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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위기 희년법을 빼고 성경을 보게되면, 에스겔서의 토지분배와 희년까지 빼버리고, 종말 세상만 생각할 수 있습니다.
** 이스라엘 땅 10번 글은 아래에 링크된 9번 글 (성전의 생수 흐름과 토지분배)을 먼저 읽으셔야 합니다.
9번글(앞글) => 이스라엘 땅 9, 에스겔 성전의 생수는 토지분배로 이어진다. - Daum 카페 .
10번글(현재글) => 토지분배는 거룩한 땅과 성전부지, 왕의 토지를 먼저 정한다.
너희는 제비 뽑아 땅을 나누어 기업으로 삼을 때에 한 구역을 거룩한 땅으로 삼아 여호와께 예물로 드릴지니 그 길이는 이만 오천 척이요 너비는 만 척이라 그 구역 안 전부가 거룩하리라 그 중에서 성소에 속할 땅은 길이가 오백 척이요 너비가 오백 척이니 네모가 반듯하며 그 외에 사방 쉰 척으로 전원이 되게 하되(겔 45:1,2)
예물로 드릴 거룩한 땅은 각 변의 길이가 13.3km(25,000척), 면적은 177k㎡로 네모반듯한 것을 알았다. 그리고 177k㎡ 면적의 거룩한 땅 안에 ㉠성전부지, ㉡제사장 직무자 사독 자손의 땅, ㉢성전 종사자 레위인의 땅, ㉣성전의 부속 업무를 보게될 일반 백성들이 공동으로 경작할 경작지, ㉤여호와가 계신 삼마 성읍 등으로 구성되는 각각의 규모과 구조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 거룩한 땅은 다시 남북으로 크게 3등분 하게 된다. 3등분을 한 땅은 ㉠, ㉡이 하나로 중심에 있고, 북쪽은 ㉢이 하나, ㉣ ,㉤이 하나다. 여기까지가 에스겔 45:1~6에서 말하는 거룩한 땅이다.
<참고> 성전부지와 사독 자손의 땅 : 3등분을 한 땅의 중심과 정중앙에 성전이 들어설 성전부지가 있다. 성전부지 정중앙에 제단이 있고, 서쪽으로 성소와 내전(지성소)이 있다. 성전부지(성소, 지성소, 제단, 부속 건물, 뜰)에 속할 땅이 각 변의 길이가 266m(500척), 약 21,400평 면적으로 네모반듯하다. 사독 자손의 거주지는 성전부지 바깥에 있는 땅이다. 길이는 25,000척(13.3km), 너비는 1만척(5.32km), 총 70.76k㎡ 면적 중 성전부지(21,400평)를 제외한 전부다.
그다음은 거룩한 땅을 정중앙에 두고, 그 땅과 연접(경계를 같이)한 양쪽은 동서국경까지 모두 왕에게 분배될 토지다. 이 왕의 토지와 거룩한 땅을 사이에 두고, 그 경계와 연접한 지역을 12지파에게 분배한다. 12지파는 거룩한 땅과 왕의 토지를 사이에 두고, 이에 연접하여 북쪽은 7지파, 남쪽은 5지파에게 분배한다. 상세한 내용은 67번과 68번 글의 분배도를 참고하기 바란다.
“거룩한 땅”은 과연 어디?
이번은 에스겔서 48장 토지분배에서 분배할 대상 토지, 곧 이스라엘 영토에서 그 위치를 탐지할 차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에서도 약속의 땅 진입을 앞두고 12지파의 대표를 뽑아서 이스라엘 영토를 정탐한 적이 있다. 여기서 12지파 대표 중 10명이나 약속의 땅을 두고 불평하여서, 그 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40년간(38년) 광야에서 살다가 일생을 마친 적이 있다.
지금 에스겔에게 보여준 토지분배에도 예물로 드릴 거룩한 땅과 왕의 토지, 그리고 이곳을 중심으로 12지파별로 분배할 땅을 살펴보아야 한다. 이것도 토지정탐이다. 그러므로 이 토지정탐과 실제적인 분배에서도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성경 말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출애굽 당시를 보아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주실 땅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거나 혹평하면 진입에 실패할 수가 있다.
땅의 진입과 분배를 두고, 그 땅은 하나님이 공짜로 주신다면서 “무임승차”를 바라고 있어도 아니 된다. 땅을 다스릴 청지기가 마지막 때가 되면, 천국은 공짜로 주어질 것이므로 지상의 땅은 생각하지 말라고 해서도 아니 된다. 그 이유는 청지기로 지음을 받은 사람은 주인이 맡긴 땅을 다스리고,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청지기는 주인의 땅을 상품이나 소유물처럼 여겨서도 아니 된다.
그래서 하나님이 준다고 약속한 땅이지만, 그 땅이 개인과 공동체에 분배되어 실제로 경작되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합당한 절차와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분배될 땅은 먼저 구체적인 위치부터 알아야 한다.
분배할 땅, 이스라엘 전체의 위치는?
모든 지파의 이름은 이와 같으니라 북쪽 끝에서부터 헤들론 길을 거쳐 하맛 어귀를 지나서 다메섹 경계선에 있는 하살에논까지 곧 북쪽으로 하맛 경계선에 미치는 땅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단의 몫이요(겔 48:1)
갓 경계선 다음으로 남쪽 경계선은 다말에서부터 므리바가데스 샘에 이르고 애굽 시내를 따라 대해에 이르나니(겔 48:28)
그러면 제일 먼저 분배(지정)해야 할 거룩한 땅은 위치가 어디일까? 이 땅의 위치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토지를 분배할 대상인 이스라엘 전체의 영토와 국경을 알아야 한다.
