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vra(뒤라)
문 door, 입구 entrance.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명사 뒤라(Homer 이래로)는 '문'을 의미한다. 특히 '집의 문'을 지칭하며 때로는 집 자체를 가리키는데, 이는 부분으로 전체를 표현한 것이다. "문에"라는 어구는 시간적으로 또는 공간적으로 '가까움'을 뜻하며, 왕이나 기타 영향력 있는 사람의 '문에' 있다는 것은 비위를 맞추거나 그에게서 은전(恩典)을 구하는 것이다. 이 명사는 또한 일반적 의미로 사용되어 문자적이든, 비유적이든 입구를 의미하기도 한다. (참조: D. Hill).
2. 70인역본의 용법
뒤라는 70인역본에서 약 230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페타흐(문, 문간, 출입구)와 델레트(문, 집, 방, 성전의 문, 또는 성문, 비유적으로 구멍 곧 동물의 입부분, 사람의 입 등)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3. 신약성경의 용법
뒤라는 신약성경에서 39회 나오며, '문'이란 의미로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a) 뒤라의 문자적 용법.
① 뒤라는 집의 문을 의미한다(막 1:33; 막 2:2; 막 11:4; 마 25:10; 눅 11:7; 눅 13:25; 행 5:9).
② 뒤라는 바깥 문을 의미한다. 거리에서 뜰을 통과하는 문을 가리킨다: "베드로는 문 밖에 섰는지라 대제사장과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왔더니"(요 18:16). 행 12:13에서도 역시 바깥 문을 가리킨다.
요 10:1이하에서 양우리의 문을 가리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③ 뒤라는 단순한 방 '문'을 의미한다. 마 6:6에서 골방의 '문'을 나타낸다.:"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행 5:23; 행 12:6에서 감옥문을 가리킨다.
사도행전에서 세 번, 행 5:19; 행 12:6이하; 행 16:26이하에서 감옥의 문이 기적적으로 열려 감옥에서 해방을 묘사한다. 문이 저절로 열리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구약성경과 그 밖의 곳에서 일반적인 것이지만, 이것이 감옥에서 풀려나오는 것과 연관되는 경우는 매우 제한적이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자세한 내용과 고대의 비슷한 이야기들 사이에 어떤 유사성이 있다고 보고 몇몇 학자들은 누가가 기사들을 어떤 특정한 틀에 박히게 기록하였다고 주장한다. 문의 기적들을 양식화함에 있어서 누가가 바쿠스 제의나 디오니수스 신화에 영향을 받았다고 종종 주장되어 왔다. 하지만 이러한 영향력은 증명되지 않았다. 문의 기적에 관한 기사의 교훈은 하나님의 팔은 너무나 강하여서 모든 자물쇠를 부수고 모든 장애물을 제거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떠한 결박이나 투옥도 복음의 진로를 방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요 20:19에서 방문을 의미한다. 부활하신 주님은 두 번 잠겨진 문을 통과하여 들어오신다. 그의 변모된 육체는 더 이상 지상의 제약을 받지 않으신다.
④ 때때로 뒤라는 성전의 '문'을 가리킨다. 행 3:2에서 "미문", 행 21:30에서 내전의 문들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⑤ 마 27:60; 마 28:2(TR); 막 15:46; 막 16:3에서 무덤 입구(문)를 가리킨다.
(b) 뒤라의 비유적 용법.
① '문(뒤라)에(앞에)' 선다거나 있다는 표현은 시간적으로 또는 공간적으로 가까움을 나타낸다(마 24:33; 막 13:29; 행 5:9; 약 5:9).
② '문(뒤라)을 열다'는 표현은 기회의 제공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전도자에게 말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심으로(고전 16:9; 고후 2:12) 전도의 문을 여신다(골 4:3).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가능성을 부여함으로써 믿음의 문을 여신다(행 14:27). 신자들은 회개로 그리스도께 문을 연다(계 3:20).
반대로 '문을 닫는다'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기회의 상실을 나타내며(계 3:7; 마 25:10; 눅 13:24), 따라서 심판의 의미를 함축한다.
그리스도는 열고 닫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계 3:7) 은총과 심판이 모두 그의 손 안에 있음을 보여준다.
(c) 하늘 문 및 문의 종말론적 용법.
① 오직 계 4:1에서만 뒤라가 '하늘 문'에 대해 사용되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후에 마땅히 될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신약성경에서는 오직 계4:1에만 이 개념이 표현되어 있다. 그렇지만 동일한 상징이 하늘이 닫히거나(눅 4:25) 열리는 것에 관하여 말하는 구절 배후에 놓여 있다. 하늘이 열리는 경우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나(막 1:10; 요 1:51; 행 10:11; 계 19:11), 성도들이 환상을 통하여(행 7:55이하), 성령 안에서(계 4:1이하) 하나님의 하늘 궁전으로접근하는 것과 같이 성도들에게 장차 올 시대에 대한 비밀을 알려주실 때이다.
② 종말론적으로 닫힌 문과 열린 문은 영원한 구원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과 허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경우에 문은 하늘의 문이다. 문이 언급되건(마 25:10) 언급되지 않건 간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은 대개 종말론적 연회를 위해 연회장에 들어간다는 것을 암시한다(마 25:10; 눅 13:24 - 눅 13:25). 계 3:8의 열린 문은 문맥상 역시 선교적 성공보다는 종말론적 영광에의 접근을 의미한다: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높임 받으신 그리스도만이 종말론적 영역에의 출입을 허락할 권한이 있다.
계 3:20의 비유도 역시 종말론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여기에서 재림하시는 구세주가 축제의 식사에서 제자들과 교제를 나누려고 하시며, 이 경우에 문은 순종과 믿음에 의해서 열린다는 종말론적 배경에서만 가장 잘 이해된다.
(d) "내가 문(뒤라)이다"의 용법.
요 10:7; 요 10:9에서 뒤라는 그리스도에 대해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요 10: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본문은 해석 가능한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상당히 난해한 문구를 가지고 있다. 문맥으로 보아 7절은 양에게로 가는 문, 즉 목자들, 공동체의 영적 지도자들을 위한 문이라는 것이고, 9절은 양을 위한 문, 양들이 출입하는 문, 즉 예수님은 양들이 우리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며 구원과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라는 것이다(참조: 요 14:6). 이 사상은 시 118:20의 메시야의 관점에서 해석한 것에 기초한 것이다.
요 14:6의 "나는 길이요"와 유사하게 "나는 문이요"라는 말씀은 요 10:1 - 요 10:2에서 사상을 발전시킨다. 9절의 교훈은 그리스도만이 메시야 공동체의 일원이 되게 하실 수 있으며, 구원과 영생의 축복을 얻게 하실 수 있다는 것이다.
7절의 교훈은 그리스도만이 진정한 목자의 직무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10장의 강론에 나타난 유일한 통일성은 기독론적이다. 다시 말하면 여기에서 예수는 양, 목자,양 우리 등의 상징이 의미하는 모든 표상을 자신에게 적용시킨다.
(참조: J. Jeremias; D. Hill; J. H. 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