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대표도 인성검사 해야된다. 국민의 대표가 국민이 주인이데 고것도 모르고 국민의 심장을 찢어발기는
역사 왜곡 발언으로 괴롭히는 비 발전전 작태나 내뱉고 자바라 젓으니
대표 순도가 미달된 금빳지를 때 내야 마땅하다.
어두워지기 전에 날이 세는
기상전외한 기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우리에 앞서 베트남이 물꼬를 북에
텃다 칠십년대 알랑미라고 월남쌀이 들어왓다. 우리 곳 ...
나주 평야는 쌀 농지가 어마어마 하다 얼마전 쌀농사 교육을 갔는데 .생산을 줄여야 제값을 받는다 너무 많아 곡간을 채우면
값이 떨어진다는 원리다.
쌓기 전에 내 보낼곳을 어두어지기 전에 찾아야 된다.
가장 가까운 북쪽부터 뚫어라 머리가 못 뚫면 다리라도 뚫차
나만 생각하고 살아가는 세상이 너무 싫어
브레이크가 그립다. 더 이상 가지 말고 멈췄으면
크게 잘못된 생각들이 사람들의 뇌리에 박혀 있을 까
가슴이 터지는 언통이 부닥쳐도 어찌하지 못한다.
내가 아니니까.
있어야할 게 없으니 말이다.알아야 하는 것 무엇이 옳은 길인지를......
영산강변
뚝방 자징게 길 어린 개나리가 살째기 내다본다.
공기가 너무 맑는 거 있지요 주에 한 번씩 자전차를 굴린다.
주변 별로 볼것은 없어도 청적지역은 딱인게 확실하다.
난 매일 스포츠쎈타를 찾는다 전국 체육인들이 많이 찾는 듯하다.
영산강은 배가 떠야 제격이다. 겨울동안 물이 빠져 현제는 수심이
이미터정도 낮아 있다. 거북선이 흑산 홍어선이 목포항을 거슬러
영산포 나루에 이르기를 간절이 바래보면서
농사철이다가와 수위는 자연 오르지 않겠는가 두고 보자
오천억이 꽁짜는 아니니까.
징기스칸은 태무친이다. 어려서부터 워낙 참을 좋아해 전쟁에서도 좋은맘을 내놓으면 살러주고 불량한 마음을 내 뱃면 무조건 죽였다. 칸은 영혼한 지도자 정신이 깃들지 않음 얻지 못하는 국가 최고 지도자 칭호다
유일 세계 절반 면적의 땅을 거느린 대륙의 영웅이다. 완전한 권력의 지도자다.
어제 금남로에서 저녁을 먹었다.
뒷 자석에서 늑수구래한 두 분이 도청앞 전일빌딩 앞 핼기 사격 애기를 꺼내면서 흥분하드라 뻔한 거짓말을 한 국가 권력자가 ...
무슨 대통령이냐고 살인 학살자지
음마 민주의 아버지랑께
민주가 뭣이여
국민이 주인이라 이것이여
구럼 민주의 할아버지는 유신 헌법 개헌시절 반대하다.
조직 속에서 개패듯 두들겨 맞고 살껍질이 터진 행위가
민주 할아버지의 역활이당가.
자 자동차를 정비해야 아프로 굴러가듯
우리맘들도 고처야 함께 앞으로 굴러 갑니다.
고치지 않고 아프로만 가면 다리가 부러지고
옆구리에 다시 칼이 박힐지 모름니다.
누군가 나서서 정비를 해야 됩니다. 개탕 말이다.
잘못 쓴 권력
지금도 민중의 심장을 칼로 도려내듯 지랄떠는
폭언을 일삼고 있다.요짓을 잠재울 길은 없을까
우리 모두가 참을 찾아 갈고 닦는다면 못할게 뭐 있겠는가
하나같이 잘못된 권력욕에 모든 사실은 기망과 왜곡으로
가십을 동반하고 무리를 결속하는 잡세를 하루빨리
풀어 해치고 모두가 다 함께 아리랑춤을 추는 선명의 미래를
꾸어가기를 간절이 바래본다
몽환
어째 길 위를 배가 다닐까?
현실의 바른길을 디다 볼 줄 모르니
아무데나 싸질러 다녔다 하드라
얼마전 등극하신 우리 고을 수장님댁
초대 받아 간적 있는데 가훈이 일신우일신 하드라
끊임없이 하루같이 길을 찾는 그분은 완벽했었다.