에스겔서는 이 국경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이스라엘 영토 전체의 국경은 에스겔서 48장 1절과 28절에 나타나 있다. 곧 북쪽과 하맛 어귀와 다메섹 지계, 남쪽은 브엘세바 또는 애굽시내까지다. 동서는 서쪽이 요단강과 사해, 동쪽은 지중해까지이므로 자연조건에 따른 국경이다.국경은 출애굽시대부터 하나님이 지정해 준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민 34:2~12). 이스라엘 영토를 말할 때는 분배받고 경작할 기업만 대상으로 하므로 지중해와 같은 해상의 영토는 언급하지 않는다.
에스겔서에서 12지파에게 분배할 토지는 지파별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 북쪽은 단, 아셀, 납달리, 므낫세, 에브라임, 르우벤, 유다의 일곱 지파가 순서를 따라 분배되며, 그다음 유다지파와 경계를 연접하여 거룩한 땅과 왕의 토지가 있다. 거룩한 땅과 왕의 토지 남쪽은 베냐민지파를 우선하여, 시므온, 잇사갈, 스불론, 갓, 다섯 지파가 순서를 따라 분배된다.
에스겔 토지분배에서 지파별 대상 토지는 그 분배의 순서와 위치만 지정하고, 구체적 위치나 면적은 일절 언급이 없다. 그리고 에스겔 토지분배에서는 국경 지역을 제외한 구체적인 지명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의 의문 사안이다. 그러나 에스겔 성전이 구약시대의 솔로몬 성전과 비교하여 없는 것이 있듯이 에스겔 토지분배에서도 없는 것이 있다. 그래서 에스겔 토지분배는 실제로 분배할 토지인지, 마지막 때에 있어야 할 천상천국에 대한 상징적 내용인지 의문이 있을 수 있다.
다만, 필자는 에스겔서의 토지분배는 지상에서 성취 또는 완성되는 왕국에서 필요한 것이고, 계시록이 말하는 마지막 천국은 천상에 있는 것으로, 분배의 대상과 시간이 다르다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서 의미를 살펴보아야 하지만, 상세한 것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거룩한 땅”의 위치는?
유다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너희가 예물로 드릴 땅이라 너비는 이만 오천 척이요 길이는 다른 몫의 동쪽에서 서쪽까지와 같고 성소는 그 중앙에 있을지니(겔 48:8)
에스겔서 48:8은 넓은 의미로 예물로 드릴 땅이다. 넓은 의미로 예물로 드릴 땅은 에스겔서 45장이 말하는 거룩한 땅(45:1~6)과 그 땅의 양쪽에 분배되는 왕의 토지(45:7)를 포함한 지역이다. 그러므로 7지파와 5지파 사이, 중심부에 있는 땅 전체가 넓은 의미로 예물로 드릴 땅이다. 중심부에 자리 잡은 예물로 드릴 전체의 땅 중에서 정중앙에 있는 성전과 성전부지, 사독 자손과 레위인의 거주지, 삼마 성읍 등이 거룩한 땅에 속한다(예물로 드릴 전체의 땅 중에 왕의 토지를 제외한 부분).
필자는 설명과 독자의 이해를 위하여 넓은 의미로 예물로 드릴 땅, 12지파 사이 중심부 땅을 “예물로 드릴 땅(또는 12지파 중심부)”이라고 한다. 이 예물로 드릴 땅 전체 중에서 성전과 성전부지, 삼마 성읍 등이 있는 177k㎡의 땅을 “거룩한 땅”으로 구분하여 부르고자 한다.
(넓은 의미)로 예물로 드릴 땅은 남북의 경계가 북쪽에서는 7지파, 남쪽은 5지파의 토지다. 곧 거룩한 땅 남북의 위치는 북쪽 7지파와 남쪽 5지파 사이의 중간지대다. 그리고 동서의 경계는 동쪽이 동쪽 국경인 요단강과 사해다. 서쪽은 서쪽 국경이라 할 수 있는 지중해까지다(토지분배에서 바다는 제외함). 그러므로 동서국경에서 정중앙은 위치가 분명하다. 그러나 남북은 예물로 드릴 땅이 7지파와 5지파 사이에 있을 뿐, 구체적 위치는 명확하지 않다.
그래서 예물로 드릴 땅(중심부 땅), 남북의 위치는 12지파별 토지 사이라는 상대적 위치만 정해져 있고, 그 지역에 대한 구체적 지명이나 지역에 대한 언급이 없다. 12지파에게 분배되는 지파별 토지처럼 예물로 드릴 전체의 땅도 경계는 명확하지 않다는 뜻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 위치에 대하여 납북의 중심부, 동서국경의 정중앙이라는 전체적 윤곽만 알려주고, 구체적 위치는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위임한 것으로 볼 수가 있다.
그러면 이스라엘 중심부의 땅(예물로 드릴 땅), 곧 거룩한 땅과 그 동서 양편 왕의 토지는 에스겔서가 가르쳐 준 말씀을 따라 위치를 추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그 위치는 어디일까?
현재의 예루살렘 도성을 “거룩한 땅”으로 보기도 한다.
