μυστηρίῳ,
but we speak of God wisdom in mystery
직역하면 ‘그러나 우리는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한다’고 했습니다.
‘말한다’(λαλοῦμεν)는 현재형입니다(we speak)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τὴν ἀποκεκρυμμένην,
the having been hidden
직역하면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이 지혜)’란 뜻입니다.
‘감추어졌던’(ἀποκεκρυμμένην)은 완료분사 수동태로서(having been hidden) 이미 과거에 감추어져 있던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ἣν προώρισεν ὁ Θεὸς πρὸ τῶν αἰώνων εἰς δόξαν ἡμῶν·
which predestined the God before the ages for glory of us
‘예정하신’(προώρισεν)은 부정과거로서(predestined) 하나님께서 과거에 분명히 확정적으로 예정하신 것을 가리킵니다.
1.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 곧 감추었던 것
여기서 은밀(μυστηριον:mystery, 비밀)이란 창조시부터 예수님 초림시까지 비밀스럽게 간직되어졌던 ‘대속적 구원 계시’를 말합니다.
이 대속적 구원 계시가 예수님 이후 복음으로써 널리 알리어졌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의 복음 전파를 통해 고린도 교인들이 신앙을 갖게 된 것은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하나님의 지혜를 알게 된 것입니다.
2. 감추었던 것-구원 계시
인간의 선한 노력을 쌓아서, 그 적선으로써 천국 구원을 받으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오직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천국 구원을 얻습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에게는 미련하게 들리는 말이고,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 믿게 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3.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이 만세 전에 예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안전합니다.
8절.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 wisdom which none of the rulers of this age has understood; for if they had understood it they would not have crucified the Lord of glory;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ἣν οὐδεὶς τῶν ἀρχόντων τοῦ αἰῶνος τούτου ἔγνωκεν·
which none of the rulers of the age of this has understood
‘알지 못하였나니’에서 동사(ἔγνωκεν)는 완료형(has understood)으로서 그때까지 알지 못한 것을 가리킵니다.
만일 알았더라면
εἰ γὰρ ἔγνωσαν,
if for they had understood
‘알았더라면’(ἔγνωσαν)은 부정과거로서(they had understood) 꼭 안 사실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가정법이기 때문에 실상은 결코 알지 못한 것을 가리킵니다.
이 문장에는 ‘왜냐하면’(γὰρ: for)이란 접속사가 있어서 직역하면 ‘왜냐하면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뜻입니다.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οὐκ ἂν τὸν Κύριον τῆς δόξης ἐσταύρωσαν·
not anyhow the Lord of the glory they would have crucified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에서 동사(ἐσταύρωσαν)는 부정과거인데(they would have crucified) 가정법 문장(εἰ: if)이기 때문에, 실상은 확실히 십자가에 못 박은 역사적인 사실을 가리킵니다.
1. 이 세상의 관원은 하나님의 지혜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안나스와 가야바 같은 대제사장들이나 산헤드린 공회원인 사울(바울)도 하나님의 지혜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정죄하고 스데반을 죽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는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에게 주어집니다(마 11:26).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고 알고 고백한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알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마 16:16-17).
9절.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Holman Christian Standard Bible: But as it is written: What eye did not see and ear did not hear, and what never entered the human mind-- God prepared this for those who love Him
기록된 바-- 함과 같으니라
ἀλλὰ καθὼς γέγραπται
but as it has been written
직역하면 ‘그러나 그것은 (다음과 같이) 기록된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기록된’(γέγραπται)은 완료 수동태로서(it has been written) ‘그것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눈으로 보지 못하고
Ἃ ὀφθαλμὸς οὐκ εἶδεν
what eye not has seen
‘보지 못했다’에서 동사(εἶδεν)는 부정과거로서(has seen) 결코 보지 못한 것을 가리킵니다.
