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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 글은 제가 결론적으로 하고 싶은 말의
상당부분을 담고 있을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과거 정부 관계기관 대책 회의에 참석했을 때,
동일한 사안을 두고도, 각 부처마다 매우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신의 부처 입장을 먼저 생각하기에 나오는 현상인데,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금융부분 종사자 입장에서 보면
금융공학의 논리로 풀어내고자 할 것입니다.
우리는 주로 그러한 논리를 많이 접했고,
최근 마이트님과 zeroman22님의 심도 깊은 토론을
통해 신용화폐시스템상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갈 수 밖에 없다는 논지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필연성에 대한 과정은 좀 더 설명이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저는 신용화폐시스템과 하이퍼인플레이션은 그렇게
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입장이고, 관계가 있다면
오히려 종속변수로써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이퍼인플레이션은 정부의 채권을 중앙은행이
직접 인수하게 하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보기도
하지만, 현재의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를 보아도
현실은 그렇지 않으며, 과거에도 그것이 주 원인이
아니었다고 저는 말하고자 합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논의되었던 신용화폐시스템이란
설명을 전면 부정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고유하게 설명할 수 있는 범위를 너무도
초월하여 설명해 왔기에, 이제는 설명의 범위를
좁혀야 한다는 것이고, 그 좁혀진 부분에서
의의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세상은 이해하기 쉬운 논리에 의해
다 설명되기에는 훨씬 더 많은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제가 생각했던 계기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첫째는 러시아에서 직접 겪은 경험과
당시의 상황을 그 시점에 기록하며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고민했던 글이 존재했기 때문이고,
둘째는 94년 중반까지 러시아 정부와 일을
하면서 러시아 내부 변화를 계속 지켜 보았고,
셋째는 금융공학의 논리를 적용했을 때
그 해결책은 순서가 바뀐, 또는 주와 종이 바뀐
해결책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원인이 무엇인지, 문제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면
그 해결책도 그 원인과 관계가 있게 됩니다.
M0 또는 M2의 증가가 인플레이션을 일으킨다?
러시아의 M2와 인플레이션 그래프를 보시겠습니다.
푸른선은 M2의 비약적 증가를 보여주는 그래프이며
점선은 인플레이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M2는 5년 주기로 45도 각도로 우상향하고 있지만
인플레이션은 요지부동입니다.
이는 현재의 러시아만이 겪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금융부분에서의 문제는 생산과 소비의 어떤
조합에서 인플레이션을 더욱 고조시킬 수 있는
요인은 되지만, 그렇다고 주요 원인인 것은 아니며,
더욱 해결의 방법으로도 사용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부분을 매우 중요시 여깁니다.
인플레이션이든, 하이퍼인플레이션이든
그 원인에 대한 분석이 어떠하냐에 따라
정부와 국민의 대응책이 매우 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1차 대전 후의 독일, 개방이후 러시아, 최근의
베네수엘라가 겪고 있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은
전혀 다른 원인들이 있었고, 그 해결책도
그 원인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서는 러시아 상황만은 두고
하이퍼인플레이션의 원인과 그 해결 방법이
무엇이었는지 적어보고자 합니다.
러시아는 매우 독특한 경험을 했기에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이해하는데 매우 좋은
예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력이 있으신 분들은
“1991년의 러시아 시장 상황... 인플레이션에 대한
다른 이해”라는 제목으로 올린 저의 연재글
‘중국,러시아,일본 이야기’ 코너에서
읽어보시면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그럼 1991년의 러시아 상황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1. 러시아 역시 금, 은 본위제가 아닌 신용화폐 시스템을
도입한 나라였습니다.
2. 개방 전에 러시아 사람들은 부족함을 느끼지 않고
살았습니다. 집, 의료, 교육이 무상으로 지원되었고,
교통요금도 매우 저렴했습니다.
3. 석유와 가스는 풍부했고, 식량도 부족하지 않았고,
늘 사용하던 소비재도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점은 현재의 베네수엘라와 매우 차이가 있습니다.)
4. 화폐발행량도 전년도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5. 그런데 1991년부터 이미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했습니다. 정부의 공식환율과 시장환율은
2,500%~3,600% 차이가 났기 때문입니다.
이 당시의 기록이 많지 않은 것은 러시아가
개방하자마자 서방에서 들어간 사람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당시 한국은행이나 미국의 은행도 환율이 어떻게
되는 지 알지를 못했다는 것이 뱐증일 것입니다.