필자는 예물로 드릴 땅의 위치에 대하여 기존의 연구를 찾아보았으나 구체적으로 연구된 자료를 찾을 수가 없었다. 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아마도 사람들이 성경을 보아도 영적인 관심만 가지고 땅과 생활에 관한 관심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또 위치를 찾으려고 해도 에스겔서가 구체적 위치를 언급하지는 않았으므로, 쉽게 말을 할 수도 없다.
에스겔의 토지분배를 컴퓨터 검색하여 보면, 토지분배도를 찾아볼 수가 있다. 이에 따른 에스겔 토지분배도는 대체로 3가지 정도로 나타난다. 물론 필자가 찾아본 토지분배도는 중심부 땅을 모형도를 그려서 표기만 하고, 이에 대한 관련 성구나 설명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점을 염두에 두고 토지분배도(모형도)를 살펴보아야 한다.
첫째는 거룩한 땅을 갈리리 호수와 사해의 중간 지점을 모형도로 보여주고 있다. 이 생각은 아마도 중심부 땅을 북쪽 7지파와 남쪽 5지파의 사이로 하되, 그 사이의 위치를 이스라엘 전체 영토를 단순히 7:5로 분할하여 잡은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위치를 갈릴리 호수와 요단강 사이의 중간 지점으로 본 것이다. 이곳의 관심 지역은 그리심산과 에발산 사이에 있는 세겜이다. 세겜은 남북 분단시 북 이스라엘 수도였으며, 사마리아 사람들을 포함하여 북쪽 지역에서는 종교와 정치의 중심지 역할을 한 적이 있다.
둘째는 예루살렘 현재의 도시, 곧 솔로몬 성전이 있었던 장소를 예물로 드릴 땅으로 나타내고 있다. 물론, 위치를 예루살렘으로 잡은 근거에 관한 설명이 없으며, 관련 성경 구절도 소개하지 않고, 모형도에 위치만 나타내어 보여주고 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민족이 상징적으로 여기는 도성이며, 신성시한다고 할 만큼 매우 중시하는 도성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세계 기독교인들에게도 영적 이스라엘로, 또 신앙적 중심지로 여기며 중시하는 지역이다. 스가랴서를 비롯한 성경에서 예루살렘의 회복을 예언한 말씀도 상당수 있다(슥 8:3,7,8, 렘 33:15, 욜 3:21,22). 그래서 현재의 예루살렘을 거룩한 땅, 후보지로 그려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살펴볼 예정이다.
셋째는 에스겔서 48장 8절 말씀대로 거룩한 땅은 남북으로는 7지파와 5지파의 사이(중심부), 동서로는 동서국경 정중앙을 추정지로 보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거룩한 땅의 위치를 이곳으로 보는 견해가 가장 많은 것 같다.
예물로 드릴 땅 전체의 위치에 대해서는 필자도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신중하게 다루어야 할 주제다. 그래서 필자는 조심스럽게 나름대로 거룩한 땅과 왕의 토지에 대한 위치를 추정해 보고 있다. 이렇게 본 거룩한 땅은 셋째의 견해를 따라서 남북으로는 7지파와 5지파의 사이, 동서로는 동서국경 정중앙 지역이 된다.
"거룩한 땅"은 기랏여아림 숲지대로 추정한다.
필자는 에스겔이 환상으로 본 거룩한 땅(성전부지와 삼마 성읍 전체)의 위치를 현재 예루살렘 서쪽으로 13km 떨어진 기랏여아림 부근으로 보고 있다. 기랏여아림은 고대부터 울창한 숲지대이었다. 그 숲지대에 기랏여아림 사람, 아비나답이 아들 엘리아살에게 법궤를 지키며 살게 했었다(삼상 7:1). 이곳이 남북으로는 7지파와 5지파에게 분배될 토지 사이, 동서로는 사해와 지중해 사이, 곧 동서국경 정중앙에 위치한다.
기랏여아림, 이곳을 중앙지 거룩한 땅으로 보게 되면, 동쪽으로 왕에게 분배될 토지로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이 들어온다. 서쪽에는 왕의 토지로 지중해 해변과 이스라엘 제1의 항구 도시 아스돗이 있고, 약간 서북쪽은 이스라엘의 대표 도시, 텔아비브가 있다. 다시스로 가는 항구 도시 욥바가 이곳이다.
필자가 기랏여아림을 거룩한 땅으로 추정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다만, 아래의 지리적 위치는 필자가 현지의 지리와 지형을 잘 모르며, 거리나 위치를 주관적으로 정한 것이므로 정확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 위치는 설명을 위한 것이며, 사실과는 다를 수가 있다. 독자들은 이런 점에서 사전 이해가 필요하다.
(1) 이 지역(거룩한 땅과 왕의 토지)은 이스라엘 영토를 남북으로 나누면 그 중간지대에 속한다. 이곳은 필자가 임의로 그은 선이지만, 서쪽은 지중해 해변인 아스돗에서 동쪽은 사해 입구에 키부츠가 있는 칼리아 마을까지 일직선을 그은 선이다. 기랏여아림은 그 일직선 중심에 위치한다. 가나안 정복 당시 여호수아가 토지를 분배할 때 기랏여아림은 베냐민지파와 유다지파의 경계지이었다(수 15:60, 18:14,15).