귀로 듣지 못하고
καὶ οὖς οὐκ ἤκουσεν
and eye not has heard
직역하면 ‘귀가 듣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듣지 못했다’에서 동사(ἤκουσεν)는 부정과거로서(has heard) 결코 듣지 못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καὶ ἐπὶ καρδίαν ἀνθρώπου οὐκ ἀνέβη,
and into heart of man not it has entered
직역하면 ‘사람의 마음에 그것이 들어가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들어가지 못했다’에서 동사(ἀνέβη)는 부정과거로서(it has entered) 결코 들어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ὅσα ἡτοίμασεν ὁ Θεὸς τοῖς ἀγαπῶσιν αὐτόν.
what has prepared the God for those loving Him
‘사랑하는’(ἀγαπῶσιν)은 현재분사로서(loving) ‘현재 사랑하고 있는’이란 뜻입니다.
‘예비하신’(ἡτοίμασεν)은 부정과거로서(has prepared) 확실하게 예비하신 과거의 사실을 가리킵니다.
1. ‘기록된 바’란 이사야 64장 4절과 65장 17절을 자유롭게 인용한 것입니다.
즉 성도들이 받은 하나님의 지혜는 불신자들이 볼 수도, 들을 수도, 생각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지혜는 불신자의 지혜를 초월한 성령으로 말미암는 신령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10절.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to us God revealed them through the Spirit; for the Spirit searches all things, even the depths of God.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ἡμῖν γὰρ ἀπεκάλυψεν ὁ Θεὸς διὰ τοῦ Πνεύματος·
to us for has revealed the God through the Spirit
직역하면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보이셨으니’(ἀπεκάλυψεν)는 부정과거로서(has revealed) 과거에 분명히 보이시고 계시하신 것을 가리킵니다.
성령은 모든 것 --통달하시느니라.
τὸ γὰρ Πνεῦμα πάντα ἐραυνᾷ,
the for Spirit all searches
직역하면 ‘왜냐하면 성령은 모든 것을 통달하시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통달하시느니라’(ἐραυνᾷ)는 현재형으로서(searches) 현재도 통달하고 계시는 것을 가리키고, 원형( ἐρευνάω)은 ‘열심히 살핀다, 조사한다, 살펴서 아신다’(search diligently, examine, seek to know)는 뜻입니다.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καὶ τὰ βάθη τοῦ Θεοῦ.
even the depths of the God
1.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즉 선지자와 사도들에게 성령의 감동을 주심으로써 이 비밀스러운 복음, 즉 대속적 구원계시를 우리에게 알게 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깊은 구원 경륜(despensation, οικονομια)도 통달하시고 계시해 주셨습니다.
11절.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who among men knows the thoughts of a man except the spirit of the man which is in him? Even so the thoughts of God no one knows except the Spirit of God.
사람의 일을--- 누가 알리요
τίς γὰρ οἶδεν ἀνθρώπων τὰ τοῦ ἀνθρώπου
who for has known among men the things of man
직역하면 ‘사람들 가운데서 사람의 일들을 누가 알리요?’란 뜻입니다.
‘알리요’(οἶδεν)는 완료형으로서(has known)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εἰ μὴ τὸ πνεῦμα τοῦ ἀνθρώπου τὸ ἐν αὐτῷ;
if not the spirit of man that within him?
직역하면 ‘만일 그 안에 있는 사람의 영이 아니라면’이란 뜻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οὕτως καὶ τὰ τοῦ Θεοῦ οὐδεὶς ἔγνωκεν
so also the things of the God no one has known
‘알지 못하느니라’에서 동사(ἔγνωκεν)는 완료형으로서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영 외에는
εἰ μὴ τὸ Πνεῦμα τοῦ Θεοῦ.
if not the Spirit of the God
직역하면 ‘만일 하나님의 영이 아니시라면’이란 뜻입니다.
