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7일 - 계속
아야소피아는 6세기에 건축되어 정교회 성당으로 사용되다가 15세기에 나라 주인이 바뀐 후 500년 동안 모스크로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세속주의를 지향하는 아타튀르가 모스크 사원을 박물관으로 바꾸어버렸다. 박물관이 된 아야소피아의 입장료는 1인당 72리라(우리돈으로 15,000원)이니 상당히 비싼 편이다. 그래도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라고 소문이 나서 그런지 지구촌 곳곳에서 온 관광객이 많았고 검색대를 통과하려고 기다리는 줄도 엄청 길었다. 입장을 기다리면서 보니 아야소피아 앞에는 광장과 정원이 잘 만들어져 있었다. 넓고 아름다운 정원에 있는 나무들은 반갑게도 우리나라 남도 지방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배롱나무이었다. 배롱나무는 여름에 작은 빨간꽃이 가지 끝에 100일이나 핀다고 해서 목백일홍이라고도 부른다.
아야소피아 내부는 엄청 컸다. 돔 모양의 지붕이 매우 높고 웅장했다. 사방을 둘러보니 엄숙한 느낌과 위압감이 저절로 느껴졌다. 아야소피아의 특징 중 하나는 기독교 성당에서 볼 수 있는 조각상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벽과 천정에는 기하학적이고 아름다운 무늬만 있을 뿐 실내 어디에도 동상이 없었다. 1453년에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킨 술탄 마흐메드 2세는 아야소피아가 너무 웅장하고 아름다워서 파괴하지 말고 이슬람 사원으로 바꾸도록 명령하였다. 그런데 성당을 모스크로 바꾸면서 1층 벽에 기독교 성화 하나를 남기었고, 2층에는 덧칠하다 만 성화가 3개 남아있어서 이 건물이 원래는 성당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림41가> 아야소피아 내부
<그림42나> 기독교 성화의 흔적이 남아 있다
아야소피아는 동로마 제국의 가장 웅장한 건축물이다. 아야소피아 내부는 모자이크와 대리석 기둥으로 장식되어 있고, 아주 높은 예술적 가치와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아야소피아를 자랑스러워한 유스티아누스 1세는 "솔로몬, 내가 그대를 이겼다"라는 유명한 말로 아야소피아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고 한다. 아야소피아 안으로 들어서면 창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햇빛이 파란색을 띠는 타일에 반사되어 신비로운 푸른 색 분위기를 만들므로 아야소피아는 ‘블루 모스크’라는 별명을 가진다.
아야소피아 구경을 마치고 우리는 병산을 따라 버스를 타고 해협을 건너가서 내렸다. 그런데 병산이 복잡한 원형 로타리에서 그만 방향을 잃었다. 내가 병산이 길을 잃고 헤매는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2017년 5월에 생명탈핵 실크로드 순례를 시작한 이후 온갖 풍상과 산전 수전을 다 겪은 병산이 길을 잃고서 경찰을 부를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병산은 이내 현 위치를 구글 지도에서 찾아내고 우리는 전철을 타고 무사히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우리는 숙소에 가까운 맛집을 찾아가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그런데 병산의 두 번째 실수가 나왔다. 구글 지도에 소개된 맛집을 찾아가 식사를 했는데, 나중에 보니 간판은 비슷한데 지도에 나와 있는 그 집이 아니었다. 요리를 몇 개 주문하고서 나중에 계산서를 보니 가격이 터무니 없이 비쌌다. 추가로 주문한 밥 한 공기가 무려 25리라(우리돈 5000원)나 되었다. 그냥 넘어갈 병산이 아니다. 병산은 직원을 불러 계산서 내역을 따져 물었다. 그러자 직원은 이렇게 까다로운 손님은 처음 보았다는 표정을 짓더니 공기밥 가격을 깍아 주었다. 그래도 점심 식사로서는 매우 비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유명 관광지인 이스탄불에 소매치기는 없어도 바가지 요금은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오후에 우리는 다시 배를 타고 해협을 건너가 탁심 거리로 갔다. 탁심 거리는 신시가지의 중심이며 쇼핑 거리인데, 우리나라의 명동처럼 이스탄불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이다. 탁심 거리에는 낮인데도 사람이 가득 차 있었다. 상점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탁심 거리는 명동 거리보다 훨씬 길었다. 탁심 광장에서는 과거에 정치적인 모임과 시위가 빈번히 벌어졌다고 한다.