내가 어제는 바로 갔나 오늘은 고처 가야지
요리 살면 모두 다 좋아 질텐데
네 욕구를 채우기위해 남의 기를 찾아들고
마치를 들추고 기어들고 혼란을 일으키는
더러운 귀족들은 무리를 벗겨내지 못하고 시대를 벗어나고 있다.
함께라는 우리는 안타깝게 자꾸 머뭇거리고 있다.
우에서부터 탈을 쓴 광대의 세습에 도취되어
끊임없이 몽류를 즐기고 있구나
삼천 팔백원울 주고
늙은 형제 친구 들랑 오백번 버스에 올랐다.
각자 빽틀고 차갖고 가 봣자 쌩 고생만 하고
쥐약도 못묵고 허니 제대로 함평 붙여 보자고
뻐스간에 내려 행사장까징 걷자고 나셔서 중간 주막에 들러
농주 주모가 손수빚은 휜 술에 목구멍을 챙기고 일나자 마자
턱밑에 대기한 택시 오천에 늙은이 가득 담고 춘란을 보러 슝
코는 멸로고 눈도 별로였는데 중간 늙은이 해설이 점점 시선을
잡드라 계속 머물게 되드라 점심도 꽁짜
주막에 앚아 이석형 선생님 뒷 모습만 봣다. 저분 대단한
간접 교살
누군가의 욕구에 의해 대신 죽엄을 당하는 억울한 희생
피할 수 있는 길은 없는 가
피 흘릴지 않고 이기는 길 찾아갈 길은 없는 가.
왜 우리는 자기끼리 죽어야 하는 가
누군가에 의해 받혀진 제물인가.
보따리를 풀어놓고 내 가닥을 각자 풀어보자
후대 손손 옳은길을 걷고 있는가 말이다.
하루의 일과가 수월해 지는 일은
첫 대면의 모습이다. 반겨주는 옹호성이다.
누구에게나 잠재되 있겠지만 숙성되지 않아
못 꺼내거 요거는 제도에서 리더의 정책이 좌우한다.
극민의 대표가 되신 선랑님을?
주인인 국민이 평가를 내립시다.
젤 형평성이나 미래 지향형이나
정평 타당형 최고급이라 하고
소수 군당에 지나치게 치우쳐 자기 주장이 약해 남에
입을 빌리거나 공적이지 못하게 타지역 국민을 기망하는
졸열하고 수준낮은 국민을 괴롭힌 국민대표는 지역을 떠나
공히 공평에 부쳐 평가해 내는 규법을 정해
고통없는 건전한 사회가 정립되도록 고처 나아가야 합니다.
서로 감정 싸움만 계속 된다면 끝내 좋은 세상은 받아오지 못할
것이다.이젠 국민의 대표는 달라져야 한다. 지역을 가르는
망나니가 되는 건 나를 망치는 어리석은 쫄부 짓이니까
존제의 이유
80년 5월 광주 시민 47명이 기관총에 맞아 숨진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JTBC가 30여년만에 처음으로 검시 보고서 원본을 확인한 결과입니다. 전두환 씨 측은 사망자 가운데 기관총에 맞아 숨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점을 강조해왔습니다.
[허화평/518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 비서실장 : 여태껏 헬기에서 쏜 기관총에 맞아서 죽은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나, 없었다고.]
...헬기에서 사격이 있었다면 기관총에 맞아 숨진 사람이 있어야 하지만 그런 사망 기록은 단 한 건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기관총이 헬기에서 발사된 것인지는 조사해봐야 알지만, 일단 그럴 가능성은 저희들의 오늘(20일) 보도로 매우 높아졌다고 봐야 되겠습니다.
유선의 기자가 전해드리겠습니다.
[기자]
1985년 국방부가 작성한 '광주사태의 실상' 문건입니다.
문건 전체에 광주 시민이 '폭도'라고 적혀 있습니다.
민간인 가운데 총상으로 숨진 사람이 131명인데, 계엄군이 갖고 있던 M-16에 숨진 사람은 29명뿐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전두환 씨가 회고록에 인용한 군 문건과 제목·내용이 같습니다.
그리고 폭도, 즉 시민들이 탈취해 사용했던 LMG 기관총에 의한 사망자가 47명, 칼빈 37명, M-1이 18명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5·18 당시 광주에서 기관총에 사망한 사람이 있다는 군 기록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당시 국방부는 검사와 군의관, 민간 의사를 포함한 49명 규모의 검안위를 꾸려 '기관총 사망자'를 확인했지만 이 기록을 감췄습니다.
