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레네 강변의 초저녁 풍경
2024. 4. 19.
시편 42장~50장까지!
(시편 42,12)
내 영혼아, 어찌하여
녹아내리며 어찌하여
내 안에서 신음하느냐?
하느님께 바라라.
묵상ㅡ
내면의 어둠이 온 영혼을
휩싸고, 앞이 보이지않는
막막한 상태가 되면,
심정이 녹아내리면서
홀로 신음하게 된다.
누군가 나를 힘들게
하거나 변하지 않는
상대에게 화가 났을 때,
처음엔 달아오르는 얼굴과
분노한 목소리로
따다다닥~~~
원망의 잔소리 섞어
쏟아내보지만,
상대는 오히려 더
화를 내거나 도망가는
것으로 대화의 종지부를
찍어버린다. 단절된
상태가 되면 그땐 혼자서
자기 안에 갇혀서
숨쉴때마다 신음을
막 토해내게 된다.
그럼 그때 주님께서는
너 참 혼자 애쓴다.
감정도 하나 통제하지
못하는것이 딥따
성숙한 척, 괜찮은 적,
초연한 척 한다만,
내 보기엔 아슬아슬,
불쌍하기 짝이 없구나.
얼른 하느님께 바라라.
하느님께 바란다는 것?
다윗처럼 자기 약함을
제대로 알고 온갖
감정들, 즉 분노 두려움
불안 걱정근심 슬픔
억울함 우울, 적대감
등등 그것들을 신음에
섞어서 다 표현해야
한다는 거다.
이를테면, 이렇게 말이다.
(시편 60,4)
당신께서 땅을
뒤흔드시어
갈라놓으셨습니다.
그 갈라진 틈들을
메워 주소서. 흔들립니다.
여기서 또 감탄감동.
내 심정이 지금 갈라진
땅처럼 피폐해져서
흔들립니다. 제가
막 흔들린다구요.
그걸 메워주시어
덜 흔들리도록
붙잡아 주셔야 제가
살지 않겠습니까.
라고 아주 솔직히
시인하면서 하느님께
바라는것, 그 상태말이다.
창세기에 등장했던
누군가랑 비슷한것
같지 않나.
모험적이고 강인했지만
형 에사오 앞에만 서면
작아졌던 야곱도 그랬다.
타지에서 성공하고 가족과
종들과 재산을 싸들고
금의환양 하는 길에서 자신의
발목을 잡는 아킬레스건,
형에 대한 두려움때문에
신음하기에 이른다.
야곱은 그때 상의하거나
의존할 사람도 없었거니와,
사람이 사람을 구원할수
없다는 자각을 이미 했겠지 싶다.
하느님께 바라라.
야곱은 얼른 자기에게
갇힌 본성을 열어젖히고
하느님의 환도뼈를 붙잡고
밤새도록, 살려달라고
기도했다. 형이 너무
무섭습니다. 두렵습니다.
제 온 심연이 흔들립니다.
하여 야곱은 용기를 얻고
형 에사오에게 다가가
화해를 하는 기적을
체험할수 있었다.
하느님께만 바랐던
야곱은 비로소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뼈속까지 새기는
구원의 계기로 삼은 거다.
(시편 46,11~12)
“너희는 멈추고 내가
하느님임을 알아라.
나는 민족들 위에
드높이 있노라, 세상
위에 드높이 있노라!”
만군의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며 야곱의
하느님께서 우리의 산성이시네.
야곱과 다윗처럼
멈추어 서서 자신의
약함과 어두운 내면의
본성들을 스스로 직면하고
그것을 부끄러워하거나
강한 척 포장하지 말고,
적나라하게 드러내야
한다는 것,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바람막이가 되어주시고
산성이 되어준거다.
정말 개멋진 남자들이다.
(시편 45,11)
들어라, 딸아, 보고
네 귀를 기울여라.
네 백성과 네 아버지
집안을 잊어버려라.
주님의 딸들인 우리도
다윗과 야곱처럼 자신의
어두운면과 상처들을
다 열어보이면서,
'하느님께 바라라'고
하신 말씀을 깔축없이
지켜보면 어떨까.
내 구원과 치유가
우선이고, 내코가
석자라서 노력해도
안되는 내 악습이
드글드글 많은데도
알콜중독자 아빠만
쳐다보고, 또 남편의
허물에만 꽂혀서
혼자 신음하고 있다면,
어서 정신차려서
아니지, 사람이 사람을
구원할수 없는 법,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어떻게 된다?
같이 구렁에 빠지잖아.
그러니 오직,
하느님께만 바라라!!!!
왜 그래야만 하는지,
아래 구절에 정답이
있을듯 하다.
'임금님이 너의 아름다움을
열망하시리니 그분께서
너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그분 앞에 엎드려라.
(시편 45,12)
나는 엉뚱한 사람만
쳐다보면서 내 구원의
기회를 놓치고 있는데,
주님께서는 나만 보시며
나의 아름다움을
열망하시니, 내 주인이
되어주시어 사람만들어
주시려고 안달이
나셨는데, 이런 걸 두고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장사라고
하는것 같으다.
하느님께만 바래야쓰겄다.
다윗처럼 하느님앞에
멈추어서, 혼자 신음하지 말고
하느님께 먼저 토해내고
조절하는 시간을 갖는것,
누군가를 흉보고 욕을 하더라도
하느님앞에서 말이다.
오죽하면 내 아버지 집안을
잊어버리라고 하셨겠냐고.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에만
집중하고 나머지는 봉헌하고
가지치기를 하라는 거겠다.
이왕이면 남는장사를
해야지 왜 안 그렇겠나.
내가 뭐라고, 나밖에
없다시며 나의 주인이
되시기를 애타게 바라시는
주님께, 저 여깄어요 주님!
하고 나아가 엎드려야 할지어다.
주님, 그러기를 천만번
바라오니, 부디 도우소서.
첫댓글 묵상글 잘 읽고 갑니다.
묵상글 공감합니다
박지현 요셉피나님
묵상 글 넘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