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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무동 → 하동바위 → 장터목 → 제석봉 → 천왕봉 → 제석봉 → 장터목 → 촛대봉 (→ 청학연못) → 세석 대피소(1박) → 삼신봉 → 청학동'의 무난한 코스를 탐방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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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智異山]
높이: 1915m
위치: 전남 구례군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된 지리산은 한국 8경의 하나이고 5대 명산 중 하나로, 웅장하고 경치가 뛰어나다. 그 범위가 3도 5개 군 15개 면에 걸쳐 있으며 4백 84㎢ (1억3천만 평)로 광대하게 펼쳐져 있다.
남한 제2의 고봉 천왕봉(1,915m), 노고단(1,507m)으로 이어지는 1백 리 능선에 주 능선에 만도 반야봉(1,751m), 토끼봉 등 고산 준봉이 10여 개나 있으며, 85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있다. 정상에서 남원, 진주, 곡성, 구례, 함양 고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주 능선을 중심으로 해서 각각 남북으로 큰 강이 흘러내리고 있다. 하나는 낙동강지류인 남강의 상류로서 함양 산청을 거쳐 흐르고 또 하나는 멀리 마이산과 봉황산으로부터 흘러온 섬진강이다.
이들 강으로 흘러드는 개천인 화개천, 연곡천, 동천, 경호강, 덕천강 등 10여 개의 하천이 있으며 맑은 물과 아름다운 경치로 "지리산 12동천"을 이루고 있다.
청학, 화개, 덕산, 악양, 마천, 백무, 칠선동과 피아골, 밤밭골, 들돋골, 뱀사골, 연곡골의 12동천은 수 없는 아름답고 검푸른 담과 소, 비폭을 간직한 채 지리산 비경의 극치를 이룬다. 이들은 또한 숱한 정담과 애환까지 안은 채 또 다른 골을 이루고 있는데 73개의 골, 혹은 99개의 골이라 할 정도의 무궁무진한 골을 이루고 있다.
지리산 비경 중 10경은 노고 운해, 피아골 단풍, 반야 낙조, 벽소령 명월, 세석 철쭉, 불일 폭포, 연하 선경, 천왕 일출, 칠선 계곡, 섬진 청류로 비경을 이룬다.
지리산은 사계절 산행지로 봄이면 세석 및 바래봉의 철쭉, 화개장에서 쌍계사까지의 터널을 이루는 벚꽃, 여름이면 싱그러운 신록, 폭포, 계곡, 가을이면 피아골 계곡 3km에 이르는 단풍과 만복대 등산길의 억새, 겨울의 설경 등 계절마다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인기 명산[1위]
3도 5개 군에 걸쳐 있는 광활한 국립공원 1호 지리산은 산세가 수려한 명산이기도 하지만 어머니 품속처럼 푸근한 산이라 한다. 사계절 두루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다. 한국의 산하 연간 접속횟수가 28만으로 2위인 설악산 13만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이다.
7~8월 여름휴가를 이용한 여름 산행지로 가장 인기 있다. 여름의 시원하고 수려한 계곡과 산에서 2박 3일이 소요되는 지리산 종주 산행이 보편화하면서 이 시기에 가장 많이 찾는다. 또한 지리산은 피아골과 뱀사골의 단풍이 아름다운 단풍 명산으로 10월 중순에서 하순 사이 단풍산행으로도 많은 사람이 찾는다.
삼신봉[三神峰]
높이: 1,289m
위치: 경남 하동군 청암면
지리산 하동지역은 쌍계사, 칠불사 등의 절을 비롯하여 불일폭포, 화계계곡, 청학동, 도인촌 등의 볼거리도 많다. 청학동 마을에서 삼신봉을 바라보면 왼쪽부터 쇠통바위, 가운데는 내삼신봉, 오른쪽이 외삼신봉으로 세 개의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 이중 내삼신봉이 해발 1,354m로 가장 높지만, 통칭 삼신봉은 이보다 해발이 낮은 1,284m의 외삼신봉을 대표해 부른다.
삼신봉은 지리산 남부능선 한가운데에 우뚝 솟아 동으로는 묵계치를, 서쪽으로 생불재(상불재), 남으로는 청학동을, 북쪽으로는 수곡재와 세석을 이어주는 사통팔달 요충지의 역할을 한다. 삼신봉 특히 외삼신봉을 기점으로 다양한 등산로가 열려 있다.
