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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일/집결장소 : 2014년 4월 26일(토) / 1호선 관악역2번출구(10시)
▣ 참석자 : 10명 (갑무, 정남, 종화, 진오, 양주, 원우, 삼환, 정한, 문형, 양기)
▣ 산행코스 : 관악역-호암산성-불영암-찬우물-국기봉(조망대)-호압사-시흥동(뒷풀이집)
▣ 동반시 : "공중의 천막" / 김용우
▣ 뒷풀이 : 홍어, 홍어애국(?), 닭도리탕에 막걸리 / "서담" (금천구 시흥대로)
오늘 산행지는 집에서 멀지 않은 삼성산이라서 약간의 떡과 포도를 등산배낭에 챙겨 넣고 느지막하게 집을 나섰다. 하늘은 곧장 비라도 내릴 듯이 잔뜩 흐려있다. 다행히 아침 일기예보에서 저녁 무렵에나 비가 내린다 하니 산행하기에는 좋은 날씨이다.
우리가 만나기로 한 전철1호선 관악역에 도착하여 출구를 나서며 두리번거리는데 먼발치에 삼환 총장과 정한 산우가 눈에 띈다. 반가운 마음으로 가까이 다가가 악수를 청하고, 곧이어 양기, 진오, 원우 산우가 도착한다. 뒤이어 문형, 정남, 종화, 갑무 산우들도 도착해 오늘 산행에는 모두 10명의 산우들이 참가하였다. 형채 산우도 참석하기로 했다는데, '잠에서 깨어보니 오전 9시52분이더라'면서 동참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연락이 왔다 한다. 우리 나이에 아직도 늦잠이라니 한편으론 부럽다는 생각도 해본다.
오늘 산행은 이곳 산 지형을 훤히 꿰뚫고 있는 양기 산우가 안내를 맡기로 하고 10시가 한참 지나 관악역을 출발하였다. 우리는 경수대로 삼막사거리에 위치한 ‘한마음선원’을 지나 경인교대 방향으로 삼성산을 향해 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안내를 맡은 양기 산우가 오늘 행선지를 ‘호암산’으로 변경하자고 하면서 왼편의 관악 이안아파트 방향으로 들머리를 돌린다.
삼성산과 산줄기를 잇고 선 호암산(虎巖山)은 해발 393미터로 그리 높지 않고 비록 관악산의 명성에 가려 있긴 하지만 수려한 산세에 있어서는 모자람이 없는 산이다. 조선 초기에 무학 대사가 도성을 향해 포효하는 호랑이 모양의 암봉을 호암산이라 이름을 붙이고 그 아래에 호압사(虎壓寺)라는 절을 지었다고 하는데, 호랑이의 기세를 누르기 위해 꼬리에 해당하는 지점을 택하여 사찰을 앉힌 것이라는 설화가 있다
우리는 관악 이안아파트 입구를 들머리로 호암산을 향해 조금 언덕진 산길로 접어들었다. 등산객들이 잘 다니지 않는 등산로라서 그런지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주위를 둘러보니 작은 들꽃들이 반갑다는 듯이 봄바람에 고개를 흔들며 피어있고, 이름 모를 잡목들은 연록의 새잎들로 싱그럽다.
산행 초입은 대부분의 산들이 그렇듯이 오르는 길이 가파르다. 제2경인고속도로 끝자락에 있는 삼막터널 위로 나있는 길을 지나 가파른 산길을 걷다보니 어느 새 호흡이 거칠고 이마에는 땀이 홍건하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서서 땀을 훔치고 있는데 흙과 풀 내음 가득 실고 봄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온다.
가파른 산길을 따라 얼마쯤 올라가자, 산책하기에 딱 좋은 평탄한 석수능선길에 접어드니 불그스레한 마사토의 황톳길이 이어져 푹신하니 걷기에 참 좋은 능선길이 이어진다. 한참을 가다보니 이 구간이 관악산 둘레길 '서울 금천구 구간' 으로 3키로 정도 이어진다는 안내표지판이 서있다.
석수능선길은 겨울에 눈이 쌓여있을 때 오르기 좋은 산행길이라고 이번 산행의 안내를 맡은 양기 산우가 소개한다. 우리는 석수능선길을 따라 걷다가 안내표지판이 서있는 갈림길에서 호암산 방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호암산으로 가는 산길은 소나무가 쭉 이어지고 주변 나무들도 연록의 새잎으로 갈아입어 그늘진 오솔길처럼 상쾌하고 기분 좋은 길이었다. 이 길을 따라 한참을 가니 시흥계곡과 한우물로 가는 갈림길이 나와 우리는 한우물 방향으로 다시 발길을 돌린다.