같은 해 국회에 제출한 5·18 사망자 문건에 '기관총 사망자 47명'를 지운 것입니다.
대신 '기타 사망자 48명'을 적었습니다.
기록대로 '기관총 사망자'가 시민들끼리 오인 사격에 의한 것이라면 군이 이 기록을 감출 이유는 없습니다.
[김희송/교수 (전남대 5·18연구소) : 전두환 씨를 비롯한 신군부에 유리한 주장인데, 왜냐면 (기록이 사실이라면) 본인들이 사살한 건 아니니까. 본인들에게 유리한 주장임에도 1985년 한두 달 사이 작성됐던 문서에서 LMG (기관총) 사망자를 기록에서 지웠던 이유는 국방부가 답을 해야 하는 거죠.]
이후 군 공식 문서 어디에서도 '기관총 사망자'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영상디자인 : 이정회)
꽃이 피지 않으면 봄을 건너갈 수 없다.
언제나 새맛을 갈구하는 인성의
보편만을 성숙한 국민의 발돋음으로
돌이키지 않을 옛 기억을 상쇄시켜 ...
앞으로 나아가자
자 알아보자 우리의 법은 독일에 성문법을 그대로 뱃꼇다고
고등학교시절에 익히 알고 있지
그 근본으로 운영되는 독일은 세계 최고의 행복을 누리고 있다.
그만큼 완벽하다 이거지요
원래 법은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억울한 사람을 줄이는
참살이를 위해 조직된 질서를 확고이 준수하고 등등
현제 독일의 주거환경 교육환경 경찰환경 등
너무나 완벽에 가깝습니다.
세입자가 한번 입주하면 스스로 나가겠다고 하기전엔
건물주가 절대 자위로 내쫒지 못하고 임대료도 삼년이 지나서 아주 낮은 액수로 법으로 정해진 소액 금액만 올릴 수 있습니다.
교육 정책은 효과없는 교육비는 절대 용납치 않습니다.
실력이 딸리면 절대 대학을 갈 수 없게 만들어 놧습니다.
심세 대학에서 일등했다면 대문에 문패을 달듯 기념패을 붙입니다 피나는 노력으로 실력을 쌓지 않으면 절대 졸업을 시키지 않으니까요 시민의 절대 안전 조건 경찰 정말 훌륭히 운영되고 있답니다.세계에서 제일 친절한 국민 도우미 라고요
지금 현제 독일에선 세계 곳곳에서 핍박받는 자국민을
무조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한민족은 나가라고 밀어내는대도
갈곳이 없답니다.멈출줄 모르는 엉터리 위정자들은 자성해야 좋아집니다.바뀌지 않으면 시간되면 또 다시 네임덕오고 그 밥에 그 나물 그 밥그릇
과거를 고처가는 광주
땅에 묻은 희생자를 파내 불에 태워 버렸으니
땅을 뒤저도 나올리가 요런 증언이 나왔다 제이티비시에서
진실은 캐내어서 확인되어야 종결이 이뤄지고 마무리를 하게 된다
“나의 스무살은 잃어버린 시간이자 지우고픈 기억이 됐습니다.”
1980년 5ㆍ18민주화운동 때 20세의 나이로 계엄군의 만행을 알리는 가두방송에 나섰다가 연행돼 옥고를 치렀던 차명숙(58ㆍ여)씨가 38년만에 당시 수사관이 저지른 고문과 잔혹행위를 폭로하며 눈물을 흘렸다.
30일 광주 서구 치평동 광주시의회 브리핑룸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낸 차씨는 비교적 담담하게 입장문을 읽어내려갔으나 “광주교도소에서 한달간 허리와 손목에 혁시갑(가죽을 쇠사슬로 연결한 수갑)을 찬 채 짐승만도 못한 대우를 받았다”고 하는 대목에선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는 듯 말을 잇지 못한 채 눈물을 훔쳤다.
80년 5월을 기점으로 차씨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1980년 5월 계엄군에 붙잡혀 갖은 고초를 겪은 뒤 계엄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돼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이듬해 형집행정지로 풀려났지만, 정작 견딜 수 없는 고통은 출소 이후에 벌어졌다. 5ㆍ18을 알리고자 가두방송까지 했지만 불온분자라는 낙인이 찍혀 ‘간첩’, ‘부역자’라는 주위의 손가락질을 받은 것.
