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 세계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상황이 본디 있었다. 보이는 세계 천재 권위자 아인슈타인은 추앙받을 업적으로 존경받았다. 그러나 후배 물리학자의 양자역학 이론을 도저히 수긍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물질 기준으로 계산이 보이지 않는 힘인 양자역학 세상이 오는 세계 바뀜을 믿지 않은 것 같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미시 세계라 한다. 혹은 반물질 세계 또는 암흑세계라고도 한다. 반대적인 현상 세계 설명 계산 방법도 달랐다.
양자역학 계산은 십진법 수학 정수로는 계산할 수 없다. 물질이 아닌 작용 때문에 확률 계산밖에 다른 공통 수리 방법이 없다. 그래서 아인슈타인과 슈레딩거나 보어와 하르젠베르크 논쟁이 풀리지 않았다. 우주의 보이는 상태만 계산하다 물질이 아닌 힘 작용 즉 공간 작용 때문이다. 우주는 빈 곳이 물질보다 먼저 점령되어 보이는 상황이었다.
지구 화산 분출을 보면 거대한 몸집 때문이다. 뜨거운 분출 열기는 견디다가 참을 수 없어 터트리는 몸부림이다. 지구가 주먹만 하게 작았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우주나 인간이나 마찬가지 욕망 에너지가 지나치면 그게 사고다. 공간에서 미세 물질로 생겨나면 물질을 없애려는 반대 작용도 함께 나타난다. 없는 것과 있는 것의 끊임없는 투쟁이 생기게 마련이다. 바로 이것이 존재와 부존재의 투쟁이다. 쿼크처럼 보이지 않는 물체에서 미세 먼지의 극소 물질이 서로 다투면 우주의 질서가 바뀐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는 조용하고 평화롭다. 이것을 석가모니는 공으로 설명했다. 근대 과학자들이 공간을 밝히는 과정에 에너지라는 힘을 발견하면서 현재까지 사용한 수학 계산을 외면하게 되었다. 공간은 십진법 숫자 계산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확률 계산의 양자역학 필요성이 대두한다. 공간의 계산에 아무리 많은 숫자라도 0을 곱해서 얻어지는 수가 없다. 0에 무한대 숫자를 곱해도 답은 0이다. 공간은 0과 같은 영역이므로 십진법 수학 계산이 불가능하다.
십진법 계산을 역으로 바꾸면 블랙홀이 나타나는 이치다. 물체의 속도를 광속 이상으로 가속하면 쿼크보다 더 극소 형태를 부르게 한다. 바로 블랙홀 현상이 나타나는 상태다. 지구의 자전 속도를 광속 이상으로 바꾸면 블랙홀로 지구가 사라지기 마련이다. 욕망의 광속을 넘기는 속도는 인류의 말도 안 될 지나친 행위가 부르는 위험한 생각이다. 존재가 없어지는 상황이다. 사랑할 수 없는 원수를 그냥 두고 보지 못하면 핵무기도 터뜨리고 싶어진다. 인간의 감정도 물질이 아닌 공간의 에너지처럼 작용이다.
쿼크에서 미세먼지로 더 크게 키워 별들로 생겨나도 다시 쿼크 이전의 상태가 그리워서 되돌아가려는 작용이다. 거기는 공간이고 모든 물질의 형체 없는 고향이다. 지구에 사는 사람도 지식을 남용하면 새로운 무기를 만들어 멸종하는 이치와 같다. 지금 활화산을 보면 현상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하는 상태의 극치로 볼 수 있다. 그렇게도 갈망해 온 에너지가 멸종 시간을 부르는 일로 발전한다. 물질이라는 자체 욕망 때문이다.
우주는 공간과 물질이 함께하는 영역으로 계산의 복합성이 필요하다. 인류도 욕망을 참지 못해 새로운 무기 개발 욕망도 한몫한다. 지구의 활화산 상태 욕망 에너지처럼 참지 못하는 버릇과 흡사한 노력이다. 결과를 공간으로 돌아가기 위한 몸부림으로 인위적으로 만드는 블랙홀이다. 충만 에너지로 커지면 참지 못하는 인간이다. 스스로 만든 블랙홀로 자기 살을 굽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글 : 박용 20260516 태허의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