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어와 사투리에대한 인식과 대응
<4월5일자 주제>
어느 언어에나 표준어와 사투리가 있다. 학교에서는 표준어 사용을 요구하지만, 사투리 또한 각 지방의 특징을 간직하며 그 나름의 의미가 있을 듯도 하다.
그런데 이같은 사투리는 교육기관과 방송매체등의 확대로 인해 사라져 가고 있다 한다. 우리의 언어생활에서 표준어와 사투리의 사용은 어떻게 수용될 수 있을까. 표준어와 사투리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과 대응은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1,000자 정도로 논의하자.
제 목 : [논술고사의 실제] 최우수(김동수.재수생)
우리는 각 지방에 존재하는 독특한 사투리들로 인해 많은 어휘를 갖고 풍족한 언어 생활을 누려왔다. 그런데 시대가 발달하고 각 지방간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이런 사투리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특히 학교나 정책 당국의 표준어 사용 권유와 각종 방송 매체의 발달이 사투리의 쇠퇴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여기에다 최근에는 지방 사투리를 마치 열등한 언어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어 그 지방 사람들까지 사투리으 사용을 기피하고 있다. 지바아의 사투리는 오랜 역사를 토이해 형성돼온 것이기에 그 지방마다의 특유의 정서와 문화가 배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투리는 그 지방으 총체적 문화사아을 반영 한다고 볼수 있다. 또한 현실의 언어로써 그 지방민의 생활 곳곳을 지배하는 강력한 수단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사투리도 각 지방간의 언어적 차이로 인한 의사 소통문제가 있어 우리의 언어 생활에 적지않은 괴리감을 갖게 한다. 실제로 우리가 시골에 가서 대화를 나누거나 문학 작품을 대할때 낯선 사투리로 인해 이해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게된다. 제주 사투리는 통역을 해야 할 정도이다. 이런 언어적 차이는 자칫 상호간의 정서 교류를 어렵게 하고 각 지방 사이에 배타적 이질감을 갖게해 인간 관계를 왜곡시키고 국민 통합에도 부정적 요소가 될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표준어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표준어는 각 지역간의 언어적 격차를 해소하고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힘으로써 풍부한 생활 문화 유산을 공유 할수잇게 해준다. 이에 더해 표준어는 지방어보다는 좀더 훈화한 언어이므로 국민의 공통적 정서를 나타내는 수단으로써도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표준어만을 지나이게 강조해서 지방어를 무시하고 배척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오리혀 우리의 풍부한 언어 생활에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토속어가 들어있지 않은 문학 작품을 생각해 본다면 이점은 더욱 분명해 진다. 따라서 교육이나 공적인 분야에서는 표준어 사용을 지향하면서 동시에 각 지방으 독특한 사투리를 현실의 언어로써 그대로 인정하고 애정을 갖는 인식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소중한 정서적 고향이고 우리민족의 생활문화를 담고있는 지방어를 잃고 말것이다. 시골의 농부들이 사투리 대신에 고상한 서울말을 한다고 행각해 보라. 그것은 마치 한복입고 운동화 신은것 만큼이나 어색할 것이다. 우세한 언어가 약한 언어를 대힌하는 자연적인 변화는 어쩔수 없지만 맹목적인 지방어에 대한 멸시는지양해야겠다.
제 목 : [논술고사의 실제] 우수3(신예숙.용화여고)
나라마다 지역의 차이로, 사용하는 언어의 표현이 좀 다른, 사투리를 갖고 있다. 사투리와 표준어 사용에 관한 여러가지 의견들이 제시되어 지고있다. 지역의 특성을 간직하기 위해서 또 그 지역의 문화적 특징을 잃지 않기 위해서 사투리의 사용을 주장하는 의견들도 있다. 물론 지방의 고유한 특징은 소중한 것이며, 우리 머리 속에 잠재되어 있는 수도 우월주의로 그들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물론, 언어의 첫번째 기능이 의사소통임을 고려했을 때 모든 지역의 사투리 사용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지나친 사투리의 사용으로 인해 한나라의 국민들이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없게 된다면 이미 그 민족만의 언어는 그 기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국의 모든 지역에 표준어 사용을 강요할 수 만은 없다.그것은 모든 학생들에게 똑 같은 모습을 하고 같은 생각을 하라고 강요하는 것과도 같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학교의 구성원인 학생들이 그 학교를 대표하면서도 각자의 개성을 표현하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학교의 구성원으로서 전체적인 교칙을 지키면서 각 개인들이 갖고 있는 자신의 개성과 능력을 표현하면 되는 것이다. 언어의 사용도 이렇게 하면 된다. 고정된 관념으로 사투리 사용을 경계할 것이 아니라 그 자체적인 고유성을 인정해 주면서 한국인으로서 표준어 사용을 정착시키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투리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너무나 획일적이고 정렬되어 있는 것에 익숙하다. 각 지역의 고유성을 인정해 줄 수 있어야 하겠다. 지역이 갖고 있는 영역을 국가라는 테두리 속에 넣어 침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물론, 지나친 지역중심적인 사고로 인해 빚어질 수 있는 여러가지 편견이 사투리의 사용으로 말미암아 촉진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각 지역이 서로를 존중하는 것으로써 해결 할 수 있다. 특색있는 지역을 객관적 잣대로 순위를 매길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인으로서 서로의 뜻을 전달하는 여러 공적인 만남에서나 지식, 정보를 받을 수 있는 방송매체, 교육기관에서는 표준어를 사용하되, 각 지방의 고유한 사투리의 사용은 인정할 수 있어야 하겠다.
