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의 내용 속에서 찾고 싶은 문구가 있습니다.
hyuenga@empas.com 의 질의에 대한 답변
화엄경에는 60화엄, 80화엄, 40화엄이 있습니다. 구분은 있지만 하나의 목소리라고 보면 됩니다.

그 내용 중에 전생, 내생이라는 말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화엄경은 부처님의 깨달음-정각 당시의 깨달음에 대하여 설한 내용이 중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60화엄경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마가다국의 적멸도량에 계시었다. 부처님께서 처음으로 깨달음을 이루셨을 때, 대지는 청정해지고 갖가지 보화와 꽃으로 장식되었으며 아름다운 향기가 넘쳐 흘렀다. 또 화환은 부처님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으며, 그 위에 금, 은, 유리, 수정, 산호, 마노 등의 진귀한 보석들이 뿌려졌다. 그리고 수많은 나무들은 잎과 가지에서 빛을 발하면서 빛나고 있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삼세 즉 과거, (도판: 화엄경 사경 판경}
현재, 미래의 진리가 모두 평등함을 깨달았고, 그 지혜의 광명은 모든 사람의 몸 속까지 비추었으며, 미묘한 깨달음의 음성은 일체세간에 두루 이른다. 이어 보현, 보덕지광 등의 보살들, 팔부중, 삼십삼천왕 등 천신 천왕들과 함께 계시던 낙업광명천왕, 시기대범왕, 일광천자, 비사문야차왕 등이 부처님을 찬양하자 연화장 장엄세계는 열 여덟가지 모습으로 진동하였다고 했다. 이어 보신 노사나불의 신력으로 국토에는 법륜이 전하고 법신은 일체의 국토에 충만하고 널리 일체의 법우(法雨)를 내리게 한다
고 설한다.

이 구절을 재구성해봅시다. 탁발해 온 점심을 먹은 발우를 행군 후 수의를 잿물에 삶은 옷을
입은 부처님의 오른 쪽으로 세 바퀴를 돈 제자가 열 대여섯 제자를 대표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청합니다. 열대의 시원한 나무그늘 아래에서 세상의 어느 누구도 설하지 않은 무상의 진리가 설해집니다. 이런 세상도 있구나 하고 정신이 번쩍 듭니다.
마치 박하사탕을 입에 넣은 듯 환한 느낌이 든다고요? 탁한 정신에 어떤 삽상한 깨달음이 온 몸을 휘감는 듯한 황홀한 기분이라고요? 초기 경전에 나온 부처님의 설법을 들으면서 그렇게 느꼈던 법열의 상태를 글로 옮긴다고 생각합시다. 장소와 시간을 신비화하고, 모인 사람의 숫자와 행장을 적분하고 설법의 분위기를 장엄화하면 위의 구절이 나오지 않을까요?
(사진 인용: 보로부두르 초전법륜 750-800년. 부처님이 성불한 후 처음 법을 전함)
노사나불은 보신이라 부르지요. 보신(報身)은 오랫동안 수행하여 그 공덕으로 주어진 부처님의 몸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해서 특정한 어느 부처님이라기보다는 공덕의 결정체라는 의미가 될 수도 있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모든 사람이 불성이 있어 부처가 된다면 바로 노사나불이 된다는 뜻이 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몸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열반하신 화신 석가모니불은 될 수 없고, 석가불의 설법을 일컫는 법신 비로자나 역시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노사나불의 깨달음은 전생과 내생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 이 시각에서 얻을 수 있는 무상의 
지혜를 다루고 있습니다. 유식학에서는 비발사나- 위빠사나라고 표현합니다. 틱낙한 스님은 Dwelling in the moment, I know the moment is most valuable이라고 말했던가요? 현재에 사는 것, 그 현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라는 뜻이 될 것입니다.
전생에 대한 관념은 자타카- 본생담이라는 비유와 방편에 의해 체계화되었습니다. 부처님이 자신의 전생에 이러이러한 공덕을 쌓아 오늘의 부처가 되었느니라.. 하는 것입니다. 근기-수행능력이나 이해의 폭이 떨어지는 중생에게 형이상학적인 교리를 이야기하기보다는 비유로, 그리고 방편으로 설법한 것이므로 불교의 교리에서 전생과 내생을 내세운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도판 경도 국박 소장: 입법계품, 감지금은자 화엄경 변상도 1291넌)
내생은 육신불로서의 석가모니가 열반한후, 그 대안으로 경전의 중요성과 함께 구원의 부처로서 비로자나불, 미래불로서 아미타불이 등장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비로자나불의 연화장세계는 화엄경에서, 아미타불의 서방정토 극락세계는 아미타경, 무량수경, 관무량수경의 정토삼부경에서 잘 설명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미래불과 구원불 사상은 대승경전의 사상이므로 아함경 등의 근본경전에서는 암시가 되어 있을망정 직접 묘사되지는 않았지요. 그 대승경전 중에서도 비교적 근본경전에 가까운 사상이 표현된 곳이 화엄경이라고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화엄경의 사상이 집약되어 있다고 생각되는 구절 하나를 소개해 드리지요. 이 구절은 신라의

