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섬 제주에서 배운다 ― 부산 2018년도 1차 평화발자국
부산평통사 도라지(평화발자국 해설사)
부산 평화발자국은 2018년부터 "부산을 비핵 평화의 도시로!"라는 주제 아래 2단계 사업을 시작했다. 군사도시의 기능과 역할을 해오고 있는 부산의 면모를 다시 꼼꼼하게 살펴보자는 거다. 아울러 평택과 제주, 소성리 등 미군의 군사기지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는 이웃 도시들도 방문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2018년 1차 평화발자국은 제주 4.3 70주년을 맞이하여, 평화의 섬 제주에서 배운다는 기치를 걸고 제주로 향했다.
2018년 3월 30일 금요일(첫날)
김해공항에 집결을 해서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도착했다. 아이 둘에 어른 여섯, 우리는 마치 가족여행을 온 것처럼 들떠있었다. 하루일정으로 강문수 대표와 손기종 운영위원도 동참해주었다.
우선 성요한 신부의 평화꽃섬 카페로 향했다. 손수 준비해주신 비빔밥과 해물이 어우러진 된장국, 유기농 반찬들을 신부님의 멋진 라이브 노래와 함께 맛나게 먹었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첫 코스인 제주 평화박물관으로 출발했다.
제주 평화박물관은 일제 때 진지 구축을 위한 강제노역에 동원되었던 이성찬 옹(1921년 생)의 증언에 따라 그의 아들 이영근 씨가 1996년부터 현장을 발굴하고 원형대로 되살리려는 피나는 노력 끝에 세워진 박물관이었다. 가난한 아버지를 원망하다가 그 원인이 일제강제동원역사에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이영근 씨는 이를 알리기 위해 스스로 박물관을 만들었다고 한다. 2004년 대표적인 동굴진지가 있는 가마오름 일대 12,000여 평을 매입하여 평화박물관을 짓고, 동굴 진지에서 출토된 각종 유물과 민간인들로부터 수집한 일제 관련 기록물 및 기물 등을 모아 전시하기 시작하였다. 2006년 12월에는 가마오름 동굴진지1을 중심으로 문화재청에 등록문화재(제308호)로 등록했데, 일제가 초래한 인권 유린과 침략 전쟁의 만행을 보여주는 생생한 현장이다.
아쉬운 것은 평화박물관 전시관의 마지막 부분이다. 일제가 물러가고 미군이 들어오는 상황을 환영하는 전시를 하고 있었다. 과연 미군이 해방군이었는가라는 질문과 이 분들은 왜 일제와 미제는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전시관에 태평양전쟁으로 인해 희생된 제주도민을 위한 추모비위에 ‘자유와 평화는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닌 것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그것이 전쟁준비를 의미하는 건 아니겠지 하는 생각을 안고 숙소로 향했다.
숙소는 강정마을에 있는 천주교 재단의 성 프란시스코 평화센터였다. 마침 그곳에 계시는 문정현 신부님이 쌍용차 관련 6일간의 노역을 마치고 나오신 날이라 문규현 대표님도 계셨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원래 이 날 저녁 강정마을 주민들과 간담회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긴급히 마을총회가 소집되어 취소하였다. 긴급한 마을 현안이 생겨서였는데, 그것은 10월에 강정 해군기지에서 ‘국제관함식’이 열리는데, 그 행사를 마을에서 유치할 것인가를 논의한다는 거다. 형식은 관함식이지만 사실상 제주 해군기지를 군사항으로서 매김하고, 특히 미군이 자신들의 기지로 이용하겠다는 것을 시위하는 행사라는 거다. 모두들 긴장했는데, 다행히 총회에서는 이 행사를 유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2018년 3월 31일 토요일(둘째 날)
아침 일찍 해군기지 앞으로 갔다. 푸른 바다가 아닌 해군기지 앞에서 하는 평화의 100배를 하며 비감한 생각이 들었다. 100배를 마친 후 전날 마을 임시총회 소식을 들었다. 참석한 주민 80여 명 중 50여 명이 반대했다고 한다. 국제관함식이 열리게 되면, 미군 항공모함이나 핵잠수함이 공식적으로 드나들게 될 것이라 한다. 우리는 10월에 관함식 거부에 힘을 보태야겠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침식사를 하러 할망물식당으로 갔다. 수석셰프 종한 삼촌의 맛난 김치찌개와 된장국, 각종 반찬이 준비되어 있었다. ‘밥은 서로 나누어 먹는 것’이라는 글귀를 보며 맘이 편안해졌다. 할망물식당 한 끼 식구가 된 우리는 연락처를 남기며 강정마을의 좋은일 궂은일에 함께하자고 다시 다짐했다.
