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도일 거예요.
사랑티켓 홈페이지의 인터뷰란을 맡고 있었거든요.
<메이드 인 차이나>를 연출했던 이지나 연출가를 인터뷰하러 갔었어요.
인터뷰 끝나고
출연배우였던 남경주, 임춘길 씨와 사진 한 방 박고 왔어요ㅎㅎㅎ
이때 사랑티켓에 올렸던 인터뷰 기사를 스크랩해놓지 않아 너무 아쉬워요.
그때는 제 글을 사랑티켓측에서 말도 안 되게
멋대로 바꾸어 놓는 바람에 속도 많이 상했지만요.
제가 쓴 인터뷰 기사 원본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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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함을 거부하는 여자, 연출자 이지나를 만나다.
“제가 원래 멜로 같은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별로 안 좋아해요. 피, 폭력... 좀 정상적이지 않은 것들을 좋아하죠.”
「버자이너 모놀로그」,「록키호러픽쳐쇼」등 파격적인 소재와 내용의 작품들을 연출하여 화제를 만들어온 연출자 이지나의 첫마디는 역시 놀라운 것이었다. 곧 무대에 올려질「메이드 인 차이나」의 막바지 연습이 한창인 대학로의 한 연습실에서 만난 그녀는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에 맨발인 채 언뜻 보면 동네 어디에서나 마주칠 것 같은 평범한 인상으로 우리를 반겨주었으나, 전혀 평범하지 않은 어투로 말문을 열었다.
사람들의 상식과 편견을 깨는 일이 쉽지는 않을 텐데, 지금까지 쭉 그런 작품들만을 무대에 올려온 연출자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직접 들려주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상상력이 무척 풍부했어요. 감수성이 무척 예민해서 간접경험을 해도 직접경험을 한 것처럼 받아들이곤 했죠. 아직까지도 신문을 읽으면 사회면, 스포츠면 상관없이 눈물을 줄줄 흘려요. 그리고 책을 무척 많이 읽었어요. 지금은 약간 활자중독증 같은 증세까지 보여서 소설, 신문, 지하철 광고, 심지어 연습실 사용 안내까지 주변에 글자가 있으면 읽지 않고는 못 배겨요.” 연출자 자신이 갖고 있는 상상력과 감수성이 작품을 만들어내는 원천이라고 한다.
이번 작품 「메이드 인 차이나」는 세 명의 건달 혹은 깡패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제는 우리와 친숙한(?) 직업이 되어버린 조폭의 이야기, 최근에 개봉된 영화의 제목을 빌리자면 ‘하류인생’들의 이야기, 좀더 극단적으로 심하게 이야기하자면 요즘 사회적으로 파동을 불러온 쓰레기 만두소 같은 인간들의 이야기이다. 작품 속 인물의 직업에 대해 이렇게 길고 거창하게 이야기하는 까닭은 그 어떤 것도 이지나 연출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지나 연출자는 요즘의 방송 매체들이 만들어내는 조폭의 이미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한다. “영화나 방송에서 폭력을 너무 미화하고 있어요. 그 인간 이하의 인간들, 실패한 인생을 사는 인간들이 마치 유머 감각에 넘치고 멋있는 인생을 사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죠. 하지만 그건 실제와 달라요. 보면 인상을 찌푸리게 하고 혐오하게 되는, 그런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사실이고 현실인데 다른 매체들에서는 현실을 왜곡하죠. 「메이드 인 차이나」는 지금까지 다른 매체에서 보여준 폭력이 아닌 실체에 가까운 폭력에 대해 보여주려고 해요.” 다른 매체들과의 차별성을 위해 이 작품 「메이드 인 차이나」는 다른 작품들과는 다른 방식을 시도한다. “이 작품에는 조명 효과와 음악이 없어요. 시작부터 끝까지 내내 한 가지 조명이고 음악도 삽입되지 않아요. 오로지 배우 세 명의 연기력만으로 작품을 이끌어가죠. 영화에서는 흔히 폭력 장면에는 비범한 음악이 배경으로 깔려요. 그러한 효과는 인간의 감성적인 부분을 자극하여 이성적인 부분을 마비시키죠. 그래서 폭력의 현실을 관객에게 왜곡하여 보여주고요. 저는 그런 작업은 안하려고요. 사실주의 연극... 이 작품이야말로 생(生) 연극이죠. 외부적인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배우의 연기만으로 폭력의 실체를 보여드릴 거예요.”