(2) 기랏여아림을 거룩한 땅으로 보면, 이 땅과 연접한 동쪽은 왕의 토지로 분배될 지역이다. 그곳은 기랏여아림에 인접한 동쪽 약 13km 위치에 예루살렘 도성이 있고, 예루살렘에서 직선으로 8km 남쪽에는 베들레헴이 있다. 다윗 왕이 산 위에 사는 여부스 족속을 쫒아내고, 정복한 다윗성이 바로 예루살렘이다(삼하 5:7,9). 그리고 다윗 왕이 탄생한 곳이 베들레헴이다. 그러면 기랏여아림은 에스겔 성전이 들어설 자리이며, 현재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은 왕의 토지로 분배될 예정지가 된다.
(3) 이 지역은 지형을 보아도 특이점이 있다. 기랏여아림에서 서쪽 지역 지중해까지는 소렉 골짜기가 있어서 이스라엘을 남북으로 가르는 지리적 특성을 가진다. 그리고 동쪽 지역은 에브라임산지와 유다산지를 남북으로 나누는 지형적 특성이 있다.
(4) 이 지역은 주전 1406년 가나안 땅을 정복할 당시 여호수아의 토지분배에서 이스라엘 영토를 둘로 나누었다고 보면 그 중간지대에 속한다. 이 지대를 중심으로 남쪽의 요충지는 유다지파, 북쪽의 요충지는 요셉지파(에브라임, 므낫세)가 일곱지파보다 먼저 토지를 분배받았다. 유다지파는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장자권 계보를 계승한다. 요셉은 장자권 계승자가 받게 되는 두 몫의 기업 상속권을 가져서 에브라임지파와 므낫세지파가 기업을 나누어 받는다. 두 몫을 받는 기업 상속권은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요셉지파에게 돌아갔다. 이 두 몫의 기업 상속권은 에스겔의 토지분배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겔 47:13).
이 지역은 베냐민지파와 단지파가 기업이 있는 위치인데 남쪽은 유다지파, 북쪽은 요셉지파가 분배받은 넓은 면적의 기업 사이에 작은 면적으로 끼어있는 형태다. 이 지역은 가나안 정복 후에도 베냐민지파의 땅은 동쪽 산지를 여부스 족속(삿 1:21), 서쪽 해안지대에 있는 단지파의 땅은 블레셋 세력으로 인하여 정복하지 못했다. 단지파는 아모리 족속에게도 밀려서 분배받은 기업에 정착하지 못하고, 북쪽 라이스로 이동하였다(삿 1:34, 18:7, 수 19:47). 그래서 이 지역은 남북의 경계가 불투명하다. 이 지역은 지리적으로 남북을 가르는 경계지 역할을 하여 왔고, 정치와 종교적으로는 남북의 세력권에서 일종의 완충지대 또는 중립지대의 역할을 한 곳이다.
(5) 이 지역은 주전 931년 남북이 분단되면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갈라지는 국경지대가 되었다.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로 갈라진 남북 분단에서 양쪽의 중심 세력은 이스라엘 영토를 가장 많이 차지한 유다지파와 요셉지파가 주도하였다. 북쪽은 에브라임지파를 주축으로 한 10지파가 합쳐서 하나의 북왕국이 되고(왕상 12:16), 남쪽은 베냐민지파가 포함된 유다지파가 남왕국을 이루었다(왕상 11:35,36). 이스라엘이 통일왕국이 되기 전까지 블레셋은 주로 이 지역을 통하여 내륙으로 들어와서 이스라엘을 괴롭혔다.
이 지역은 한국에 비교하면 남북을 나누고 있는 3.8선과 휴전선, 그리고 비무장지대와 같이 남북이 대립할 때는 비슷한 지리적 역할을 했던 곳이다.
(6) 이 지역은 법궤가 아스돗에서 예루살렘까지 장기 이동한 주요 경로다. 실로에서 인간적인 생각으로 옮겨진 법궤가 예루살렘에 도착하기까지 약 70년간(또는 50년) 여러 곳으로 옮겨져야 했었다. 이스라엘 영토의 남북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이 지역은 아스돗에서 예루살렘까지 법궤가 안착지를 찾아서 오랜 기간 이동했던 지역이다. 블레셋에게 빼앗겼던 법궤는 사람들의 경솔한 생각과 행동으로 이 지역의 많은 사람이 재앙을 당해야 했었다.
(7) 기랏여아림은 법궤가 한 가정에서 20년간 안전하게 보존된 장소다. 구체적인 장소는 기랏여아림 사람, 아비나답이 사는 산지, 숲지대이었다. 20년 후에도 법궤는 예루살렘으로 옮기던 중 법궤를 수레에 실었다가 손을 대서 또 재앙이 내려지고, 석 달을 가드 사람, 오벳 에돔 집에 있어야 했었다(삼하 6:6~11).
기랏여아림은 법궤가 장기 안착한 곳으로 ‘거룩한 곳’이다.
기랏여아림은 베냐민지파와 유다지파의 접경지역이다. 그런데 기랏여아림은 법궤가 20년간 평온하게 있었던 장소다. 법궤가 이도하기 시작한 것은 사무엘상 4장부터 시작하는 이스라엘과 블레셋 간에 벌어진 아벡 전투장에 법궤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이 법궤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거나 독종(피부병)이 났으며, 재앙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법궤로 당하는 재앙과 법궤의 이동 경로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삼상 4:11)
법궤는 그 안에 십계명이 새겨진 돌비(말씀), 싹이 난 아론의 지팡이(통치권), 광야에서 땅을 주는 양식을 대신 공급했던 만나(경제권)가 들어있다.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상징하며, 성막이나 성전에 있는 지성소에 두는 것이다. 법궤는 이 당시 실로에 있었다(삼상 4:4).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 법궤를 부적처럼 여기는 미신을 가지고 있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아벡 전투에서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 법궤를 전쟁터에 가져오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법궤를 전쟁터로 옮겨왔다. 그런데 전쟁은 오히려 3만 명이나 죽는 대참패를 당하고, 법궤마저 블레셋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이 전투에서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죽었다.
