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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승 선생님과의 만남
지역활동을 해오면서 많은 이들과 만나게 됩니다. 대부분 밀물처럼 밀려왔다가 썰물처럼 떠나곤 하지만 간혹 뜻깊은 만남으로 인연의 끈을 계속 이어오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만난 새로운 인연들은 저의 삶을 더욱 풍성히 이끌어 줍니다. 5년째 사무국장으로 일하는 의성향토사연구회는 국가유산청(지금껏 문화재청으로 불려오다가 올해부터 국가유산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이 실시하는 국가유산 활용사업(지금껏 문화재란 말을 사용해왔는데, 올해부터 국가유산으로 그 이름이 바뀌었다)을 수년째 진행해오면서 그 속에서 타지역민들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보통 1박2일의 짧은 일정으로 의성의 역사와 문화가 서려 있는 장소에 다니며 배우고 체험하는 일정이다 보니 깊은 관계로까지 나아가는 일은 극히 드물지만, 지금까지 연락을 주고 받으며 서로 안부를 주고받으며 깊은 고민까지도 함께 나누는 선생님을 한 분 알게 된 것은 정말이지 행운이었지요. 만나게 될 사람은 어차피 만나게 된다고 하지 않던가요.
그분을 처음 만난 건 2023년 9월경이었습니다. 당시 4년째로 접어든 향교를 활용한 1박2일 프로그램은 입소문이 퍼지면서 전국에서 신청하는 이들이 많아 금세 신청이 마감되곤 했습니다. 4년 만에 처음으로 서울에서 오는 팀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날은 국가유산청(당시 문화재청)에서 두 분이 내려와 모니터링을 하는 날이어서 더욱 신경이 쓰였던 날로 기억됩니다. 그러나 평소와 다름없이 준비된 일정을 하나하나 진행하였습니다. 오전 향교체험을 마치고 점심식사 후 교회 앞에서도 보이는 구성산 구봉에 위치한 문소루(聞韶樓)에 올랐습니다. 문소루는 교남사대루(嶠南四大樓), 즉 영남 지방의 사대루로 불렸던 누각 - 의성(義城)의 문소루(聞韶樓), 진주의 촉석루(矗石樓), 밀양의 영남루(嶺南樓), 안동의 영호루(映湖樓) - 중 하나로 이 중에 가장 먼저 건립되었다고 알려져 있지요. 문소루가 위치한 구성산은 1896년 의성에서 일어난 의병 - 병신창의(丙申倡義) - 의 첫 전투가 벌어진 의미 있는 장소입니다. 문화해설사이신 사무처장님께서 역사에 관한 설명이 이어가실 때 이것저것 묻는 분이 한 분 계셨습니다. 의성에 관해 진지하게 알고자 하시는 분이라 여겨져서인지 왠지 마음이 갔습니다. 문소루에 걸터앉아 옆에 계신 사모님과 이야기를 나누시는데, 찾아가 인사를 드리고는 궁금해하셨던 의성의 지명에 관한 이야기를 자세히 해드렸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설명하는 사람도, 설명을 듣고 묻는 사람도 서로가 궁금해졌습니다. 선생님은 평생 교직에 몸담고 계셨다가 퇴임하셨는데, 이오덕 선생님의 제자라는 말씀에 눈이 번뜩 뜨였습니다. 그 한 마디에 모든 경계가 풀어져 버렸습니다. 이후 선생님의 입에서 나오는 이름들은 제가 줄곧 존경해 마다 않는 분들이었습니다. 권정생 선생님, 전우익 선생님, 이현주 목사님, 최완택 목사님, 안동의 안상학 시인까지 저의 인생에 소중하게 자리하고 계신 분들이지요.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서로 같은 분을 마음에 품고 산다는 것, 이 얼마나 소중하고 힘이 되는 인연인지요. 개인적인 사정으로 이후 일정에 참여할 수 없었기에 아쉽지만 짧은 만남을 가져야만 했습니다. 그래도 서로 전화번호를 주고 받고 이름도 나누었습니다. 선생님의 이름은 김익승 선생님입니다. 전교조 활동을 하시며 아이들을 위한 참 교육에 평생을 헌신하신 분이시고, 특별히 이오덕 선생님이 만드신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전 이사장이시기도 합니다. 김익승 선생님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는지라 집에 돌아와 인터넷 검색을 하였더니 저의 느낌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분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존경에 마다않는 선생님이셨고, 삶으로 참 교육을 행하신 참 스승이셨음을 제자들이 남긴 흔적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배워서 남 주자’는 선생님이 평생 품고 사셨던 철학입니다. 