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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동무의 도보여행은 ‘함께 행복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는 동행(同幸)입니다.
2018년 가을의 길목에서 제9기 서울둘레길 100인 원정대의 출정식이 있던 날, 자유 길동무 팀인 서울 둘레길 길동무 팀이 창포원에서 길 위에서 행복을 찾아 발걸음을 내딛었습니다.
서울둘레길 100인 원정대와 인연이 되어 어느새 4년째 되던 날입니다. 100인 원정대 2기부터 8기까지 참여하는 길동무의 동행(同幸)을 시작했습니다.
2020년 8월 하순부터 제6기 길동무 팀이 서울둘레길을 역방향으로 진행하려고 계획을 세웠지만 코로나19가 발목을 붙잡는군요. 아쉽지만 아래 영상을 통해 잠시 뒤돌아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 영상제작 : 서울 둘레길 길동무
2018년 길동무와 함께 가을의 길목에서 시작하는 서울둘레길 1코스 수락ㆍ불암산코스의 수락산 구간이다. 수락산은 서울특별시의 노원구와 경기도 의정부시, 남양주시에 걸쳐 위치한 산이다(고도:641m). 조선 시대에는 양주목에 속하였다. 내원암 일대 계곡에 바위가 벽을 둘러치고 있어 물이 굴러 떨어지므로 수락(水落)이라 이름 하였다는 설과 산봉우리 형상이 마치 목이 떨어져 나간 모습이 수락(首落)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한자 표기는 달라도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거나, 골짜기 물이 맑아 금류(金流) · 은류(銀流) · 옥류(玉流)라 하는 폭포를 이루어 떨어지는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산의 자태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수락산은 서울의 서쪽의 인왕산으로부터 북한산 도봉산을거쳐 서울의 동북쪽을 지키는 산이다. 아래로 불암산 아차산 용마산등이 연이어지고 멀리 남쪽으로 관악산부터 우면산 구룡산 대모산등이 어림된다. 트레킹코스로 잘 알려져있는 수락산은 불암산과 이어진 능선에 봄철 철쭉이 아름답다. 산길이 험하지 않고 서울시내에 위치해있어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산이다. 일설에 조선조 이태조가 수락산이 서울을 등지고 앉은 산세를 하고있기 때문에 서울을 도읍지로 삼은 왕의 뜻에 어긋 난다하여 반역산이라 불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올여름 사상 최악의 폭염이 이어지는 가운데 올해 전국 폭염일수와 열대야일수에서 최고기록을 했다. 제4기 서울 둘레길 길동무들이 서울둘레길 완주를 목표로 출발에 앞서 또 다른 변수가 생겼다. 제19호 태풍 솔릭이 초속 43m에 400mm 이상 많은 비를 동반하고, 6년만에 서울을 관통 많은 피해가 예상된다는 예보가 계속되었다. 그렇지만 태풍은 길동무들의 열정을 외면하지 않았다.
가을의 길목에서 서울창포원에서 만난 길동무들이다. 서울창포원은 서울 강북의 끝자락인 도봉산과 수락산 사이에 세계4대 꽃 중 하나로 꼽히는 붓꽃(iris)이 가득한 특수식물원이다. 서울창포원은 약1만6천평에 붓꽃원, 약용식물원, 습지원 등 12개 테마로 구분 조성되어있다.
길동무들이 서울의 안쪽으로 숲과 마을과 하천을 이은 157km 둘레길 종주를 시계방향으로 시작된다.
상도교를 통과한다.