전투에 패한 소식을 들은 엘리 제사장도 의자에 앉아있다가 넘어져서 목이 부러져 죽었다(삼상 4:18). 그리고 법궤를 잃어서 여호와의 영광이 떠난 것을 탄식하는 며느리까지 산고의 고통을 당한다. 이처럼 법궤에 대한 잘못된 신앙은 나라가 전쟁에 패하는 것은 물론, 영적 지도자 엘리 제사장의 가문까지 몰락으로 이어졌다. 하나님은 이처럼 미신과 주술적인 신앙, 지도자의 영적인 혼탁을 싫어하며 경계하신다.
그런데 법궤에 대한 잘못된 신앙은 블레셋도 마찬가지다. 법궤를 빼앗은 블레셋은 이 궤를 자신의 우상인 다곤 신전에 두었다. 이곳이 블레셋 5대 성읍 중 하나인 항구 도시 아스돗이다. 블레셋도 이스라엘처럼 법궤가 신통력을 발휘하여 자기편을 들어줄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궤를 갖다 놓은 다곤 신전에 신상이 엎드러지고, 목이 부러지며, 독종(독한 피부병)이 발생한다. 그래서 법궤를 가드로 옮겼다(삼상 5:6,8). 그러나 독종이 더 심해지자 이제는 에그론으로 옯겼다. 이렇게 블레셋은 법궤가 그들이 사는 5대 성읍(아스돗, 가드, 가사, 아스글론, 에그론)이 번성할 것으로 믿었다(삼상 6:17). 여기에 등장하는 가드나 에그론은 단지파에 분배된 땅이었지만(수 19:43,45), 블레셋 족속이 살던 지역이다.
그러나 법궤로 인한 불안 때문에 블레셋은 결국 이스라엘 땅에 속하는 벧세메스 사람들에게 넘겨 주었다(삼상 6:8). 벧세메스 사람들은 법궤를 보고 반겼지만, 그 궤를 경솔하게 여긴다. 법궤를 들여다본 사람들이 (5만) 70명이나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그래서 법궤는 다시 옮겨져야 했고 이렇게 우여곡절을 격은 후 비로소 기랏여아림 사람, 아비나답이 사는 산으로 옮겼다. 법궤는 그곳에서 20년간 보관하게 된다.
지금 필자가 말하고 있는 법궤로 인한 재앙과 역사적 사건들, 그리고 법궤의 이동 경로를 자세하게 언급하는 것은 에스겔이 본 거룩한 땅과 직접 관련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법궤의 이동 역사가 담긴 지역과 경로를 따라서 하나님이 예물로 드릴 땅, 성전부지가 들어있는 거룩한 땅, 그리고 왕의 토지를 정해주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랏여아림 사람, 아비나답의 집은 어디?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놓고 그의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더니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삼상 7:1,2)
법궤가 실로를 떠나 블레셋의 손에서 그들의 지배한 성읍을 거쳐서 안전한 장소인 기랏여아림 사람,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으로 오게 된다. 여기서 20년간 보관된 후 다윗 왕에 의해서 예루살렘으로 옮기게 된다. 이런 법궤의 이동 경로를 실로에서 출발하여 기랏여아림에서 20년간 안착한 후, 다시 예루살렘까지 이동한 경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러한 법궤의 이동 경로인 아스돗에서 예루살렘까지가 여호와께 예물로 드릴 땅이다(거룩한 땅 + 왕의 토지).
①실로 -> ②아벡(에벤에셀) -> ③아스돗 -> ④가드 -> ⑤에그론 -> ⑥ 벧세메스 -> ⑦기랏여아림(아비나답의 집) -> ⑧오벳 에돔의 집 -> ⑨예루살렘
** 서편 왕의 땅은 ③,⑤,⑥, 거룩한 땅은 ⑦, 동편 왕의 땅은 ⑧, ⑨로 추정함
법궤가 이스라엘의 실로를 떠날 때와 블레셋 성읍, 아스돗에 있는 다곤 신당으로 옮길 때는 그 궤의 신통력을 믿는 인간적인 생각으로 옮겼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룩한 법궤를 사람들의 사사로운 생각과 개입을 막으셨다. 법궤를 이용하려고 했던 이스라엘이 아벡 전투에서 참혹한 패배를 맞게 하시고, 그런 영적 상태를 초래한 엘리 제사장 가문을 몰락시켜 버린다. 블레셋이 다곤 신당에 법궤를 두었을 때에도 다곤 신상의 목이 부러지고, 엎드러지게 했다. 벧세메스에서는 궤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죽임을 당했다. 법궤를 다윗성에 옮길 경우에도 임의로 손을 대면도 죽어야 했다(삼하 6:6,7).