배워서 나 홀로 성공하면 그만인 세상에서 참된 배움을 통해 철저히 남을 위해, 공동체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 참된 삶임을 어린 아이들에게 가르쳐왔던 것이지요. 이렇게 좋으신 분을 뜻밖의 만남을 통해 알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큰 선물이 있을까요? 선생님은 그날 오후에 전화를 걸어오셨습니다. 귀한 인연을 만나게 되어 반갑다고, 앞으로 좋은 만남 이어가자고...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대답했지요. “네, 선생님. 고맙습니다”
이후 서로 카톡과 전화를 통해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삶의 고민과 사회적 문제들을 스스럼없이 나누어왔습니다. 당시 김익승 선생님과의 인연을 소중히 간직하기 위해 박건호 시인의 <인연>이란 시에 곡을 붙여 선물을 드렸더니 너무나 좋아하셨고 이후 의미 깊은 여러 시노래들을 나누곤 했지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서로에 대해 알아갈수록 서로의 삶을 응원하고 좋은 세상을 향한 꿈을 깊이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바쁘면 바쁜대로 가끔씩, 언제나 보고 싶으면 때론 자주 연락을 주고 받다가 올해 5월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책을 한 권 내게 되었다고... 며칠 후 선생님은 따끈따끈한 책을 보내오셨고, 책을 펴 읽으며 선생님의 진면목을 보게 되면서 존경의 마음이 더욱 커지게 되었습니다.
배워서 남주자
‘배워서 남주자’.. 이 평범하고도 간단한 진술이 현실세계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걸보면 세상은 역시 비정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배우는 것이야 누가 뭐라 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그런 이들이 사회의 영향력 있는 자리에 서 있을 때, 역시나 그 배움은 사익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 전락되는 것을 쉬이 보게 됩니다. 참 씁쓸하지요. 우리의 앎과 배움의 목적이 나 자신의 성공이라면 성공에 방해가 되는 수많은 경쟁자들은 자신이 밟고 올라가야 할 적이 되고 말겠지요. 그런 이들이 대부분 사회의 명망 있는 자리에 올라앉아 있어 세상은 이 모양 이 꼴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일까요? 선생님의 평생 철학인 ‘배워서 남주자’는 구호는 선생님이 어떤 지향을 가지고 살아오셨는지, 그리고 비정상적인 세상에서 삶이 평탄하지는 않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가능하면 선생님의 삶과 사상이 담긴 이 책 <배워서 남주자>를 많은 이들이 읽을 수 있게 열심히 홍보해야겠다는 생각이 사명감으로 다가왔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문장은 막힘없이 술술 넘어가고, 꾸밈없이 진솔한 내용은 잔잔하지만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글의 행간에 담긴 선생님의 솔직하면서도 진솔한 생각들은 어린 생명들에 대한 진심어린 마음과 참교육을 향한 열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삶은 물론 타인에 대한 진정성이 느껴지는 선생님의 글을 대하고 있노라면 마음이 착해지고 제 자신을 겸허히 들여다보게 합니다. 진실한 글이 가진 힘이겠지요.
제 마음에 긴 여운으로 남았던 선생님의 글을 몇자 남겨봅니다.
‘참교육의 지혜를 주소서’라는 글에서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을 향한 진정성이 느껴집니다.
