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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연휴가 있어 아침식사를 하고 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수원화성행궁'을 목적지로 설정하고, 딸 가족과 함께 여행을 출발합니다.
진즉부터 수원화성을 구경하고 싶었습니다.
가는 도중에 평택호 휴게소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수원화성 내에 있는 ‘서연재’ 한옥펜션에 오후 3시경 도착합니다.
숙소에 체크인하고 수원화성 화서문과 장안문 방향의 성벽을 걸어가는데, 가는 곳마다 관광객이 엄청 많았습니다.
장안문은 조선 제22대 정조대왕이 한양(한성)에서 출발하여 수원화성행궁을 방문할때 들어오는 출입문이라서 규모가 크고 웅장합니다.
제63회 수원화성 문화제 기간 때문에 이렇게 많은지 연휴라서 그런지 모르겠어요.
정조대왕능행차는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가 1795년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기념하고,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현륭원, 지금의 화성 융릉)를 참배하기 위해 창덕궁에서 화성까지 8일간 진행한 대규모 왕실 행차입니다.
1997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수원화성에서 정조대왕행차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수원시에서 10월초에 매년 경복궁에서 수원화성행궁을 거쳐 융릉까지 문화제 행사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화홍문을 지나 수원화성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숙소로 돌아옵니다.
저녁식사를 하고, 다시 수원화성 야경을 늦은 시간까지 둘러보았습니다.
2일차.
아침식사를 하고 숙소에서 체크아웃하고 화성행궁을 구경하려고 공영주차장에 갔는데, 여유 공간이 없어 수원화성박물관 주차장에 주차를 합니다.
행궁에 들어서니까 임금이 주관하는 과거시험 보는 모습을 재현하는 행사준비를 하고 있더라고요.
조금 더 걸어서 들어가 입장권을 구입하고 신풍루를 지나 좌익문, 중양문을 지나니까 정조대왕의 집무실 정전 봉수당을 맞이하게 됩니다.
봉수당 바로 옆에는 혜경궁 홍씨가 머무는 장락당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장락당은 정조 임금의 생모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화성행궁에서 열면서, 혜경궁 홍씨가 머물 처소로 사용할 목적으로 지었다고 합니다.
수원화성행궁은 정조대왕이 현륭원에 있는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묘에 참배하러 갈 때, 머물 수 있는 행궁이 필요하여 만들었다고 합니다.
평상시에는 수원의 관아로 사용했습니다.
사도세자는 영조(이방원)과 혜경궁 홍씨의 둘째아들로 태어나 왕세자가 되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영조의 명으로 뒤주에 같혀 8일만에 사망합니다
사도세자가 죽은 뒤 서울 동대문구 배봉산에 장사지냈으나,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는 수원 화산(花山)으로 옮겼습니다.
수원대학교 옆 정조효공원에 혜경궁홍씨와 합장되어 있는데, 현륭원으로 부르다가 지금은 융릉이라고 합니다.
화성행궁을 마치고, 부여로 출발합니다.
휴게소에서 쉬어가면서 쉬엄쉬엄 부여에 도착하니까, 점심시간이 약간 지난 듯하여 ‘연꽃이야기’라는 식당으로 갔습니다.
대기번호를 받고 한참을 기다리다가 자리에 앉았습니다.
연꽃 등을 재료로 하는 음식들이 있더라고요. 음식도 맛있고, 아이들 메뉴까지 다양하게 있어 좋았습니다.
식사를 하고 숙소 ‘서동연가’에 체크인합니다.
백제문화단지는 넓은 부지에 서울 있던 위례성과 부여에 있던 사비궁을 재현한 것입니다.
20여년에 걸쳐 백제의 수도 사비의 왕궁을 재현한 정양문, 천정문, 왕의 집무실인 천정전이 있습니다.
바로 옆 건물 문사전에서는 백제금동대향로에서 나오는 5악사의 공연이 있었습니다.
진행자가 금동대향로에 대하여 자세한 설명이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앞에 롯데 리조트가 있고, 주차장 옆에는 롯데아울렛 부여점이 있어 놀랬습니다.
이런 곳에 손님이 있을까 했는데,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지만 의외로 많았습니다.