자장법사가 선덕왕 5년(636)에 왕명으로 입당하여 오대산-청량산 청량사의 태화지 문수석상 앞에서 7일간 발원 정진수행하여 꿈에 얻은 사구게로 알려져 있습니다마는 실제로는 화엄경에서 서방의 승혜보살이 읊은 게송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구절을 읽고서 왜 전생, 내생이란 말이 화엄경에 나오지 않는지 깨달으신다면 당신은 성불하신 것입니다. 탈락된 글자는 산스크리트어를 한자로 표기했습니다.
(사진인용 세켈 249p 나한 챵셍웬 173-6년 대만 박)
呵囉婆佐曩(가라파좌낭-了知一切法) 일체법을 깨달게 되면
達㘑哆佉嘢(달예치구야-自性無所有) 자성이 무소유임을 알 것이다.
曩伽呬伽曩(낭가희가낭-如是解法性) 이같이 법성을 해석하면
達㘑盧舍那(달예노사나-卽見盧舍那) 즉시 노사나불을 볼 것이다.
因前五蘊故로 後蘊相續起하나니 於此性了知하면 見佛難思議로다
이전의 오온으로 인하여 이후의 온이 상속되어 일어나느니
이렇게 자성을 알게 되면 부처를 보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니라
굳이 화엄경에서 전생과 내생을 언급한 구절이 없느냐고 한다면 이전의 오온, 이후의 오온이 가장 비슷한 개념이 될 것입니다.
화엄경에서 내생을 언급한 내용 역시 부연설명이 필요합니다. 입법계품에서 선재동자가 63선지식을 만나고 마지막에 보현보살을 다시 만나게 되는데, 보현보살이 10종광대행원의 과보로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에 태어나며, 정토에 태어나면 다시 중생에게 회향한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내가 죽음에 이르렀을 때, 일체의 모든 장애를 떨어버리고 저 아미타불을 친견하여 즉시

안락찰에 왕생하기를 원하노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왕생하고 싶습니다 라는 발원입니다. 그 다음으로 게송은 이어집니다. "그 안락찰에 왕생하였으면 임종시의 이 큰 발원을 눈앞에서 성취하되 모든 것이 원만하고 남김이 없어서 일체의 중생계를 이롭고 즐겁게 하리로다"라 했습니다. 상구보리요, 하화중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도판 호암 장 백지묵서 화엄경문 755년 통일신라)
그러므로 화엄경에서 말하는 전생은 오온의 훈습, 내생은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을 설법하기 위한 비유와 방편으로 보시면 화엄경의 정신과 비교적 근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영재, 불교미술을 보는눈(2000, 사계절), 고려불화 실크로드를 품다(2004, 운주사)참조
2016년 補遺
실존불의 행적과 '불설佛說'을 뺀 비유와 방편을 깨닫기는 쉽지 않습니다. 교단에서 극도로 금기시하고, 화두 등의 수행으로 신비화하기를 바라고, 입문서 이상의 교양서적을 권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인위적인 한계를 넘어선 초월적 인식...그게 성불의 왕도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