“새해엔 우리 사랑하는 아이들이 남 도울 줄 아는 사람 되게 하여 주소서! 그동안 우리 죄 많은 선생들에 의해 그들 가슴에는 커다란 못들이 꽤 많이 박혔습니다. 빼 주겠습니다. 그 못 박혔던 자국들을 어루만져 주겠습니다. 이 못난 선생 거듭 태어나는 마음가짐으로 사랑으로 배우며 가르치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나보다도 이웃을, 조국을, 동포를 더 많이 얘기하고, 이젠 수학 공식,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는 것 못지않게 이웃이나 벗들의 아픔도 알고, 기쁨과 슬픔 나누기를 즐겨 하게 하소서! 앞서가는 친구만 바라보지 말고, 뒤처진 친구를 이끌어 주며 좀 늦더라도 함께 갈 수 있는 삶이 가장 멋진 삶임을 깨닫게 하여 주소서!”
- ‘참교육의 지혜 주소서!’ 중에서
“선생을 하면 죄를 짓게 된다. 선생이라면 교육과 관련된 모든 옳지 못한 일들과 싸워야 한다. 잘못을 고쳐 나가기 위해 몸부림쳐야 한다. 교육과정, 정책, 학교 아늬 의사결정 과정에 이르기까지 옳지 않은 것들이 있다면 괴로워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는 아이들에게 죄 짓는 일이다. ....
나는 언제부터인지 ‘죄 많은 선생’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글을 쓰고 마지막에 내 이름을 쓸 일이 있을 때 이 말을 앞에 붙이지 않으면 글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누가 죄짓는 걸 좋아하겠는가? 죄 안 지으려 몸부림이라도 치고 싶은 심정으로 아이들 앞에 늘 서는데, 어쩔 수 없어서 짓는 죄가 너무나 많다.”
- ‘죄 많은 선생’ 중에서
“공부 못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더 부끄러운 것은 모르면서도 아는 첫, 못하면서도 잘하는 척하는 거다. 모르면 모른다고, 못하면 못한다고 당당히 드러내자. 그리고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자. 매달리자. 잘하는 동무에게, 선생님한테, 악착같이 달라붙어 귀찮게 하면서 배우자. 나중에 너희가 어른 됐을 때, 아들딸이 ‘엄마, 이거 어떻게 풀어요?’ 물을 때 아무 대답도 못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배워서 남을 주려면 뭔가 아는 게 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 몰론 공부 말고도 나눠 줄 게 얼마든 있기는 하지. 그래도 이왕 하는 거 최선은 다하자고. 토요일 빼고 날마다 한 시간 넘게 내가 너희 공부방 선생이다. 나랑 남아서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은 누구든 좋아.”
- ‘스스로 움직이는 아이들 – 배워서 남 주자’ 중에서
“너희는 날 잊어도 난 못 잊을 거다.”
“착하고 아름답게.”
“건강한 어린이, 정직한 어린이, 공부 잘하는 어린이.”
“아는 것은 힘이 아니다. 알면서 실천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보다 더 나쁘다.”
“배워서 남 주면 못 쓰냐? 배워서 남 좀 주자”
“내가 착한 일 한 것을 남이 알까 봐 두려워하자.”
“아무도 찾지 않으려 할 때 찾아가기.”
“학교는 학교장이 조금 힘들어도 아이들 가르치는 교사들이 즐겁고, 교사들이 조금 힘들어도 아이들이 즐거워야 한다.”
“누구에게 내 변명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자.”
“남이 하는 걸 똑같이 따라 하면 다 실패한다.”
“내가 필요한 친구를 찾지 말고, 나를 필요로 하는 친구를 찾아라.”
“남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기며 살 수는 없을까.”
“욕먹는 거보다도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게 부끄럽다.”
“슬픔은 나눌수록 작아지고, 기쁨은 나눌수록 커진다.”
“더불어 살자.”
“한 알의 밀알이 되자.”
“나는 죄 많은 선생이다.”
“가만히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그냥’ 좋은 세상이 올 거라는 무책임한 사람이 하는 말을 믿지 말라. 온 세상 사람(선생과 학부모)들이 머리 맞대고 밤새워 아이들 걱정을 한다면 그때야 희망이 조금, 아주 조금 보일지도 모른다.”
“똑똑한 사람을 조심하자.”
“똑똑한 체하는 자에게 너무 기죽지 말고 나름으로 맞서는 것이 진실을 지키는 길이다. 그 사람들 별 거 아니다.”
