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기 18
류인혜
* 소렌토와 나폴리
여행 안내서에 있는 대로 순서가 아니라 가이드의 말에 따라서 가는 일정이라 가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것은 파리에서와 마찬가지 현상이다. 카프리섬으로 가는 옵션이 성립되지 않아서 가이드의 수입이 줄어든 모양이다. 실망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러나 평균연령이 높은 일행들에게 경치는 좋지만, 그곳을 보기 위해서 배를 타고, 기차를 타는 일정이라고 겁을 주었으니 포기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이드는 즐거운 여행을 강조했으나 우리는 피곤한 일정을 떠올렸다. 서로 간에 교통이 원활하지 못했다.
또 한 사람당 105유로를 내어야 한다니 옵션에 대비가 없는, 해외여행의 관례에 무지한 이 사람은 정말 포기다. 떠나기 전에 이러이러한 옵션이 예상된다고 했으면 마음의 준비라도 했지. 그곳까지 가서 카프리를 보지 않았다는 자체가 희극이다. 그 아름다운 섬을 옆에까지 가서 포기해야 한다니 자다가도 웃을 일이다. 파리에서 노트르담 성당을 보지 못할 때부터 이미 예견된 비극이다.
오래전 큰아이 유치원 소풍 때, 용인민속촌 앞까지 가서 입장료가 없어서 버스 안에서 일행이 올 때까지 기다렸던 사건이 떠올랐다. 그 더운 날에 나는 겨울 신발을 신고 있었던 상황이었으니, 누구에게 입장료를 빌려달라고 할 염치도 없었다.
어쩌거나 표정이 험악해진 가이드를 따라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버스에 올랐다. 달리는 길 오른편에는 바다이다. 이탈리아 지형에서 장화의 앞쪽에 있는 나폴리의 바다는 지중해다. 마음을 진정한 가이드가 설명을 시작했다. 바다에는 해초가 자라나지 않아서 다른 생명도 많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그곳 바다는 우리나라와 같이 특유의 비린내가 없단다. 바닷가에 가면 풍기는 이상한 냄새가 없다니~!
버스는 긴 터널을 지나서 멀리 나폴리 항을 전망으로 보면서 산 중턱을 달려간다. 그런데 갑자기 정차했다. 어제의 비로 산에서 내려온 것들이 길을 막고 있다고 한다. 조금 전 가이드는 우리와 약속을 했다. 어느 지점에서 눈을 감고 있다가 뜨라고 하면, 번쩍 뜨세요! 라고 강조했다. 눈을 뜨는 그 순간 만나는 바다의 산호 색깔이 아주 환상적이라는데 길이 막혀서 그 이벤트가 사라졌다. 나폴리는 우리를 재미없이 맞이한다.
길이 뚫리기를 기다리다가 너무 오래 지체되는 듯해서 내려서 걸었다. 우리가 줄을 서서 걷는 모습을 보고 다른 버스 속의 관광객들이 웃는다. 지긋하게 기다리지 못하는 마음이 급한 한국 사람들의 성질을 제대로 보여준 것이다.
전망대인 길에서 조금 들어간 곳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차들이 움직인다. 지나가는 차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잠시 후 우리가 타고 왔던 버스가 다가와서 다들 뒤 차를 세워두고 얼른 올랐다.
길옆에는 올리브 나무가 초록색의 작은 열매를 달고 있다. 익은 것은 검은색이다. 그곳 사람들은 산등성이의 가파른 곳에 집을 지어놓고 올리브를 키우며 살고 있다. 그물을 쳐 놓아서 나중에 그물을 걷어서 수확한다. 그곳의 특산물이라고 했다. 올리브 열매가 나무에 달린 것은 처음 보기에 사진을 찍었다.
멀리 보이는 곳이 소렌토 항구라고 한다. 아하! 이것이 일정에 들어있던 ‘환상적인 소렌토 드라이브 투어’라는 것이로구나, 비로소 깨달았다. 소렌토까지는 못 가고, 가던 길을 되돌아 나와서 나폴리 시내로 들어갔다. 나폴리 항구 근처에 있는 오래된 건물 옆을 지나갈 때 접촉사고가 일어났다.
상대 차의 운전사 이탈리아 청년이 손짓 몸짓으로 거칠게 항의를 한다. 우리 버스의 운전사 아저씨와 둘이서 아주 빠른 말로 정신없이 지껄인다. 상대방의 대답도 듣지 않고 제각기 떠들고 있다. 도둑과 사기꾼이 많다는 선입견이 있기에 우리는 일부러 그랬다고 결론을 내고 그 청년을 나쁜 놈으로 몰았다.
지나가던 경찰이 와서 보고 교통담당 경찰관에게 연락을 해주었다. 운전사인 아저씨가 딱하게 여겨졌다. 한참 후에 경찰이 와서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라고 해서 바닷가의 광장으로 옮겼다. 사고현장에서는 교통 체증을 유발하니 넓은 곳으로 가서 잘잘못을 따지는가 보다.
