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牛 亭)의 이탈리아 기행(7) – “라 스칼라”
밀라노에는 이탈리아는 물론 세계가 부러워 하는 오페라 극장 "떼아트로 알라
스칼라(Teatro alla Scala)" 즉 "라 스칼라"가 있습니다. “라 스칼라” 극장.
그냥 “스칼라 광장에 있는 극장”이라는 뜻의 이름입니다. 그러나 밀라노의
이 “라 스칼라” 극장은 그 청중이 세계에서 가장 수준이 높고 가장 까다로운
청중이라고 정평이 나 있습니다.
(스칼라 광장에 "레오나르도 다빈치" 동상이 세워져 있고 건너 편이 바로 "라 스칼라" 극장 입구)
잘 하는 성악가에게는 더 없는 찬사를 보내지만 수준이 떨어지는 성악가에게는
가차없이 야유를 퍼붓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온 세상의 성악가들이 그토록 이
“라 스칼라”를 선망하는 것은 성공하기만 하면 자기가 세계 최고임을 그대로
입증하기 때문입니다.
(스칼라 광장에서 바라보는 "라 스칼라")
라 스칼라 극장은 1776년에 이전에 있던 밀라노 극장이 화재로 소실되어 극장
회원권을 가지고 있던 회원들이 새 극장 신축을 당시 밀라노를 지배한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후 마리아 테레사(1717-1780)에게 청원하여
지금의 자리에 지었다고 합니다.
2001년부터 완전 새 단장을 했습니다. 그 예산이 수백억이었는데 밀라노에서
가장 큰 기업인 타이어 제조회사 피렐리가 가장 큰 돈을 내고 CARIPLO를 포함
다른 기업들도 모두 출연하여 그 기금을 마련했다고 했습니다.
그 때 내가 놀랐던 사실은 밀라노에 나와 있던 일본의 스미토모 은행이 CARIPLO를 통해
자기들도 이 라 스칼라 리노베이션 계획에 헌금을 하고 싶다고 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라 스칼라"의 화려한 야경)
나는 이 "라 스칼라" 공연을 네 번이나 볼 수 있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처음
국제부 부부장 Mr. Banfi 에게 인사를 하며 자기소개를 할 때였습니다.
(Banfi 씨는 밀라노까지 통근에 두 시간 가까이 걸리는 도시 크레모나에 산다고 했습니다.
이 크레모나가 그 유명한 바이올린,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니에리의 공방이 있는 도시 입니다.)
(크레모나 공방에서 만들어졌을 명기 "과르니에리")
“나는 중학교 때부터 이탈리아 칸초네를 배우기 시작했다.” (“오 솔레 미오!” 배웠잖아요.)
“뜻도 몰랐지만 오페라 아리아도 몇 개 익혔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옛날에 학교 때 많이 들었던
“Ten Tenor Ten Aria” 판에 올라 있었던 성악가 이름을 줄줄이 읊기 시작했습니다.
Enrico Caruso(1873-1921), Beniamino Gigli(1890-1950), 미성으로
“남몰래 흘리는 눈물”이 유명하지요. Mario Del Monaco(1915-1982),
Franco Corelli(1921-2003), Andrea Bocelli의 스승이기도 합니다.
Giuseppe di Stefano(1921-2008), “토스카” 중에서 “별은 빛나건만”을 잘 불렀습니다.
(Giuseppe di Stefano와 Maria Calas. 자료를 찾다 보니 스테파노도 2008년에 타계하셨네요.)
그리고 우리가 가장 가까이서 보았고 많이 들었던 우리 시대의 절창, Luciano Pavarotti(1935-2007)까지.
(Luciano Pavarotti)
거기에 더하여 “물망초”란 영화에서 노래한 Percio Tagliavini 까지 이야기
했더니 그때서야 “Tagliavini 도 알어?” 하면서 감탄의 빛을 보인 동시에 “Nadia!" 하고
그의 비서를 부르더니 "라 스칼라 극장 초대권 한 장 가지고 와!”하고 소리 칩니다.