하나님은 이렇게 법궤를 거룩히 여기며 보호하여 장소를 여기저기를 여러 차례 옮긴 끝에 도착한 것이 기랏여아림, 아비나답의 집이다. 여기서 법궤는 아비나답의 아들 엘르아살이 맡아서 20년간 보관하게 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상징하는 법궤는 아무나 손을 댈 수가 없고, 아무 장소에나 있을 수가 없었다.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상징하는 법궤는 선택받은 사람만이 가까이 할 수가 있고, 지정된 장소에만 두어야 한다.
이렇게 구별하여 다루어야 하는 법궤가 기랏여아림 아비나답의 집에서는 20년간 평안히 거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곳은 법궤가 있어야 할 곳으로 하나님이 인정한 장소다. 그래서 기랏여아림 사람, 아비나답의 집은 ‘거룩한 곳’이다. 필자가 기랏여아림 사람, 아비나답의 집을 “거룩한 땅”의 근거지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삼상 7:1,2). 기랏여아림 숲지대는 법궤가 20년간 평안히 있었으므로 거룩한 땅으로 손색이 없을 것으로 본 것이다. 하나님은 법궤가 20년간 있었던 장소를 에스겔에게 환상으로 보여주신 것으로 추정한다는 뜻이다. 법궤가 아비나답의 집에 안착한 시기는 주전 1020년경으로 추정되며, 에스겔의 환상은 주전 573년경이므로 약 450년의 역사를 가진 시간이다.
기랏여아림은 숲지대를 뜻한다.
내 눈으로 잠들게 하지 아니하며 내 눈꺼풀로 졸게 하지 아니하기를 여호와의 처소 곧 야곱의 전능자의 성막을 발견하기까지 하리라 하였나이다 우리가 그것이 에브라다에 있다 함을 들었더니 나무밭에서 찾았도다 우리가 그의 계신 곳으로 들어가서 그의 발등상 앞에서 엎드려 예배하리로다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권능의 궤와 함께 평안한 곳으로 들어가소서(시 132:4~8)
시편 132편의 내용은 다윗에 대한 시가 맞지만, 다윗이 저자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저자는 다윗이 통일왕국의 왕이 된 후 법궤를 찾는 모습을 시로 읊고 있다. 다윗은 법궤를 발견하기까지 침상에 들지도 못하고, 잠이 들지 못하고 있다. 이 시를 보면 다윗이 법궤를 찾기 위하여 노심초사하며 많은 애를 썼고, 그래서 법궤를 찾아낸 장소가 나무밭이다.
법궤를 처음에는 자기 태어난 고향 베들레헴(에브라다)에서 찾은 모양이다. 그런데 그 법궤를 베들레헴이 아닌 나무밭에서 찾았다고 한다. 여기서 법궤를 찾은 나무밭이 바로 기랏여아림에 있는 숲을 뜻한다. 기랏여아림은 ‘바알레유다(삼하 6:2)’라고도 하는데 “숲의 성읍”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예루살렘 서쪽 13km에 위치하며, 지금의 ‘아부 고쉬(Abu Ghosh)’다.
시편 132편 저자는 법궤를 나무밭에서 찾았다고 했는데, 이 나무밭이 기랏여아림 숲지대임을 암시하고 있다. 특히 법궤가 있었던 곳은 기랏여아림, 아비나답의 집이다. 기랏여아림의 어원이 숲인 것과 아비나답의 집이 산(산림지)에 있으므로 다윗이 법궤를 찾은 ‘나무밭’과 장소적 의미가 부합한다.
법궤는 주전 1050년경 아벡 전투에서 블레셋에게 빼앗겼다. 이 당시는 엘리 제사장도 죽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떠난 상태다다. 사울 왕도 법궤를 찾거나 관심을 가진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의 법궤는 오랜 기간 블레셋의 신전과 그들이 사는 성읍을 배회하던 중 하나님이 재앙을 내리시므로 유다지파의 땅 벧세메스 마을로 옮겨졌다. 여기서도 마을 사람들이 법궤를 경솔하게 다루어 재앙을 당하자(삼상 6:9), 다시 찾은 장소가 기랏여아림 사람, 아비나답의 집이다.
법궤는 이비나답의 집에서 보관되어서는 재앙이 없이 장기간 안착한 상태로 있었다. 이런 법궤의 이동 경로와 과정을 보면 기랏여아림은 하나님이 법궤의 보관 장소를 스스로 선택하신 것으로 볼 수 있다. 실로를 떠난 궤가 아벡 전투장과 블레셋 성읍의 여기저기를 옮겨간 것은 사람들이 한 행위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이 그곳에 재앙을 내리므로 법궤가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기랏여아림 숲이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 옮긴 이후는 하나님이 그곳에 재앙을 내리지 않았다. 그래서 법궤가 있는 기랏여아림 숲지대는 하나님이 직접 선택하여 20년간 법궤를 두었던 곳이므로 ‘거룩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아비나답의 집은 산에 있어서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가 없는 곳이다. 법궤는 운반에도 고핫 자손이 메고 다녀야 했고(민 7:9) , 레위인이 절차를 따라서 궤에 접근할 수가 있다. 그런데 엘리 제사장이 후계자인 두 아들까지 죽어서 영적인 혼란기를 맞았고, 그래서 백성들은 법궤를 보자 호기심으로 들여다보고, 경솔하게 손을 대어서 화를 당한 것이다. 더구나 블레셋과의 전쟁 중이라 이스라엘 왕과 지도자들은 법궤를 찾을 겨를이 없어서 장기간 방치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다윗은 나라를 통일한 후 잃어버린 법궤를 수소문하여 찾았던 것이다. 법궤가 제 자리를 떠난 지 50년(또는 70년)이 넘었고, 기랏여아림 사람, 아바나답의 가정 집에서 20년간 있어서 장소를 잘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기랏여아림 부근 산지는 지금도 넓은 숲지대가 있다. 예루살렘 중심지에서 서쪽으로 약 13km 위치다. 행정구역상 예루살렘시에 속한다. 위성사진으로 보면 이 지역은 광대한 지역으로, 타지역보다 유달리 검게 나타난다. 그 이유는 숲지대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원래부터 숲지대이었으나 이스라엘에 패망한 이후 황무지가 되어 사람이 살지 않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1967년 6일 전쟁(3차 전쟁)으로 예루살렘을 되찾은 후 나무를 심어서 이곳이 다시 숲지대로 조성되었다. 이스라엘 산지는 대부분 강우량이 적고, 석회암 지대라서 빗물이 스며들기 때문에 나무가 자라지 못한다. 그래서 민둥산이 많은데, 이곳만은 예로부터 숲지대이었고, 지금도 조성된 숲이 있다. 그 숲지대는 위성사진으로도 확연하게 나타날 만큼 특이한 지역이다.