산행코스는 남부능선코스가 대표적이며 청학동에서 삼신봉, 상불재를 거쳐 다시 청학동으로 향하는 순환코스, 삼신봉- 상불재- 불일 폭포, 삼신봉- 거림골 등의 코스가 있다. – 한국의 산하
애초 8월 정기 산행은 천마산으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다른 방이 MT를 하는 등 내부 다지기에 열심이라 우리도 단합대회라는 명목으로 남한 최고의 산 지리산 정상 천왕봉에 오르는 것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7월 17일 공지를 할 당시만 해도 코스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목표는 단합대회인 만큼 여유로운 산행 이후 계곡에서의 물놀이였다. 여유로운 산행을 위해서는 1박을 해야 하는데 그럼 대피소 예약이 중요하다. 총 12명 중 일요일에 합류하기로 한 낙진을 제외한 11명이 숙박을 할 수 있는 대피소 자리가 필요했다.
올해부터 성수기 대피소 예약이 선착순에서 추첨으로 바뀌어 자리 확보를 자신할 수 없는 상태였다. 해서 일단 가능한 모든 친구가 세석 대피소 추첨에 참여했지만, 상미와 홍 원장만 운 좋게 당첨되었다. 우리 인원 대비 8자리는 확보했지만, 3자리가 부족했다. 확보하지 못한 세 자리는 촛대봉에서 비박을 해야 할 수도 있어 그게 가능한 친구 셋을 먼저 추리고 남은 인원을 대피소 숙박 명단에 넣었다. 그 셋이 인형, 흥수, 나다. 그리고 애초 가기로 했던 친구가 자리를 양보해 순희 누님을 추가한 여덟 명에 대해서 등록하고 결제했다.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수의 대피소 자리를 확보한 상황이라 위와 같은 코스를 선정했다. 그리고 추첨 후 결제를 하지 않은 자리에 대해서는 결제가 끝난 다음 날 선착순으로 예약을 받아 아직은 비박 장비를 지고 가지 않아도 될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리고 그 기대에 부응해 선착순 예약 당일 인형이 추가 3자리를 위해 집중한 덕에 자리 확보에 성공했다. 이제 더 비박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렇게 정리가 끝나고 각자 역할 분담을 하고 있는데 공무로 고생한 영빈이 같이 가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해서 인형이 예약한 세 자리에서 나를 빼고 영빈을 넣었다. 그리고 국립공원 사이트에 들어가 예약할 수 있는지 확인을 해보니 자리가 있었다. 아무래도 폭염이라 산을 포기한 등산객이 많거나, 산악회에서 추첨에 응했다가 충분한 자리 확보에 실패해 당첨된 자리도 포기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어쨌든 우리 인원이 총 13명이 되었다. 만약에 예약에 실패하면 친구 사이에 껴 잘 생각이었다. 여덟 명 사이에 한 명 더 껴 아홉이 자는 건 힘든 일이 아니다. 十匙一飯!
처음 12명이 1박 2일 지리산행을 한다고 했을 때 끼니를 어떻게 해결할지 걱정이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해결책이 6명씩 두 개조로 나누어 각 조에서 알아서 하는 것으로 했다. 사실 12인분의 밥을 할 코펠과 버너도 없다. 대피소에서 햇반을 산다면 쉽게 해결되겠지만, 우리 등산방의 성격에 맞게 학창시절의 추억을 더듬어 밥을 해서 먹기로 했다. 배낭은 좀 무겁더라도 충분한 시간이 있는 만큼 많이 쉬어 가면 되기에 무리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다.
여름 휴가는 "지리산에서"를 외치는 상미는 노고단 대피소와 백무동 펜션을 추가 예약했다. 목요일 구례로 내려가 성삼재에서 노고단 대피소로 오른 후 체크인을 하고 노고단을 탐방할 예정이다. 그리고 대피소에서 1박 후 화개재까지 주 능선을 타고 뱀사골로 하산 대중교통을 이용해 백무동으로 이동한다. 나머지 친구는 남부터미널 발 백무동행 심야 버스로 이번 산행의 들머리인 백무동으로 간 후 식당에 미리 주문한 아침을 먹고 산행을 시작한다. 다만 심야 버스로 이동 후 바로 산행이 부담스러운 순희 누님과 명신은 상미가 예약한 펜션을 같이 이용하고 희제와 영한은 민박을 예약했다. 토요일 아침 식당에서 만나는 계획이다. 그리고 낙진은 토요일 심야버스로 일요일 새벽 백무동에 도착해 바로 한신계곡 코스로 세석 대피소로 합류할 예정이다.