당시의 러시아를 이해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점은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적용된
품목을 눈여겨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석유와 가스값, 그리고 석유로
만들어지는 모든 제품의 가격이 일차적으로 뛰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부동산 가격도 뛰었겠지요.
그러나 러시아는 석유, 가스, 집, 교통비등은
거의 오르지 않았습니다.
식료품 값의 변화는 러시아의 물물교환 체계가
깨지면서 러시아가 생산하지 못하는
제품을 공급했던 우즈벡등에서 보내는
열대과일값이 올랐지, 일반 채소류의
가격변화도 그렇게 크지는 않았습니다.
이는 대부분의 러시아 시민들이
‘다차’라고 하는 70~200평 정도의 개인소유가
인정된 땅에서 자신들의 1년 소비량을
자급자족하는 것이 문화로 정착되있기
때문이었고, 이 문화는 2017년 현재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럼 어떤 물가가 올랐다는 것일까요?
여성용 브레지어입니다.
여기서 보이는 브레지어는 그나마 이쁜 브레지어
입니다.
당시 가장 번화가로 꼽히는 대로에 있는
백화점들이 판매했던 일반 브레지어는
가슴부위가 세모, 네모로 만들어진 것이
다수였습니다.
처음 그 브레지어를 보고 저 자신부터
약간의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런 브레지어를 만드는 공장은 많았고,
러시아 화폐인 루블로 얼마든지 싸게 살 수가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빌리거나 시중에서 판매하는
테니스라켓입니다. 나무로 만든 제품과
플라스틱으로 생각되는 제품으로 만든
라켓이 있었는데, 보이는 것보다 무게가
훨씬 무겁습니다.
처음에 이런 라켓을 루블로 구매해서
사용하다가 스웨덴에 가서 윌슨 테니스
라켓을 들었을 때의 그 가벼운 느낌에
바로 구매를 했습니다.
테니스 공은 있지만, 바람도 쉽게 빠지고
털도 쉽게 빠졌습니다.
인간이 생활하는데 기본적인 것은
부족함이 없고, 거의 무상으로 사용해왔던
러시아 국민들은 개방되기 전까지
자신들의 삶의 조건이 세상에서 가장
발전된 형태라 믿어왔습니다.
우주를 가장 먼저 개척하고, 유일하게
우주정거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러시아 국민들은 시내에 우뚝 서있는
유리가가린 동상처럼 자부심도 무척
강했습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의 글라스노스찌, 즉 정보 공개
정책이 시행되고, 서방의 물건이 국내로 유입되면서,
자신들의 삶, 지난 70년의 삶을 되돌아 보게
되었습니다.
러시아 경제와 러시아 국민들의 생각을 발칵
뒤집히게 한 것은 당시 노태우 정부의 소비재 차관이
큰 몫을 했다는 것을 부정하기 힘듭니다.
소비재 차관으로 들어간 한국의 물건들...
그중에서 팬티스타킹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고, 남자는 말보로 담배, 여자는
팬티스타킹이라고 할 정도로 두 물건은
만사를 해결하는 중요한 물건으로 2년 정도
역할을 했습니다.
한국의 초코파이는 러시아 사람들이
즐겨 먹는 초콜렛으로 쌓인 딱딱한
빵을 빠르게 대처했는데, 이들이
초코파이를 얼마나 중하게 여겼는지
양국 대표간 회의 때, 크렘린 궁에서도
후식으로 초코파이가 나왔습니다.
맛있다고 생각한 음료는 당시 따봉이었구요.
국가가 가격을 통제할 수 있었던 소비재차관으로
들여온 물건들이 시장에서 값싸게 빠르게 소모된
후인 1991년 봄부터 사람들은 어떻게든
한국을 포함 유럽에서 들여오는
제품을 구하고자 혈안이 되었습니다.
한국의 소비재차관과 가까운 유럽에서
들여온 물건들을 접한 러시아 국민들의
욕구는 1990년~1991년 짧은 겨울 동안
완전히 변해버렸고, 그들의 자존심 또한
한없이 뭉개져 버렸습니다.
기본적인 식재료는 러시아 것과 차이가
없어 굳이 서방 것을 찾을 필요가 없었지만,
가공품으로 옮겨가면 러시아 것과
서방의 것의 차이는 비교 불가할 만큼
미적, 질적으로 큰 차이가 났습니다.
이런 상황이 과거 1차 대전의 독일과
현재의 베네수엘라와 근본적인 차이점이라
하겠습니다.