“우리는 ‘너그러워야 할 때는 냉정하고, 진짜로 냉정해야 할 때는 필요 없이 너그럽지 않았나’ 늘 자신을 되돌아 봐야 한다”
- ‘내가 많이 하는 말과 생각들’ 중에서
“저는 모임이 사람 냄새 폴폴 나면 좋겠습니다. ○○네 □□이야기, △△가 ▽▽▽하는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오가면 좋겠습니다. 더러 교실을 벗어나고 자연과 세상으로 눈과 귀를 열고, 지친 몸을, 속좁은 마음을 넉넉하게 하는 자리도 있으면 좋겠고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에도 무슨 병에 걸린 것처럼, 저는 교실 바깥세상, 유난히 때 묻지 않은 자연이 그립습니다. 같은 이야기도 물과 풀과 바위와 나무와 하늘을 벗하며 나누고 싶은 욕심이지요. 후배님들이 못난 저처럼, 부조리한 현실에 몸부림치며 괴로워하는 일들이 줄어들면 좋겠어요. 제가 다시 교단에 선다 해도 비슷할 테지만, 적어도 이전보다 조금은 더 너그럽고 지혜롭게 사람들을 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 스스로에게는 물론, 마주했던 사람들에게도 상처가 생긴다면 다시 한 번, 아니 두 번 세 번 되돌아보며 사랑으로 실타래를 풀어가도록 할 것입니다. 진정한 정의는 힘이 아니고 사랑이라는 걸, 서로를 살릴 수만 있다면 그리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날이 갈수록 사무치게 느끼고 있습니다.”
- ‘나오며_ 후배들에게 – 힘보다 사랑’ 중에서
교육실천가 김익승 선생님.. 평생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계시면서 ‘늘 돌아가고 싶은 고향’같은 교실을 만들고 싶어하셨던 분, 참교육을 고민하며 제자들이 참삶으로 나아가기를 그 누구보다도 바라시며 참삶의 본보기가 되어주셨던 분, 세상살이에 지친 제자들이 삶의 향방을 잃어버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이 나 찾아가 그저 선생님의 품에 안긴 것만으로도 고향 같은 평안함과 위로를 안겨주셨던 분...
처음 뵐 때 동네 아저씨처럼 여겨졌던 선생님은 실은 이렇듯 참사람의 길을 몸소 가르쳐오셨던 참 스승이었던 겁니다. 그분이 아이들을 향해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그분의 고백을 통해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한 해 동안 도시 아이들에게 ‘고향’을 만들어 주고 싶다. 헤어져 이 세상을 살아가다가 지치고 힘들 때, 외로울 때 되돌아보면 마음에 위로를 주고 힘을 주는 ‘따뜻한 고향 뒷동산’ 같은 시절이 되게 해주고 싶다. 나는 그 고향 뒷동산 작은 바위나 참꽃 한 그루쯤 되면 좋겠다.”
제자들이 주체적 인간으로, 참 자유인으로, 참 사람으로 우뚝 서기를 바라셨던 선생님, 그들을 위해 자신은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셨던 선생님, 그러나 본인은 철저히 드러나지 않는 배경이 되어주고팠던 선생님... 그분의 바람이 참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이 책의 추천사 중 한 제목이 눈에 띄더군요.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선생님을 닮을 수 있을까요?”
누군가를 닮고 싶다는 간절한 열망이 드는 분이 우리에겐 있을까요? 닮고 싶은 마음은 진리와 마주할 때 드는 마음이지 싶습니다. 그래서 예수라는 진리를 만난 이들은 변화되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변화는 예수의 사랑과 진정성을 닮고 싶다는 데에서 비롯된 긍정적인 변화입니다. 닮고 싶다는 것은 그가 완벽해서가 아닙니다. 진실해서입니다.
김익승 선생님 주변에서 그와 삶을 엮은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분을 닮고 싶다”
“그분을 뵙고 싶다”
주변에 이런 분이 계시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이던가요. 부디 선생님이 바라셨던 배워서 남 주는 세상, 그 참 교육의 현장이 바로 우리네 삶에서 이루어지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