구경을 하다가 사위가 생각지도 않았던 겨울용 갈색 상의 재킷을 사주었어요.
고마웠습니다.
근데, 맞는 사이즈가 없어 주문하고 집으로 배송 요청했습니다.
2층에 올라가서 저녁식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옵니다.
숙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부여 백제문화제(10.03~10.11) 행사를 정림사지에서 하고 있어 구경하려고 갔습니다.
가수들이 노래를 하고 있는데, 야외 임시공연장에는 500석이상의 좌석에 빈자리가 없었고 늦은 저녁시간인데도 서서 관람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큰 도시도 아닌데, 이 많은 사람들이 모두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정림사지5층탑과 백제금동대향로의 레이저 작품은 행사장의 꽃이었습니다.
3일차
숙소에서 체크아웃하고 정림사지를 구경하려고 출발합니다. 정림사지를 둘러보고 국립부여박물관으로 이동합니다.
관심의 대상은 단연 백제금동대향로입니다.
한줌에 쥐어지는 향로 한 점을 위해서 새로 건물을 지어 보관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백제금동대향로를 전시하기 위해서 소요된 비용이 200억 이상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 이상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니겠어요.
제작과정과 유물에 담겨진 의미가 정말 신기한 유물입니다.
그 시대에 어떻게 이런 귀한 유물을 제작할 정도의 수준이 되었는지 대단합니다.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도 금동미륵반가사유상 한 점을 위한 건물 공간이 별도로 있더라고요.
우리나라 국민들의 문화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박물관 구경을 마치고, 마지막 코스로 백마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고란사와 낙화암을 둘러보려고 출발합니다.
부여백마강 유람선 선착장에 도착하여 왕복표를 구입합니다.
바다가 아니기 때문에, 신분증 확인도 하지않고, 승선신고서도 작성하지 않더라고요.
근데, 50여명 정도만 승선이 가능하여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다음 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배의 모양은 목선으로 만들어진 황포돛배처럼 보이는데, 큰 배와 같이 동력으로 이동합니다.
민간이 운영하기 때문에 경로, 어린이 등의 할인이 없고 대인, 소인으로만 구분합니다.
운항거리는 고란사 선착장까지인데, 700~800미터 정도로 아주 짧습니다.
이 짧은 구간에 어떻게 배를 띄우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어요.
아마 육지에서는 낙화암 바위를 구경할 수 없어, 강에서도 볼 수 있도록 한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반환점에서 내려 고란사를 돌아보고, 다음에 오는 배를 탑승하여 돌아오는 코스입니다.
선장님께서 다른 유람선처럼 유머가 있는것은 아니지만 설명을 잘 해주고, 백마강 노래가 구슬프게 흘러나오더라고요.
역사적으로 사연이 있는 코스라서 신나는 기분 보다는 차분한 마음이었습니다.
백제는 처음에 서울 강북지역에 나라를 세웠습니다.
그 후 한성(지금의 올림픽공원 지역)으로 수도를 옮기고, 약 500년 동안 유지해 오다가 고구려의 침략으로 한성을 잃은 뒤 웅진(지금의 공주)로 옮긴 후 약 60년간 수도였습니다.
그 후 사비(지금의 부여)로 천도 후 멸망할 때까지, 약 120년 동안 백제의 수도였습니다.
당나라 소정방과 신라 김유신이 나당 연합하여 백제의 수도 사비성을 공격하여 계백장군, 관창장군 등이 격전하였으나 황산벌(지금의 논산)에서 연합군의 압도적인 인해전술로 결국 폐하게 됩니다.
의자왕은 항복하여 백제는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의자왕에 대한 평가는 망국의 군주로서 연합군의 침공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나라를 망하게 하고, 음주가무를 하고 놀기만 했다고 하는 것은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승자들의 평가일 뿐입니다.
그 황산벌 전쟁터에 지금은 육군 훈련소가 있습니다.
그 후 백제 백성들은 일본으로 이주하고, 당나라로 압송되고, 신라 백성이 되었지요.
나라 잃은 슬픈 백성들이 되었던 것 입니다.