이런 가공 생활용품 외에도 범위를 넓히면
러시아자동차가 대표적입니다.
수십년동안 디자인에 큰 변화가
없던 러시아 ‘라다’ 자동차는 서방의
벤츠나 BMW를 포함 일본 차들과
비교하여 완전히 네모난 고철덩어리로
인식이 되었습니다.
모든 가정이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었지만
그들이 원하는 자동차의 종류가 변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해외의 제품을 살 수 있는
적합한 돈, 즉 달러나, 서구 유럽의 화폐나
엔화가 없었습니다.
1992년 파악된 러시아 외환보유고는
45억불 정도 였습니다.
러시아 경제규모로 보았을 때, 45억불의 외환보유고는
거의 없는 것과 같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왜 이토록 작았을 까요?
이때는 러시아가 굳이 외화를 보유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위성국이나 유럽과 물물교환 체제로 교역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위성국에서도 러시아 루블이
통용되었기에, 굳이 다른 나라 돈을 쌓아둘
이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다른 말로 국민도 외환을 갖고 있지 않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러시아 국민이 원화는 물건은 서방에서 오는 것이고,
공급자는 외화 특히 달러를 요구하는데
국민들은 달러를 소유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국가에서 고시하는 1달러는 2루블이라는
환율이 엄연히 있었지만, 공급자는 누구도 그러한
환율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러시아 루블의 공급이 변화가 없었지만
자국의 제품이 아닌 수입품이나 밀수품의
가격은 루블로 표시했을 때 매달 수십배씩
뛰기 시작했습니다.
흔히들 러시아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일어났을 때
과거의 독일이나 20세기 짐바브웨이에서 난발한
화폐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러시아는 두 가지 시선으로 나눠서
보아야 합니다.
자국산 제품과 서비스, 특히 의료서비스나 학교교육비,
그리고 집값도 무료였으며, 집에서 사용하는
난방 가스나 전기료도 변화가 없었습니다.
이와 함께 러시아 산 제품에도 가격의 변화가
점차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이를
외국산과 비교할 때는 변화하지 않았다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습니다.
즉, 자국산 제품에는 하이퍼는 고사하고
인플레이션도 한동안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러시아의 경제활동을 당시 유추해 볼 수 있는 자료로
철강 생산양을 찾았습니다.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때도 여전히
러시아의 철강 생산량은 떨어지는 추세였지만,
여전히 많이 생산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산되는 철강을 가지고 만든
전기 밥솥은 마치 폭탄처럼 보였습니다.
당시 우주연구소에서 전기밥솥이라고 TV에서
과학자가 낑낑거리며 들어 책상에 올려 놓았던
밥솥과 이미지가 비슷한 제품을 찾아 보았습니다.
위와 같은 모습에 색상은 까맣다고 생각하면
비슷한 모습일 것입니다.
즉, 생산은 하였으나, 국민이 찾지 않는
제품을 당시 공장들은 생산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아무도 찾지 않는 제품은 루블로
얼마든지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외국산은 전혀 다른 가격을 보였습니다.
M0의 공급량은 변화가 없었지만 화폐 그 자체로
외국산을 사용하는 용도로는 의미가 없었기에
달러대비 루블의 가격은 하염없이 떨어져 버렸습니다.
개방 초기 인플레이션이 2,500프로 가까워 졌을 때도
러시아 화폐의 공급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인플레이션 그래프가 1992년 직전부터
표시하고 있지만,
이 그래프를 1990년 겨울부터 적용하면,
이미 1990년 12월에 500% 지점을 시작점으로
해야할 것입니다.
이러한 러시아의 특징을 파악하지 않고서
신용화폐시스템 또는 정부와 중앙은행의
채권구매만으로 하이퍼인플레이션을
말하는 것은 처음 지적한 것처럼
너무 작은 것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려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고 하겠습니다.
러시아를 배경으로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일어나는
조건 또는 원인을 따져 본다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소비자가 요구하는 제품이 극단적으로 부족해야 한다.
2. 소비자가 요구하는 제품의 생산기반이 취약해야 한다.
3.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화폐가 없거나,
지나치게 많아야 한다.
잠깐 이긴 하지만 러시아 옐친 정부가 고액의 화폐를
공급했다가 얼마 있지 않아 화폐개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고가의 가격이 적힌 화폐가 하이퍼인플레이션을
해결할 수 없는 것임을 이해한 것이고, 오히려
하이퍼인플레이션을 더욱 심각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즉, 화폐의 남발은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일어났을
때 잠시 일어났고, 하이퍼인플레이션을 부추길 수
있는 요소는 되지만, 원인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 러시아는 어떻게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극복할 수 있었는가?