제 목 : [논술고사의 실제] 우수2(조윤명.재수생)
초등학교 시절부터 국어시간에 표준어는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라고 일컬어져 왔다. 그래서 표준어를 쓰는 사람들은 문화인이라고 생각되어졌고, 서울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표준어 사용의 확대 속도도 엄청나게 빨라졌다. 방송매체나 인쇄물에도 표준어가 사용되기 때문에 표준어 사용은 당연시되고 있는 반면 사투리 사용은 양적으로 줄어들고 질적으로 경시되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는 사투리에 대한 현재의 인식과 대응을 좀 더 올바른 방향으로 바꾸어야 한다. 사투리는 괴상하고 알아듣기 힘든 말이 아니라 각 지역마다 자연스럽게 생긴 지역문화이기 때문이다. 서울이 한국의 수도이기 때문에 서울말이 한국의 표준어가 된 것이지 만약 부산이 한국의 수도라면 표준어는 부산말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표준어와 사투리는 똑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교육기관이나 방송매체의 증가로 표준어의 사용이 더욱 요구되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사투리의 사용은 억압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단순히 약간의 의사소통의 불편함과 지역감정유발등을 이유로 표준어 사용을 요구하는 것은 각 지방의 특색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각 지방의 문화가 모두 각각의 특색을 다양하게 나타내듯이 각 지방의 말도 조금씩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사투리는 그 지역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문화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억지로 사투리 사용을 억압한다면 그것은 그 지역문화 자체를 무시하는 것이 되고, 그렇다고 억지로 사투리의 사용을 촉구한다고 해도 정해진 지역에서 사투리를 더 유창하게 많이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사투리는 발생이 자연스러웠던 것처럼 사용도 그 지역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하도록 놔두어야 한다. 사투리에 대한 보다 정확한 정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사투리는 [표준말이 아닌 말]이라고 적혀있어서 표준어의 정의를 부정하면 사투리가 된다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각 지방의 문화를 존중함으로써 우리는 표준어와 사투리에 대한 인식을 보다 정확하고 올바르게 가다듬어야 할 때이다.
제 목 : [논술고사의 실제] 우수1(박상준.목포고)
사물에 대한 체계적 관리법의 주요 원리 중 하나로 표준화라는 게 있다. 이는 사물을 다루는 데 잇어 요구되는 최적의 기준이나 규칙을 발견하고 외부 ㅇ건들의 철저한 통제를 통해 그것을 통일 함을 의미한다. 표준어는 이 표준화라는 원리를 언어라는 대상에 적용시킨 것이다. 다시 말해 수도에서 쓰이는 말을 최적의 기준으로 삼고 사투리라는 외부 조건으 통제를 통해 한 나라의 공용어로 제정된언어를 뜻하는 말이다. 따라서 이는 원칙적으로 수도 이외의 모든 지방에서 사용이 강요되는 언어이다. 하지만 나는 지방민들에게까지 표준어를 강요하는 건 결코 옳지 않다고 본다.
