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7월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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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5년 - 교황 요한 5세, 82대 로마 교황으로 취임. 🌲 1691년 - 교황 인노첸시오 12세, 242대 로마 교황 취임. 🌲 1730년 - 교황 클레멘스 12세, 246대 로마 교황 취임. |
🌲1762년 7월12일..28살(사도세자의 죽음-임오화변) 1762년 윤 5월 13일 영조는 세자에게 왕비 정성왕후의 위패를 모셔놓은 혼전인 휘령전(문정전)에 예를 행하도록 했으나 세자가 병을 일컬으면서 오지 않았다.
영조가 다시 행례하기를 재촉하여, 세자가 뜰 가운데서 사배례를 마치자 “여러 신하들 역시 신(神)의 말을 들었는가? 정성왕후께서 나에게 이르기를, ‘변란이 호흡 사이에 달려 있다.’고 하였다.” 하며 세자에게 자결을 명했다.
세자가 자결하려 했으나 춘방(春坊)의 여러 신하들이 말렸다. 이어서 영조는 사도세자를 서인으로 폐하고 뒤주에 가두었다.
윤 5월 21일 뙤약볕 아래에 갇혀 있던 세자는 8일 만에 세상을 등지니, 나이 28세다. 이 해가 임오년이라 이 일을 ‘임오화변(壬午禍變)’이라고 한다. | |
🌲 1806년 - 나폴레옹, 라인 동맹 창설. 🌲1906년 일본 경찰, 경운궁의 경비권을 강취(경위원 폐지) 🌲 1907년 - 이토 히로부미, 대한 강경책 훈령. 🌲1908년 황해 송화에서 의병 150명, 왜병과 접전 🌲1909년 사법 및 감옥업무 위탁에 관한 기유각서 조인 (10월 법부 폐지) 기유각서 조인 : 사법과 감옥 사무를 일본에 위탁. 🌲1922년 독립운동가 김영란(1894-1922) 사형 당함 🌲1925년 남한 일대에 대홍수, 697명이 죽거나 다침, 가옥피해 5만9942호 🌲1931년 만보산 사건 발생(만주 水田개간공사로 한ㆍ중 농민 충돌, 중국인에 대한 보복습격사건 ) 1933년 - 미국 의회가 미국에 첫 번째 연방 최저 임금 법을 통과시키다. 🌲1946년 제1회 여자경찰관 졸업 |
🌲1948년 대한민국 헌법 국회 통과 제헌국회, 대통령 중심제 헌법 의결 17일 국회의장이 서명하여 공포
1948년 - 7월12일..제헌국회, 헌법 제정 | 1948년 오늘! 제헌국회는 대통령책임제와 국회 단원제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대한민국 헌법을 제정했다.
제헌헌법은 일본 헌법과 바이마르 헌법을 모방해 3권 분립을 규정하고 대통령은 국회에서 선출하도록 했다.
또 미국식 대통령제에 의원내각제적 요소를 가미하고 지방자치를 규정했다.
두 달 전 5.10 총선거로 성립된 제헌국회는 헌법기초위원회를 구성해 국회 양원제와 의원내각제를 채택했다.
그러나 이승만의 강력한 주장으로 대통령책임제와 국회 단원제로 수정된 것이다.