1. 돼지가 사람의 일(사정)을 모르듯이, 하나님의 일(사정)도 성령님만이 아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 기도하고 성령님의 조명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12절.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ow we have received, not the spirit of the world, but the Spirit who is from God, so that we may know the things freely given to us by God,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ἡμεῖς δὲ οὐ τὸ πνεῦμα τοῦ κόσμου ἐλάβομεν
we now not the spirit of the world we received
‘우리가’(ἡμεῖς: we)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받지 아니 하고’에서 동사(ἐλάβομεν)는 부정과거로서(received) 결코 받지 않은 것을 가리킵니다.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ἀλλὰ τὸ πνεῦμα τὸ ἐκ τοῦ Θεοῦ,
but the Spirit who from the God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ἵνα εἰδῶμεν τὰ ὑπὸ τοῦ Θεοῦ χαρισθέντα ἡμῖν·
that we may have known the things from the God having been granted to us
‘은혜로 주신’(χαρισθέντα)은 부정과거 분사 수동태로서(having been granted) 직역하면 ‘(단번에) 우리에게 주어진’이란 뜻입니다.
‘알게 하려 하심이라’(εἰδῶμεν)는 완료 가정법 동사로서(we may have known) ‘우리가 알게 하려는 것이다’란 뜻입니다.
1. 참된 종교인(신앙인)이 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영’을 받음으로써 시작됩니다.
즉, 귀신의 영을 받은 자는 무당종교인이 되고, 하나님의 영(성령)을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처음 그리스도인이 된 것도 성령을 받음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도 성령으로 말미암아 처음 신앙생활이 시작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갈 3:3-5).
13절.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hich things we also speak, not in words taught by human wisdom, but in those taught by the Spirit, combining spiritual thoughts with spiritual words.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ἃ καὶ λαλοῦμεν
which also we speak
‘말하거니와’(λαλοῦμεν)는 현재형입니다(we speak).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οὐκ ἐν διδακτοῖς ἀνθρωπίνης σοφίας λόγοις,
not in taught of human wisdom word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ἀλλ’ ἐν διδακτοῖς Πνεύματος,
but in taught of Spirit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πνευματικοῖς πνευματικὰ συνκρίνοντες.
by spiritual (means) spiritual things explaining
‘분별하느니라’(συνκρίνοντες)는 현재분사이고(communicating) 원형(συγκρίνω)은 ‘함께’(σύν)와 ‘판단하다’(κρίνω)의 합성어로서, ‘결합하다, 묶다, 비교하다, 해석하다, 설명하다’(join together, combine, compare, interpret, explain)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1. 우리가 이 은총의 선물들(12절: 은혜로 주신 것들)을 가르치고 전도하는 데 있어서도, 인간적 지혜가 가르쳐주는 말로써 말하지 않고 성령님이 가르쳐 주시는 말씀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일은 인간적인 지혜로 분별하지 못하고 오직 성령의 조명 가운데서만 분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고린도 교인들은 처음에 바울이 전도하여 예수님을 믿을 때는 성령으로 거듭난 신령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나, 그 후에 아볼로가 목회하면서 세상적 지혜와 인간의 정욕을 따라 사는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정치 같이 사람 중심으로 나는 바울파다, 나는 아볼로파다, 나는 베드로파다, 나는 그리스도파다, 이렇게 예수 안에서 한 피 받아 한 몸 된 성도들이 나누어져서 싸웠던 것입니다.
이러한 세속적 신앙인을 고린도전서 3장 1절에서는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안에서 어린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14절.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a natural man does not accept the things of the Spirit of God, for they are foolishness to him; and he cannot understand them, because they are spiritually appraised.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ψυχικὸς δὲ ἄνθρωπος οὐ δέχεται τὰ τοῦ Πνεύματος τοῦ Θεοῦ·
natural but man not accepts the things of the Spirit of the God
‘받지 아니 하나니’에서 동사(δέχεται)는 현재형입니다(accepts).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μωρία γὰρ αὐτῷ ἐστίν,
foolishness for to him they are
직역하면 ‘왜냐하면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은 것이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여기 동사(ἐστίν)는 현재형입니다(they are).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καὶ οὐ δύναται γνῶναι,
and not he is able to know
‘알 수 없나니’에서 앞의 동사(δύναται)는 현재형이고(he is able) 뒤의 동사(γνῶναι)는 부정과거 부정사형(to know)으로서 분명히 알 수 없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ὅτι πνευματικῶς ἀνακρίνεται.
because spiritually they are discerned
‘분별되기’(ἀνακρίνεται)는 현재 수동태입니다(they are discerned).