서울둘레길에서 첫 길에 만나는 도봉구는 동쪽으로는 경기도 남양주시와 구리시, 서쪽으로는 경기도 고양시, 남쪽으로는 성북구와 동대문구, 북쪽으로는 경기도 의정부시와 양주시 장흥면에 접하고 있다. 서남부는 강북구와 경계를 이루는 우이천이 흐르고, 북부는 의정부시와 경계를 이루는 도봉산이, 동부는 낮은 지대로 함경남도 원산의 영흥만에서 시작하여 서울을 거쳐 서해안까지 뻗어 내린 좁고 긴 골짜기인 추가령 지구대 남단에 해당되는데, 이 골짜기를 따라 한강상류 지류인 중랑천이 흐르고 있다. 이 동부 저지대를 사이에 두고 노원구쪽에 불암산(508m), 수락산(637.7m)이 있다.
서울창포원을 뒤로 수락산으로 오르는 길목인 징검다리를 건너간다.
1코스 첫번째 구간인 수락산 코스에서 만나는 수락산 구간이 시작된다. 수락산은 서울의 서쪽의 인왕산으로부터 북한산 도봉산을거쳐 서울의 동북쪽을 지키는 산이다. 아래로 불암산 아차산 용마산등이 연이어지고 멀리 남쪽으로 관악산부터 우면산 구룡산 대모산등이 어림된다. 트레킹코스로 잘 알려져있는 수락산은 불암산과 이어진 능선에 봄철 철쭉이 아름답다. 산길이 험하지 않고 서울시내에 위치해있어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산이다. 일설에 조선조 이태조가 수락산이 서울을 등지고 앉은 산세를 하고있기 때문에 서울을 도읍지로 삼은 왕의 뜻에 어긋 난다하여 반역산이라 불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수락산은 서울특별시의 노원구와 경기도 의정부시, 남양주시에 걸쳐 위치한 산이다(고도:641m). 조선 시대에는 양주목에 속하였다. 내원암 일대 계곡에 바위가 벽을 둘러치고 있어 물이 굴러 떨어지므로 수락(水落)이라 이름 하였다는 설과 산봉우리 형상이 마치 목이 떨어져 나간 모습이 수락(首落)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한자 표기는 달라도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거나, 골짜기 물이 맑아 금류(金流) · 은류(銀流) · 옥류(玉流)라 하는 폭포를 이루어 떨어지는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산의 자태에서 이름이 유래된 것 같다.
태풍이 예보되면서 걱정했던 구간인데 매마른 계곡이 조금은 아쉽다. 서울둘레길은 도봉구에서 노원구로 접어든다. 노원구는 서울 최동북부에 위치하며 북쪽과 동쪽으로 수락산, 불암산 등을 통해 경기도 의정부시, 남양주시, 구리시와 맞닿아 있다. 구의 서쪽 경계를 따라 월계동을 관통하며 중랑천, 당현천이 흐른다. 노원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옛날에는 갈대(蘆)만 무성해서 행인들이 불편을 겪어 여관인 원(院)을 설치했는데 여기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으며, 단순히 갈대(蘆)가 많은 들판(原)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수락골이다. 수락골의 옛 이름은 벽운동계곡으로 서울 근교에서 알아주는 명소였다. 벽운동계곡이 있는 수락골은 사도세자의 장인이자 혜경궁 홍씨의 아버지인 영의정 홍봉한이 별장을 짓고 사는 동안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면서 유명해진 곳이다. 홍봉한의 맏딸인 정주의 생모 혜경궁 홍씨도 어린 시절 이곳에서 서정성을 키워 훗날 '한중록' 과 같은 문장을 남겼다고 한다. 현재 덕성여대 생활관 안에 퇴락한 벽운동 별장의 안채 우우당이 남아 있는데, 화려했던 과거의 명성은 간데없고 추사의 글씨로 쓴 현판이 있었다는 이야기만 전해져 온다. 그런데 추사는 이 별장 주인이 세상을 떠난 뒤 8년이 지나 태어난 사람이고, 오래된 소문을 확인할 글자도 지금은 볼 수 없다. 한 시대를 뒤흔든 권력자도 구름처럼 몰려들던 벗들도 간 데 없다.
수락골을 뒤로 한차례 가파른 계단길이 시작된다.