미리 출발한 상미는 시간이 늦어 계획과 달리 목요일 노고단 정상 탐방에 실패했다. 해서 다음 날인 금요일 노고단 탐방 후 화개재를 거쳐 뱀사골로 하산한다는 소식을 듣고 우려가 되었다. 시간상의 문제도 있지만, 거리의 문제도 있어 금요일 체력을 다 소모하면 토요일부터 시작되는 본격적인 산행에 어려움이 예상되어서다. 와중에 지리산에는 비까지 내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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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출발한 다섯 명을 제외한 심야버스파 일곱 명인 홍 원장, 서기, 영빈, 인형, 창우, 흥수, 나는 금요일 저녁 남부터미널 부근 순댓국집에서 미리 만나 간단하게 한잔 후 11시 50분발 백무동행 버스를 탔다. 정시에 출발한 버스에는 제일 뒷자리를 포함 10여 석의 빈자리가 있었다. 평소라면 인기가 좋아 차표 구하기도 쉽지 않은 차인데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온다는 소식에 많은 등산객이 산행을 포기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4시간 이동 후 바로 산행을 시작할 예정이라 버스에서 잠을 자둬야 그나마 무난한 산행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등버스도 아닌 일반 심야 버스라 잠을 자기는 쉽지 않다. 다들 어떻게든 자 보려고 애를 썼고, 나는 비어 있는 제일 뒷자리로 가 누워서 잠을 청했다.
버스가 3시 20분경 백무동에 도착해 모든 짐을 들고 희제가 예약한 '초가집'이라는 식당 겸 민박으로 이동했다. 전날 미리 12인분의 아침과 점심으로 유부초밥 도시락을 예약해 두었었다. 식당에 도착해 자고 있던 영한, 희제와 인사를 나누고 곧이어 다른 펜션에서 잔 순희 누님, 명신, 상미가 도착해 같이 다슬기 국밥과 청국장 중 하나로 아침을 먹었다. 주문한 도시락을 각자 나누어지고 산행을 시작한 시각이 4시 56분이다. 애초 4시면 출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침 준비가 늦어지는 바람에 예정보다 한 시간가량 늦어졌다. 앞으로 이 집을 이용하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봐야 할 사항이다.
얘기를 들어보니 심야버스 팀만 잠을 못 잔 것이 아니라 미리 와있던 영한, 희제는 술 마시느라 잠을 못 자고 다른 펜션에 묵었던 여성팀은 주변이 소란스러워 잠을 못 잤다고 했다. 세석까지 가는 길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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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머리 입구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등산로를 따라 랜턴을 켜고 하동바위 코스로 장터목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어둠이 가시기 시작하는 계곡에서 땀을 씻는 동안 밥을 먹고 바로 배낭을 지고 등산을 하는 바람에 속이 좋지 않았던 순희 누님은 상미가 침을 놓아 치료했다. 역시 한의사와 같이 다니는 것은 이점이 많다. 약 20분가량 휴식 후 다시 길을 재촉해 참샘을 지나 10시 45분경 소지봉에 도착했다. 산행 시작 후 5시간 40여 분이 지나서다. 애초 천왕봉을 들렸다 내려와 장터목에서 점심을 먹을 생각이었지만, 이 페이스라면 장터목에서 점심을 먹고 천왕봉에 올라야 할 상황이다. 오랜만에 산행하는 친구가 몇 있다 보니 페이스가 늦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고 그것을 고려해 계획을 짰기 때문에 시간상 문제는 없었다.