1. 육에 속한 사람(ψυχικὸς ἄνθρωπος)-
① 천주교의 성경(Latin Vulgate)에는 ‘동물적인 사람’(animalis autem),
② 개신교의 흠정역 성경(Authorized Version)에는 ‘자연인’(the natural man), 독일어 성경에도 ‘자연인’(der naturlischer Mensch)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③ 영어 개역 표준번역(Revised Standard Version)에는 ‘비영적인 사람’(the unspiritual man)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생래적(生來的)인 자연 본능에 따라 사는 자연인을 가리킵니다.
이 단어는 원래 불신자, 일반적인 인류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것은 예수 믿은 영적인 사람(15절: 신령한 자, ὁ πνευματικὸς)과 대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은 사람도 ① 성령에 따라 사는 사람( 6절; τοῖς τελείοις 온전한 사람) 성숙한 그리스도인)과, ② 예수 믿으면서도 육신의 정욕(인간적 욕망)에 따라 사는 그리스도인(3:1, σαρκίνοις, νηπίοις ἐν Χριστῷ.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으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원래 자연인으로서 육신의 정욕대로 살았으나, 바울의 복음 전도를 듣고 성령으로 거듭나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데, 중간에 성령의 인도를 버리고 육신의 정욕에 빠져서 고린도 교회의 지도자인 사람들(바울, 아볼로, 게바, 야고보)을 중심으로 파당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순서상 「자연인→신령한 자→육신에 속한 자」의 길로 변화되었음을 지적한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어린아이와 같이 육신의 정욕만 따라서 분파를 만들지 말고, 이제라도 성령님을 따르는 신령한 그리스도인답게 하나가 되라고 촉구하신 것입니다 (엡 4:3).
에베소서 4:3-6.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NIV에는 ‘육에 속한 사람’이 ‘성령이 없는 사람’( man without Spirit)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불신자(자연인)는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고(요 3:1-8) 성령님의 인도에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15절.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he who is spiritual appraises all things, yet he himself is appraised by no one.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ὁ δὲ πνευματικὸς ἀνακρίνει μὲν πάντα αὐτὸς,
he but spiritual judges all things himself
직역하면 ‘그러나 신령한 자는 모든 것들을 스스로 판단한다’란 뜻입니다.
‘판단하나’(ἀνακρίνει)는 현재형이고(judges), 원형(ἀνακρίνω)은 ‘위로’(ἀνά: up)와 ‘판단하다, 심판하다’(κρίνω: judge)의 합성어로서 ‘조사하다, 수사하다, 심문하다’(examine, inquire into, investigate, question)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δὲ ὑπ’ οὐδενὸς ἀνακρίνεται.
however by no one he is judged
직역하면 ‘그러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판단받지 아니 하느니라’에서 동사(ἀνακρίνεται)는 현재 수동태입니다(he is judged).
1. 여기서 <신령한 자>(ὁ πνευματικὸς)란 14절의 <육에 속한 사람>(ψυχικὸς ἄνθρωπος)과 반대되는 사람이고, 3장 1절의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σαρκίνοις, νηπίοις ἐν Χριστῷ)와도 대조되는 사람입니다.