노원구 주민쉼터 전망대다. 그렇게 무덥던 길고 길었던 폭염이 언제 그랬냐 싶을 정도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길동무들을 반기는 전망대에서 추억거리를 남긴다.
전망대에서 노원골로 다시 내려가는 오솔길에서 만나는 소나무 한 그루, 모진 풍파에 꺽이어 마치 4라는 숫자처럼 생긴 모양새가 언제나 이길을 걸을 때 발걸음을 붙잡는다.
노원골이다.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던 '귀천'의 시인 천상병을 기리는 산길과 공원이 있는 곳이다. 시인은 생전에 "수락산정으로 가는 등산행객 / 막무가네로 가고 또 간다"고 했다. 시인이 떠난 뒤 산정을 향해 꾸역꾸역 몰려드는 인파는 더욱 많아졌다. 그런데 이곳 역시 오랜 가뭄 탓에 계곡이 매말라 버려 아쉬움만 남긴다.
배바위다.
고래바위다.
거인발자국 바위에서 또 하나의 추억거리를 남긴다.
둘레길 쉼터에서 잠시 올라서면
전망대를 만난다. 휘둘러보는 전망이 아름다운 곳이다.
채석장 전망대다. 수락산 채석장 자리를 복원한 깍아지른 벼랑 위 전망대에 서니 불암산에서 망우산, 용마산과 아차산 그리고 남산 너머 관악산까지 서울을 에 두르고 있는 먼 산들까지 시야가 트이는 곳이다. 전망대 아래 펼쳐지는 빽빽한 아파트 숲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이 잠시 시선을 멈추게 한다.
늘 길동무들을 유혹하는 슬랩구간이다. 멋진 추억거리 하나 또 만든다.
우회구간 갈림길이다.
당고개공원이다. 지역 주민들에게 편안한 휴식과 문화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원이다. 공원 중심으로 탁 트인 광장이 있고 이외에 어린이놀이터, 야외무대 등이 들어서 있다. 각종 체육시설과 인공암벽장, 그리고 길동무들을 반기는 정자인 덕암정이다.
당고개역 3번 출구를 통과하며 서울둘레길 1코스는 수락산 구간에서 불암산 구간으로 이어진다.
서울둘레길 1코스 수락ㆍ불암산코스의 불암산 구간이다. 불암산은 높이 508m로 수락산과 함께 서울 노원구와 경기도 남양주시의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모습이 우람하다. 정상 부근의 바위로 된 산봉우리가 마치 송낙을 쓰고 있는 부처님과 닮아서 불암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불암산은 서쪽으로 북한산과 마주 보고 있어 걷는 동안 북한산이 자주 보인다. 불암사, 학도암 등의 전통 사찰이 있고, 태릉,강릉이 불암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봄철이면 정말 아름다운 철쭉꽃의 향연을 볼 수는 없지만 바람이 솔솔 부는 철쭉동산을 뒤로 아름다운 터널숲길이 마중나온다.
넓은마당으로 내려선다.
음용불가 판정이 아쉬운 생성약수다. 그러나 생성약수는 언제나 길동무들을 환영한다.
가을의 길목에서 내려다 보는 동부서울과 북한산이다.
최불암시비다.
불암산이여!
이름이 너무 커서 어머니도 불러보지 못한 채
죄스러움의 세월, 영욕의 세월
그 웅장함과 은둔을 감히 모른 채
그 그늘에 몸을 붙여 살아왔습니다.
수천만대를 거쳐 노원을 안고 지켜온
그 웅지의 품을 넘보아가며
터무니 없이 불암산을 빌려 살았습니다.
용서하십시오.
불암산 둘레길 전망대다. 2층 구조로 된 전망대에 오르면 우람한 불암산의 모습을 가깝게 감상할 수 있다. 수락산 아래 당고개 지역을 비롯하여 북한산과 도봉산의 모습도 아름답다.
불암산 둘레길 전망대에서 추억거리 하나 남긴다.