2016년에 터키의 관광지에서는 테러 사건이 계속해서 발생하였다. 2016년 1월에 대표적인 관광지인 아흐메트 광장에서 자살 폭탄 공격으로 독일인 관광객 등 12명이 사망했고, 3월에는 이스티클랄 거리에서 자살 폭탄 테러로 5명이 목숨을 잃었다. 6월에는 아타튀르크 국제공항에서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해 44명이 숨지고 163명이 부상했다. 12월에는 베식타시 축구 경기장에서 연쇄 폭탄 테러가 발생해 44명이 사망하고 149명이 부상했다.
내가 구경하고 있는 탁심에서는 2017년 1월 1일 나이트 클럽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하였다. 당시 시리아에서 세력을 펼치던 IS(이슬람국가)의 대원인 마사리포프가 신년 축하 파티가 한창이던 나이트 클럽에 침입해서 총기를 난사했다. 이 사건으로 39명이 숨지고 79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처럼 테러 사건이 연속되자 거의 2년 동안 터키 전역에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고 관광도시 이스탄불은 큰 타격을 받았는데, 2018년부터 관광객이 다시 회복되었다고 한다.
탁심 거리에서 내가 흥미롭게 구경한 것은 복권을 파는 좌판, 저울 하나를 놓고서 몸무게를 재주고 돈을 받는 사람, 군밤을 파는 포장마차 등이었다. 우리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유명한 터키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돈두르마(Dondurma)라고 부르는 터키 아이스크림은 원래는 터키 남동부 말라슈 지방의 명물인데, 이제는 터키 전역에서 맛볼 수 있다고 한다. 우유와 설탕을 재료로 하여 만든 아이스크림에 아라비아 고무라고 불리는 매스틱 식물 수지를 첨가한다. 매스틱은 아이스크림을 조밀하게 만들어 쫄깃한 질감을 만들어 낸다. 돈두르마는 끈기가 있어서 아이스크림이 콘에서 잘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아이스크림을 파는 사람이 줄 듯 말 듯 장난을 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명동 거리에서도 돈두르마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그림41다> 이스탄불의 번화가 탁심 거리
로자씨는 먼저 숙소로 가고, 병산과 나는 한국에서 온 의사 부부를 탁심에서 만나 저녁 식사를 하기로 하였다. 병산은 학문적인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는 오래 전부터 ‘구조론(構造論) 동호회’에 회원으로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는데, 온라인으로만 알고 지내던 회원이 있었다. 그 회원은 직업환경의학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현직 의사인데 마침 부인과 함께 이스탄불에 여행 왔다가 연락이 되어 만나기로 했다. 그 분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탈핵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한마디로 표현하면, 의식이 깨어있는 지식인이었다. 우리는 즐겁게 식사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식사를 마치고 의기가 투합하는 우리는 노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계속 하다가 다음에 서울에서 한번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그림41라> 한국에서 온 의사 부부와 함께
병산과 나는 밤거리를 걸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병산은 밤인데도 초행길을 잘도 찾아간다. 병산이 핸드폰으로 구글 지도를 확인하면서 큰 길로 가다가 지름길인 골목길을 찾아내어 조금 걸어가니 숙소가 나타났다. 미국 도시의 밤 거리에는 사람이 다니지 않는데, 이스탄불의 밤 거리에는 서울의 밤 거리처럼 사람들이 많이 다녔다. 밤 거리가 그만큼 안전하다고 볼 수 있다. 숙소에 돌아와 보스포루스 해협을 바라보니 야경이 참 아름다웠다.
<그림41마> 보스포루스 해협 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