이에 대한 반대 의견도 많았지만 같은 해 8월 15일까지 국내외에 독립을 선포해야 하는 다급한 상황에 쫓겨 1948년 오늘 국회에서 첫 헌법이 통과됐다. 제헌헌법은 닷새 뒤인 7월 17일 공포됐다 |
🌲1950년 대전 협정 체결 : 주한 미군의 범죄 재판권과 국군 통수권을 미군에 이양. 🌲1953년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 및 휴전협정 합의 등 발표 🌲1961년 남원,영주지방수해(이재민 15,000.사망119) 🌲1970년 주한미군의 관할권에 관한 협정(대전협정) 체결 🌲1971년 제4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국방각료회담 개칭) 개최(서울) 🌲1975년 - 상투메 프린시페가 포르투갈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다. 🌲1979년 - 키리바시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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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7월12일 차범근, 서독 축구팀 프랑크푸르트팀 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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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계엄사, 신부등 카톨릭계 인사 7명을 광주사태 유언비어유포 혐의로 연행 🌲1980년 계엄사 합수부, 김대중 등 9명 내란음모 및 국가보안법 위반혐의 구속 🌲1982년 모스크바 하계 올림픽 개최 - 제22회 하계 올림픽 모스크바, 서방 60여 개국 불참. 🌲1982년 대한체육회, 새 회장에 정주영 현대 그룹 회장 선임 🌲1982년 한국과 호주 양국, 조세의 2중과세 및 탈세 방지협약에 서명 |
🌲1982년 제12회 스페인 월드컵 우승국 : 이탈리아 준우승국 : 독일(서독) 아디다스 골든슈 수상 : 파울로 로시(이탈리아) 6골 아디다스 골든볼 수상 : 파울로 로시(이탈리아) - (관련 : 미셀 플라티니) | |
🌲1984년 육군 소속 헬리콥터, 충북 영동군에서 추락. 김홍한 대장 등 5명 순직 🌲1985년 신민당, 국회 단독소집 요구서 제출 🌲1986년 정부, 제1차 산업합리화 업종 지정 🌲1988년 포항제철 광양제철소 제2기설비 준공 🌲1989년 안기부 한겨레신문사 수색, 서경원의원 북한 사진 21점 등 압수. 농성기자 50여명 경찰과 몸싸움 🌲1989년 전교조파문 확산. 교사 2870명 단식수업, 20개교 학생 수업 거부 🌲1990년 민자당, 평민당이 불참한 가운데 국회 5공 특위를 열고 활동보고서를 채택 🌲1990년 남북고위급회담 2차실무대표, 1차본회담을 9월 서울서, 2차본회담을 10월중순 평양서 개최 키로 합의 🌲1990년 문화방송(MBC) 노조는 국회에서의 방송관계법 변칙 처리에 항의, 제작거부 결정 🌲1991년 경찰,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서울시내 20개 대학의 시국관련 수배자등 200여명 순화대상으로 선정 🌲1993년 이회창 감사원장,'UH60 중형헬기구입시 6237만 달러를 더 지불 고가로 도입했다'율곡사업특감 밝혀 🌲1993년 개정된 공직자 윤리법에 따라 3만 3000여명 공직자들의 재산등록 시작. 김영삼대통령 첫 등록. 🌲1993년 서울지검, 교육부와 감사원이 발표한 대학 부정 입학 관련자 105명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 🌲1996년 한국ㆍ아르헨티나, 양국간 정기노선개설을 위한 법적 기반인 항공협정에 가서명 |
🌲1998년 7월 12일, 강원도 동해시 해안에서 북한 무장간첩 시신 1구와 침투용 수중추진기 발견 1998년은 유달리 북한 무장공작원의 침투가 빈번히 일어난 해였다. 속초 유고급 잠수정 사건, 동해안 무장간첩 사체 발견사건, 여수 반잠수정 격침사건이 그것이다. 이 사건이 발생한 1998년 7월 12일, 이미 6월 22일 북한 잠수함의 속초 인근 해상침투로 강원도를 넘어 전국이 떠들썩했던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다시 발견된 북한 무장간첩의 사체는 전 국민에게 충격을 안겨주기 충분하였다. 1998년 7월 12일 아침 9시 20분.. 강원도 동해시. 인근 주민 이장수씨는 아침 바람을 맞으며 동해시 어달동 해안가를 걷고 있었다. 당시 이씨는 동양시멘트의 전산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업체 콤텍시스템 소속의 직원으로 현지에 파견을 나와 있었고, 아침마다 자주 바닷가를 거닐곤 했다. 그날도 아침바다를 걷고 있던 이씨는, 해안가에 이상한 쌍열 산소통이 놓여있는 것을 보고 가까이 다가갔다.
그런데, 산소통 근처에는 잠수복 차림에 두건을 쓰고, 오리발과 산소통을 맨 채 떠밀려온 사람 한 명이 엎드린 채로 발견되었고 사람의 배낭에서 기관총과 수류탄을 발견하고 경악한 이씨는, 잠수복과 산소통을 매고 체코제 기관총과 사각 수류탄으로 무장한 이 이상한 시체를 동해경찰서 묵호파출소에 신고한다.