한우물로 가는 길은 지금까지 왔던 길과는 조금 달랐다. 바윗길에 흙먼지가 푸석이고 비탈이 져서 오르는 발걸음이 더디고 힘이 든다. 올봄 유독 비가 내리지 않는 봄 가뭄이 심한 탓이다. 필자는 과천청사 건너편 청계산 자락에 조그만 주말농장을 경작하고 있는데 3월 말경 씨앗을 뿌린 상추, 쑥갓, 열무, 봄배추 등이 봄 가뭄으로 싹을 틔우지 못해 얼마 전 다시 뿌린 적이 있다. 그 만큼 올봄은 비가 거의 내리지 않고 있는데 오늘 저녁부터 비가 내린다 하니 다행이다.
우리는 한우물로 가는 길목에서 쉬어가기로 하고 소나무들로 둘러싸인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산우들은 각자 가져온 먹거리들을 배낭에서 내어 놓는다. 문형 회장이 변함없이 의무감(?)에서 가져오는 듯한 홍어무침을 비롯해 삼환 총장의 돼지머리고기와 유부초밥, 원우 산우가 가져온 모시떡, 정남 산우의 한과, 진호 산우가 필자의 고향이기도 한 장성에서 가져왔다는 유기농 사과와 두부김치 등 잘 차려진 음식들로 입맛이 당긴다.
젓가락을 들고 무엇부터 먹을까 하고 음식들을 살피는데 오늘 산행기자인 필자더러 시 낭송을 먼저 하라며 시가 적힌 종이를 내민다. 오늘 산행에 사정상 동참하지 못한 용우 산우의 자작시 ‘공중의 천막’ 이다.
"공중의 천막" / 김용우
안이 밝아 밖을 분간할 수 없네
통증의 기억이 발효되는 시간에
허공을 나는 새도 둥지를 틀어
생명에 새긴 사랑의 서약은
아름답고 아픈 세상이 된다네
죽은 지 오래여서 죽음을 모른다네
책갈피에 고요히 숨 멎은 귀뚜라미
아직 식지 않은 촉촉한 눈동자가
운명이라는 말로 위로가 되어
삶을 위해 삶을 떠나야 한다네
고개를 꺾어 나의 등을 볼 수 없네
뫼비우스의 띠를 손짓하는 간절함에
구겨져도 신음을 모르는 착한 영혼
덜컥 밧줄 잡고 빙벽을 오른다네
오래오래 당신 손짓하던 곳으로
시 낭송은 가수가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낭송자가 시가 가진 본래의 뜻을 이해하고 자기의 것으로 해석하고 재창조하여 청중이 감동을 받게 그 뜻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낭송할 사람은 미리 낭송할 시의 배경이나 주제, 시를 쓴 시인의 시심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오늘 산행에서는 필자가 바빴던 탓도 있었지만 한 번 읽어보지도 못하고 갑자기 낭송을 하려고 하니 책이나 원고를 보고 읽듯이 아무런 감동이나 기교도 없이 그저 읽어 내려가기에 급급하여 낭송이 아닌 낭독이 되고 말았다.
사실 오늘 동반시는 읽어 가면서도 너무 난해하여 전혀 마음에 와 닿지를 않았는데 필자만의 생각은 아닌 것 같았다. 앞으로는 동반시를 산우들의 자작시로 정할 경우 가급적 시를 쓴 산우가 먼저 시의 배경이나 주제 등을 설명하고 나서 낭송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며, 동반시 낭송자를 정하는 것도 꼭 산행기 작가로 할 것이 아니라 동반시의 낭송에 어울리는 목소리로 시를 감동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산우가 낭송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리는 산우들이 준비해온 간식을 맛있게 먹고 나서 호암산 국기봉을 향해 출발한다. 누군가가 30분이면 국기봉 조망대에 도착할 수 있다고 한다. 점심을 겸한 간식으로 배를 채우고 막걸리를 두어 잔 마신 탓인지 다리가 풀려 가는 걸음이 느리고 힘이 든다. 조금 걸으니 서울 호암산성의 일부인 제2한우물과 옛 건물터를 지나고 한참을 더 가니 한우물이 나타난다.