언어는 자연 발생적 성격을 띤다. 원시 사회에서 이것이 형성될 다아시에는 특정한 발생 방향으로 당위성이 주어지는 일이 없엇으므로 이의 발생 주처는 자신들의 표현 감성ㅇ 가장 부합하는 방식으로 자의적인 형성을 진행시켜 나갔을 것이다. 따라서 적어도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나 그 후예들에 있어선 자신들이 발생시킨 언어가 최적의 의사소통 수단일 수 밖에 없다. 사투리는 지방민들이 스스로 형성해 온 값진 의사소통 수단이다. 그러므로 지방민들에게 표준어 사용을 강요함은 그 값진 결과물들의 효용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사소통 수단으로서의 언어 기능을 애써 격환시키는 꼴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사투리의 보존에만 힘쓰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인해 지방간 교류가 자유로워진 오늘날 극단적인 사투리들이 소멸돼 감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식으로 야기되는 사리의 소멸은 소멸원인 제공자, 즉 교통이나 통신 등이 어떤 의도나 목적성을 갖고 인위적인 제재를 가한 경우가 아니기 대문에 언어의 자발적(자발적) 성격에 거스르지 않는다. 오리혀 새로운 언어형의 동장에 따라 스스로 최적형을 만들어 나갔다는 점에서 더욱 생동적인 자발성이 엿보인다. 이렇듯 사투리와 표준어는 각각에 대한 인위적인 규제 없이 언어 사회 구성원의 자발적인 동의에 의한 자유로운 결합을 이룰 때 가장 이상적인 상호 수용형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잇다. 따라서 이 둘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과 대응은 자기가 삶을 살아오면서 익혀온 그대로 언어생활을 해나가려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게 바람직하다.
제 목 : [논술고사의 실제] 강평(홍종선.고려대교수)
표준어와 사투리. 이들은 모두 소중한 언어 자산이다. 사실, 한국어라고 할 때에 그것은 하나의 표준어와 각 지역의 사투리들을 모두 합한 총체를 가리킨다. 특히 사투리에는 그 말을 사용하는 지방의 생활 문화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그것은 그 언어권에서 가질 수 있는 다양함과 풍부함에 큰 기여를 하는 요소이다. 바로 이러한 점이, 성격이 비교적 중립적인 표준어와 그 소용성을 달리하는 사투리가 지닌 주요한 가치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정책적으로 보장되는 말은 표준어 뿐이다. 공용어로서 교육 기관이나 각종 공식 자리에서 쓰이는 규범적인 말은 표준어이어야 한다. 그것은 두 가지 말 사이에 우열을 가리는 게 아니라 순전히 편의를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지방의 독특한 사고와 정서가 자연스럽게 뱅어나는 사투리 사용의 유용함을 또한 배제하지 않는다. 교육으리 확대오 대중 전달 매체의 발달 등으로 사투리는 급격히 약화해 가고 있다. 사투리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은 잘못 이해하고 있는 듯도 하다. 우리는 사투리를 다시금 올바르게 인식하고 이에 걸맞는 정책을 세워 나가야 할 것이다.
김동수(재수생)의 글은 사투리와 표준어에 대한 균형잡힌 인식을 잘 표현해 주었다. 논지를 이어가는 단락 구성이 매끄러워 자연스럽고, 그만큼 설득력도 높다. 그러나 결론 부분은 좀더 논의를 종합 정리하는 마무리 성격을 가졌으면 좋겠다.
박상준(목포고)은 사투리가 갖는 자연성에 주목하여 논리가 정연한 작품 하나를 건졌다. 이처럼 짜임새 있는 글 가운데에서, 둘째 단락과 같이 비논리적으로 돌출하는 단언을 던져놓는 표현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것이 연역적 구도를 갖는다고 하더라도 선언적인 결론을 성급하게 먼저 내세우는 건 좋지 않다. 표준어와 사투리의 관계에 따라 사투리의 위상을 점검하는 내용도 요구되낟. 조윤명(재수생)의 글에서 첫 문장은 비문이다. 비문에는 문법적인 요인도 있지만, 내용 의미적인 것도 있다. 이번 경우는 후자, 즉 의미상 비문이다. 둘째 문단에서는 소비적인 요인을 줄어야 하낟. 밀도있게 표현한다면 둘째 문단의 분량을 3분의1 정도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시점]이란 구절도 그 문맥에서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길지 않은 글에서는 더욱, 낱말 하나 문장 하나에도 정확하고 충실한 내용을 담도록 노력해야 한다. 마지막 단락도 앞에 오는 내용과 잘 연결되지 못한다.
신예숙(용화여고)으 작품에도 맞춤법, 특히 띄어쓰기가 틀린 곳이 많다. 제시되어 지고 있다]식의 어색한 표현도 고치고, 내용에서는 동어반복적인 낭비를 줄여야 한다. 넷째 단락부터 여섯째 단락까지의 내용은 문단 나누기가 적당하지 않다.
응모한 작품들에서는 사투리으 소중함을 잘 드러내고 있다. 사투리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하고 그들의 수용 문제에도 정당한 견해를 보였다. 이런한 생악이 실제 생활현장에서도 그래도 잘 적용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