광주에서 마음 둘 곳이 없었던 차씨는 사람들을 피해 몰래 산이나 들로 나가 하염없이 통곡하기도 했다.
차씨는 “담양 창평에 어머니가 사셨는데, 헌병대가 와서 ‘이 집 딸이 광주에서 폭동을 일으켰다. 선동을 했다’고 전한 뒤 이웃들이 어머니를 많이 핍박해 결국 우리 가족은 서울로 집을 옮겨야 했다”며 “이웃들은 대학생도 아닌 어린 애가 앞장서서 가두방송을 하고 다녔다며 나를 간첩이라고 의심했다”고 회상했다.
결국 광주를 등진 차씨는 남편의 고향인 경북 안동에 정착하며 ‘5월’을 기억에서 지우기 위해 노력했다.
차씨는 “광주와 나와는 무관하다고 애써 생각하며 생활했다. 안동에서 ‘5월 사진전’이 열렸지만 당사자인 나는 오히려 멀찍이 지켜보기만 하고 돌아섰다”고 전했다.
오랜 고민 끝에 차씨는 자신을 괴롭혔던 ‘소요. 계엄법 위반, 공갈’ 혐의를 씻고 인생을 바로잡기 위해 지난 2011년 재심을 청구했고 결국 무죄판결을 받았다. 재심 청구와 광주에서의 공식 기자회견까지 차씨를 이끌어 준 건 두 아들이었다.
차씨는 “서른이 넘은 두 아들이 내 걱정을 많이 한다. 내가 요즘 아픈 것이 혹시 5ㆍ18을 가슴에 묻어두고 살기 때문은 아닌지라고. 그러다 ‘엄마 가슴 속 깊이 있는 한을 털어내라’고 하더라 그래서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기자회견 말미에 차씨는 철저한 진상 규명과 여성 피해자 실태 파악 등을 촉구했다. 차씨는 “앞으로 출범할 5ㆍ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5ㆍ18 당시 자행된 고문수사와 잔혹 행위에 대해 진상을 철저히 조사하고 관련자를 처벌해야 한다”며 “광주교도소는 당시 만행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고, 5ㆍ18을 연구하는 단체 등은 아직도 80년의 상처를 드러내지 못하고 숨어있는 여성들을 찾아내 소중한 증언을 듣고 역사적 진실로 기록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마친 차씨는 당시 고문을 받았던 서구 화정동 505보안대 대공분실을 찾았다. 차씨는 “대공분실의 일부가 훼손됐지만 아직 그대로 남아있는 곳도 있어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이 들었다”며 “38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이제라도 기억하는 부분을 후배들에게 전해 광주의 진실을 밝히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하루에 열두 번씩
내부로 가꾸는 시간들 음 시간이 길때는
미운놈이 옆에 붙여 도통 가려 하지를 않는다.
남을 공격하는 소리를 첨부터 끝까지 지껄인다....
그 소리가 듣기 거북해 한동안 만나지 않았는데
그자가 언날 그리워 불러내 만났다
찾아가는 건널목 대기시간에 양념을 던졋다.
사람끼리 만나서 얘기하고 헤어진후 고자식 괸히 만낫어
요런시간이 오면 안 된다고 사전에 흘려 주었습니다.
왼걸 자기주장을 목숨이라도 걸듯 마치 멱살이라도 잡듯 들어주지 않는다 호프집 주인장 남보기가 역겨워 창믄을 죄다 닫는다.
다음에는 만나지 말아야지
아마 열두 번도 더 만난것 같다 그자 말이 옳을때가 온것도 있었
인생 오욕
태어나서 부모한테 천시 당하고
살면서 부부간에 무시 하고
늙어서 자식한테 원망 당하고 ...
사회에서 멸시 받고
국가 운영자한테 상처 받는 거
마지막 요짓은 당장 고칠 수 있는 것
몇 녀남이 비운영자와 비추해서 수백만명의 백성 가슴에
제 상처를 안겨주고 부라운관에 아니 액정관에 나타나
더러운 입술을 보일때 가슴은 천갈래 만갈래 찢어진다.
마지막 요것을 없애지 않는 다면 죽은 위정자다 미래을 덮어야 한다.
연일 폭발하는 갈등의 장을 보고 있으면 국민은 가슴이 아프다
아프다 지처 아린다.멀기만 먼 미래가 밝아 보이지가 않는다
먼저 할거 낸중에 할거 가닥을 짖지 않고 서로 내 실타래만 찾을려 하니 더 엉켜만 가고 국민은 분노를 적치하고 만다.