전망대에서 휘둘러보는 조망은 일품이다. 먼저 북한산이 손짓을 한다.
도봉산이다.
공룡바위다.
넓적바위다. 예전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던 여근석이다. 이곳 넓적바위도 아래마을 동제의 대상이었을 것이고 조선시대에는 아들 낳기를 바라는 여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을 것이다. 원래는 호젓한 산속이었지만 둘레길이 나면서 사람들이 많이 지나는 곳이 되었다.
백사마을 통과한다. 중계동 104번지, 백사마을은 노원구 중계동 불암산자락에 위치한 서울 마지막 달동네란다. 소위 백사마을이라고도 불리는 중계동 104번지는 대한민국의 개발사에 그늘처럼 남아 있다. 1967년부터 정부는 개발을 이유로 강제 이주를 추진했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바로 이곳 백사마을에 마련해줬다. 당시 용산, 청계천, 안암동의 판자촌에서 살던 사람들이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주대책으로 해준 것은 30평 남짓한 천막이 전부. 그나마 분필로 넷으로 선을 그어 네 가구가 살도록 했다. 천막 한 칸을 넷으로 나눴으니 한 집에 8평 남짓. 그래서 백사마을의 집들은 8평부터 시작된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사 간 집을 사들여서 합치고, 남는 땅에 집을 지으면서 이곳의 주택은 대부분 20평 남짓한 구조로 변경됐다. 현재 이곳을 거주하던 사람은 많으나 모두 다 이사하여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 되지 않는다.
지난번은 역방향이라 편한하게 내려섰는데 역시 깔딱고개 오름막길은 힘에 겹다.
가끔 반갑게 이마를 어루만져 주는 나무, 길동무들에게 단단히 조심을 당부하며 오른다.
공릉산 정상이다.
불암산으로 오를 수 있는 갈림길이다. 불암산은 원래 금강산에 있던 산이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금강산, 하면 빼어나기로 아름다운 산이다 그런 곳에 있던 불암산은 아무리 생각해도 욕심이 많았던 것 같다. 나 같으면 가라고 등 떠밀어도 그냥 눌러 있겠구만. 조선왕조가 들어서 도읍을 정하는데 한양에 남산이 없어서 못 정한다는 소문을 듣고는 자기가 한양의 남산이 되고 싶어진 것이다. 사람이나 산이나 출세를 하려면 서울(한양)으로 가야해, 하면서 금강산을 떠나 한양으로 온 불암산. 그런데 이런, 한 발 늦었다. 한양에는 이미 남산이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확실히 소문이란 믿을 게 못 되는 법, 하면서 돌아가면 좋았으련만 불암산은 그냥 한양 언저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아무래도 출세를 하겠다고 떠나온 고향에 빈손으로 돌아가기가 싫었나 보다. 불암산은 헛소문을 퍼뜨린 한양이 영 못마땅해 돌아앉은 형국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공릉산 전망대다. 그렇게 조망이 시원한 곳은 아니지만 육사 교정과 골프장이 내려다 보인다.
공릉동 쉼터다. 공릉동은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에서 서울시로 편입 될 당시에는 서쪽에 공덕리 동쪽에 태릉, 강릉이 있거 그 안에 능골이라는 큰 마을이 두개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태릉동으로 정하였다가 공덕리 주민들의 반대로 동명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가 두 마을 주민들의 합의에 의하여 자연부락인 공덕리의 '공'자와 태릉의 '릉'자를 따서 공릉동이라 하여다 한다.
불암산을 내려서는 희망길 그리고 백세길, 임도를 따라 내려서는 발걸음이 가볍다.
공릉산백세문이다. 원자력병원 건너편에 있으며 불암산 등산로 나들목이기도 하다.
추억의 철길이다.
이곳에서 경춘선숲길이 시작된다.
서울 둘레길 길동무들이 또 하나의 추억거리를 남기며 다음 길을 예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