아침을 5시에 먹어서 그런지 10시가 넘으니 배가 고파와 소지봉에 자리 잡고 앉아 도시락 몇 개와 보충식 등으로 간단히 요기했다. 그렇게 쉬고 있는데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일행이 인솔교사와 백무동으로 하산하고 있었다. 해서 어디서 온 학생들인지 물어보니 진도에서 왔다고 "응, 여기 진도 출신 친구 있는데…." 그 학생 일행과 흥수가 진도애 대해 얘기하는 것을 듣다 알게 된 사실 진도는 중학교가 7개나 있는 한국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행을 인솔하고 있는 교사 중 체육 교사가 흥수와 같은 동네 출신이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데, 막 그 체육 교사가 내려오고 있었다. 흥수가 그 체육 교사와 인사를 하고 통성명을 하니 체육 교사가 흥수가 아는 선배라고…. 흥수는 기억이 없지만.
그렇게 노닥거리고 있는데 또 한 팀의 학생들이 내려오며 위에서 들었는데 거북이를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간 선배가 여기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누구냐고 물어 다 같이 한바탕 웃었다. 평소 흥수가 했던 얘기를 우리보다 앞서가고 있던 상미가 진도에서 온 학생인 것을 알고 얘기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리고 거북이 아니라 돌고래라고 수정해 주었다.
본인의 페이스가 있는 영한을 제외한 11명이 11시 50분에 장터목에 도착해 준비한 도시락과 예정에 없던 라면 4개를 끓여 점심을 먹었다. 그 라면은 2일 차 점심용 13개 중 4개였다. 부족한 라면은 다음날 합류 예정인 낙진에게 부탁을 하든가, 아니면 밥을 좀 많이 해 찬밥과 같이 먹는 방안도 고려했다. 그리고 처음부터 영한의 페이스를 고려해 영한의 점심은 따로 챙겼다. 전날 비가 내린 지리산은 비구름이 잔뜩 끼어 10m 앞도 잘 보이지 않아 전망은 좋지 않았지만, 간간이 이슬비도 내려 산행하기에는 아주 좋은 날씨였다. 점심을 먹고 희제가 가져온 쌕에 간단한 요깃거리와 물만 넣고 모든 배낭은 장터목에 둔 채 천왕봉을 향해 올라갔다.
2시 5분에 비구름으로 덮인 천왕봉에 도착해 영한을 제외한 11명이 모여 단체 사진을 찍었고, 각자 기념될 만한 사진도 찍었다. 그 시간에 영한은 장터목에 도착해 점심을 먹었다. 다시 장터목으로 내려가 영한과 합류 후 세석을 향해 갔다. 사실 나는 이런 식의 갔던 길을 돌아가는 산행을 좋아하지 않아 어떤 경우는 정상을 무시하고 산행을 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번에는 천왕봉이 초행인 친구도 있고, 초행이 아니라고 해도 학창시절 등산이라 기억이 희미한 친구도 있어 산행의 목표를 아예 천왕봉으로 잡은 것이다.
천왕봉을 오르다 또 학생으로 보이는 단체복을 입은 일행이 보여 어느 팀인지 물어보니 전남교육청에서 주관하는 천왕봉 등반이라고 했다. 아까는 진도 고등학생이었고(학교는 기억이 안 남), 이번은 전남교육청이라…. 진도 팀은 연하천에서 1박 후 장터목에서 2박 희망자만 천왕봉 오른 후 백무동으로 하산하는 길이었고, 교육청 팀은 중산리로 올라 백무동으로 하산한다고 했나? 종주한다고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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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로 내려오느라 또는 주변이 소란스러워 간밤에 충분히 잠을 자지 못해 피곤한 상태에서 왕복 3.4km 세 시간이 넘게 천왕봉을 다녀와 지친 일행이 다음 코스인 세석까지의 길 상태에 관해 물었다. 해서 "국립공원이 작성한 지도에 의하면 거리는 3.4km에 불과한데, 소요시간은 2시간으로 되어있다. 시간당 2km도 못 간다는 소리로 길 상태가 예상될 거다."라고 알려주었다. 사실 장터목 천왕봉 구간도 지도에 의하면 1.7km에 불과하지만, 소요시간은 1시간 반으로 나와 있어 절대 쉽지 않은 코스라는 걸 알려주고 있다. 내가 다녀본 바에 의하면 설악보다 지리가 더 어려운 산이다. 설악은 험하기는 하지만 코스가 짧고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은 데 반해 지리는 능선 하나만 타도 기본 10km가 넘고 곳곳에 지뢰가 많고 오르내림도 심해 절대 쉽지 않은 산이다.
