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좋은 날들은 흘러가는 것 잃어버린 주홍 머리핀처럼 물러서는 저녁 바다처럼. 좋은 날들은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처럼 새나가지 덧없다는 말처럼 덧없이, 속절없다는 말처럼이나 속절없이. 수염은 희끗해지고 짓궂은 시간은 눈가에 내려앉아 잡아당기지. 어느덧 모든 유리창엔 먼지가 앉지 흐릿해지지. 어디서 끈을 놓친 것일까. 아무도 우리를 맞당겨주지 않지 어느날부터. 누구도 빛나는 눈으로 바라봐주지 않지.
눈멀고 귀먹은 시간이 곧 오리니 겨울 숲처럼 더는 아무것도 애닯지 않은 시간이 다가오리니 잘 가렴 눈물겨운 날들아. 작은 우산 속 어깨를 겯고 꽃장화 탕탕 물장난 치며 슬픔 없는 나라로 너희는 가서 철모르는 오누인 듯 살아가거라. 아무도 모르게 살아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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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글을 쓰다가 날렸다. 오랫만이다. 90년초반엔 워드프로세서였던가? 그거 쓰다가 늘 글을 날렸다. 하룻밤 작업하던 문서를 날렸을 때는 그저 웃음만 나오던 기억이. ㅎㅎ 암튼. 이렇게 글을 날리고 다시 쓰는 일은 참 멋적다. 그럼에도 다시한번.)
화양연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영화다. 장만옥 나오고. 만두 사들고 불그스레한 골목길을 오르던 흐느적거리는 영상미의. 난 그래서 이게 영화제목인줄 알았지 무슨 다른 뜻이 있다고 생각지는 못했다. 김사인 시인의 이 시를 만나고서도 그 영화 얘긴가 하며 읽었다. ㅎㅎ '모든 좋은 날들은 흘러가는 것' 이 첫구절이 이 노래를 쓰게 했으리라. 그리고 따라오는 '주홍 머리핀' 이 시어가 왜 그리도 아리고 가슴이 뛰던지. 인생의 가장 화려하고 좋았던 때. 라는 화양연화의 뜻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꼭 그 말일 것 같은 '주홍 머리핀'. 이 시는 이미지적이다. 색깔과 촉감이 느껴진다. '어느덧 모든 유리창엔 먼지가 앉는다'는 표현이나 '짓궂은 시간은 눈가에 내려앉아 잡아당긴다'는 표현은 어찌나 멋지던지. 그리고. 마지막연. 화려하고 아름다운. 환희와 젊음의 시절을 의인화하여 이별하며 축복한다. '꽃장화 탕탕 물장난치며' '오누인듯 살아가거라'라고. 울컥한 순간. 거기다가 이 시를 노래로 만들게 된 가장 결정적인 시어는 아무래도 '슬픔없는 나라'가 아니었나 싶다. 세월호 참사의 슬픔을 겪은 바로 그 즈음이었다.
이 시를 노래로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너무. 길었다. 지난번에 함민복 시인의 '눈물은 왜 짠가'에 곡을 붙여보려다가 끝내 해금 연주곡으로 밖에 곡을 쓰지 못한터라 무척 겁이 났다. 그리고 문정희 시인의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도 결국 전문을 노래로 옮기지 못한터라 더욱. 그럼에도 시는 한발한발 나의 심장 속으로 걸어들어왔다. 그리고 이런 노래로 나타났다. 내가 어떻게 이렇게 곡을 썼나 싶을정도로 기적처럼 곡이 써졌다. 스스로 대견했다. 완전 자뻑의 경지였다. ^^ 곡에선 특히 중간부분 '겨울숲' 이미지를 살리고 싶었다. 그래서 살짝 변조를 하고 연주에서도 그런 느낌을 살리려고 했다. 사운드는 루나힐의 연주에 박혜리 님의 아코디언이 얹어지면서 그 아련하고 아릿한 느낌을 더할 수 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승환 선배님의 화양연화라는 곡도 있더라는. 그러므로 이 노래는 영화 화양연화와 싸우고 이승환의 화양연화와 싸워야하는 숙명을 타고났다. 내겐 그 중 최고지만. ㅎㅎ 언젠가 내가 세상을 뜨는 날. 이 노래가 잔잔히 울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첫댓글 멋진 시에
멋진 선율을 입히니
가슴 아리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