제가 위에서 말한 조건 또는 원인에 대한 해결책이
있으면 극복되거나 일어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1. 소비자가 요구하는 제품이 풍부하고,
2. 제품의 생산기반이 충분하고,
3.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화폐가 있거나,
지나치지 않아야 합니다.
러시아는 실제로 1,2 단계를 열심히 수행했고,
그러한 결과 3의 결과가 나타나면서
하이퍼인플레이션은 잠재워졌고, 이후
다시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1991년 겨울 옐친이 집권 한 후
걷잡을 수 없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극복하기 위해 러시아 정부가 걸어간 길은 두 가지
입니다.
첫째, 당장은 국민이 외화가 없으니,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 달러확보에 나서고, 이 달러로 외국산 제품을
수입한다.
둘째, 러시아 자체의 생산시설을 적극적으로 구축한다.
러시아는 하늘이 준 석유와 가스가 있었습니다.
러시아 정부는 이를 수출해서 외환을 비축하기 시작했습니다.
푸른선은 경상수지이고, 점선은 외환보유고입니다.
경상수지가 흑자가 나면서 국가에는 외환보유고가
쌓입니다.
그리고 이런 외환은 수입의 증가로 곧바로 나타납니다.
외환의 증가와 함께 비슷하게 수입이 늘지만
1998년 이후는 조금 달리 해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1997년에 러시아도 금융위기를 맞이했습니다.
외환보유고도 줄었지만, 그에 비해 수입품이
급격하게 준 것은 이미 수입대체품을 러시아
스스로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국민이 외화가 없을 때, 국가기업들이
주도가 되어, 외화를 벌어 들였고, 이 외화로
당장의 필요한 제품을 수입해 국민의 수요욕구를
채워주었고, 점차 자국 생산기반을 마련하여
수입대체품을 빠르게 만들어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즉,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이 풍부해 지고,
자국의 기업들의 생산기반이 마련되어
자신들의 돈으로 물건을 살 수 있게되자
하이퍼인플레이션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신용화폐시스템을 통한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이해하고자 할 때는 자칫 관념의 논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이퍼인플레이션은 매우 구체적인
역사적인 삶의 결과물이라 여깁니다.
국민들의 정서, 생산기반, 생산품, 외환보유고,
정부정책들을 구체적으로 살펴야 이해되는
현상이라는 것이고, 이런 구체적인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와 북한 그리고 남미와 아프리카의 상황이
구체적으로 파악되고, 예측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P.S 자신의 집을 짓다보면 한두살 늙는다는 말을 합니다.
보통 건축업체와 상대하다보니 스트레스가 쌓여서 하는
말인데 저의 경우는 젊은 구청과 시청 직원들의 경험없음과
책상에서만 일할려는 자세로 인해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쓰던 글을 마치자 했더니, 어느새 새벽 3:57분이 되었네요...
그래도 일단락을 지으니 마음은 편합니다.
회원 모든 분의 좋은 한주를 기원합니다.
첫댓글 당시에 뉴스로 보는 러시아는 생지옥 비슷한 상황으로 기억되는데 먹고 사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군요.
오늘은 느지막이 출근하는 관계로 먼저 읽고 갑니다.
좋은 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삶의 내용은 쿠테타가 난 3일 동안 배급이 끊겨 저같이 빵을 비축하지
않은 외국인만 문제가 있었을 뿐 현지인들의 생활상은 변화가 없었습니다.
공산체제의 붕괴와 함께 정치 지형은 격변을 했지만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Forus님의 사용되어지는 에너지에 밝은 앞날의 열림을 기대해 봅니다!
항상 건강에 유의하시면서 고운 주간 되세요!
좋은 글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상기 글이 신용화폐시스템이기에 발생하는 현상들을 그동안 책에서(?) 이론으로(?)만 이해하고 설명하려는 저와 같은 분들에게 큰 계기가 될것임에 틀림이 없을것입니다.
아마도 바늘에 실을 꿰놓은 것과 진배가 없어 이제는 바느질만 남았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저번 오프모임때 말씀하신 것에서 신용화폐시스템은 각 화폐단위(나라)마다 따로 따로 논의가 되어져야겠다고 어렴풋이 느꼈었는데 한 결 더 명확해졌습니다.^^
신용화폐의 이론은 이론으로 두고 나와 나의 나라가 신용화폐와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있고, 연결 되어질런지? 보는 것도 무지막지하게 중하고, 유익할 것이다. 라고요.^^
글 감사합니다.
