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1에서 보는 것처럼 2세대 이상의 대가족은 한 구역에 모여 살았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결혼하지 않은
자녀들은 소가족으로, 일반적으로 3-5명 이상의 자녀를 낳았지만 살아남은 아이들은 소수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의 여자는 아직
10대였을 때 결혼하는 데 반해 남자는 20대 심지어 30대 초반에도 결혼하였다. 결혼은 곧 아이를 낳고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것으로, 결혼 첫해에는 자녀 생산을 위해 군복무에서 제해질 수 있었다(신 24:5). 이스라엘은 “생육하고 번성하라”(창
1:28)는 명령을 고대는 물론 현대까지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는 민족이다. 이삭의 예로 봤을 때 남자가 그의 신부를 아버지의 가족
안에 데리고 와 거주함으로 가족의 구성원이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구성된 소가족은 한집에서 생활하였다. 고고학적
자료들에 의하면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땅에 정착하면서 독특한 소가족용 가옥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이 가옥의 형태를 보통 “Four Room House-4방 가옥”이라 부른다. 이 가옥은 이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평면도로 봤을 때 방이 4개 있는 집을 말한다(그림2,3). 돌로 만든 기둥들이 이열로 서 있어 세로로 공간을 셋으로 나눈 뒤
건물의 뒤쪽에는 가로로 긴 방이 있어 4개의 방이 되는 것이다. 그림 2에서 보듯이 중앙의 방은 땅을 밟아 고르게 다진 우리의
마당과 유사한데 맷돌과 가사용 도구들 그리고 화덕이나 불을 피우던 구멍들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이곳에서는 주로 음식을 준비하거나
집안의 온기를 위해 불을 피웠던 것으로 보인다. 세로로 놓인 측면 방들은 바닥이 자갈이나 판석으로 포장된 경우가 많았고 기둥들
사이에는 동물들을 먹일 수 있는 구유가 놓여 있었다. 1층의 측면의 방들은 가축의 우리로 사용되었다. 동물들을 먹일 수 있도록
구유가 기둥들 사이에 놓여 있었고 기둥들은 지붕이나 2층을 떠받드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함과 동시에 방들을 나누는 구실도 하고
있었다.
1
층이 동물의 거주와 저장의 구실을 한 장소라면 2층은 사람들이 생활했던 공간이었다. 사람들은 2층에서 먹고 잤다. 이 2층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1층에서 나무로 만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거나 중앙의 기둥에 층계를 대어 사용하기도 했다. 밖에서 층계를 이용해
올라가도록 되어 있었던 구조도 발견된 바 있다(그림 4). 2층 전체는 지붕으로 덮여 있었다. 한국어 성경은 이 2층을
“다락”으로 번역한 바 있다. 그러나 한옥에 익숙한 우리에게 “다락”은 이스라엘의 2층과는 다른 공간을 상상하게 한다. 한옥은
흙을 발로 밟아 다져 만든 마당이 있고 이 마당보다 높게 널빤지 등을 평평하게 깔아 만든 공간인 마루로 올라가 안방이나 건넌방으로
가도록 되어 있다. 방들의 바닥은 마루와 같은 높이에 있고 이 높아진 공간의 방바닥에는 온돌이 깔려 있다. 안방의 다른 측면에는
부엌이 위치해 있다. 부엌의 아궁이에서 불을 때어 안방의 온돌을 데워지게 하였다. 부엌은 보통 마당의 지표면보다 50-60cm
낮게 만들어지게 되는데 이미 방의 바닥이 마당보다 높아진 상태이기 때문에 부엌 위의 천장은 자연히 높아지게 되고 이 높아진 공간을
이용하여 방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방을 “다락”이라 불렀으며 대부분 해충이나 습기 등으로부터 물건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수납공간으로 사용하였다. 다락은 안방의 부엌과 면해 있는 아랫목의 벽에 문을 만들어 출입했다. 때때로 다락은 방이나 침실로
사용되기도 하였지만 평균 높이가 1m 정도밖에 되지 않는 좁고 작은 공간이어서 활동적이지 못했다. “다락”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원어는 “aliya”로서 구약 성경에서 이 단어는 13번 등장하는데 “올라가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삼하 18:33(위층),
시편 104:13(누각), 그리고 느 3:31(성루) 외에는 개역개정에서 모두 다락으로 번역되었다. 이 단어를 다락으로 번역하는
것은 한국적 건축구조에 적당한 단어일 뿐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공간이다.
“다락”을 기억하게 하는 대표적인 성경 이야기는 [열왕기상 17장]일 것이다. 기근 속에서 엘리야는 사르밧의 과부에게
음식을 요구했다. 사실 그녀는 가루 한 움큼과 조금 남은 기름으로 음식을 만들어 아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먹고 죽으려고 했었다.
그러나 엘리야에게 먼저 음식을 만들어 주고 나니 가루와 기름이 그 통과 병에 끊이지 않게 되었다. 엘리야와 그 가족이 여러 날
먹었다는 15절의 언급을 통해 우리는 기적이 있은 후 엘리야가 이 과부의 가족과 함께 머물렀던 것을 상상할 수 있다. 또한
갑작스럽게 과부의 아들의 숨이 끊어졌고 엘리야는 이 아이를 데리고 자기가 거처하던 “다락”으로 올라가 자기의 침상에 뉘였다(왕상
17:19)는 구절을 통해 우리는 사르밧의 과부의 집에 거했던 엘리야를 볼 수 있다. 사르밧 과부는 분명 기근에서 자신들을 구해 준
엘리야에게 자신들의 거처인 2층을 내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수납공간으로 사용되는 좁은 방을 엘리야에게 내준 것이 아니라
그녀의 삶의 장소를 기꺼이 내주었다. 당시 엘리야는 아합에게 하나님께서 기근을 보내시리라는 선포를 함으로써 반역인 취급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르밧의 과부는 엘리야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당당히 그녀의 거처를 내주었음을 볼 수 있다. 그녀가
기근에 얼마 남지 않은 식량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그녀의 가정 형편이 그리 넉넉지 못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녀에게는 집 한
채가 가진 재산의 전부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엘리야에게 자신의 2층을 내어주고 아이와 함께 1층에서 가축들과 함께
기거했음을 상상해 볼 수 있다.