갈등
칡은 서로 감고 등 덩쿨은 동으로 감으니
풀리것어요 둘이 죽기전에는 스스로 풀지 못하지요
예상했던 동향이 아닐까 싶어요. 부정하고 싶고 회피하고 싶은 거죠.
◇ 정관용> 전두환 전 대통령한테 한마디 하시고 싶은 게 있다면요.
◆ 조진태> 인간이라면 자신의 죄과 정도는 삶을 마무리할 때 정리하는 게 수순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5. 18 피해 희생자들에게 사죄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이런 인간적 조언을 저는 하고 싶습니다.
억지로 풀려하면 가슴만 달아 지지요
제 삼의 갈과 등의 중간에 저 통통한 놈 저놈이 아주 강하게
몸을 부풀려 힘을 쓰면 옆으로 가라 저겠지요
좌도 우도 아니 중제자 한 자리에서 세놈이 자
라고 있는데
어찌 서로 죽기를 바라것어요 제초제를 먹고 같이 죽기나 허면
몰라도
미래까지 살아남기 위해 서서이 중간이 되자
지금은 몰라도 서서이 양분을 잃어 아마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두 놈은 풀리게 될 것이다.
서로 하나되는
고삐와 멍에
끌려갈 것인가 짊어질 것인가
끌림은 갇힌 것이요 짊은 가변성이라.
힘이 있다면 탈출하면 된다.
더이상 뚜레를 걸지 않으렴 벗어날 길을 찾아라
우리에게 주어진 기쁨과 슬픔은 길에서 주울 수 있는
동전과 같은것
동전의 양면은 긍정과 부정이다.
갈등의 탄생과 소멸을 뒤집는 잣대는 긍정과 부정의 시침에 있다.
긍정으로 시작할 것인가 부정으로 시작할 것인가 말이다.
내가 집어본 긍부정이 역으로 나타날 때 주었듯이 걍 버리면 된다.이게 변화라는 것이다. 왜 있지 않는가 구할 필요를 느껴
더 많이 구하가를 갈구 하니까
없었다는 거니 생겼다는 거는 개혁이다.혁명이다.
사실 앞으로 보수와 진보가 탕평에 상쇄되어 소멸을 맞게 될 것이다 진화된 중도가 고삐와 멍에를 가르겔 될 것이니까
촛불 말이다.
뇌내 혁명과 심내 혁명
승리의 촐랑이 그속을 방문하신다.
푸른 제복을 걸치고 무등을 짖밟고
오리궁뎅이 춤을 췄었지 웅쿵린 굴레에 목을 걸고 단상에 올라...
일번의 남인가 찍고 자징게 순례의 슬기는 남에목에 올라타 목폴라 춤을 추었지 제삼에 촐랑이 춤은 순리와 진토가 함께 녹아내린듯한 촐랑이 앙탈춤을 광주를 엮어 모두 연출해 냇다네
볼트가 지어낸 세계 이목화는 고만 막을 내렸지 장막 뒤에서 촐랑이는 없었겄지 남이 아닌 남에 나라니까.
우리는 쭉 보고들 살고 있다. 이젠 더 이상 보고 슬퍼하지 말자
이젠 남이 아니니까
본인만의 크라이막스 뒤엔 언제고 피눈물이 고인다는 걸 알아내야 한다.
누군가 지어낸 인간의 잔인한 상극 이니까
못된 싹은 다시 자라지 않아야 할텐데 이기적 심내가 사쉽을 일으켜 망나니 짓꺼리를
따뜻한 가슴을 일으켜 내 맘을 확장시키자 남에 가슴도 뎁혀 드리자 마음에 혁명이 오지 않는다면 모르기 몰라도 알고 알아지게찌
함께 따뜻한 가슴 말이다.이세상 모든 종교 지역 남북 지구 전체
가슴에 혁명이 일어나라.
흘러가는 시간속에 기쁨이 온다.
반찬고를 붙인다고 안이 안보이나
시간이 흘러가면 좋아 보이드라
그 상처를 다시 내지 않는
발톱없는 모습이 너무 좋다 겨울 정전 작업만 잘 하시면 봄은 멀지 않았다.
고 가장 중한 쓸잘때기 없는 바람을 맞는 불필요한 가지는 꼭 자르셔야 우뚝 서게 됩니다.