충분히 자지 못해 피곤한 몸으로 천왕봉에 올랐다가 간간이 내리는 이슬비를 맞으며 가는 세석까지의 길이 대단히 힘들었을 것이다. 해서 자연스럽게 3그룹으로 나뉘어 홍 원장과 인형이 선두에 서기 영빈 희제 내가 중간을 나머지가 후미에 섰다. 가는 중 홍 원장에게 전화해 대피소에 도착하면, 대표자로 예약한 상미, 홍 원장, 인형, 나는 같은 팀이라는 사실을 요원에게 알려주라고 했다. 그럴 경우 자리 배치를 같이 해주지만, 별말이 없으면 자리 배치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5시 40분에 세석 대피소에 도착하니 이 지역은 비가 많이 내렸는지 모두 취사장 내부에 있고 외부 테이블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중 상태가 좋아 보이는 테이블에 배낭을 둔 후 화장실로 가 볼일을 본고 홍 원장과 인형을 찾으러 대피소 2층으로 올라갔다. 2층 대기실에서 둘은 짐을 정리하고 있었고 나를 보자 홍 원장이 자리 배치는 해주지만 예약자가 다 와야 모포를 빌려줄 수 있다는 요원의 말을 전해 주었다.
접수대로 가 신분증을 꺼내 확인을 시켜 준 후 혹시 모포 말고 매트도 있는지 물어보았다. 이틀 전 노고단 대피소에서 잤던 상미의 말에 의하면 거기선 모포와 매트를 빌려준다는 것이다. 2주 전 중청에서 잘 때도 매트가 없었고 매트를 빌려준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 거라 물어본 거다. 돌아온 답은 "여기는 노고단이 아니다!"는 친절하고는 아주 거리가 먼 퉁명스러운 말이다. 말 속에 일하기 짜증 난다는 투가 묻어났다. 해서 "네, 그렇죠. 세석은 노고단이 아니죠"하고 끝냈다.
둘에게 밑으로 내려오라고 한 후 다시 테이블로 돌아가 배낭에 든 코펠 버너 삼겹살 등을 꺼내 세팅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세팅이 끝나니 후미 팀이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조별로 테이블을 차지하고 가져온 삼겹살 안주로 간단히 마시고 2조는 그 삼겹살 기름에 내가 가져간 볶음밥을 볶아 먹고 1조는 창우가 가져온 쌀로 밥을 해서 먹었다. 그리고 다음 날 먹기 위해 가져온 미역국을 끓여 같이 먹었다. 내일 아침 국거리가 없어 넘쳐나는 김치와 삼겹살로 김치찌개를 끓이기로 하고 삼겹살 한 덩이를 남겼다. 저녁을 먹다 영한은 같은 산악회 회원을 만나기도 했다. 역시 세상은 좁다.
취사도구와 음식을 잘 갈무리해 취사장에 두고 배낭만 들고 배정받은 우리 자리로 가니 9인 침상 하나를 통째로 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인형이 인당 두 장씩 빌린 모포 한 장은 깔고 한 장은 덮고 좀 더운 감이 있는 침상에서 푹 잤다. 몇 시에 잤는지 기억이 없지만, 주변의 소란으로 여섯 시경 일어나니 모포는 안 덥고 속옷 바람으로 자고 있었다. 물 한 잔 마시고 옷을 입고 모포를 개어 대기실에 두고 내 등산화라 생각되는 신을 신고 비 오는 세석 대피소를 지나 화장실을 다녀왔다. 그리고 인원을 세어보니 한 명이 비었다. 화장실 가면서 밖에서 흥수를 봤으니 인원은 맞는데 얼굴을 보니 흥수가 자고 있었다. 응, 그럼 누가 없는 거지?