연출자의 확신에 찬 목소리는 배우에 대하여 커다란 신뢰를 지니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특히 이지나 연출자는 지금까지의 작품에서 상상을 뒤엎은 캐스팅을 선보여 이 또한 화젯거리가 되었으니, 자연히 배우에게 관심을 쏟지 않을 수 없다. 뮤지컬「록키호러픽쳐쇼」에서는 전문 뮤지컬 배우가 아닌 개그맨 홍록기를 캐스팅하여 뮤지컬 팬들의 걱정 섞인 눈길을 받아야 했고, 또 연극「아트」에서는 연극과는 거리가 먼 백종학 씨를 캐스팅하여 많은 기사의 소재가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의외의 캐스팅을 발표하였는데 뮤지컬 배우 남경주와 임춘길이 바로 그들이다. 같이 작품의 주연을 맡은 정원중 씨는 비록 시트콤을 통해 얼굴을 많이 알리기는 했으나 원래 연극에서 연기를 시작하여 최고의 연기력을 인정받고 있는 배우이니 그의 캐스팅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메이드 인 차이나」의 포스터나 홍보물을 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어? 남경주와 임춘길이 연극을 하네?’하는 의구심을 가졌을 것이다. 이지나 연출자가 배우를 캐스팅하는 원칙은 무엇일까. “우선 신인을 좋아하고요, 그게 아니면 관객동원력이 있는 배우이거나(웃음)... 가장 중요한 것은 대본을 받아 읽었을 때 그 사람에게 참 잘 맞겠구나, 이 사람 아니면 안 되겠구나 싶게 이미지가 잘 맞는 사람을 고르는 것이죠. 남경주 선배와 원래 친분이 있었는데, 이 작품을 읽고 바로 남경주 선배가 떠올랐어요. 보통 저와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많이 캐스팅하는 편이예요. 연극 「아트」를 할 때도, 대본을 읽자마자 ‘아, 백종학 씨가 이 역할을 맡으면 참 좋겠다.’하는 생각이 머리 속을 떠나질 않는 거예요. 백종학 씨는 연극배우가 아닌데도 말이죠.” 이지나 연출자가 가지고 있는 분위기 때문일까. 이제는 이러한 비상함마저도 그녀에겐 당연해 보인다.
이제 공연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이지나 연출자에게는 걱정거리가 있다. 관객이 많이 들어올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것은 작품을 올리는 모든 연출자와 배우와 제작진들의 고민일 것이다. 그러나 최고의 흥행 연출자까지도 그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겸손의 표현이 아닐까 싶은데, 그녀의 말은 조금 다르다. “저는 이 작품이 상당히 격조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관객들의 생각은 그렇지 않죠. 욕이 많다, 폭력이 난무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저질 작품이라고 여기는 거예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저질 작품은 화려한 미사여구, 아름다운 감성들로 가득 채워 관객들의 생각을 마비시키는 작품이에요. 욕이 나오든 음란한 장면이 나오든 작품의 격조는 그런 걸로 결정되는 것이 아닌데, 사람들은 욕이 많이 나온다고 해서 저질이라고 생각해요. 싸구려와 천박함에 대한 개념이 너무 잘못되어 있어요. 본질은 보지 못하고 포장만 보는, 그런 세태가 안타깝죠.” 그리고 꼭 공연 보러 오라는 말도 덧붙인다.
「메이드 인 차이나」는 반전이 있는 작품이다. 1막의 진행을 지켜보는 관객들은 2막의 결말이 어떻다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할 것이라고. 그런데 인터뷰를 위해 연습실을 찾았을 때, 하필이면 그 결정적인 부분을 연습 중이어서 고스란히 그 장면을 보아버린 우리에게, 이지나 연출자는 스포일러가 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그 부탁을 져버릴 수는 없으니, 대신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하나 해드릴까 한다. 이 작품의 원작은 아일랜드의 은어와 비속어로 가득 차 있다. 때문에 그 동안 자신이 연출하는 작품을 직접 번역해왔던 이지나 연출자도 이 작품만큼은 번역을 포기하였고, 국내의 내로라하는 번역 전문가들에게 원고를 보냈을 때도 대부분의 업체들이 원고를 되돌려 보냈을 정도. 번역부터가 고생이었던 이 작품은 과연 원작의 느낌을 제대로 살릴 수 있을까 싶지만. “원작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어요. 주인공들의 이름을 보아도 알 수가 있는데, 원작의 이름에 담긴 캐릭터를 번역된 이름에도 담았지요. 도자 역할의 원작 이름은 킬비예요. 킬이 들어가면서 뭔가 무시무시하고 잔인한 느낌을 주죠. 도자 역시 그렇고요. 희순 역할인 휴이는 ‘휴~’ 하는 발음처럼 싹 날리는 예리한 느낌. 목탁 역할은 원작의 패기처럼 평범한 이름으로 붙였고요. 비속어 같은 경우에는, ‘씨X'이 많이 들어가서 험악하게 느껴지지만,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는 지방욕은 많이 등장하지 않게 서울욕(?)으로만 넣었으니 이해가 어렵지는 않으실 거예요.”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성격을 미리 일러드렸으니, 작품의 이해에 어려움을 겪지 마시고 많이들 가서 보시라. 이제 이지나 연출자의 남은 바람은 이것뿐이다. “워낙 프로배우들이라 연기적인 측면에서는 뭐 보완할 건 없고, 너무 체력소모가 크고 격투 장면이 많이 등장하는 작품이니까 배우들이 탈진하지 않고 건강하게 사고 없이 끝났으면 좋겠어요. 그게 제일 걱정이죠. 아무리 약속을 하고 하는 연기라지만 잠깐의 방심이 큰 사로로 이어질 수 있거든요.”
특히 무더울 것이라 예보되고 있는 올해 여름, 이지나 연출자와 「메이드 인 차이나」가 있어 대학로의 여름은 더욱 뜨거울 것이다. 중국제 제품(이 작품의 원작 made in China)은 싸구려에 저질이라고? 이지나 연출자의 연극 「메이드 인 차이나」도 과연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