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질문 : “앎”을 할 때 너무 막연해서 “앎” “앎” “앎”하고 되풀이하니 고요함이 깨집니다.
답변 : “앎”을 알아차릴 때 주문을 외우듯이 “앎” “앎” “앎”을 하지 말고 집중해서 “앎”을 알아차리도록 해야 한다.
< 참고 >
“앎”은 마음이 몸이 아닌 마음을 대상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입니다. 몸의 느낌이 사라지고 호흡도 사라지고 나면 몸에서 더 이상 알아차릴 것이 없는 상태가 옵니다. 이때 마음이 마음을 대상으로 알아차리는 것을 “앎”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수행을 열심히 하면 이 단계까지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앎”의 단계에서 헤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머리에 상기가 오거나 다른 이상한 현상을 보고 특별한 능력 쪽으로 빠질 수 있습니다.
누구도 평소에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갑자기 “앎”을 한다는 것이 너무 막연합니다. 그래서 병을 얻을 수도 있고 수행을 포기할 수도 있고 이상한 방향으로 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수행은 지도자의 가르침이 없으면 안 됩니다. 바른 가르침을 받아도 벗어나기 마련인데 하물며 가르침 없이 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기까지 합니다.
평소에 마음을 알아차려본 적이 없는 수행자는 “앎”을 한 단계에서 염불을 외우듯이 “앎” “앎”을 할 수 있습니다. 이때 명칭을 붙여서 “앎”을 할 수는 있지만 염불을 외듯이 하면 고요함이 깨집니다. “앎”이란 알아차리는 마음이 고요한 마음을 대상으로 알아차리는 상태라서 고요함이 깨지면 안 됩니다. 원래 집중이란 고요한 마음이 한 곳에 머무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고요함에서 지혜가 납니다. 그러므로 “앎”이란 명칭을 사용하더라도 이따금씩 하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집중이 된 상태를 지속시킬 수 있으면 명칭을 붙이지 않고 고요함을 대상으로 알아차려도 좋습니다. 마음은 비 물질이라서 형체가 없어 주제로 사용하기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요함을 아는 것으로 “앎”을 유지해도 좋습니다. 그러면 마음이 혼란하지 않고 안정이 된 상태에서 수행을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