구체적 대안은 실체적 진실에 대한 면밀한 조사가 전제되어야 함을 생각했습니다.
공사에 있을 때도 데스크 보다는 현장의 의견을 중시한 것도 어쩌면 상통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정말 정성이 가득한 좋은 글입니다. 저로선 중국을 바라보는 한국언론의 문제가 심각하다고 판단되어 뭘 적어보려 했으나 자꾸 말이 길어져 엄두가 안나더라구요. 그때 도올 선생님의 좋은 인터뷰기사가 나와서 슬쩍 얹혀서 갔는데,,FORUS님은 참 대단 하십니다. 그리고 예전 우미연에서 어느 분이 무슨 말만 나오면 신용화폐 시스템을 갖다 붙여서 까페를 영 재미없게 만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세상에 만병 통치약이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같은 병도 체질과 인과에 따라 달리 약을 써야 하는데...
모든 자본주의 국가가 필경 망할 것이라는 끊임없이 주장했던 분이 있으셨죠.
이유는 늘 신용화폐시스템이었구요... 전체를 보고자 원리를 찾고자하는 노력도
물론 필요하지만, 인문학에서는 그렇게 할 수록 실체와는 멀어지는 위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에서의 삶... 단신이라도 자주 올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항상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우리를 보다 자세하게 알기 위한 노력이라 여겨주십시오.
정말 알찬 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모든 인플레이션은 화폐적 현상이다'라는 유명한 문구에 대한 점검차원의 생각을 해 봐야 겠습니다. 곰곰이...^^
가령 인플레이션이 일어났을 때 생산기반을 확충하고 생산물이 유통과 분배를 통해 사회 구성원들에게 막힘없이 전달될 수 있다면 돈을 줄여 해결할려는 것보다 인플레이션을 효율적으로 잡는 방법이고, 화폐를 줄여서 잡는 것보다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리된 좋은 글, 잘 봤습니다^^
러시아의 90년대 초반 브래지어는 생산과 사회 체제에 대한 생각을 곱씹게 합니다.
신용화폐시스템에 대한 기존의 생각들을 가다듬게 만듭니다^^
가령 베네수엘라를 비롯한 중남미 국가는 오랫동안 생산시설을 미국에 의존해 온 바가 큽니다. 마치 4 모작도 할 수 있는 필리핀에서 쌀을 미국으로부터 수입하듯이 생활과 생산에 필요한 제품과 부품의 의존도가 전통적으로 높은 지역입니다. 이런 지역은 수입을 할 수 있는 달러나 기타 유로화등의 외환보유고가 필수적인데 석유가격의 하락으로 경상수지가 악화되고 외환보유고는 바닥이 들어나게 되었습니다. 오늘자 보도는 백억달러밖에 없다 하더군요. 이런 상황에서 자국화폐의 발행이나 통제는 본질적인 문제를 전혀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많은분들이 신용화폐시스템이 무조건적인 하이퍼나. 디플레를 필연적으로 가져온다고
하는 이론이나 주장은 저는 동의하지 않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심리적으로 어수선한 시기에
포러스님 글처럼 1~3가지의 요건이 해당되면 이것이 하이퍼.디플레 즉 공황이온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는것에 한표 던집니다.
1. 소비자가 요구하는 제품이 극단적으로 부족해야 한다.
2. 소비자가 요구하는 제품의 생산기반이 취약해야 한다.
3.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화폐가 없거나,
지나치게 많아야 한다.
우리와 러시아를 비교하면 우리에게는 외환보유고가 상대적으로 중요한 것이 됩니다. 즉 원자재가 나는 러시아나 베네수엘라와 달리 자체 공급원이 없기 때문이죠. 이렇듯 각국 나라의 사정에 따라 외환 규모의 적정성도 정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왜 우리가 경재규모가 큰 러시아보다 외환보유고가 많은 가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가 처한 상황이 그리되어야 함을 설명해 준다 생각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같이 배우고 있습니다.
인상적인 글 잘 봤습니다.^^
말씀으로 직접 들었을 때보다 글로 이렇게 일목요엲게 설명하시니
한층 더 잘 들어오는군요.
역시 추상적인 이론보다는 실제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각자 한 말들이 워낙 많아서, 다음에는 2박 3일로 이야기 해야 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