그때 쫏아오는 적군들을 피해 도망가던 궁녀들이 잡혀서 죽느니 순절을 선택하여 치마로 얼굴을 가리고, 낙화암에서 뛰어내린 숫자가 3천명 이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뛰어내린 모습이 꽃과 같았다고 하여 그 바위를 낙화암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우암 송시열 선생이 쓴 낙화암 글씨가 유람선에서 바라보면 한자로 落花岩(낙화암)이라고 빨강색으로 바위에 크게 쓰여 있습니다.
가정도 마찮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화목하고, 서로 한마음이 되어 미래를 위한 유비무환 (有備無患)이 필요합니다.
유람선에서 백마강 노래가 구슬프게 흘러나오는데, 가사의 깊은 뜻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오게 합니다.
백마강 (원곡가수 허민/1953년 데뷔곡) 본명 허한태/1974년 사망(45세)
백마강에 고요한 달밤아 고란사의 종소리가
들리어 오면 구곡간장 찢어지는
백제 꿈이 그립구나. 아~ 달빛어린 낙화암의
그늘 속에서 불러보자 삼천궁녀를~
백마강에 고요한 달밤아 철갑 옷에 맺은 이별
목 맺혀 울면 계백장군 삼척검은
임사랑도 끊었구나 아~ 오천결사 피를 흘린
황산벌에서 불러보자 삼천궁녀를~
백마강에 고요한 달밤아 칠백년의 한이 맺힌
물새가 날며 일편단심 목숨 끊은
남치마가 애달프구나 아~ 낙화 삼천 몸을 던진
백마강에서 불러보자 삼천궁녀를~
꿈꾸는 백마강 (원곡가수 이인권) 노래도 있습니다.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잃어버린 옛날이 애달프구나
저어라 사공아 일엽편주 두둥실
낙화암 그늘아래 울어나보자~
백마강(금강) 낙화암을 구경하고 배에서 내려 주차장까지 걸어서 올라오는데, 나라 잃은 백제 백성들의 애달픈 마음을 미루어 짐작해 보았습니다.
낙화암 구경을 마치고 오후 3시 무렵에 출발 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하여 평택호휴게소와 부안고려청자휴게소에서 쉬었다가 목적지 광주에 도착합니다.
쉬엄쉬엄 다니기 때문에 아직은 운전하는데 불편한 것은 없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운전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이번 장거리 여행도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2박3일 일정을 마치게 되어 모두에게 고마운 마음이었습니다.
정조대왕 능행차를 서울 경복궁에서 출발하여 수원화성행궁까지 재현하고 있습니다
장안문은 행궁의 북쪽에 있습니다.
서울에서 정조대왕이 내려오면, 이문을 통과하게 됩니다
숙소 바로 앞에 있는 화서문입니다
장안문 야경입입니다
행궁 들어가는 첫번째 광장인데, 옛날에 정조대왕이 주관하던 과거시험장을 재현하느라고 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정조대왕의 집무실인 정전 봉수당입니다
정조대왕이 혜경궁 홍씨에게 문안인사 드리는 모습입니다.
임금의 집무실인 정전입니다
바로 옆에 혜경궁 홍씨의 거쳐가 있습니다.
백제 금동대향로 모형의 레이저 조명입니다
정림사지 5층석탑 레이저 조명 야경입니다
정림사지 5층석탑
국립부여박물관 단독전시관에 보관된 국보 백제금동대향로 진품입니다.
백제문화단지에 있는 정양문입니다
백제 문화단지에 재현된 사비성의 임금 집무실 천정전입니다
백마강(금강) 유람선 입니다
우암 송시열 선생의 글씨가 낙화암이라고 빨강색으로 쓰여 있습니다.
백마강 황포돛배 몇대가 왕복 운항하고 있습니다.
모양은 목선처럼 보이는데, 큰 배처럼 동력으로 이동합니다. 정원은 50명정도 될 듯 보였습니다.
백마강 (원곡가수 허민) 노래가 유람선에서 구슬프게 흘러 나옵니다.
지나가는 배와 우리가 타고 있는 배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어, 실제 속도보다 2배이상 빠르게 가는것처럼 보입니다.

첫댓글 여행은 즐거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