즉, 본 절의 <신령한 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사는 사람이고, 3장 1절의 <육신에 속한 자>란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육신의(인간적) 욕정에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이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 즉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갈라디아서 5장 17-21절에 나오는 육체의 더러운 열매들을 맺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런 육체의 열매 중 하나는 고린도인들처럼 파당을 만들어 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의할 것은 이것이 실제적인 구분이고, 원리적인 구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신령한 그리스도인도 기도를 못해서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고 일시적으로 육신의 욕정을 따름으로써 육신에 속한 자가 될 수 있고,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도 회개하고 기도하여 성령님의 충만한 인도를 받으면 신령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육에 속한 불신 자연인도 성령으로 거듭나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고, 신령한 그리스도인도 기도 않고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아 육신의 정욕만을 따라 깊이 타락하면 불신자보다도 더 악한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고전 5:1, 딤전 5:8).
2. < 3분설 문제- 3분설에 대한 비판>
┌─지방교회 -워치만 니, 영에 속한 사람과 혼에 속한 사람, 위트니스 리
└─구원파 - 구원의 도리 깨달은 사람은 영에 속했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하면서, 회개하는 내용이 들어 있는 주기도를 안 함
기독교 침례회는 올바른 침례교이고, 예수교 복음 침례회는 구원파 이단임.
구원파의 3파- ① 권신찬 구원파( 주식회사 세모, 한강 유람선, 유병연, ② 박옥수 구원파( 가장 큰 교세), ③ 이요한 구원파( 광주교회, 광주에서 교세가 아주 큼)
구원파는 예수님이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신 ‘주기도’를 안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것은 엄격한 3구분설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인간을 거듭나지 못한 육에 속한 사람, 거듭났어도 아직 육신에 속한 신자, 거듭났을 뿐만 아니라 영에 속한 신자를 구조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3구분설을 주장하는 단체는 소위 지방교회와 구원파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1970년대에 이 3구분설이 판을 쳤는데, 그때 가장 많이 읽힌 책이 ‘워치만 니’의 로마서 강해서인 <영에 속한 사람과 육에 속한 사람>이란 책이었습니다.
그때 신학계의 가장 큰 이슈는 바로 이 3구분설에 관한 비판이었습니다.
오늘날 이 ‘워치만 니’의 계승자는 ‘위트니스 리’이고, 바로 ‘위트니스 리’가 소위 지방교회라는 이단적 단체의 교조입니다.
구원파라는 이단도 바로 3구분설을 신봉하는 사람들인데, 예수 믿는 사람도 구원의 도리를 완전히 깨닫지 못하여 자꾸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는 육신에 속한 신자와, 구원파 신자들처럼 구원의 도리를 완전히 깨달아 신령한 세계에 속한 신자가 있다고 주장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볼 때, 신령한 그리스도인과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은 원리적인 구분이지, 구조적인 구분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거듭난 신자도 한때는 성령 충만할 때가 있지만, 또 다시 범죄하여 회개할 때도 있는 것이지, 한번 신령한 사람이 되었다고 다시는 한 번도 죄를 안 짓고 회개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구원파는 주기도문도 필요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대로 순간순간 짓는 죄는 회개하고 용서를 빌어야 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근본적인 죄는 단번에 영원히 용서받았으나, 살아가면서 짓는 자범죄는 늘 회개하면서 성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지방교회에 한 번 빠지게 되면 헤어나오기 어렵거니와, 내가 지금 영에 속한 생각을 하는가 아니면 육에 속한 생각을 하고 있는가를 늘 분석하고 다니기 때문에 정신 분열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과거에 서울사대를 나오고 지금 ‘치유목회’ 사역을 하고 계신 김*수 목사님도 70년대에 이 3구분설의 지도자로 있다가 정신 분열로 고생을 하다가, 잘못된 것을 깨닫고 우리측 신학교로 돌아온 것을 보았습니다.
3.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본 절에서 <판단하다>(ανακρινει)는 단어는 원문상 14절의 ‘분별하다’는 말과 동일한 단어입니다.