드디어 온 세상의 성악가들에게 꿈의 무대인 그 유명한 밀라노의 “떼아트로 알라 스칼라
(Teatro alla Scala)”의 연주회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마침 오페라 단원들은
파업 중이라 오페라 공연은 없었고 그 대신 콘서트 표 한 장을 건네 주었습니다.
(라 스칼라 연주회 표)
(발코니 2층의 65,000 리라의 2등석이었습니다. 발코니 방에는 6명까지 앉을 자리가 있었습니다.)
세번 째와 네번 째 관람은 "CARIPLO DAY" 참석입니다. 본점이 매년 연차대회를 밀라노 터줏대감 답게
"라 스칼라" 극장에서 개최했습니다. 공식적인 식이 끝나면 언제나 미니 연주회가 있었습니다.
(1998년 6월 13일, 토요일 09:30, 라 스칼라 극장에서 CARIPLO DAY 본점 총재의 공식적인 초청장)
극장 옆으로 난 길 이름이 “주세페 베르디 길(Via Giuseppe Verdi)”입니다.
주세페 베르디(1813-1901)는 낭만파 작곡가로 오페라가 유명하지요.
치즈 “파르미자노”와 햄 “살라미”로 유명한 파르마(Parma)의 부세토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주세페 베르디)
모두 14개의 오페라 중에서도 특히 리골렛또의 “라 돈나 모빌레”, 나부코의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라 트라비아타의 “드링킹 송”, 아이다의 “개선 행진곡”은 모두 너무 좋아하는 곡이지요.
통일 이전에 오스트리아 지배 아래 있던 밀라노 사람들에게 나부코의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이탈리아 "통일운동(Risorgimento)"에 대한 열망을 불러 일으켰다고 합니다.
공연 때 “VIVA Verdi”를 외쳤는데 베르디를 부른 것이 아니라 Vittorio Emanuelle Re D’Italia” 의
머리 글자로 당시에는 사르덴냐 왕국의 왕이었던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II 왕을 통일 이탈리아의
왕으로 불렀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는 통일 이탈리아의 첫 왕이 되었습니다.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최초의 왕인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1997년에 본점 방문 때, 국제부 차장에게 특별히 부탁을 했습니다. 라 스칼라에서 이왕이면 오페라를
구경하고 싶어 “라 스칼라의 오페라 표 한 장 꼭 좀 구해 달라”고. 그랬더니 대답이 자기 지위로서는
도저히 오페라 표를 구할 수 없다고 하길래 포기를 했는데 막상 본점에 도착하니 오페라의 일등석 입장권
한 장을 주었습니다.
어찌된 일인가 했더니 워낙 잘 알려지지 않은 인기가 좀 없는 오페라여서 표가 남았던 모양이었습니다.
(그 때의 상임 지휘자는 "리카르도 무띠". 현재의 라 스칼라 음악감독 "바렌보임")
독일의 유명작가 게오르그 뷔흐너의 “보이첵”이란 작품의 독일어 오페라였습니다. 이탈리아 말로도
못알아 들었겠지만 독일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무대에서 다섯번 째 줄의 중앙인 일등석에 앉아 보니
과연 주변 관객은 독일 또는 아마도 오스트리아 부자 마님들 같은 관객들이 많았습니다.
(Buchner 희곡의 오페라 "Woyzeck" 일등석 입장권. 가격이 27만 라라 입니다.)
(새로 단장된 라 스칼라 내부)
네번 째는 1999년 역시 CARIPLO DAY 참석입니다. 그러나 이 날에는 아시아 대표들에게 특별히
"라 스칼라"의 2층, 무대를 바라보는 중앙의 "로얄 챔버"가 주어져 "라 스칼라 최고의 객석"에 앉아
공연을 보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라 스칼라 로얄 챔버에 앉은 아시아 대표. 왼쪽부터 동경 사무소장, 샹하이 사무소장, 서울 사무소장,
베이징 사무소장, 홍콩 지점장, 싱가폴 지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