꼬옥 지켜 보겠습니다. 정전을 하셔야 건강히 우뚝 서게 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국민 영양 부족으로
고사에 이르고 맙니다.
지금은 알 시대
인민과 국민의 차이
더이상 부족한 인성에 짓밟히지 말자
무등의 피눈물이 바라본 국게의 부덕도...
국게는 앞으로 갈 줄 모른다
바른 눈을 갖지 못했으니 자꾸 옆으로만 가게 된다.
뻘쭝의 더러운 집게 입은 아무나 물어 짤른다.
홍에 좆이라는 말이 있었다 작금에도 나돈다.
고 더러운 국게를 아직도 끼고 있다.
국민이 인민의 차이 때문에
인자는 확실이 알게 될 중이다.
인민과 국민이 하나라는 것
인민이 먼저고 국민이 먼저일 수 있다.
변화의 필수 시간
그대로 있으면 굳게 되지요
변합은 부드러움이요 균형의 일원이라
끝이 없는 회정 이라 엮이고 엮이니 너무나도 좋지 않겟는가.
끊는 것은 파괴다.파괴는 격리이니 이별은 아니어도 끼일 수가 없느니라 끝까지 함께 한다는 각오속에 내것이라 각짓지 말고
수긍을 묻혀다오 제발
먼산 바라보는 저 아지랭이 봄은 좋다고 읖의면서 정작 볼곳을
못찾고 잇으니 아타깝기 그지없구나
우중선생의 말 맞다나 세계는 넓어 우리를 부른다
이제 적은 없다. 숨겨논게 없으니 미워하고 멀리하지 말아라
찰라의 생각
내가 생을 마감하려고 벼랑끝에 서 있는데 갑자기 나타난
낙엽에 몸을 사렸다고
이게 본심이여 못된 본심과 선한 본심은 요렇게 찰라에 ...
부지 불식간에 나타나지요 요래서 본심은 바꾸지 못한 겁니다.
요래서 인간의 잔인은 후회와 사과를 발로 시키지 못하니
나타넬 수가없어 격리함이 마땅함이요 이별만이 고통을 이기는 길이니 가슴아픈 인연이지요
다소 길어졌을때 애환이 있기도 하지만 머지않고 소멸되고 맙니다 하여 존제가 여유롤때 틈틈이 갈고 닦아 나쁜 본심을 변색하시기 바랍니다.,
세기의 아이쇼는 허망을 뿌렸다.
그래도 서로간 애정이 있었다나
국가주의의 본정 말이다.
내국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
본심은 그대론데 주위를 지키기기위해
따라야할 힘에 쓸러 밀렸을 뿐이다.
그래도 짠한 서글픔이 스며든다
어쩐지 선해 보이던 순해 보이던
순진의 모습이 이즈러 질것같아
누가 만든 잣대냐에 따라 정확의 척도가 차이난다 드라
우리의 잣대를 중제로 삼아 보여드렷드라면 아쉬움이 든다.
우리의 절실한 잣대를 찾아 앞으로를 제어네야 한다.
우린 다시보기를 짓고 있다.
이 싯점에서 일본내의 학점들은
한국내의 국가주의를 강하게 책망한다
개똥 국가주위라고 첫면에 태극기를 보고 가슴이 섬뜩했다.
자세히 보니 성조기가 없었다.삼일 태극기 한 마음
학인이 그랫지 일본 한국의 국가주의 마음은 여섯 마음도 넘고
일곱마음도 넘는 다고 국가주의의 변심 말이다.때에 따라 언제고
국가주의의가 내속으로 들어오는 나를 위해 딴나라 주위로 바꾸는 백성이 많아 일본의 품안에 안기는 인형이 됬다고
너 춤추어봐 너 먹이 물어와 죽일놈들 비국가주위 쓰래기 광
보이지 않은 앞이 바라보기
잊지 않음의 허상에서 실상을 짓는 확진의 개념은
와신상담처럼 등밑에 섶을 깔고 매일같이 쓴맛을 가미해야 하듯
갚음을 위한 명신을 다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여 인간의 잔학상은 죽검의 몇초전에 그의 촉성을 되찾게 되어있답니다.스스로 깨달케 헌다는 거 얼마나 중요 하는 가.
우리 모두가 더 늦기전에 찾아가기를 바래기해 봅니다.
우리가 안에서 열어놓지 안으면 절대 밖에선 열리지 않을 거니까
점점 넓어지는 영역의 확장은 뒤로 가는 사람은 멱살을 물들고 라도 함께 끌고라 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