시신에서 무기와 공작장비와 같은 이상한 물건들이 발견되자 경찰은 이를 간첩의 침투로 규정하고 상부에 보고하는 한편 인근 군부대에도 협조를 요구했다. 이날 발견된 시신은 신장 1백68㎝ 가량으로 잠수복 차림에 몸에 쌍열산소통, 수경, 빨대, 모래색 점퍼, 초콜릿 1개, 미싯가루 1봉지 등을 소지하고 있었으며 체코제 기관단총 1정과 실탄이 든 탄창 2개, 사각 수류탄 1발, 단검1개, 수중 송수신기 1개 등이 든 청색가방을 휴대하고 있었다. | 시체가 발견된 동해시 부근 해역에서 발견된 수중추진기.
군 당국은 발견 당시 시신의 입 속에 응고되지 않은 피가 묻어 있었으며 산소통에서 공기가 새어 나오고 있는 상태였던 점으로 미뤄 숨진 지 24-48시간이 지난 것으로 추정했다.
경찰의 지원 요청을 받고 출동한 육해군은 고속정, 경비정, 호위함, 소뢰함등 함정과 링스헬기와 P-3C대잠초계기 등 항공기를 동원하여 수색에 나섰고, 낮 12시경 인근 해상에서 시체가 발견된 장소에서 70m쯤 떨어진 바다에서 해안침투용 수중추진기(모터) 한 대를 노획하였다.
길이 157cm, 폭 33cm, 무게 66kg인 알루미늄 합금제의 추진체는 스크류가 달려 괴뢰군의 공작선이나 잠수정이 공작원을 해안에 침투시킬 때 사용하는 장비로 손잡이의 개수로 보아 4인승 내지 5인승으로 보였다.
이들 무장공비들은 산소호흡기를 착용한 상태에서 빨대를 수면위로 올린 스노클링 상태로 항해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공비의 사체를 부검한 군은 피부가 흐물흐물하지 않고 탄력이 남아있으며 입 내부의 혈액이 응고되지 않았고, 또한 사체에서 외상의 흔적이 없으며 매고 있던 산소통에서 계속 공기가 뿜어져 나오는 데다 유사시 버려야 할 유류품들을 그대로 휴대하고 있다는 상황으로 보아 공비가 수중 20~30미터 지점에서 해안에 접근하다 상륙을 위해 급상승하던 도중 수압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사망하였을 것으로 판단했다.
문제는, 남은 무장공비들의 수와 행방이었다. 노획한 추진기는 3인승 내지 5인승인 점에서 침투를 시도한 인원은 적어도 3명 이상이었고, 쌍열산소통에 3개의 호흡기가 부착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무장공비의 수는 변사체 외에도 2명 정도가 더 침투했을 가능성이 컸다.
한편 경찰은 수상쩍은 신고 두 건을 접수했다. 사건발생 하루 전인 7월 11일 오후 7시 30분. 동해시 전곡동 철길 부근에서 등산복 차림의 남자 2명이 나타났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이진규 씨가 무장간첩의 사체를 신고하기 전인 새벽 6시, 시커먼 복장의 남자 1명이 해안가에 쓰러져 있고 주변에 군복 차림의 남자 2명이 있었다는 주민의 신고 역시 접수되었다.
이에 군경은 동해안에 떠밀려온 변사체 외에 2명 내지 4명의 무장공비가 더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강원도 동해시와 강릉시 옥게면, 강동면 등 일대 해안과 내륙지역에 9시부터 새벽4시까지 야간통금을 실시하고, 대간첩 작전 1급인 진돗개 하나를 발령하였다.
군당국은 지역주민들이 생계에 지장을 받는 등 불편이 적지 않고, 군 또한 병력을 소모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해군 1함대 사령관과 육군 68사단장, 그리고 102여단장을 보직 해임하고 해군 작전사령관과 육군 8군단장도 지휘책임을 물어 엄중 경고 조치하는 것으로 7월 18일자로 대규모 수색작전을 일단락 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