한 명씩 확인해 영한이 없는 걸 확인 후 영한을 찾으러 내려갔다. 대기실에는 영한이 모포를 깔고 덮고 자고 있었고 요원 둘이 반납된 모포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충전기가 있는 곳에 있던 폰의 알람이 요란하게 울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끄는 사람이 없어 내가 알람을 껐더니 어제 그 요원이 남의 폰을 왜 손대냐면서 화를 내고 폰을 접수대로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조금 있으니 알람이 다시 울렸다. 내가 화를 내며 여기 자는 사람이 있는데 왜 알람을 안 끄냐고 한마디 하자 여기는 자는 장소가 아니라고 했다. 침상이 더워 이리로 피난 온 거니 그럼 좀 시원하게 해야 할 거 아니냐고 얘기하자 영한이 그만하라고 해 중단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려고 신발을 보니 내 신이 없었다. 내가 화장실 갈 때 신고 간 신이 내 등산화가 아니란 소리다. 아무리 주위를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어 혹시 내가 신발장에 넣은 것이 아닐까 의심되어 침상으로 신발장 열쇠를 찾으러 갔지만 없었다. 신발장에 넣어놓고 문을 안 잠글 수 있어 신발장의 문을 차례대로 열어 보기 시작해 30여 개를 넘어가니 내 등산화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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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가 넘어 아침을 하기 위해 쌕에 빈 물통을 다 담아 물을 뜨러 50여 미터 떨어진 식수대로 내려갔다. 세석의 식수대는 바로 밑에 있지만, 가물면 50여 미터 아래에 있는 식수를 이용한다. 그 물은 청학연못에서 발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창우가 가져온 쌀을 둘로 나누어 조별로 밥을 하고 상미가 가져온 멸치와 미역으로 미역국을 끓이고 어젯밤 김치찌개용으로 남겨두었던 삼겹살은 희제가 김치와 볶았다. 조별로 아침을 하고 있는데 토요일 저녁 심야버스로 서울에서 출발해 한신계곡으로 올라온 낙진이 모두의 환호 속에 7시 30분경 도착했다.
수박과 복숭아 등 과일을 들고…. 대피소에 있던 우리는 환호 소리에 낙진이 도착했다는 사실을 감지했다. 밥과 국이 다 되어 먹기 시작했는데 남을 줄 알았던 밥을 싹싹 긁어먹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그리고 후식으로 낙진이 공수한 과일을 먹었다. 물론 대피소에 있던 모두의 부러움을 받으며. 문제는 부족한 라면을 찬밥으로 보충할 생각이었는데 밥이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 삼신봉에서 밥을 하던가 아니면 청학동으로 내려가 점심을 먹는 방법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대놓고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청학동까지 내려가자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그럼 서둘러 떠나야 한다.
8시 40분경 세석을 떠나 삼신봉을 향했다. 가는 길에 식수대에서 부족한 물을 채우고, 라면을 끓이려면 그 물도 고려해야 하는데, 물은 충분해 보였다. 25분가량 지나 음양수 제단에 도착했다. 제단에 낙진이 가져온 수박을 제물로 놓고 각자 소원을 빌었다. 그리고 조금 휴식 후 밑에 있는 음양수를 마셨다. 참고로 음양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얘기가 있다. - 음양수샘은 바위 양쪽에서 각각 음수와 양수가 흘러 한 곳에서 만나는 신비한 샘입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가 이 물을 먹으면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세석 연진의 전설이 내려오고요. - 그리고 청학동을 향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었다.
세석에서 청학동까지는 10km 3시간 30분으로 표기되어 있어 시간당 2.9km로 등산로치고는 아주 상태가 좋다는 의미다. 그런데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 조리대가 길을 막고 있어 진행이 생각보다 느렸다. 마치 적도의 밀림을 뚫고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한 친구가 정글도가 필요한 것이 아니냐는 말을 할 정도로. 7.5km 지점인 삼신봉에 도착한 시각이 1시 40분이니 7.5km를 가는 데 5시간이 걸렸다.
비록 오랜만에 등산하는 친구가 있다는 것을 고려한다 해도 등산로 상태가 최악이라는 것을 반증한다. 하나 재밌는 것은 우리가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자리 잡고 앉으면 꼭 비가 내려 휴식을 방해했다. 삼신봉에 도착해 자리를 잡고 앉아 사진을 찍고자 했지만, 카메라가 말썽을 부려 폰으로 찍어야 했다. 2015년에 산 SD 카드가 수명이 다한 거 같았다. 그동안 수고했으니 미련은 없었지만, 이번 산행 사진을 복구하지 못할까 봐 걱정이었다. (간신히 복구했음)
점심시간을 훨씬 넘긴 시각이라 모두 배가 고픈 상태였다. 삼신봉에서 청학동까지는 대략 1시간이 소요되어 3시경에 도착하므로 삼신봉에서 뭔가를 먹어야 했다. 물론 등반 중 휴식 시간에 이것저것 먹기는 했지만, 정식으로 밥을 먹는 것과는 달랐다. 해서 청학동까지 갈 때 마실 물을 제외한 모든 물을 모아 라면을 끓였다. 탈탈 털어보니 라면이 9개가 나와 13명이 먹기에는 좀 부족했지만, 낙진이 만약에 대비해 가져온 주먹밥이 있어 어느 정도 보완이 되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그리고 사실 산에서 먹는 라면은 최고다. 라면을 끓여 남아 있던 김치와 깨끗이 먹고, 음식물 쓰레기를 안 남기기 위해 마지막 한 방울까지 싹싹 긁어먹었다.