다음 일정은 제주 4.3평화공원이다. 영상과 전시물을 보고 야외로 나왔다.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영혼들을 위로하며 이제라도 수의를 입고 편안히 저승에 가시라는 해원의 의미를 담고 있는 조형물 “귀천”과 당시 희생자들의 이름이 일일이 새겨진 각명비를 보았다. 각명비에는 지금도 새로 발굴된 분들의 이름이 새겨지고 있다. 4.3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산 증거다.
오후 3시, 제주시청 앞에서 열린 4.3항쟁 70주년 범국민대회에 참가했다. 전국에서 약 3천여 명의 민주노총 조합원들도 참가했는데 미국의 책임 인정과 사과 요구, 철저한 진상규명과 특별법 개정, 정명(正名)운동을 다짐했다. 4.3평화공원에 누워있던 백비에 4.3민중항쟁이라는 이름을 쓰고 이 백비를 선두에 세우고 참가자 모두는 제주시청 정문 앞에서 관덕정까지 거리행진을 하였다. 이제 4.3은 사건이 아니라 4.3민중항쟁이 되어야 한다.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 우리는 민주노총 교육국장 박석민 부천평통사 회원으로부터 4.3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교육과 기행이 어우러지니 참 좋았다.
2018년 3월 31일 토요일(셋째 날)
아침일찍 성산으로 이동하여 제주신공항반대투쟁위 강원보 집행위원장을 만났다. 이 일정에는 공장으로 돌아가기 위한 싸움을 11년째 하고있는, 인천평통사 회원이자 콜트콜택 노조 방종운 지회장도 동참했다.
우리는 강위원장과 함께 신공항 예정지에 있는 여러 동굴들과 오름들을 둘러보았다. 몇 군데만 보아도 이곳에 비행장을 내고 활주로를 낸다는 건 넌센스다. 땅 밑 여기저기에 구멍이 뚫려있다. 동굴지역이라는 거다. 게다가 오름들이 여기저기 솟아있다. 여기에 활주로를 낸다는 건 소도 웃을 일이다.
우리는 공항예정지 내 독로봉 편백나무 숲에서 간이음악회를 열었다. 방지회장의 기타반주에 맞추어 부산 평화홀씨 합창단원인 신차범 회원의 노래, 강위원장의 투쟁 시까지 곁들이니 금상첨화다.
강정마을로 미군 항공모함이 들어오고 미국의 전투기는 성산 제2공항에 내려앉는다. 과연 제주는 누구를 위한 섬인가. 평화의 섬 제주에서 숲속 간이음악회는 아름답지만 슬픔을 머금었다.
돌아오는 길에 벚꽃과 유채꽃이 만개하였다. 연인들, 친구들이 행복한 모습으로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았다. 다른 한 쪽에는 만개했던 동백꽃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자신의 행복에 뭍혀있을 때 토벌당했던 제주의 민중들처럼.
일제에 의한 수탈과 강제징용, 그리고 이어진 미군정에 의한 학살, 그리고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과 지금 강행되는 성산 신공항 건설...학살과 수탈의 역사가 지금도 계속된다. 그러나 그 안에는 강제징용을 거부하고자 했던 제주민중과 그 역사를 기억하고자 한 후손, 그리고 미군정의 학살에 맞서 일어선 4.3민중항쟁이 있다. 이제 그 흐름이 강정마을에서의 평화투쟁과 신공항건설 반대 투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역사를 우리도 이어받는다. 그 투쟁에 우리도 함께 했고, 함께 할 것이다.
평화의 섬 제주에서 따뜻하면서도 힘찬 민중의 힘을 배운 평화발자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