스가랴의 예언에도 장소와 시간은 특이점이 있다.
시간(초막절)이 예언되어 있다.
말하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싹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슥 6:12) 사람이 그 가운데에 살며 다시는 저주가 있지 아니하리니 예루살렘이 평안히 서리로다(슥 14:11)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이방 나라들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슥 14:16)
스가랴 선지자는 메시아에 대한 예언과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예언을 많이 하고 있다. 초림에 대한 예언은 스가랴서 3:8(순), 9:9(왕의 나귀 입성), 16:11~13(은 삼십) 등이다. 그리고 재림에 대한 예언은 6:12(전의 건축), 14장 전부(예루살렘의 회복)를 말하고 있다. 선지자가 본 예루살렘의 회복은 세상의 마지막 때를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거의 모두 그렇게 보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스가랴서의 14장의 예언을 좀 다르게 보고 있다. 우선 재림의 때와 마지막 때가 같은 시기인지, 다른 시기인지, 분명하지 않다. 이것은 전천년설과 후천년설, 그리고 무천년설로 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예수님 제자들도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면 그때가 세상의 마지막 때라고 생각하고 예수님께 질문한 적이 있다(마 24:3). 우리는 마지막 때를 제자들처럼 미래의 어느 한 시점에 촛점을 맞추려고 한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그때를 알지 못한다고 하였고, 그 대신 먼저 해야 할 것이 있다고 했었다. 먼저 해야 할 것이 복음을 전하는 것(24:14)과 청지기직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이다(24:45~51). 이것이 증인된 삶이다(행 1:8).
미래의 때를 예언한 스가랴서 해당 본문을 보면, 문자적 접근이지만,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가 나온다. 스가랴의 예언에서 시간은 초막절이며, 장소는 예루살렘이다.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이방 나라들 중에 남은 자가 초막절을 지키는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 회복으로 세계 열방들은 초막절을 지키게 된다. 이스라엘의 초막절이 세계의 명절이 되는 것이다.
초막절은 성경의 3대 절기 중 마지막 명절이다. 가을 추수를 마친 절기이고, 한 해를 결산하는 시기로 3대 명절의 종결적인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이것은 희년과 토지 무르기가 완성되고 맞는 명절이다. 3대 절기 중 두 절기는 정확하게 성취되었다. 그러나 초막절은 우리가 잘 모르고 있으며, 그래서 초막절은 미래에 있을 명절로 너무 쉽게 넘겨버린다.
그러나 다시 곱씹어보면 초막절은 지금 현재에 지켜야 할 절기이지 마지막 때에 지킬 절기가 아니다. 여기에 세상에 남은 자가 모두가 지키는 절기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이 지키는 부활절, 성령강림절, 그리고 성탄절처럼 신약시대에 지켜야 할 절기를 말한다.
장소(예루살렘)가 예언되어 있다.
그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쪽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산은 그 한 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슥 14:4) 그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슥 14:8)
그다음 장소로 예언된 예루살렘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이 예루살렘은 그 지역에서 큰 지각 변동이 일어날 것을 알리고 있다. 감람산이 한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서 남북으로 매우 큰 골짜기가 생기고, 산은 절반이 남북으로 이동하게 된다(슥 14:5). 그리고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을 서해로 흐르게 된다(슥 14:8). 성경에서 자연계에 대한 초자연적 변동을 말할 때는 상징적 또는 영적인 의미로 쓰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를 문자적으로만 보려는 것은 속단일 수 있다.
스가랴서 14:8에서 방향을 말하는 ‘동’과 ‘서’는 ‘앞’과 ‘뒤’를 뜻할 수도 있다. 그래서 킹제임스성경은 ‘앞쪽 바다’와 ‘뒤쪽 바다’라고 번역하였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바다는 남북이 될 수는 없고, 동해(사해) 또는 서해(지중해)가 될 것이므로 개역개정 성경은 그렇게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예루살렘에서 이처럼 큰 지각변동이 일어난다면, 그 이유는 지진(또는 화산 같은 천재지변)이 아닌 다른 것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때는 예루살렘 성전산(모리아산)에 들어서 있는 이슬람의 황금사원을 어떻게 하실지? 이것이 궁금하다. 황금사원은 무너진 성전 터 위에 이슬람이 주후 691년에 지은 것이다.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들어서서(마 24:15) 1,300년이 넘었다. 이곳은 지금도 세계 기독인 20억, 이슬람 18억(?),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보고 있다.