2시 30분경 삼신봉을 떠나 청학동으로 향했다. 청학동으로 향하는 길은 상태가 아주 좋아 급 내리막이었지만, 갈만했다. 대부분 등산객은 청학동에서 세석까지 가기보다는 삼신봉만 다녀오는 것으로 보였다. 다만 대간꾼들만 지리산의 영신봉(靈神峰)에서 김해 분성산(盆城山)에 이르는 낙남정맥 종주를 위해 다니는 것 같았다. 사실 우리가 2일 차에 한 코스가 낙남정맥 1구간이다. 그렇게 산에서 내려가는 중에 영빈이 갑작스러운 비보를 듣고 서기와 같이 서둘러 서울로 향했다. 그리고 창우는 무릅 상태가 좋지 않아 상미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후미에 있던 상미를 기다리는 동안 계곡에서 가볍게 탁족을 했고, 상미가 도착해 침을 놓고 기다리는 동안 탁족을 마친 일행은 먼저 출발해 알탕이 가능한 장소를 찾아 내려갔다.
청학동 500여 미터 전 무릎이 조금 넘는 소를 발견해 그리로 내려가 알탕을 시도했으나, 영한이를 제외한 나머지 친구는 물이 차 무릎 이상 넣기 힘들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청학동 분소에 도착한 시각이 4시 46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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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출발한 인형이 알려준 버스 시간을 보면 4시 40분 원지행, 5시 하동행, 6시 진주행이 막차였다. 4시 40분 차는 이미 떠났고 5시발 하동행은 하동에서 서울 가는 막차가 7시였지만, 빈 좌석이 3석밖에 없어 우리에게는 의미가 없었다. 다만 남원으로 가야 하는 희제만 그 차를 타고 출발했다. 남은 10명은 버스 종점에 있는 고향식당으로 들어가 비빔밥으로 저녁을 먹으며 막걸리, 맥주, 소주를 마셨다.
음식은 전반적으로 깔끔하고 맛있어 영한이 밥만 먹으러 오자는 소리를 할 정도였다. 펜션을 겸하고 있으니 오후 늦게 도착해 밥을 먹고 1박 후 삼신봉에 올라 지리 10경 중 하나인 불일폭포를 보고 쌍계사로 하산하는 가벼운 산행도 좋을 것이다. 참고로 이번 산행에서 지리 10경 중 천왕일출, 세석철쭉, 연하선경을 지났지만, 일출과 철쭉은 보지 못하고 선경만 즐겼다.
밥을 먹고 공휴일에는 100여 미터 아래에 버스가 선다는 정보에 따라 시간에 맞춰 내려가니 진주행 버스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창우가 진주발 서울행 7시 30분 버스를 예약했지만, 우리가 탄 진주행 버스가 1시간 40분가량 걸린다는 기사의 말에 따라 다음 차인 8시 10분 차로 예약을 변경했다. 진주가 가까워지며 남강 변을 달리는 버스 안에서 의암과 촉석루를 보니 갑자기 남강 변 장어구이가 생각났다. 2014년에 왔을 때 포장마차촌이 철거되고 다 건물로 들어간 사실에 분노를 표했었지만, 그나마 남강이 보여 다행이었다.
내 의견을 얘기하니 홍 원장과 영한, 인형만 동의했다. 해서 우리 넷의 표는 취소하고 서울로 향하는 친구와 작별을 고한 후 택시를 타고 장어집으로 가자고 했다. 당연히 남강 변에 있는. 그런데 택시 기사가 놀라운 얘기를 했다. 그나마 있던 장어촌도 다 철거되고 유일하게 하나 남은 장어집도 남강 변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유는 김시민의 진주성을 복원하기 위해서라고…. 그 말을 듣자 어려서 살던 진주 올 일이 없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어집에서 장어와 소주를 먹고 마신 후 터미널로 왔지만, 인형이 예매한 심야버스의 시간 여유가 있어 그 남은 시간 동안 노래방에 들어갔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서울에 도착한 시각이 2시경 집에 들어간 시간은 2시 30분!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까지 아직 배낭도 못 풀었다.