그들이 해결하는 동안 우리는 바닷가에 가서 사진을 찍었다. 큰나무가 우거져 있다. 가로수가 멋있는 길이다. ‘창공에 빛난 별~’ 이라고 시작하는 노래인 ‘산타루치아’를 부른 곳이라 하였다. 아니 그곳이 산타루치아 해변이다. 도시 바로 곁에 바다가 물결을 철석이고 있다. 아무나 언제든지 달려와서 소리를 지르면 속이 후련해 질 듯하다. 조금 떨어진 곳에 달걀 성이 보이고, 근처에 박물관이 있다. 바다를 등지고 돌아서서 도시를 바라보니 길 건너편 멀리 산 위에 보이는 건물이 박물관이라고 하여 사진을 찍었다.
돌아오니 운전사의 얼굴이 밝다. 서로의 과실을 인정하고 보험회사에서 처리해 준다고 했다. 이탈리아 청년은 여자 친구와 얼싸안고 차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다른 사람들도 와서 거들고 있다. 여자 경찰관은 무표정한 얼굴로 일을 처리하고 간다.
나폴리는 옛날 유적에 의지하는 관광 산업을 포기하고 현대적인 도시로 다듬어졌다고 한다. 지금까지 보던 도시와는 달리 새로운 건물이 많다. 나폴리는 네오 폴리스라는 말에서 유래되었고, 날씨가 온화하고 좋아서 사람들이 게을러지는 조건이라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 낙천적인 그곳 사람들은 출근하다가도 좋은 날씨이면 소풍을 가버린단다. 그러니 열심히 일을 시키는 우리나라 기업인 LG가 들어와서 망하고 나갔단다. 가장 오래된 건물인 누오보 궁은 지금도 시의회 부속 건물로 쓰이고 있다. 그 근처가 나폴리가 시작된 곳이라 했다.
접촉사고가 나고 차도 밀리고 로마에 되돌아온 것은 예정 시간보다 많이 늦었다. 예약된 식당에 다른 손님들 50명이 와서 이미 진을 치고 있기에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서 길가를 서성이며 그들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어제저녁에 왔던 비원이다. 순두부와 오징어무침, 불고기가 메뉴이다.
주 선생님과 김병권 선생 내외분이랑 함께 앉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호가 비슷한 사람끼리 팀이 나누어진다. 남는 반찬이 많아서 밥을 더 주문해서 먹었다. 이제 그동안 타고 다녔던 버스와는 이별이란다. 기사 아저씨도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며 싱글벙글거린다. 호텔로 돌아와서 헤어질 때 섭섭하여 약간의 팁을 주었다. 새로 산 물건이 많아져 가방을 정리하느라고 시간을 많이 보냈다.
* 나폴리에서 보내는 편지-산타루치아 해변의 비안개
아름다운 항구인 소렌토, 나폴리를 지나며 이렇게 버스로 지나치며 보기에는 너무 아쉽다는 생각을 내내 했습니다. 이 도시들은 학교에서 배운 많은 노래로 친숙한 곳입니다. 우리가 노래를 배우며 미지의 도시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호기심을 함께 키워왔는지요. 힘차고 경쾌한 그 노래들과 함께 선입견으로 입력이 된 이곳에 대한 첫 느낌도 그렇게 되길 원하였습니다. 그러나 문 앞에서 서성이며 안을 기웃거리기만 한 듯 섭섭합니다.
이번 여행의 전반적인 감상이 되겠지만 유럽을 이런 식으로 더듬듯이 본다는 것은 안보기보다 못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왜냐면 방문하는 도시에 대한 얻어들은 지식을 소화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정리하기에는 머무는 시간이 너무 짧습니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엄청난 것을 지닌 곳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주입된 선입견을 그대로 두고 도시를 스치듯 바라보는 인상을 덧붙인다는 것은 남의 것도 내 것도 아닌 이상한 모습으로 머리에 남을 것 같은 두려움도 있습니다.
생각하던 곳과는 이렇게 다르다는 것을 인식도 하기 전에 흐릿한 전경으로 도시는 지나가 버립니다. 바닷물은 너무 푸르러서 탄성을 자아내지만, 마음은 푸르지 않습니다. 산타루치아 해변의 풍경이 아름다워 마음에 들어옵니다. 그곳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비는 개었지만, 해변에는 아직도 남아있는 비안개로 아련한 기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나그네의 마음도 그렇게 눅눅히 젖어 있습니다.
어찌 되었건 나폴리를 보았다는 점에서 속된말로 이제는 죽어도 한이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카프리에 가보지 못했다는 것은 다시 올 수도 있다는 희망을 남겨두는 것이라고 위로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유럽 땅을 밟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가 막힌 축복이라고 기뻐하고서는 날이 갈수록 욕심이 생겨서 여행이 끝날 무렵이 되니 이것이 아닌데, 불평하고 있습니다. 평생에 비행기를 못 타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호강에 겨운가 봅니다. 이제 다시 로마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