한우물은 '큰우물'이라는 뜻으로 불영암 옆에 있는 자그마한 연못이다. 이 연못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평생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한우물가에는 명품 소나무 한 그루가 그 자태를 멋지게 뽐내며 서있다. 주변에는 '사랑의 즐거움'이란 꽃말을 가진 철쭉꽃이 진분홍색으로 화사하게 피어있고 라일락이 진한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 멀리는 서양병꽃이 흐드러졌다.
한우물 옆으로는 작은 암자인 불영암이 자리하고 있다. 불영암에서 산아래를 바라보니 미세먼지 탓인지 사방이 뿌였다. 바로 밑으로 양기 산우가 산다는 벽산아파트 단지와 시흥대로 주변이 보이고, 저 멀리 한강과 북한산도 희미하게 눈에 들어온다.
우리는 불영암 주변을 잠시 둘러보고 석수동갈림길에서 능선을 따라 민주동산 조망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한참을 가다보니 널따란 암반이 있는 조망대 국기봉이 우리를 맞이한다.
조망대 국기봉에서 바라보는 산자락은 연록의 푸르름으로 생기가 넘치고 싱그럽기 그지없다. 봄의 문턱을 넘어선 그곳이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벅찬 느낌으로 내게 다가온다. 산은 공기도 맑고 온갖 시름에서 잠시라도 벗어날 수 있으니 이런 맛에 너도나도 산에 오르는가 보다. 산을 오르는 일은 자연과 현실 앞에 순응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기도 하다.
조망대에서 연록의 산자락에 넋을 잃고 둘러보고 있는데 양기 산우가 '전망'과 '조망'이 어떻게 다른지를 묻는다. 금방 대답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요즘 도서관에서 파묻혀 지낸다는 정남 산우가 "전망은 앞을 보는 것이고, 조망은 둘러보는 것이다"라고 정리해 준다. 인터넷 사전을 검색해보니 '전망은 멀리 바라보는 것이고, 조망은 널리 바라보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정남 산우의 말이 대강은 맞는 것 같다.
우리는 조망대를 뒤로하고 하산길에 나선다. 오늘 뒤풀이하는 식당이 있는 시흥사거리를 목적지로 하여 암반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니 호압사가 자리하고 있다. 호압사에서 시원한 약수 한 사발을 들이켜니 시원하고 금세 피로가 풀리는 듯하다.
호압사에서 잠시 쉬었다가 우리는 잣나무숲이 우거진 호암산 삼림욕장을 거쳐 관악산둘레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오니 시흥계곡 입구에 도착하고, 오늘 산행에 나선지 근 5시간 만에 우리의 산행은 마무리 된다. 산행길이 대체적으로 평탄하여 힘든 코스는 아니었어도 꽤나 긴 거리를 걷다보니 다리는 피곤해도 기분은 상쾌하다.
마지막으로 뒤풀이는 양기 산우의 안내에 따라 '서담'이라는 식당에서 홍어회에 막걸리 한사발 들이키며 오늘 산행의 피로를 풀고 산우들 간의 우의도 다지는 자리를 가졌다. 오늘 먹은 홍어회는 가격이 상당히 비싸 잠시 주문여부를 두고 산우들 간 의견이 갈리기도 했지만, 비싼 만큼 육질이 찰지고 적당히 숙성된 맛으로 달콤하여 우리 입맛을 즐겁게 해 주었고, 뒤이어 나온 홍어앳국도 전라도식으로 맛을 내어 그 맛이 일품이었다.
2014년 4월 26일(토) 나양주 씀.
※ 호압사(虎壓寺)의 연혁 및 유래
호압사는 서울시 금천구 시흥2동 234번지의 삼성산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유서깊은 전통사찰이다. 삼성산은 관악산의 주산이며, 숲보다 바위가 많고 그 바위들이 호랑이 형상을 하고 있으므로 호암산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호압사의 본사였던 봉은사에서 엮은 봉은사 말사지에는 1407년인 조선 태종7년에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또한 태종 임금이 호압이란 현액을 하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창건연대는 이보다 훨씬 앞선다는 것을 여러 문헌에서 발견된다.
조선의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호암산의 지세가 더욱 크기 때문에 이를 누르기 위하여 호압사를 세웠다는 전설과 이성계의 꿈에 나타나 대궐을 부순 호랑이를 누르기 위하여 호압사를 창건하였다는 전설로도 알 수 있다.
호압사의 창건은 조선 개국시기인 1392년에서 1394년 사이인 것으로 사료되며 태조3년에 신도궁궐 조성도감 이라는 관청을 설치하여 궁궐을 지었는데, 호압사도 이 무렵 창건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