아마도 이 황금을 칠한 이슬람 사원은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대로 그곳에 큰 지각변동으로 무너지게 될 것 같다. 이 터와 사원은 세계의 3대 종교인들에게 명예와 자존심이 걸려있는 곳이다. 그래서 이 건물을 인위적으로 무너뜨리면, 그 파장과 후유증이 매우 크다. 그래서 황금사원은 지진으로 무너뜨려야 그나마 희생자 수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로 에스겔서 38장과 39장이 말하는 곡의 전투를 들 수가 있다. 이 곡의 전투에서 예루살렘을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큰 지진, 온역, 자연재해, 형제의 칼부림 등을 예고하고 있다(겔 38:19~22). 필자는 이 곡의 전투와 환란이 아직 성취되지 않았기에 미래에 있을 사건이라고 했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회복될 전투이므로 계시록 20:8에서 말하는 마지막 전투는 아니라고 보았다.
그런데 스갸랴 선지자는 이 예루살렘에서 지각변동이 일어나면, 감람산 ‘한가운데’가 나뉘어진다고 한다. 감람산이 남북과 동서로 갈라지고, 그 사이에 깊은 골짜기가 생긴다. 솟아난 생수는 절반이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른다, 이런 지역이 어디일까? 그 지역은 필자가 말하는 기랏여아림 숲지대다. 하나님은 여기를 이미 거룩한 곳을 인정하여 20년간 법궤를 보존시켜 오셨다(삼상 7:1). 지금도 하나님은 “여호와 삼마”로 거기에 계신다(겔 48:35).
문자적 풀이지만, 물이 동서로 나뉘어져 절반씩 흐르려면 기랏여아림, 이곳이라야 가능하다. 이곳보다 높은 감람산은 둘러 갈라셔서 골짜기 생겨야 한다. 에스겔서가 말하는 토지분배에서 걱룩한 땅은 이스라엘 12지파에게 분배될 토지의 중심부, 그리고 동서국경 정중앙이다(겔 48:8,10,21). 그러므로 에스겔서가 알려주는 거룩한 땅과 에스겔 성전은 스갸랴서에서 생수가 솟아나는 곳과 의미상 일치한다. 그곳 성전에서 흘러내리는 생수가 땅을 적시고 만물을 소성시킨다(겔 47:9).
에스겔 성전 곳곳이 벽과 구조물로 ‘에워싸이고, 둘러싸여서(샤비브, 사비브)’ 보호를 받듯이 성전부지가 있는 “거룩한 땅” 역시 남북의 12지파별 토지와 동서 양쪽의 왕의 토지로 ‘에워싸이고, 들러싸여서’ 보호를 받게 된다. 이것은 토지에 대한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는 희년법이 다시는 이방제도로 오염되지 않고, 그 실무적 실효성을 영구로 보존하기 위한 것이다.
물론, 이런 추정은 필자의 주관적 견해이므로 편견일 수 있다. 필자는 늘 검증 가능한 희년법으로 성경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검증이 어려운 미래에 대한 추정은 거의 하지 않는다. 또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보는 것도 늘 조심하고 있다. 그런데 희년법이나 에스겔 토지분배에 대해서는 누구도 연구를 한 분이 없다고 보기에 필자가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들여다보니 에스겔의 토지분배는 아직 성취되지 않은 부분이다. 그렇다고 경작을 전제로 하는 토지분배가 미래에 마지막 세상에서 있을 경제 현상도 아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관련된 내용들을 정리하다보니 거룩한 땅은 기랏여아림 숲지대라는 추정을 할 수밖에 없다.
또한, 에스겔서가 말하는 거룩한 땅은 남북이 12지파 중심부(7지파와 5지파 사이), 동서로는 동서국경 정중앙이라는 위치와 범위만 정해주고, 구체적 장소는 말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고하는 에스겔서 40장이 이후의 환상은 예루살렘을 포함한 지역 명칭은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
이것은 거룩한 땅에 대한 구체적 장소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공동체에 위임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회복되면 에스겔서의 말씀을 참고하여 정책적 판단으로 합리적인 장소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이런 경우 종교적, 정치적, 행정적 현실 여건을 감안할 때 현재의 기랏여아림 숲지대가 적합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 대신 현재 예루살렘 성전이 있던 성전산과 구도시(동예루살렘)와 입법, 사법, 행정의 중심지로 이스라엘의 수도 기능을 하는 신도시(서예루살렘)는 에스겔이 본 왕의 토지로 분배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거룩한 땅은 현재의 행정구역상 예루살렘에 속하는 서편 지역에 자리를 잡는 것이다. 이것은 기존의 예루살렘이 제3의 장소로 확장되어 새 예루살렘이 건설되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다윗왕이 개척한 다윗성, 지금의 구 예루살렘은 왕의 기업으로 남아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이곳은 예루살렘의 통치권이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이전되어 성취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왕의 토지를 정탐하는 다음 글에서 다룰 것이다.
** 거룩한 땅, 에스겔의 성전부지가 ㄱ. 현재의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산이 될 것인지, ㄴ. 13km 서쪽 숲지대(새 예루살렘)가 될 것인지, ㄷ. 아니면 에스겔 토지분배는 천상에서 하는 것으로 지상에서는 없다고 보는 것인지에 대하여 의견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