따라서, 신령한 세계(신령한 자)에서는 불신 세계(육에 속한 사람, 육신에 속한 자)를 분별할 수 있으나, 반대로 불신세계에서는 신령한 세계를 분별치 못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미 8-11절에서 말씀한 대로, 육적인 사람은 신령한 세계를 깨닫지 못하나,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통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령한 자’란 바로 성령을 받고(12절)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며 선한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사는 사람입니다(갈 5:16-18, 롬 8:5-9).
여기서, <신령한 자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세계가 육적인 세계(자연계)와 영계가 있을 뿐이고, 더이상 신령한 자를 판단할 의 제3의 신령한 세계에 속한 자가 없음을 말합니다.
즉, 영지주의자는 자기들이 제3의 신령한 영적 세계에 속한 자라고 주장하는데, 그런 제3의 신령한 세계가 더이상 없다는 말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은 하나님조차도 신령한 하나님과 저속한 하나님(Demiurgos)으로 구분했었고, 영적인 세계도 30단계(aeons)로 구분했습니다.
16절.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Holman Christian Standard Bible: For who has known the Lord's mind, that he may instruct Him? But we have the mind of Christ.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τίς γὰρ ἔγνω νοῦν Κυρίου,
who for knew mind of Lord
‘알아서’(ἔγνω)는 부정과거로서(knew) 분명히 아는 것을 가리킵니다.
주를 가르치겠느냐,
ὃς συμβιβάσει αὐτόν;
who will instruct Him?
‘가르치겠느냐’(συμβιβάσει)는 미래형이고(will instruct), 원형(συμβιβάζω)은 ‘함께’(σύν: with)와 ‘타다, 발을 들여놓다’( ἐμβιβάζω)의 합성어로서 ‘합류하다, 함께 생각하다, 결론 내리다, 가르치다’( unite or knit together, put together in reasoning, conclude, teach, instruct)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ἡμεῖς δὲ νοῦν Χριστοῦ ἔχομεν.
we however mind of Christ we have
‘우리가’(ἡμεῖς: we)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1. 이 말씀은 이렇게 의역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누가 주님의 생각을 알아서 주님의 의논 상대가 되겠느냐?”고 하였지만(사 40:13 인용),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각을 알고 있다.
즉, 이 말씀은 신령한 자가 그리스도와 영적 교제까지 하고 있음을 말씀한 것입니다.
<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지혜로만 살려고 하지 말고, 성령님의 감동과 인도를 받아 신령한 지혜를 가지고 살게 해 주옵소서.
날마다 기도하여 성령님의 인도와 지혜로 살게 하시고, 인간이 주인이 되어 혈기 부리고 실패하는 인생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그래서, 성령님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선한 열매들을 풍성히 맺는 삶이 되게 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해주옵소서.
성령론 문제
성령(10, 11, 13), 하나님의 영(11), 하나님께로 온 영(12), 하나님의 성령(14)
- 신령한 신자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 믿은 다음에 다시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하는가? -
여기서도, 주의할 것은 ‘성령 받는다는 것’은 예수 믿는 것을 가리키지, 예수 믿는 것과 성령 받는 것을 근본적으로 구분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1900년대 후반에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이슈는 바로 이 ‘성령론’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정통적 성령론은 ‘그리스도론적 성령론’입니다.
즉,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영이시고, 예수 믿을 때 성령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3. 누구든지 성령으로 아니 하고는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하지 못하느니라.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이 따로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파는 소위 ‘오순절파’의 주장인데, 이것은 정통적 입장이 아닙니다.
오순절파의 성령론 - 별도의 성령 세례 주장, 성령 발출 논쟁 (동방교회 측 입장: 성부로부터).
오순절파 성령운동의 3시대
┌─ 성령 세례와 방언 - 팔함
├─ 성령 세례와 은사 - 오랄 로버츠
└─ 성령 세례와 빈야드 운동 - 존 윔버
정통적 성령론 - 그리스도론적 성령론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
성령 발출 논쟁에서 서방교회측 입장이고, 성령님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신다(필리오케)는 입장입니다.