10명이 넘는 인원이 1박 2일 지리산행을 감행할 때 내심 우려를 했지만, 큰 사고 없는 재미난 산행이었다. 해서 다음은 20명이 넘는 인원을 데리고 설악산에 도전해볼까 생각 중이다.
그리고 우리를 본 청학동 분소 요원이 어디서 왔는지 묻더니 세석에서 출발했다고 하자 국립공원 홈페이지에 세석에서 삼신봉에 이르는 등산로 상태에 대해 글을 올려달라고 부탁했다. 이미 현장 요원은 길 상태가 엉망인 것을 알고 있지만, 중앙에서 말을 듣지 않아 정리를 못 하고 있었다. 사실 난 그 엉망의 길이 더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부탁을 들어주어야 하나 고민이다.
결과적으로 처음 계획과 달리 청학연못을 뺀 '백무동 → 하동바위 → 장터목 → 제석봉 → 천왕봉 → 제석봉 → 장터목 → 촛대봉 → 세석 대피소(1박) → 삼신봉 → 청학동'의 무난하지 않은 코스를 탐방했다.
첫댓글 좋은 추억이 될 듯....^^
1. 천왕봉 두번째 안개에 쌓여 있어 아쉬웠지만...
2. 안갯속 구름속 빗속 풀속 나뭇속을 여한없이 걸었다. ^^ 특히 세석 삼신봉 구간은 감동 그 자체..^&^
3. 대피소 환경이라는데 대해서는 대략 실망... 각자 라면에 햇반들고 다니는게 나을듯.. 술자리도 못하게 하고.. 잠도 일찍 자야하고.. 규헌이 산행기를 보면 관리공단의 오만함과 관료화 냄새도 많이 나고....실망
4. 또 여러 벗들과 좋은 추억을 쌓았으니..감동 감동..
5. 무릎 상태가 걱정이지만 상미 샘의 보살핌으로 무사히 쾌차할 듯함..^^
3.대피소는 말그대로 비바람추위를피하는 최소한의 공간이라 불편할수밖에없다.음주를 금한것은 잘한것이야.간혹 수시로과음에 추태를부리는 산객들이 넘친다. 관리공단직원이 오만하다고단정할게아니다. 수많은 산객중에 규정을 지키지않고 멋대로하는이들을 접하면 짜증날수밖에. 그래도 과거 세석평전이 야영객들로 폐허가 됐을때와 비교하면 국립공원관리공단은나름 잘한거야. 대피소가 산장이던 시절 그곳은 산을사랑하는이들과 산장지가 마주하고 술한잔하던 낭만도있었다. 하지만 그시절은 갔어.등산객이 너무 많아서그래.
어째 사진이 죄다 먹는 사진만 있으까
카메라가 맛이 가 찍을 수가 없었다
참고로 난 지금의 국립공단 관리 방식에 대단히 만족하고 있다.
그건 나도 그렇다. 근데 공룡을 20명을 동행해서 간다는건 무슨 목적으로 그리하는거임?
10월 첫주 주말은 공룡도 사람으로 미어터질것으로보이는데..
평생 공룡을 한번도 못가본 사람이 많으니 동행해서 가는것도 괜찮긴한데..사람이 너무 많다...
@우서락 그런 때 못 가본 사람 가 보는 거지
그리고 말이 그렇지
내가 보기에 5~6가면 많이 간다
@雲峰 ㅇㅇ 그렇겠지? 그때는 나도 설악에 있을거다. 사람없는곳으로 어슬렁거릴란다.
규헌이는 친구들 모시고 공룡에 잘 다녀와라~~
@雲峰 상투바위골에는 9월 중순에 가자
@우서락 ㅇㅋ
@雲峰 내친김에 상투바위골 담날 용아도 뛰까? 생각해보렴~~ 용아는 평일에
@우서락 고민해 보자 날짜가 문제다
@雲峰 그래..날짜는 너가 편한날로 잡으렴.
@우서락 ㅇ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