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벗형제들을 만나면서
2020년 봄 서울역 길벗 해피인 사랑방모임 안내로 초대받았습니다.
봉사자들과 길벗형제들이 함께 모입니다.
한 주간의 생활을 돌아보고 감사드리며 삶을 나누고 함께 복음을 나누며 서로를 위해 기도합니다. 사랑방모임을 오랫동안 여러 곳에서 꾸준히 해왔는데 이곳은 아주 특별한 맛이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보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의 역사를 듣습니다.
“아~ 그놈이 돈도 빌리지 않았는데 돈을 꾸어갔다고 내 돈 내노라고 소리를 지르지 않나~ 죽일 수도 없고 살릴 수도 없고~ 왠 젠장~!” “밤새 벽을 두들겨서 잠을 잘 수가 있나~” 이런 쪽방의 현장을 나누어줍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변화됨을 봅니다. “ 고모의 장례식장에 가기 전날 밤, 밤새 고민했습니다. 한 숨도 못 잤습니다. 돈 떼먹고 나를 이렇게 만들었던 가족들이 모일 텐데 한 바탕 붙어~ 아니면 그냥 침묵해~ 밤새 기도하며 새벽녘에야 결정했습니다.
그냥 침묵하자!”
장례식장에서 가족들이 용서하며 사랑으로 하나 되었다고 합니다.
이제는 밥 사주겠다고 시간내달라고 한답니다.
우리는 나눔 중에 함께 속상해하고 함께 기뻐하고 함께 박수를 칩니다.
길벗 또 한 형제는 돈 통을 놓고 구걸을 하는데
엄마와 어린이가 지나가다가 “엄마, 거지 인가봐?” 엄마가 아이 손을 얼른 잡아채며 야단을 쳤는데 그 때
그 형제가 “네~ 거지 맞아요. 편히 가세요.” 그렇게 인사했다고 나눕니다.
그 순간 올리브유처럼 향기 나고 윤기 나는 것 같았습니다.
이 형제님을 일으켜 세우려고 봉사자가 동사무소에 가서 나이든 모친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모임 후 그 사실을 알려드리니 형제는 머리를 떨어트리더니 잠시 밖으로 나가 눈물을 닦고 들어왔습니다.
“어머니께서 살아계시다니, 돌아가셨다고 생각했는데! 며칠 내에 큰일 저지를 것 같았는데~” 하며 흐느꼈습니다.
케익을 먹으러 쓰고 있던 목까지 덮었던 검정모자와 검정 마스크를 벗으니 감추어졌던 하얀 얼굴이 나오니, 그 순간 “나자로야, 이리 나오너라.” (요한11,43)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죽었던 나자로가 살아난 장면과 같이 느껴져 크게 기뻐했습니다. 그 형제는 세례명을 가진 신자였습니다.
저는 이제 길을 걷다가도 길벗형제들이 눈에 잘 뜨입니다.
벗으로 여겨집니다. 가족처럼 편하게 느껴집니다.
수녀원 옆 산책길이 있습니다. 묵주를 손에 들고 한 시간 정도 걸을 수 있는 찻길입니다. 작년 초겨울에 날씨가 추워지는데 길옆 벤치에 어느 형제가 한 자리에 며칠 체 계속 앉아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커다란 비닐가방이 있었습니다.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햇볕을 받으며 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날씨가 차가워졌는데, 마음에 걸렸고 그래서 보온 통에 밀크커피를 타가지고 가서 “ 형제님, 며칠 이곳을 지나면서 형제님을 보았습니다. 추워 보여 따끈하게 밀크커피를 타왔어요. 한 잔 드시겠어요?” “이름이 어떻게 되요. 기도 할게요.” 형제는 이름을 알려주었습니다.
수녀원에 돌아오면서 기도했고 미사 때도 기도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새로 담은 김장김치를 썰어 넣고 따끈한 밥으로 주먹밥을 만들고 따끈한 보리차를 담아서 찾아갔습니다. 이 번 에는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세례명이 있는 신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고구마도 구워 다 드리고, 주먹밥도 드리면서 몇 차례 더 만나 겨울이라도 지날 수 있도록 쪽방을 안내해주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책도 드리고 봉사자와 연결시켜주고자 약속했는데, 막상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길거리에 나온 지가 벌써 10여년이 지났고 춥고 힘들지만 어디에 속한다는 것이 두렵고 힘들다는 것을 나중에 만나서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떨어져 나온 형제는 마음이 이미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나온 소외된 사람임을 보게 하였습니다.
이들에게 가장 큰 고통은 누군가와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말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 그래서 이들과 함께 사랑방모임을 하는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말 할 줄 모릅니다. 점차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으며 자신 안에 의식이 깨어나고 말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감이 생기고 치유되고 회복되어짐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자립해서 또 다른 길벗형제들의 봉사자가 됩니다.
주님께서는 또 한 가지의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서울역 광장에 누워있는 형제들에게 가는 청년들 모임입니다.
우울하고 낙담하고 사회에 적응이 어려운 청년들이 함께 사랑방모임을 하고 도시락 준비를 스스로 해서 광장에 누워있는 그들에게 나갑니다.
이들은 주님 앞에서 동료들 앞에서 자신의 현실을 솔직하게 바라보고 나눕니다.
이렇게 함께 치유되고 회복되고 사랑실천으로 하느님 나라 일꾼으로 이 세상에 우뚝 서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저는 이들를 위해 기도하고 봉헌합니다.
살레시오 수녀회 윤혜정 스콜라스티카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