그리스도론적 성령론 (행 16:6-10)
1. 총신대 정훈택 교수는 교회의 본질과 교회 성장」에서 “① 교회는 예수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② 그러므로, 교회의 본질은 믿음에 있고, 교육이나 친교나 봉사나 전도에 있지 않다. ③ 교회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부터 시작되었다. ④ 예수님의 부활을 보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었고, 교회는 시작되었으며, 그 이후에 기도회(행 1장)와 선거(행 1장)와 전도(행 2장)와 교육(행 2: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과 친교(행 2:42,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가 있었다. 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은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이 다시 교인들과 함께 하신다는 표증이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그리스도인)가 교회(그리스도인) 되기 위해서는 복음(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자격 요건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입니다.
이것은 과거 단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언제나 지금 성령으로 살아계신 주님과 그의 복음을 믿는 현재적인 사건입니다.
주의 일은 주님을 믿는 것이다(요 6:29).
2. 총신대 정일웅 교수는 <한국 교회의 성장 방안>에서 “① 교회의 성장은 수량적인 성장이 아니라, 얼마나 주님과 복음을 믿으며 살아가고 있느냐는 질적인 성숙에 있다. ② 교인 숫자와 헌금 액수의 수량적 개념으로부터 전도 강요와 헌금 강요라는 비복음적 신앙 형태가 나왔다. ③ 이 때문에 목회자들은 연말마다 당회에서 수량적 증감을 보고하고, 감소의 경우에는 쫒겨날 것을 염려하게 된다. ④ 이 때문에 목회자는 전도와 헌금을 강조하게 되고, 교회끼리의 교인 쟁탈전을 벌인다. ⑤ 이 때문에 교회들끼리 싸움이 붙어서, 교회 지도자들의 비윤리적 범죄 사건이 경쟁 관계에 있는 교회 지도자에 의해서 고발되고 메스컴에 보도된다. ⑥ 그리하여, 교회의 사회에 대한 공신력이 떨어져 복음이 배척된다”고 했습니다.
3. 소위 은사주의적 성령 운동도 수량적 교회성장 이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즉, 미국 풀러 신학교 MacGavran과 Peter Wagner 박사는 교회성장학과 선교학의 대가이면서 수량적 교회 성장을 강조하였는데, Peter Wagner 박사는 ‘빈야드 성령 운동’의 지도자입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정통신앙은 질적이며 복음적인 교회 성숙을 주장하며, 은사적 성령 운동보다는 성령의 열매를 강조하며 도덕적이고 말씀 중심의 성령 운동을 주장합니다.
4. 복음적 성령론은 ‘그리스도 중심적 성령론’입니다.
그리스도 중심적 성령론은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오늘날 성령으로 살아 역사하심을 믿는 신앙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으로 살아 역사하십니다.
성령은 바로 그리스도의 영이십니다.
오늘날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살아계셔서, 육신으로 살아계실 때와 똑같이 그의 종들을 통하여 성령의 능력과 표적으로 복음을 전하게 하시며, 죄를 용서하시며, 마귀와 온갖 질병과 가난과 억압 가운데 눌린 인생을 구원하시고, 천국으로 인도하십니다.
5. 사도행전 16장 6절에는 ‘성령’이라고 하고, 7절에는 ‘예수의 영’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예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이십니다.
또한, 로마서 8장 9절에서는 ‘하나님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이 상호 교환적으로 쓰였으며, 16절에서는 ‘성령’으로도 쓰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이시며, 그리스도의 영이십니다.
6.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증거하는 영이시며( 요 15:26),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진리의 말씀, 곧 복음(福音)을 생각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요 14:26 ).
7. 우리는 이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을 날마다 믿고, 의지하며, 그의 말씀(복음, 성경)을 믿고, 그의 능력을 구하며(기도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성령으로 살아계신 주님을 버리고 나 혼자의 힘으로 착하게 살려고 하지 말고, 날마다 성령으로 살아계신 주님을 믿고 주님의 은혜와 돌보심을 받으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